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지니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아케인 대학 교수들이 반군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윌렛이나 용병들이야 워낙에 자유분방한 사람들이니 반군이 된 일이 크게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아케인 대학은 달랐다.
그들은 교수이기 이전에 교육자였으며 지식인.
그런 이들이 칼과 총을 들고 반기를 일으키다니?
‘그럼… 치즈이 교수님도 싸우시는 건가?”
그 연로한 노교수가 수색경찰과 맞서 싸우는 장면을 상상한 아더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떤 모습일지 그림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더 놀라운 사실이 남아 있었다.
현재 감옥에 투옥 중인 윌렛의 뒤를 이어 혁명군의 새로운 리더가 된 쥴리였다.
‘그 조그맣던 아이가… 혁명군의 새로운 리더가 됐다고?’
곰곰이 고민하던 아더는 곧 탄성을 터트렸다.
‘7년이자 지났으니깐 더 이상 꼬마가 아니구나.’
헤어질 때 당시 쥴리의 나이가 10살.
지금 이면 흰 수염의 저주에 갇히기 전 제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와… 그럼 꼬마가 아니라 이제 숙녀가 되었다는 거네?’
그렇다 해도 혁명군의 리더가 되었다니.
아더가 감탄을 숨기지 못할 때, 지니가 소리쳤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본부 지키고, 나머지는 나 따라간다. 모두 준비해!”
그녀의 말에 귀쟁이 파 직원들이 분주였다.
그 모습을 팔짱을 낀 채 지니가 지켜보던 그 때, 한 직원이 슬그머니 질문했다.
“그런데 보스. 저 사람 누구입니까?”
“누구?”
“저기, 보스가 데려온 사내 말입니다.”
지니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 반응에 귀쟁이 파 직원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설마 저 사람도 같이 따라가는 겁니까?”
“혹시 보스의 숨겨둔 연인 뭐, 그런 겁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지니가 정신을 차리고 경고했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요즘 풀어주니깐 살판나지?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나 궁금해 하고!”
“아니… 궁금해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보스가 이곳에 외지인을 데려온 적은 처음인데!”
부하들의 반발에 지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사람 말고도 외지인은 많이 데려왔잖아?”
“저렇게 잘생긴 분은 데려온 적은 없었죠.”
“거기다 보스가 저 사람 보고 눈물을 흘렸다면서요?”
지니의 눈이 커졌다.
‘그, 그걸 봤단 말이야?’
곰곰이 고민하던 지니는 신음을 흘렀다.
생각해보니 보지 않은 게 이상했다.
아더 바이에른을 보자마자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음을 터트렸으니.
그 사이 직원들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가볍게 던진 질문.
그 질문에 저 냉혹한 귀쟁이 파 보스가 너무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좋은 놀림거리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도대체 저 남자 누굽니까!”
“진짜 보스 남자친구 입니까?”
“아니면 결혼을 약속한 사이!?”
폭포수처럼 밀려오는 직원들의 질문.
당황한 지니가 황급히 변명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불현듯 좋은 변명거리가 떠올랐다.
씩, 미소지은 지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진짜 이래서 애송이들은 안 돼.”
“……?”
“너희들,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
갑작스럽게 달라진 지니의 반응에 직원들이 눈을 끔뻑였다.
“어… 저 남자가 누굽니까?”
“이 새끼들, 진짜 전직 용병 맞아?”
“……?”
“하… 한 번만 말해줄 테니깐 잘 들어. 저 사람 사신이야.”
직원들이 끔뻑이던 눈을 치켜떴다.
“…사신이요?”
“저 인간이 죽음의 사자란 말입니까?’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얼씨구, 이 멍청한 놈들아. 이 바닥에서 사신이라 불릴 사람이 누가 있어?”
“……?”
“7년 전 사라진 전설의 용병. 해적의 부선장을 죽이고, 칠황을 궤멸시켰으며 도르문트 가주를 따돌리고 광신도의 수장을 잡은 남자.”
“……!”
직원들이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지니가 선언했다.
“한 때 이 바닥 전설의 용병이라 불린 남자. 저 남자가, 바로 그 사신 던이야.”
직원들이 놀라 자지러졌다.
* * *
준비를 끝마친 지니는 회담장이 위치한 D구역을 향해 곧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던 아더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흠? 뭐지?’
