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아더는 지니가 건네준 서류를 주르륵, 읽어 내려갔다.
그간 아케인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정리해 놓은 파일이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방대했다.
덕분에 상황을 이해한 아더는 탄성을 터트렸다.
‘이렇게 된 거였구나….’
해적을 이용해 아케인을 점령한 케인 도르문트.
그는 공포정치를 통해 아케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케인에 있는 수많은 시민, 더 나아가 [용병]들이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그들은 스스로 반군을 자처하며 케인 도르문트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한 데 모은 사람이 바로 윌렛 크레스톨.
한 때 전설의 용병이라 불리던 사내였다.
‘역시 윌렛 어르신... 대단하네.’
설마 그 제멋대로인 용병들을 모아 군대를 결성 할 생각을 하다니.
그 때, 지니가 어느 사이엔가 만든 커피를 건네주었다.
“오. 고마워요 지니.”
호로록, 그녀가 건네준 커피를 들이켠 아더가 들고 있던 서류를 돌려주며 말했다.
“이제 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네요. 그럼 저기 바깥에 있는 분들도 용병이에요?”
지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애송이들이긴 한데, 일단 용병들이었지.”
“흐음... 그런데 왜 반군이면서 마피아라 불리는 거예요?”
지니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어쩌다 보니요?”
“윌렛 어르신의 반군은 신사적이었고, 우리 쪽은 약간 폭력적이었거든….”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지니 씨, 수색경찰분들 막 죽이고 다녔군요?”
“…아더한테 그런 말 들으니 뭔가 자존심 상하네.”
“왜요?”
지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그래서 윌렛 어르신은 어디에 계시는데요?”
아더의 질문에 지니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금은 못 만나.”
“왜요?”
“그게 상황이 좀 복잡해.”
“…?”
아더가 눈을 끔뻑이는 사이, 지니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며칠 전에 큰 분쟁이 있었어. 반군과 아케인을 점검한 해적들간의 분쟁이었지.”
그녀의 말에 아더가 물었다.
“누가 이겼는데요?”
“승리는 반군이 했는데, 가장 중요한 걸 해적들에게 빼앗겨 버렸어.”
“중요한 거요?”
“윌렛 어르신.”
“……!”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지니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윌렛 어르신이 놈들에게 붙잡히셨어. 그리고 며칠 뒤면, 윌렛 어르신의 교수형이 열릴 거야.”
* * *
불과 일주일 전.
반군과 수색경찰간에 큰 다툼이 있었다.
그 과정에 반군은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반쪽짜리 승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반군의 실질적인 리더라 볼 수 있는 윌렛 크레스톨을 수색경찰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래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를 해적분들이 점검하고 있었구나.’
상황을 이해한 아더는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 보았던 텅 빈 광장이 보였다.
혼자서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해, 잠시 바깥으로 나왔는데 조금 전까지 북적거리던 광장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덕분에 오래만에 느껴보는 침묵 속에서 아더는 생각했다.
‘아마 윌렛 어르신을 곧바로 죽이지 않고 교수형에 처하는 건 의도적으로 그러는 거겠지?’
아무래도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 같았다.
‘케인 도르문트가 즐겨 쓰던 수법이었지. 혼란에는 더 큰 공포.’
실질적인 리더라 볼 수 있는 윌렛 어르신이 죽으면 반군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아더는 잠시 고민하다 입맛을 쩝 다셨다.
“흠… 곧바로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려 했는데 곤란하게 됐네.”
지니의 힘을 빌리면, 열차를 타지 않더라도 제국의 수도로 돌아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아주 긴 시간을 들여서.’
허나 이대로 제국의 수도를 떠나버리면 윌렛 어르신에게 큰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아더는 지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1년 전까지, 안나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이렇다 할 큰일은 없다고 했지?’
물론 1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지니의 말로는 계속 동태를 파악하고는 있다 하지만, 내부 상황은 또 모르는 거니깐.’
그런 의미에서 하루빨리 바이에른 가문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윌렛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스승이자 목숨을 구해준 은인.
이대로 그를 모른 척 외면하고 갈 수는 없었다.
그 탓에 고민하던 아더는 곧 눈빛을 빛냈다.
‘아니지. 생각해보니, 간단한 문제잖아?’
