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아더는 하진이 건네준 신문을 바라보며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7년이나… 지났다고?’
제국력 777.
17살이 되던 해가 제국력 770년이었으니, 신문에 적힌 날짜로만 보면 흰 수염의 저주에 갇혀 있은 지, 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는 것이다.
그 탓에 아더가 멍하니 신문을 바라보는 그 때, 하진의 마차가 멈추었다.
“그럼 수고하게.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지.”
작별인사와 함께 하진이 먼저 아케인의 입구로 들어갔다.
멀쩍이 자리에 선 아더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성벽 위에 휘날리 깃발이 보였다.
‘장미문양… 도르문트를 상징하는 깃발.’
그 깃발이 어떤 가문도 꽂지 못한 아케인의 성벽 위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그 탓에 아더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와…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건립 이래, 그 누구에게도 깃발을 허락하지 않았던 계획 도시 아케인.
그곳이 놀랍게도 도르문트에게 정복당해 있었다.
* * *
아케인의 성문을 무사히 지나친 아더는 B구역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길거리에 나앉은 부랑자들과, 거지들이 손을 뻗었다.
“하, 한푼만!”
“한푼만 주십쇼!”
그 광경에 아더는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이곳은 부랑자들과 거지들이 모이는 D구역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모여사는 B구역이었기 때문이다.
‘아케인의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곳에 거지들이 있다고?’
B구역에서 이런 짓을 하면, 수색경찰들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그 탓에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해적 마크를 단 수색경찰들이 부랑자들 사이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 앞에는 행색이 초래한 여자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나,나으리… 저희 딸이 3일째 굶고 있습니다. 부디 세를 거둬가시는 걸 조금만 미뤄주시면….”
여자의 말에 수색경찰이 버럭 화를 냈다.
“야 이 년아! 너 하나 봐주면 저기 있는 거지들 전부를 봐줘야 하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감당 하냐!”
“나, 나으리….”
“국가에서 내라잖아 국가에서! 우리라고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알아!”
무릎을 꿇고 있던 여자가 왈칵 눈물을 터트리며 그들의 바짓단을 잡았다.
“나으리! 오늘 세를 내면 딸아이가 굶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컥!”
신음을 내뱉은 여자가 바닥을 뒹굴었다.
수색경찰의 구두굽에 명치를 얻어 맞은 탓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수색경찰은 채찍까지 꺼내들었다.
“이런 쌍년이! 그 손으로 어딜 잡아!”
“커, 커컥….”
“잘 됐네. 안 그래도 슬슬 거지새끼들한테 본보기를 좀 보여줘했는데, 네가 대신 좀 맞자!”
이 말과 함께 모진 채찍찔이 시작됐고 여자는 얼마 안 있어 기절했다.
일렬로 선 거지들은 그 광경에 두려움에 차 몸을 떨었다.
줄을 서지 않은 거지들은 더욱 애절하게 구걸을 시작했다.
“아이고! 나으리들!”
“제, 제발! 한 푼만! 한 푼만 주십시오!”
“저는 이제 채찍질을 당하면 죽습니다! 제발 한 푼만….”
그 모습을 멀찍이 서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흠… 요즘 아케인에서는 거지들한테도 세금을 걷나?”
그래서 B구역까지 거지들이 진출을 한 거고?
그 사이 채찍질에 맞아 기절한 여자는 왈칵 피를 토했다.
수색경찰은 그 모습에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허나 그 누구도 여자를 도와주지 않았다.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거지들, 그들을 외면하는 B구역 주민.
그 광경을 차분히 지켜보던 아더는 고민에 잠겼다.
‘저들을 도와줘야 하나?’
던져진 질문에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니야. 일단은 제국의 수도로 먼저 향해야 돼.’
아직 단정 짓기 힘들지만, 미래가 바뀌었다.
그렇다는 건 바이에른에도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걸 고려하면 지금은 저들을 외면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아더가 걸음을 옮겨 아케인의 역으로 향했다.
그 순간 역앞에 모인 엄청난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왜 오늘도 운행을 안 한다는 거야!”
“지금 이게 며칠 째야? 나 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나 세부 왕국 남작이야! 지금 당신네들 실수하는 거라고!”
모여든 인파에서 거친 외침이 쏟아져 나왔다.
허나 굳게 걸어잠긴 아케인 역은 열릴 줄 몰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탄식을 터트렸다.
“허… 지금 아케인 열차를 못 타는 건가?”
상황을 보니 그래 보였다.
