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38화 (138/265)

제138화

아더가 활짝 웃으며 질문했다.

“다시 질문 할게요. 혹시 맨 나중에 죽고 싶으신 분이 있나요?”

수십 명의 수색경찰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만 또르르 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없으면 제가 선택 할게요. 이중에서 가장 유식해 보이는 사람으로… 흠.”

턱을 쓰다듬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라? 유식해 보이는 분이 없네요?”

“…?”

“쩝… 이럼 어쩔 수 없네요. 가장 늦게 죽는 분한테 물어봐야겠네.”

정신을 차린 수색경찰, 동시에 10년 차 해적인 케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시발… 미친놈이네 이거.”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전혀요. 미친 건 갑자기 변해버린 이 세상이죠.”

이 말에 케빈이 손짓했다.

그 순간 수색경찰들이 일제히 권총을 꺼내들었다.

어떤 이들은 날이 바짝 선 도검까지 꺼내들었다.

그 모습을 아더가 가만히 지켜보던 때, 케빈이 이죽거렸다.

“그래… 네놈이 그 7년 전에 사라진 사신 던이라고?”

그의 질문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인 줄 모르겠는데, 던은 맞아요.”

“놀랍네. 7년 전에 사라진 그 전설적인 용병이 이런 애송이일 줄이야. 사실 사신 던에 관한 소문은 다 거짓말 아니야?”

케빈의 이죽거림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해요. 제 소문에 관한 것들 중 거짓이 대부분 섞여있죠.”

“그래? 그러면 너는 여기 죽….”

“대신 당신네 부선장을 죽인, 칠황의 바란스란 사람을 죽이긴 했어요.”

아더의 말에 케빈이 놀라 눈을 치켜떴다.

“…바란스? 그 칠황의 삼목인 바란스를 네가 죽였다고?”

“네. 그러니깐 당신네 부선장을 죽인 건 아니란 거죠.”

아더의 대답에 케빈이 입을 다물었다.

그 상태로 아더의 표정을 살핀 케빈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설마 진짜 그 전설의 용병, 던 아니야?’

지금 눈앞의 사내의 표정이나 호흡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거기다 거짓말을 저렇게 공들여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 탓에 문득 불안해진 케빈이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7년 전, [해적]을 휘청이게 만들었던 학살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던 선배 해적의 조언이었다.

‘사신 던… 놈을 마주치면 꼭 도망쳐라 후배야.’

‘미쳤어요, 선배? 우리 부선장을 죽인 놈인데 도망치면 어떻게 해요!’

‘새끼야! 네까짓 게 덤벼든다고 어떻게 될 놈이 아니야!’

‘…그 정도로 놈이 세요? 선배?’

그의 질문에 선배 해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쎈 건 당연하고… 시발. 그냥 무서워.’

‘……?’

‘그 자식 미친놈이야.’

‘…미친놈이라고요?’

‘그냥 말이 안 통하고 무식하게 세 보이면, 일단 도망치고 봐. 뭐… 이미 마주친 시점에서 끝났을 지도 모르지만.’

‘…….’

그 기억을 되새기던 케빈의 목울대가 자신도 모르게 출렁거렸다.

그와 동시에 활짝 웃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케빈은 곧 고개를 저으며 그 감정을 떨쳐냈다.

‘내가 누구야? 저 귀족 나으리들도 빌빌 길게 만드는 치안 감독인데 고작 저런 애송이한테 쫄아야 한다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뒤, 출세를 한 그에게 있어 공포란 익숙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 탓에 애써 두려움을 떨쳐낸 케빈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네가, 그 바란스를 죽인 던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을 다 죽이고 증명하면 되겠네.”

이 말과 함께 가래침을 퉷 하고 뱉는 그의 모습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다 죽일 건데요?”

“그래… 그러니깐 어디 해보라고!”

거칠게 소리친 케빈이 손에 쥔 권총을 아더에게 겨누었다.

철컥-!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수색경찰들도 손에 쥔 권총을 아더에게 겨누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해적 분들. 화끈해서 좋아요.”

이 말과 함께 수십 발의 총성이 지하주점안에 울려 퍼졌다.

* * *

케빈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끔뻑였다.

‘뭐지? 왜 내가 천장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거지?’

문득 든 의문과 함께 케빈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고통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니 잘려진 제 오른 팔이 보였다.

“…?”

케빈이 눈을 끔뻑였다.