뒤에서 뒤따르는 30명의 귀쟁이 파 직원들의 시선이 이상했다.
그들은 조금 전부터 제 뒤통수를 뚫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저렇게 노려보는 거지?’
그 이유를 고민하던 아더는 결국 찾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
“혹시 제 뒤통수에 뭐가 묻었나요? 계속 노려보셔 가지고….”
아더의 말에 귀쟁이 파 직원들이 당황해 대답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그…….”
말을 흐린 그들이 시선을 내리 깔았다.
그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지니가 속삭였다.
‘그냥 적당히 아는 척 좀 해주세요.’
‘…아는 척이요 지니 씨?’
‘네. 제가 공자님이 옛날에 사라진 그 던이라고 말했거든요.’
아더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던이라고 밝힌 거하고, 제 뒤통수를 노려보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당연히 상관있죠. 저놈들에게 있어 공자님은 우상이라고요.’
‘…우상?”
‘네 우상. 7년 전이면 저 애송이들이 이제 막 업계에 들어왔을 때인데, 그 때 공자님이 한 끗발 했잖아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 시절에 내가 한 끗발 했던가?
그 때 한 직원이 소리쳐 물었다.
“저,정말로 사신 던님이십니까?”
그의 말에 고개를 돌린 아더가 대답했다.
“사신인 줄은 모르겠고, 던은 맞아요.”
질문했던 직원의 입이 벌어졌다.
“여, 영광입니다! 하르게스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하르게스 씨. 저도 영광이네요.”
아더의 말에 하르게스라 불린 사내가 감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에 눈치를 보던 마피아 직원들이 하나둘 달려들었다.
“저, 저는 겐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진짜 수도 없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 바닥 괴담을 말할 때면, 꼭 빠지지 않은 전설의 용병을 만나다니….”
쏟아지는 인사와 악수에 아더가 당황했다.
그 모습에 지니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잡담 그만하고, 다들 대형 갖춰. 이제 회담장이야!”
그녀의 명령에 마피아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 사이 철문 너머로 향하려던 지니가 멈칫했다.
“…….”
시선을 좁힌 지니가 아더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오?’
철문 너머, 어둠에 몸을 숨겨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수십 명의 사내가 흐릿하게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아더가 입모양만으로 지니에게 말했다.
‘저분들도 같은 편이에요?’
‘그럴 리가요. 뭔가 일이 틀어진 것 같아요.’
대답을 들은 아더가 비스트를 꺼내들었다.
그 마탄의 등장에 지니의 눈이 커진 순간, 거대한 광음이 울려퍼졌다.
쾅-!!!
비스트에서 뿜어져 나온 탄환이 어둠에 몸을 숨긴 사내들을 집어삼켰다.
옆에 있던 지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랜만에 봐서 놀랍네요. 공자님의 그 결단력.”
어깨를 으쓱인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불에 타오르는 통로 안에, 숨이 끊기기 일보 직전인 수십 명의 사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지니가 그런 그들을 뒤적거리다 눈을 치켜떴다.
“수색경찰?”
지니의 말에 아더의 눈도 커졌다.
“어라? 그분들이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저도 모르겠네요. 설마, 위치가 발각 됐나?”
그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일꺠운 감각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와 비명.
그리고 거친 괴성이 들려왔다.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위쪽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요.”
아더의 말에 표정을 굳힌 지니가 소리쳤다.
“다들 얼른 위로 올라가! 해적놈들이 덮쳐 왔다!”
그녀의 외침에 넋을 놓고 있던 마피아 직원들이 허둥지둥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지니가 아더를 향해 말했다.
“공자님 저희도 가시죠.”
“그러죠. 그런데 어쩌다 위치가 발각 된 거예요?”
“저도 모르겠네요. 정보가 새어나간 게 분명한데, 어디서 새어나간 거지…….”
코끝을 찡그린 지니가 달려 나갔다.
그 뒤를 아더가 바짝 뒤쫓았다.
그렇게 검은 통로를 한동안 달리던 중, 지니가 위로 솟구쳤다.
쾅-!
동시에 앞을 가로 막고 있던 철문이 부서지고, 환한 빛이 쏟아졌다.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온 아더는 나직한 탄성을 흘렀다.