어차피 지니의 힘을 빌려 제국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열차를 타지 않는 이상 긴 시간을 소모할 것이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달은 넘게 걸릴 테지. 하지만, 아케인을 점령한 도르문트와 해적들을 쓸어버리다면?’
상황에 따라서 일주일.
빠르면 하루 만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해적이 사라지면 그들이 점검한 아케인 열차가 다시 움직일 테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감탄을 터트렸다.
‘오… 나쁘지 않은데? 이러면 원하는 걸 모두 얻는 거잖아?’
윌렛 어르신도 구하고, 아케인에 머무는 도르문트 사람들도 죽이고.
더군다나 제국의 수도로도 더 빨리 갈 수 있다.
‘이런 걸 두고 일석이조라… 아니 일석삼조라 부르는 건가?’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동시에 어지럽던 상황이, 한 길로 쭉 뻗었다.
남은 건 그 길을 걸을 자격이 있는 지 시험만이 남았을 뿐.
‘나는 과연 이 도시를 해적과 도르문트에게서 구해낼 수 있을까?’
생각과 함께 아더가 눈을 감았다.
두근-!
그 순간 가슴팍에서 거친 박동이 일어났다.
6개의 고리.
그 고리가 거칠게 회전하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24살이란 나이에 6개의 고리를 엮은 건 전생에도 이루지 못한 성과.
하지만 아더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쩝… 소드 마스터가 되기 위한 깨달음은 깨우쳤지만, 내 고리는 그대로구나.’
허나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흰 수염 씨의 저주에 갇힌 건 내 정신뿐이었으니깐.’
소드마스터의 깨달음은 얻었지만, 마나는 그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
그 탓에 고민하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그렇다 해서, 검강을 뿜어내지 못할까?’
생각과 함께 손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이, 마치 검을 잡은 것처럼 구부러졌다.
그 상태에서 아더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화악-!
잔바람이 일어나며, 허공이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손을 타고 무언가 치솟아 올랐다.
그 순간 아더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되는데?”
검강.
모든 칼잡이들이 바래마지 않는 가장 고결한 경지의 칼날이 희미하지만 엿보였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6개의 고리로 검강을 만드는 만큼, 마나의 움직임이 불안정했다.
‘이대로 지속하는 건, 불가능 할 것 같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이번에는 지니에게 건네받은 비스트를 꺼내들었다.
“비스트도 이렇게 돌아왔고… 여기다가 노움과 운디네마저 있으면 딱 좋은데.’
희안하게도, 두 정령은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지니는 실프를 아무렇지 않게 소환하는 데 말이다.
‘그렇다는 건 내 문제라 소리인데… 흰 수염 씨의 저주 때문에 계약이 끊긴 건가?’
고민하던 아더는 그럴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흰수염의 저주는 정신뿐만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를 건드는 이질적인 마법이었으니.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고개를 돌렸다.
광장 한 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화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고민한 아더가 그 화분에 다가가 지니의 혈통을 일으켰다.
우웅-!
몸이 달아오르는 감각과 함께 아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노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더는 조금 더 강하게 지니의 혈통을 일으켰다.
그 순간 햇빛을 받지 못해, 시들시들하던 이름 모를 꽃이 화사하게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아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노움 씨, 안 들리세요?”
[…….]
“흠… 안 되네. 혈통은 분명 제대로 깨어있는 데 대체 왤까?”
머리를 긁적인 아더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면 장소가 문제인가? 처음 소환했을 때도, 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호수에서 했으니깐?’
이런저런 가정과 함께 아더가 고민에 빠져들려는 순간, 저 멀리서 지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더! 빨리 이쪽으로 와봐!”
그녀의 말에 몸을 일으킨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광장이 다시 텅 비었을 때, 화분 너머로 누군가 나타났다.
[…뭐지?]
땅의 상급정령.
노움이었다.
오랜만에 현계로 내려온 노움이 멀어져 가는 아더를 바라보며 목울대를 출렁거렸다.
[미, 미친 놈이 다시 돌아왔어?]
* * *
지니가 아더를 찾은 건 우연이었다.
아케인 경찰국에 심어 놓은 스파이를 통해, 윌렛의 양복점에서 의문의 학살이 일어났다는 정보를 엿들었다.