뭐지? 왜 내 팔이 잘린 거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그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질 때였다.

코끝으로 지독한 악취가 맡아졌다.

그 탓에 고개를 돌리니, 굴러다니는 사람의 눈알이 보였다.

“…!”

깜짝 놀란 케빈의 몸을 떨었다.

그와 동시에 난장판이 된 주점의 현장이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뭐?”

주점 안이 피와 시체로 가득했다.

그것도 조금 전까지 농담을 따먹던 제 동료들의 피와 시체로 말이다.

입을 벌려 경악한 케빈이 몸을 부들부들 떨 때, 잊고 있었던 조금 전 상황이 떠올랐다.

“…….”

반동분자들을 잡기 위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주점을 거점으로 활용하던 중, 갑작스럽게 들이 닥친 괴한.

그 괴한과 맞서 싸우기 위해 총을 꺼내든 자신.

그리고 시작된 전투.

여기까지 생각한 케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청년이 쭈그려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흠… 설마 모두 다 죽은 건가?”

“…….”

“살아 계신 분이 없네. 이러면 곤란한데 쩝….”

케빈이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을 했다.

그와 동시에 선배 해적의 조언이 떠올랐다.

‘사신 던. 그 놈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라 후배야.’

그 사이 고개를 돌린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오. 살아계신 분이 있네요?”

이 말과 함께 성큼성큼 다가온 아더가 케빈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더 못지않게 큰 체격을 자랑한 케빈이 어린 아이처럼 대롱대롱 매달렸다.

“안녕하세요? 혹시 정신이 좀 드시나요?”

“…….”

“벌벌 떠시는 걸 보니깐, 살아는 있으신 것 같은데 질문에 대답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케빈이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사, 사신 던.….”

“네 맞아요. 사신 던이에요.”

케빈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이런… 다 큰 사내분이 왜 이렇게 서럽게 우세요?”

“살려줘….”

“살려달라고요?”

“살고 싶어….”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 그럼 일단 제 질문에 대한 답 좀 해주실래요?’

케빈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아더가 질문했다.

“일단, 해적 분들이 어떻게 <수색경찰>이 됐는지 말씀 좀 해주실래요?”

아더의 질문에 케빈이 열과 성의를 다해 설명했다.

귀 기울여 그 설명을 듣던 아더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도르문트가 어떻게 아케인을 점령한 거죠?”

이번에도 케빈은 열과 성의를 다해 설명했다.

그렇게 아더가 질문하고 케빈이 대답하는 문답이 한동안 오갈 때였다.

케빈은 문득 제 시야가 흐려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내지른 탄성과 함께 케빈이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눈을 치켜떴다.

“어라… 죽으셨네?”

“…….”

“아, 팔이 잘리셨구나. 아직 물어볼 게 많은데 지혈 좀 해 달라 하지.”

입맛을 쩝 다신 아더가 케빈을 반듯이 바닥에 눕혀 주었다.

그리고 턱을 쓰다듬으며 난장판이 된 주점 내부를 바라보았다.

“…윌렛 어르신이 돌아오시면 엄청 화내시겠지?”

윌렛의 성격이라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또 주점을 더럽히던 자들의 시체이니 그렇게 혼을 내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케빈의 품속을 뒤졌다.

적지 않은 실버와 골드들이 든 지갑이 보였다.

“좀 빌려갈게요 수색경찰 씨.”

이 말과 함께 피로 범벅이 된, 주점 내부를 빠져나온 아더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 멀리서 밝은 여명이 밝혀오고 있었다.

그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쩝. 아케인이 변한 게 나 때문이었구나.”

* * *

친절한 수색경찰 덕에 아더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아케인이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도르문트가 이 성위에 깃발을 꽂았는지.

그리고 윌렛 크레스톨, 이제는 은퇴를 바라보던 양복점의 주인이 어째서 범죄자가 되어버렸는지.

그 모든 상황을 마침내 이해한 아더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전부 나 때문이었구나.’

정확한 원인은, 이안 도르문트.

케인의 장남인 그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안이 죽어버렸으니, 눈이 회까닥 돈 케인이 아케인에 쳐들어온 거였어.’

그 과정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고, 아케인은 잘 싸워 버텼다.

하지만 뒷거리 세력 중, 한 축을 담당하는 해적의 배신으로 결국 성문이 뚫리고 말았다.

‘그래서 해적이 수색경찰이 되었던 거구나.’

배신의 대가로 수색경찰이 된 해적.

