제145화
아더의 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발가벗은 사내 중, 조금 전 죽은 테온과 마찬가지로 문신을 한 자가 섞여 있었다.
“자, 잠깐…! 이건 모함이요 모함! 난 절대 도르문트 첩… 컥!”
그 문신을 확인하자마자 아더는 조금 전 테온과 마찬가지로 그의 배때지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첩자로 밝혀진 의병군이 경악해 입을 벌리다, 픽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회의실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아더는 손에 들린 비스트를 휘리릭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첩자분들 때문에 괜한 오해를 받을 뻔했네요.”
“…….”
“혹시 아직도 제가 아더 바이에른이라는 걸 안 믿는 분이 계신가요? 그러면 설명을….”
아더의 말에 살아남은 8명의 의병군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아, 아니요!”
“믿소! 당신은 아더 바이에른이 맞소!”
“전설의 용병 던도 맞소이다!”
“그, 그러니 제발 살려주시오!”
그들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딱히 죽일 생각 없는데요?”
“…….”
“아케인을 위해 일해주시는 분들을 제가 왜 죽여요? 미치광이 살인마도 아니고.”
의병군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지니가 뒤늦게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우리 공자님이야!”
그 사이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안젤리나도 탄성을 쏟아냈다.
‘허. 대체 저게 무슨….’
지극히 상식적인 것만 보고 자란 그녀의 머리로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태 아군이라 생각했던 의병군들이 도르문트의 첩자라니?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더 바이에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 죽은 테온을 비롯한 배신자들은 제 혈통인 오망성의 눈동자로부터 숨을 수 있는 아티펙트를 지니고 있었다.
[칠성빛의 눈동자]
오망성 눈동자의 천적이라 불리는 칠성빛의 눈동자.
오망성의 눈동자를 가진 혈족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지닌 아티펙트를 놀랍게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의병군이 이런 아티펙트를 그냥 가지고 있을 리 없으니 아더 바이에른의 말이 맞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상황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아더 바이에른은 문신 만으로 저들이 도르문트의 첩자라는 걸 알았을까?’
그리고 배신자라 하더라도, 저들을 이렇게 죽여도 되는 가?
그 다음 있을 혼란은?
머릿속으로 드는 온갖 고민들에 안젤리나가 입술만 달싹일 때였다.
아더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시장님?”
“……?”
“자기소개 끝났는 데, 혹시 앉아도 되나요?”
아더의 말에 안젤리나의 눈이 커졌다.
“…….”
그녀의 시선이 아더 바이에른에게서 멀어져 피를 철철 흘리는 중인 두 구의 시체로 향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식욕이 싹 달아나는 걸 느낀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 상태로 회의를 진행 할 수는 없어.’
결정을 내린 안젤리나가 선언했다.
“…일단 회의를 파하고, 잠시 정비하는 시간을 좀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종료되고, 의병군들이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안젤리나는 그 틈을 이용해 아더에게 접근했다.
“공자, 정말로 문신만으로 저들을 도르문트 첩자로 생각하신 건가요?”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에 한 번 본적 있는 분들이거든요.”
“…전에 도르문트 첩자들을 보셨다고요?”
“네. 그런데 조금 전 죽은 테온이란 분처럼 대놓고 문신을 한 분은 처음 보네요. 보통 눈에 띄지 않은 신체 부위에 증표를 새기는 데.”
안젤리나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진실… 그렇다면 진짜로 도르문트 첩자를 본적이 있다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도르문트 첩자와 마주친 걸까?
그 사이 회의장이 청소되고, 자리를 비웠던 의병군들이 들어왔다.
아더가 활짝 웃으며 질문했다.
“다들 잘 쉬셨나요?”
의병군들이 대답하는 대신 애써 웃어보였다.
옆에 있던 지니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공자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응? 뭐가요 지니?”
“저 인간들이 저렇게 고분고분 한 건 처음 보거든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지니가 착각 한 거 아니에요? 다들 진짜로 사람 좋아보이는데?”
지니가 쓰게 웃었다.
사실 저들은 의병군들이긴 하지만, 아더의 말처럼 그렇게 썩 좋은 이들은 아니었다.
도르문트에 반기를 들기 위해 모인 이들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을 콩고물을 받아 먹기 위해 참여한 사람들이니깐.
하지만 굳이 이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
혹시나 아더 바이에른이 사실을 알고서 덜컥, 저들을 죽여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저들의 도움이 아직 필요하긴 하지….’
