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꿈과 희망의 도시.
하지만 이제는 도르문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아케인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소드마스터가 등장했다는데?”
“그런데 그 소드 마스터가 7년 전에 크게 이름을 떨친 용병이라며?”
“크게 이름을 떨친 용병? 그건 윌렛 크레스톨 아니야?”
그 소문은 제각각 달랐다.
어떤 이들은 소드 마스터의 등장이라고 알고 있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7년 전 이름을 떨친 용병이라 알았다.
또 어떤 이들은 반군의 리더, 윌렛 크레스톨이라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이 소문의 주인공이 도르문트 수색경찰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사실이었다.
“D구역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어머. 저도 그 이야기 들었어요. 대포까지 쐈다면서요?”
“그런데 그 싸움에서 패퇴한 쪽이 수색경찰이라더군!”
아케인의 시민들은 이 헛소리인지 모를 소문을 아주 즐겁게 떠들어 댔다.
소문의 주인공이 누구이건 수색경찰들을 무찔러줬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게 조금씩 퍼지기 시작한 소문이 아케인을 뒤덮었을 때였다.
도르문트 총독부.
아케인의 시청을 새로이 개조해 만들어진 식민지 본부의 시장실에서 한 남자가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그 병력을 이끌고 가서 반군 놈들을 처리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하고 와!?”
도르문트에서 직접 파견한 13귀 중 견.
그가 3개의 머리에 달린 입으로 거칠게 소리쳤다.
“그, 그… 죄송합니다, 시장님…….”
“그게 기습은 성공적이었는데…….”
수색경찰들의 변명에 화를 참지 못한 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눈을 치켜뜬 수색경찰이 뒤로 주춤 물러났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3개의 머리 중 오른 쪽 머리를 움직인 견이 두 명의 수색경찰의 한 명의 머리를 꿀꺽 집어삼켰다.
“커,컥…….”
짧은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머리가 뽑힌 수색경찰이 절명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또 다른 수색경찰이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비, 비명을 지르면 나도 죽는다!’
터져 나오는 구역질을 억지로 참은 그가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견이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네 놈은 안 먹을 것 같으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수색경찰이 화들짝 놀랬다.
하지만 이미 견의 머리는 움직인 뒤였다.
코앞으로 다가온 날카로운 송곳니에 수색경찰의 입이 벌어진 그 때 시장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또 식사중이오?”
해적의 선장.
동시에 새로운 경찰청장인 캡틴 마시우스였다.
견이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방해하지 마! 지금 상당히 기분 나쁘니깐!”
“흠… 그럼 뭐, 식사 끝나고 이야기 하지.”
이 말에 바들바들 떨던 수색경찰이 소리쳤다.
“서, 선장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 저 좀 살려… 컥!”
견이 수색경찰의 머리를 기어코 집어 삼켰다.
정확히는 뜯어냈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마시우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제 부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소식 들으셨소?”
견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들었다. 대체 뭘한 거냐 마시우스?”
“아니… 난 최선을 다했소. 설마 그런 변수가 끼어들 줄 누가 알았나?”
견의 눈썹이 떨렸다.
“변수? 그럼 저 거리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란 거냐?’
“흠… 그런 것 같소.”
마시우스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7년 전 사라진 전설의 용병 던… 그렇게 불리는 자가 돌아온 모양이오.”
견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용병 주제 전설? 그거 거창하군.”
“나도 그리 생각 중이오. 하지만 무시 할 수는 없을 듯하오.”
마시우스가 쇼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윌렛… 그 늙은이 새끼를 집어넣어서 저 반군 놈들이 이제야 다 잡아들이나 싶었는데, 그걸 놓쳤으니깐.”
견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따위 변명이나 늘여놓으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대책이 뭐야?”
견의 말에 마시우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덫을 놓는 건 어떻소?”
“덫?”
마시우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소, 덫. 쥐새끼들을 잡을 아주 강력한 덫을 한 번 놓아보는 거요.”
* * *
쥴리와 아케인 교수들을 만난 지 이틀이 지났다.
아더는 어젯밤 종일 수다를 떨다 잠든 쥴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흠… 이렇게 보니깐 진짜 확실히 크긴 컸네.”
애들은 금방 큰다더니, 쥴리도 지난 7년 사이 훌쩍 커 버렸다.
그 성장이 기쁘면서도, 뭔가 서운해진 아더가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여기 계셨네요, 공자님.”