이제는 해적의 본거지가 되어버린 경찰국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 뒷배에 있는 도르문트가 무서워, 다들 그 티를 못 내지….’
그런 와중에 일어난 의문의 학살.
지니는 혹시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7년 전, 갑자기 열차에서 사라진 아더 바이에른이 놀랍게도 서 있었다.
이제는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은 지니였다.
그 탓에 이 상황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다.
‘계속 내가 대리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바이에른 가로 돌려보내야 하나?’
7년 전, 아더가 홀연히 사라지고 서럽게 울던 안나의 얼굴이 아직 생생했다.
그 기억을 되새기던 지니는 상식적으로 보면 바이에른 가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더를 놔주기 싫다는 마음도 존재했다.
‘이제야… 만났는데, 또 이별이라고?’
그리고 이번에 만나면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더 바이에른은 공작가의 후계자고 자신은 사정이 있다지만,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다.
그런 자신이 아더 바이에른과 어울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탓에 지니가 고민하던 그때, 조금 전 불렀던 아더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신을 차린 지니가 질문했다.
“고민… 끝났어요?”
그녀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이번에는 또 존댓말이네요 지니?”
지니가 어깨를 으쓱였다.
“공작가의 후계자한테 반말했다가 나중에 감옥에 끌려가면 어떻게 해요?”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미소를 빤히 지켜보던 지니가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 정했어요?”
이번에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나요?”
“…어떤 답인데요?”
“일단 윌렛 어르신을 구해야죠.”
지니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였다.
“바이에른 가로 돌아가는 마차를 수배해줄 수도 있어요.”
“마차로 가면 두 달 정도 걸리지 않아요? 그럴 거면, 그냥 도르문트 일가를 죽이고 열차를 타죠.”
아더의 대답에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도르문트 일가를 죽이고 열차를 탄다고요?”
“네.”
“…진심이세요, 공자님?”
“그럼 진심이죠. 빨리 바이에른 가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여, 열차를 타기 위해서 아케인을 점검한 도르문트 일가를 죽인다고?’
이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나올 수 있는 발상일까?
오래만에 느껴보는 당혹감 속에서, 지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신다운 생각이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니?”
“그냥 그런 게 있어요. 그럼 같이 싸워주시는 건가요?”
아더가 씩 미소지었다.
"당연하죠. 이러면 7년만에 같이 일하는 건가요? 지니?"
지니가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어?'
잠깐 잊고 있었지만, 눈앞의 사내는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가이기 이전 아케인을 뒤접어 놓은 전설적인 용병이었다.
홀홀 단신으로 해적과 칠황에게 맞선 남자.
도르문트를 따돌리고 검은 십자가의 공주와 대면한 용병.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의뢰를 연속으로 성공한 사내.
그 전설의 용병이라 불리던 남자가 7년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아케인을 구원한다 선언하며.
지니는 웬지 모를 흥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렇겠죠? 7년만에 돌아왔으니깐."
"기분이 색다롭네요."
"저도 그래요...흠. 이렇게 된 이상 시간 끌지 말고 곧바로 움직이죠."
"어딜요?"
"현재 아케인의 지하 세력은 크게 3곳으로 분류 되요."
“……?”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지니가 설명했다.
“제가 이끄는 이곳… [귀쟁이]파. 다른 한 곳은 아케인 대학 교수진들과 아케인의 지식인들이 모인 세력.”
“……!”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아케인 대학 교수님들하고 아케인의 지식인들이 모인 세력이라고?’
그렇다면 치즈이 교수님이나 놀스 교수님.
그런 분들이 모여있는 곳인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탄성을 터트리던 그 때, 지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머지 한 곳은, 원래 윌렛 어르신들이 이끌던 아케인의 용병들. 그곳의 현재 수장은, 공자님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절 아는 사람이라고요?”
“네. 저보다, 아마 공자님을 더 찾아 해맨 사람이기도 할 걸요?”
지니보다 날 더 찾아해맸다고?
그게 누구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쥴리 프로스키. 반군의 새로운 리더.”
아더의 눈이 커졌다.
‘쥴리? 설마 내가 아는 그 쥴리인가?’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지니가 검은 색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
“오늘 그 쥴리 프로스키랑 회담을 가지기로 했어요. 윌렛 어르신을 구출하기 위한 회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