반군에게 필요한 물자며, 식량.
그리고 무기가지.
저들의 힘으로 조달되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으니깐.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안젤리나가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아직 덩그러니 놓인 두구의 시체와 아더를 번갈아 바라보다, 눈빛을 빛냈다.
‘아직 조금 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겠지만….’
흘러가는 상황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 예상보다 훨씬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조금 전 죽은 배신자들이 여태 우리 정보를 흘렸겠지.’
그래서 이틀 전 열렸던 회의장이 습격을 받았을 것이다.
조금도 넓게 조마녀 며칠 전 붙잡힌 윌렛도 저들이 흘린 정보에 의해 당했을 것이다.
‘…조금 과격하긴 했지만 아더 바이에른 덕분에 이 쥐새끼들을 잡은 거야.’
거기다 항상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던 의병군들의 기세가 수그러든 상황.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눈빛을 빛냈다.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 온건가?’
잠시 고민한 그녀가 결심하고서 입을 열었다.
“…오늘 안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녀의 말에 회의실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집중된 이목 속에서 안젤리나가 설명을 이었다.
“첫 째는 아더 바이에른의 신원 확인.”
“…….”
“하지만 이 건은… 이미 배신자가 나왔음으로 더는 확인 할 필요가 없죠.”
그녀의 시선이 의병군들에게로 향했다.
입술을 달싹인 그들이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안젤리나가 선언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윌렛 크레스톨의 구출입니다.”
“……!”
“여러분들의 동의하에 지하감옥에 갇힌, 그를 구출할 계획입니다.”
그녀의 말에 의병군들의 눈이 커지고, 지니의 입이 벌어졌다.
“드디어…!”
윌렛 크레스톨이 지하 감옥에 갇힌지 일주일.
마침내 그를 구하겠다고 아케인의 전 시장이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안젤리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케인의 총독부를 공격 할 생각입니다.”
“……?”
“윌렛과 여태 반군 활동을 하다 붙잡힌 동료들. 그들을 지하감옥에서 구하는 순간, 곧바로 총독부로 향 할 생각입니다.”
안젤리나의 말에 지니가 눈을 끔뻑이다, 경악해 입을 벌렸다.
“시장님 그 말씀은….”
“예.”
안젤리나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번 싸움으로, 이 길고 긴 다툼의 종지부를 찍을 생각입니다.”
* * *
안젤리나의 이야기에 회의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지금 시점에 아케인 총독부를 공격한단 말씀입니까 시장?”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최근 승기를 잡기는 했지만, 아직 저들의 방벽은 건재합니다!”
의병군들의 말에 안젤리나가 생각했다.
‘맞아. 저들의 말대로 총독부를 치기에 이를지도 몰라.’
하지만 며칠 동안 심사숙고해 지금이 최선의 시기라 판단한 그녀였다.
‘윌렛 크레스톨… 사실상 반군의 실질적인 리더를 그를 잃으면, 이 집단은 유지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최근들어 수색경찰의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저 첩자들만 봐도 그렇지… 이들 말고도 아마 더 많은 첩자들이 이미 숨어 있을 테고.’
익명성이 생명인 반군의 입장에서 첩자들만큼 치명적인 일이 없었다.
그 탓에 안젤리나는 윌렛 크레스톨의 구출과 함꼐 아케인 총독부를 치자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다면, 놈들의 방심을 노려 기습을 하는 게 최선의 수였으니깐.
결심이 선 안젤리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아직 저들의 권세는 여전하죠. 하지만 이렇게 때를 기다린다고 해서 과연 기회가 올까요?”
“하지만…!”
“차라리 지하 감옥을 습격하고, 갇힌 동료들을 구출한 뒤 저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도르문트의 개를 직접 치러 가는 게 나아보입니다.”
그녀의 말에 의병군들이 다시 반박했다.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던 아더가 지니에게 질문했다.
“지니, 도르문트 개라는 데 그게 누구에요?”
지니가 고개를 돌려 설명했다.
“현재 아케인의 통치자에요. 도르문트에서 보내온 가신이라고 하더군요.”
“호오… 그 자의 이름이 개에요?”
“네. 정확히는 도르문트의 13귀 중 한명이라 하더라고요.”
아더의 눈이 커졌다.
‘도르문트의 13귀?’
도르문트의 그림자라 불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케인 도르문트의 명령을 수행하는 암살자들.