[귀쟁이]파의 두목 지니였다.
방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잠든 쥴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쥴리 많이 컸죠?”
“네. 너무 몰라보게 커버렸네요.”
“원래 그래요. 애들은 어른들 모르게 훌쩍 커버리죠.”
지니가 방문을 가리켰다.
“그런데 공자님, 지금 부터 회의를 할 건데 참석 좀 해줄 수 있어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회의인데요?”
“원래라면 이틀 전, 습격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했을 회의인데 오늘 열린다 하더라고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요? 안 그래도 돌아가는 상황을 좀 알고 싶기도 했고.”
아더의 대답을 들은 지니가 몸을 돌려 방안을 나갔다.
그렇게 쥴리가 잠이 든 방을 지나서, 건물 지하에 위치한 회의장으로 향하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케인의 전 시장.
안젤리나 베이비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10명 남짓한 낯선 사람들도 보였다.
아케인 반군을 지원하는 각각의 의병군들이었다.
그 때 아더를 발견한 안젤리나가 눈빛을 빛내며 질문했다.
“공자도 참석하는 건가요? 지니 씨?”
“네 시장님.”
“흠… 나쁘지 않네요. 아더 바이에른 공작에게 안 그래도 확인 할게 있었는데.”
고개를 끄덕인 안젤리나가 질문했다.
“먼저 간단한 인사부터 해 주시겠어요, 공자?”
그녀의 말에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더 바이에른입니다.”
단출한 자기소개에 의병군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자가… 그 전설의 용병 던?’
‘그런데 그 바이에른의 공작가 후계자이기도 한다고?’
‘흠… 믿기지가 않는군. 저토록 젊은 청년이?’
그 때 원형 탁자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테온이란 이름을 가진 의병군이었다.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온이 입을 열어 질문했다.
“정말로… 7년 전, 사라진 그 아더 바이에른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테온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옆에 있던 지니가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증명이 왜 필요해요? 내가 보증한다니깐!”
테온이 코웃음 쳤다.
“…깡패 두목의 보증이 무슨 효력이 있다고.”
“뭐!? 지금 말 다했어!”
“아, 들렸소? 귀가 너무 커서 혼잣말도 들리는 모양이군.”
왈칵, 표정을 구긴 지니가 몸을 일으켰지만, 테온이 먼저였다.
“다들 이상하지 않습니까!?”
“…?”
“7년 전 사라진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가 하필 이때 나타다니요! 그 때 바이에른 공자를 찾기 위해 아케인이 얼마나 떠들썩했습니까!”
그의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의병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테온의 말처럼 7년 전 사라졌던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가 이렇게 나타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 모습에 기세를 탄 테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다 이 소년의 또 다른 정체는 7년 전 사라진 전설의 용병 던이라 하더군요!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가 전설의 용병? 이건 또 말이 됩니까!”
의병군들이 이번에는 탄성을 터트렸다.
확실히 테온의 말처럼 이 또한 말이 되지 않았다.
그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가, 전설의 용병이라니?
도시 괴담도 선이 있는데 이건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그 때 지니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시발. 말이면 단 줄 아나.”
“…?”
“그래… 의심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이쪽은 그쪽네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야. 이 사람 없었으면 그 때 수색경찰들에게 다 같이 잡혀갔다고!”
“…….”
“그런 사람에게 감사인사는 못할망정, 이 따위 질문을 하는 게 맞는 거야?”
테온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또 짚고 넘어가야지 않겠소? 귀. 쟁. 이씨.”
테온의 도발과 함께 지니가 박차고 일어섰다.
테온도 지지 않고 그런 지니에게 맞섰다.
순식간에 개판이 되어버린 상황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 생각보다 단합이 잘 안 되는 모양이구나.’
하긴, 이곳에서만 무려 3곳의 세력이 모여 있었다.
아케인 대학, 윌렛의 용병들, 귀쟁이파.
아무리 한 뜻을 위해 뭉쳤다지만, 아무런 다툼 없는 게 이상할 것이다.
잠시 고민한 아더는 저 다툼에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외부인인 자신이 끼어들어봐야, 좋을 게 없을 테니.
그렇게 상황을 관망하기로 했을 때, 아더의 시선에 무언가 들어왔다.
테온이란 의병군의 목에 새겨진 독특한 문신이었다.
‘어라? 저건?’