그들은 도르문트의 후광의 뒤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윌렛 어르신이나, 용병들이 반발해서 결국 범죄자가 됐고….’

모든 상황을 파악한 아더가 입맛을 쩝 다셨다.

“이런 게 나비효과란 거구나.”

나비의 날갯짓으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해괴한 속담이 들은 적이 있는데, 설마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아더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바뀌어버린 미래에,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바이에른의 상황도 많이 바뀌었단 건데… 흠.’

미래를 빗대어 보면, 24살의 바이에른은 안전하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이미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고, 바이에른의 미래도 바뀌어 있을 테니.

‘이렇게 된 이상 하루 빨리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야 하는데….’

허나 친절한 수색경찰 말로는 당분간 아케인의 열차는 가동되지 않는다고 했다.

‘성안의 사람들을 말려 죽이려고, 케인 도르문트가 일부러 열차를 끊어버렸다고 했지 아마?’

원한에는 더 큰 복수로.

케인 도르문트 다운 방식이었다.

‘그래서 까다롭게 됐네.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려면 열차를 타야하는 데 다시 가동시킬 방법이 없나?’

턱을 쓰다듬은 아더가 고민에 빠져들 때였다.

갑작스러운 총성이 울려퍼졌다.

“씨발-! 다들 무릎 꿇어!”

거친 외침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잔뜩 화가 난 아케인의 수색경찰, 아니 해적이 창밖으로 보였다.

“꺄악-!”

“무, 뭐야?”

“수, 수색경찰이다!”

그들의 등장에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이 모두 납작 엎드렸다.

그럼에도 수색 경찰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허공에다 총을 난사했다.

“어젯밤, 어떤 미친놈이 수색경찰을 사살했다!”

“…….”

“그 놈과 연관된 놈을 찾기 위해서 검문 수색을 할 테니, 협조해! 그러지 않으면 다들 깜빵행이다!”

이 말과 함께 수색경찰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더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흠… 벌써 연락이 돌았나 보네. 날 찾는 걸 보니.”

그 사이 겁에 잔뜩 질린 시민들을 향해 수색경찰이 채찍을 꺼내들었다.

쇠 파편이 박힌 채찍의 등장에 시민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굳이 복잡하게 빙빙 돌아갈 이유가 있을까?’

흘러가는 상황은 단순했다.

아케인을 점령한 도르문트.

그들의 뒷배인 해적.

이 두 세력만 없다면, 아케인의 열차는 다시 가동될 것이다.

‘즉 그자들만 죽여 버리면, 열차가 다시 가동된다는 거잖아?’

그렇게 되면 제국의 수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탄성을 터트렸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네.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간 탓일까.

왜 이제야 이런 쉬운 길을 떠올린 건지 의문이었다.

아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괜히 미친놈들 사이에 있으면 제정신인 사람도 미친놈이 되는 게 아니야.’

결정을 내린 아더가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아무런 죄가 없는 시민들 사이를 헤집는 수색경찰을 향해 뛰어내리려는 순간, 또 다른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거리에 있는 모두가 놀라 시선을 돌렸다.

그건 아더도 다르지 않았다.

“…뭐지 저 분들은?”

총성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검은 복면을 두른 수십 명의 사내들이 지붕 위에 올라 있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저 검은 복면의 사내들도 수색경찰인가?’

그 때, 엎드려 있던 시민들이 놀라 소리쳤다.

“마, 마피아다-!”

“D구역의 [귀쟁이]파!!! 마피아가 등장했어!”

“제, 제기랄 모두 도망쳐! 이쪽에 있다가는 모두 죽는다!”

그 외침에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귀쟁이 파라고?”

어딘가 익숙한 그 호칭에 아더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를 수식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귀쟁이, 엘프, 정령.’

그 탓에 아더의 입이 벌어진 순간, 고요하던 방문 너머로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아더가 고개를 돌리니 열려진 방문 너머로 수십 명의 사내들이 예고 없이 들이 닥쳤다.

모두가 검은 정장에, 중절모를 쓴 사내였는데 희한한 복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사이 일렬로 모여 선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와 동시에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그 구두소리에 맞추어 아더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 박동과 함께 구두 소리가 멈추었다.

그 순간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보스 오셨습니까-!”

그 거창한 외침과 함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한 여자가 아더를 빤히 바라본다.

그 시선을 마주친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귀쟁이] 파의 보스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찾았다. 내 미친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