“오?”
햇빛이 스며드는 건물 지하실.
그 곳에서 수십 명의 해적들과 대치중인 웬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보였다.
그 사이를,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한 뿔을 지닌 한 사내가 거침없이 헤집고 있었다.
“크아아악-!”
“코, 코뿔소가 나타났다!”
“젠장! 저 괴물이 여기에 올 줄이야…….”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 광경에 해적들이 소리쳤다.
“캬하! 역시 서장님 뿔이 최고라니깐!”
“모두 조져버려! 감히 아케인에서 반란 따위를 모색해?”
“네놈들은 감옥에 갈 것도 없다! 그냥 죽어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니가 표정을 굳힌 채 중얼거렸다.
“…알렌도르 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그녀의 말에 아더가 질문했다.
“유명한 사람이에요?”
“…유명하죠. 옛날로 따지면 해적의 간부급 되는 인간이니.”
이 말과 함께 지니가 이를 갈았다.
“개 같은 거… 어디서 정보가 샌 거지? 저 정도 거물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확신을 하고 왔다는 건데….”
그녀의 말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모두 후퇴!! 건물 안에서 수성한다! 모두 후퇴!"
저 멀리, 코뿔소라 불린 사내의 앞을 가로막은 노인.
그 노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기억을 되새기던 아더는 곧 탄성을 터트렸다.
‘세상에… 놀스 교수님이잖아?’
아케인에서 검술 강의를 하던, 우직한 사내.
그 놀스 교수가 폭삭 늙어버린 채 코뿔소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물론 가로 막고 있다 할 뿐이지, 상황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큭-!”
코뿔소라 불린 사내는 놀랍게도 검기를 두르고 있었다.
그 검기가 송곳 같은 뿔과 함께 놀스 교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곧바로 뛰어올랐다.
지니가 흠칫 놀래며 소리쳤다.
“고, 공자님?”
하지만 이미 난전 한 가운데 뛰어든 아더였다.
몸을 빙그르르 돌려, 코뿔소 앞을 막아선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
그 인사에 놀스 교수와 반군을 덮치려던 해적들이 흠칫 놀랬다.
그건 놀스 교수가 다르지 않았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누구지? 지원군인가?”
그 때 코뿔소가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냐 네 놈은!”
그 거친 돌격에 놀스 교수가 깜짝 놀라 소리치려던 순간, 아더가 발밑에 떨어진 검 차 올려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쇄도한 코뿔소의 검기와 아더의 검이 부딪쳤다.
챙-!
쇠와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놀스 교수의 눈이 커졌다.
“…뭐? 검기라고?”
그 외침 속에서 코뿔소도 흠칫 놀랬다.
‘뭐야? 저 늙은이 새끼 말고, 또 검기를 다룰 줄 아는 인간이 있었다고?’
그 사이 아더가 코뿔소의 검기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흠…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낼게요, 코뿔소 씨.”
“……?”
“혹시 남기고 싶은 유언 있으세요?”
코뿔소가 눈을 끔뻑이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유언? 시발… 고작 이거 막았다고 네가 이긴 것 같냐?”
아더가 살며시 웃었다.
“그걸 유언으로 칠게요. 고생하셨어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검을 내지른다.
그 일격에 맞서, 코뿔소가 제 검기와 뿔을 휘두른 순간 아더의 검이 변했다.
그 변화를 코뿔소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미세한 변화였기 때문이다.
그 사이 붉은 검기가, 회색빛 검강이 되어 코뿔소의 검기를 부드럽게 잘라냈다.
그 다음은 그의 목과 칼을 잘라냈고, 마지막으로 코뿔소의 자랑인 송곳 같은 코마저 잘라냈다.
허나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칠 때까지도, 코뿔소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목이 잘려 바닥에 떨어져 데구르르 구를 때까지도 그는 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 속에서 무거운 침묵이 현장에 내려앉았다.
“……?”
해적도, 마파이 작원도, 심지어 지니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모두가 눈을 치켜 뜬 채, 갑자기 목이 잘려 죽어버린 코뿔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기묘한 흐름 속에서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입을 벌려 경악하고 있는 놀스 교수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옛 스승을 향해 아더가 방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놀스 교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놀스 교수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