어딘가 익숙한 그 문신에 아더가 낮은 탄성을 터트리는 그 떄, 안젤리나가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해… 의심스럽긴 해.’
테온의 말처럼 아더를 의심한 건 아니었지만, 솔직히 놀란 심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바이에른의 후계자가 7년 전 사라진 전설의 용병이었다니….’
사라진 바이에른 후계자가 나타난 건 그렇다 쳐도, 그 아더 바이에른이 아케인 뒷거리를 떠들썩하게 했던 전설의 용병이라니?
그 탓에 안젤리나가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지금은 상황을 중재하기 보다는 이 상황을 이용해 아더 바이에른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내는 게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그 때 테온이 거칠게 소리쳤다.
“최근 우리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았소?”
“…!”
“우리 회담장을 알고 습격한 걸보면, 내부의 배신자가 있단 소리오! 그런 와중에 나타난 외부인이 바로 저자요!”
그의 말에 나머지 의용군들이 눈이 커졌다.
지니는 혀를 찼고, 안젤리나는 눈빛을 반짝였다.
그 사이 테온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 아니오? 다들 안 그렇소?”
그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서 시선을 돌렸다.
그 집중된 이목 속에서 여태 침묵하던 아더가 입을 열었다.
“재밌네요.”
“…?”
“흠… 그러니깐 절 도르문트의 쥐새끼로 몰아가는 건가요?”
아더의 말에 조금 전 소리쳤던 테온이 대답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지 않겠소?”
“아뇨. 충분히 그런 의심을 할 수 있죠. 그런데…….”
말을 흐린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보기엔, 당신이 배신자 같은데요?”
아더의 말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놀랬다.
그건 테온도 다르지 않았다.
“무, 뭐! 내가 배신자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그의 말에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비스트를 꺼내들었다.
철컥!
총이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아더가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당신을 두고 딱 하는 말이에요.”
테온이 경악해 입을 벌리고 있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제 말로 안 되니, 총으로 날 협박하겠다?”
“…?”
“그래 어디 한 번 쏴봐라! 이 쥐새끼야! 감히 날 배신자로 몰아가는 것도 모자라 총을 들이밀어?”
그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 진짜요?”
“그래 쏴봐! 쏘게 되면 네 놈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최악의 고문…….”
탕-!
“…?”
“…….”
비스트의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을 끔뻑이던 테온이 고개를 돌렸다.
“…어?”
제 배때지에 난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끔뻑이던 눈을 치켜뜬 테온이 중얼거렸다.
“진짜… 쐈어?”
이 말과 함께 테온이 픽 쓰러졌다.
그 광경에 의용군들이 입을 벌리고, 지니와 안젤리나가 얼어붙었다.
그 사이 비스트를 한 바퀴 휘리릭 돌린 아더가 안젤리나를 향해 말했다.
“이상한 첩자네요. 정체를 들켜놓고, 총을 쏴보라하다니. 안 그래요 시장님?”
아더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안젤리나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공자? 테온이 배신자라니요”
“말 그대로에요 시장님. 테온 저 자가 배신자이자, 첩자에요.”
“네, 네?”
“도르문트 첩자요. 저기 박쥐 문신… 저거, 도르문트 공작원들이 뜻하는 문신이거든요.”
“…!”
안젤리나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입만 벌렸다.
‘…테온이 첩자였다고?’
그는 아케인에서 알아주는 상권 조합의 상인 대표이자 의병군들을 도와주는 거액의 후원자였는데?
더군다나 그가 배신자라면, 오망성의 눈동자를 가진 자신이 왜 못 알아본다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안젤리나가 반응하지 못할 때 아더가 미소 지었다.
“그런데 아직 더 남아있는 것 같네요.”
“…?”
“도르문트의 첩자요. 보통 도르문트 첩자들은 2인1조로 움직이거든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의병군들을 바라보았다.
“…!”
깜짝 놀란 의병군들이 얼어붙었다.
그 상황 속에서 아더가 비스트를 재장전하며 말했다.
“자 여러분. 한 분씩 팬티까지 싹 벗어주세요.”
“…?”
“조금 전 말처럼, 도르문트 첩자들을 뜻하는 문신을 확인해야 하니깐 말이에요.”
아더가 방긋 웃었다.
“당연하지만 다들 협조해주실 거죠? 배신자를 가려내는 일이니깐.”
의병군들의 입이 경악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