‘그들 중 한 명인 개가… 이곳 아케인의 통치자로 왔다고?’
탄성을 터트린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흥미로운데? 그림자로 불리는 그들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잘 없었는데.
바뀐 미래의 영향이 도르문트의 13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걸까?
아더가 고민에 빠진 사이, 의병군들이 소리쳤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누가 경찰청장! 캡틴 마시우스를 상대 할 겁니까!”
“그의 경지는 무려 7서클의칼잡이!”
“거기다 도르문트의 견 또 한, 매우 뛰어난 마법사인데 그 두 사람을 상대 할 자들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그 외침에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안젤리나와, 의기양양해진 의병군들이 보였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그건 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
“제가 그분들을 죽여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더의 말에 한 의병군이 당황해 질문했다.
“고,공자께서 그자들을 죽인다는 말씀입니까?”
아더가 방긋 웃었다.
“네. 도르문트 개나 캡틴 마시우스. 그자들은 제가 맡을 수 있어요.”
“…….”
“그럼 문제가 해결 된 거 아닌가요?”
아더의 말에 의병군들이 입을 다물었다.
“…….”
그런 그들의 눈앞으로 이틀 전, 수색경찰들을 죽이던 아더의 모습이 잔상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안젤리나도 살며시 입꼬리가 올리며 중얼거렸다.
‘저 말도 진심… 정말로 마시우스와 도르문트 13견을 죽일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리고 이미 그 실력을 확인한기도 했다.
이틀 전 회담장을 습격한 수색경찰들의 고위 간부를 죽인 자가 바로 저 아더 바이에른 아닌가?
‘이미 거리에서는 아더 바이에른을 두고 소드 마스터라 부르고 있지.’
그 탓에 안젤리나는 여유가득한 미소를 의병군들에게 지어보였다.
“상황이 해결됐군요.”
“…….”
“아더 바이에른이 공자가 캡틴 마시우스와, 도르문트의 총도북 대장, 개를 맡아주면 더는 문제 될 게 없지 않나요?”
“…….”
“혹시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나요?”
의병군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젠장! 이렇게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일을 진행하면 안 되는데!’
‘아케인을 되찾고 우리 권리를 주장하려면….’
‘모든 결정에서 우리의 입김이 닿아햐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시키면 안 된다!’
결국 의병군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또 다시 딴지를 걸기 위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묵직한 소음이 회의실에 울려퍼졌다.
깜짝 놀란 의병군들이 시선을 돌리니, 바닥에 떨어진 비스트를 줍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여러분.”
“…….”
“실수로 비스트를 떨어트렸네요. 소란을 끼쳐 죄송합니다.”
아더가 비스트를 손에 걸친 채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의병군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
옅은 침묵이 자연스레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에석 몇몇 의병군들이 몸을 움찔 거렸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 배신자로 간주된 의병군들을 쏴죽이던 아더 바이에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박하면 혹시 나도 갑자기 쏴 죽이는 거아니야?’
‘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저, 저놈! 바이에른 공작가든 뭐든, 제정신이 아니야!’
결국 모든 의병군들이 신음만 흘릴 뿐, 이렇다 할 반박은 하지 못했다.
그 무언의 대답에 안젤리나가 방긋 미소지었다.
“그럼 결정됐군요.”
눈빛을 빛낸 안젤리나가 선언했다.
“이번 주, 아케인의 지하 감옥을 습격하고 윌렛 크레스톨을 구출! 그 다음 이 길고긴 다툼을 종식시키겠습니다!”
그녀의 선언에 지니가 두 손을 꽉 쥐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고, 의병군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젤리나도 벅차오르는 심정을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돌렸다.
방긋 미소짓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그 미소에 안젤리나도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걸었을 때, 아더가 중얼거렸다.
‘흠… 일이 잘 풀렸는데?’
반군에 합류하자마자 윌렛 어르신의 구출 작전에 참석하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 무난히 흘러간다면, 윌렛 어르신도 구하고 바이에른 가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도 얻는 셈.
거기다 안젤리나의 신임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얻은 듯 했다.
‘처음에는 경계하시더니, 이제는 완전히 믿으시는 것 같은데?’
그 탓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하면… 될 것 같은데?’
아더의 시선이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로 향했다.
다섯 개의 별이 박힌 그 눈동자를 바라보던 아더가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안젤리나 시장님 피맛은… 어떤 맛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