그러지 않고 서야, 저 수많은 인파가 아케인 역에 모여 있을리가 없으니.
‘그럼 아케인을 빠져나가, 다른 마을로 가서 열차를 타야 하나?’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아케인에서 열차가 출발 안하면, 다른 마을에서도 출발 안 할 것 같은데?’
모든 기차가 아케인 역에서 출발하니,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아더가 입맛을 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흠. 이거 곤란하게 됐네.”
걸어서 제국의 수도까지 향할 수도 없고,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자니 수중에 돈이 없었다.
거기다 정확한 상황이나 정보도 너무 부족했다.
‘도대체 왜 해적이 수색경찰이 된 거지?’
도르문트 가문은 또 어떻게 아케인을 점령한거고?
흘러가는 상황을 모르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자리에 서서 잠시 고민한 아더는 결론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일단 정보가 필요해. 그래야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으니깐.’
결정을 내리자 자연스레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양복점에서 매일 같이 커피와 신문을 읽는 중년의 사내였다.
‘그분이라면…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살며시 미소지은 아더가 A구역의 양복점으로 향했다.
* * *
A구역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어둠에 잠긴 거리에서는 놀랍게도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이 아케인에서 가장 비싼 거리인 A구역인 걸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크하하하!”
“어이 거기 아가씨! 좀 섹시한걸!”
“미친 새끼야! 저 년 저거 유부녀야!”
술판의 주인공은 역시나 수색경찰들.
그들은 아케인에서 가장 비싼 거리를 점검한 채, 대로변에서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하지만 아더는 더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알던 낭만의 도시, 아케인은 더 이상 없었다.
지금은 도르문트 가문에 의해 점령당해 변해버린 괴상한 도시만 있을 뿐.
그 탓에 미련 없이 양복점으로 걸음을 옮긴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그 간판을 지켜보던 아더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구나.’
처음으로 혼란스러운 기분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양복점의 문을 열었다.
“윌렛 어… 응?”
말을 흐린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
양복점 안에는 항상 자리를 지키는 윌렛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오물과 먹다 마신 술병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벽면에는 양복들 대신 현상금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그 광경에 입을 벌리던 아더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벽면에 붙여진 포스터 한 장을 뜯었다.
[윌렛 크레스톨]
[현상금: 10000골드]
현상금 포스터지에 그려진 아주 익숙한 중년을 바라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흠… 세상이 미쳤거나, 내가 미쳤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느 쪽이 정답일까.”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전자 쪽이 유력해 보였다.
그 때 벽면 너머,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포스터를 손에 든 아더가 지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양복점 밑에 위치한 주점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주점 내부를 장악한 일당의 무리들도 같이 보였다.
“마셔! 마셔!”
“캬하~ 기분 좋구만 이거!”
“역시 제국산 대마가 기가 막히단 말이지 낄낄….”
그들은 고급 바를 연상케 했던 주점 내부를 흡사 마약굴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곳곳에 널브러진 술병들.
피어오르는 대마 연기.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이분들은 어딜 가나 있네. 뭐… 이번에는 잘된 일인가.”
그 때 대마를 태우던 수색경찰 중 한명이 아더를 발견하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네 놈은!?”
그 외침에 주점 광기에 찬 파티를 즐기던 수색경찰들이 일제히 아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집중된 이목 속에서 아더가 방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
“네. 뭐 좀 여쭤보려고 왔는데, 괜찮을까요?’
이 말에 수색경찰 중 한명이 가래침을 퉷하고 뱉고서, 아더를 향해 걸어왔다.
온 몸의 기괴한 문신이 가득한 자였다.
“시발. 곱상하게 생기신 도련님이 뭐가 그리 궁금해서 이런 곳에 들어왔을까?”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수색경찰들이 야유를 보냈다.
“저 새끼 또 눈 돌아갔네!”
“도련님! 잘못 걸린 거야! 저 놈, 곱상하게 생긴 놈이면 남자한테도 발정하는 미친놈이거든!”
“아이고, 오늘 또 시체 치우겠네. 쯧쯧….”
그 외침 속에서 아더가 손에 들고 있던 포스터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술에 취해 몽롱한 눈빛이었던 수색경찰이 눈을 치켜떴다.
그 반응을 살피며 아더가 질문했다.
“혹시 이분을 좀 뵐 수 있을까요? 분명, 제기억상으론 이곳의 주인이었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아더의 말에 온몸에 문신을 새긴 수색경찰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새끼 이곳에서 윌렛 이 자를 찾는 걸 보니, 반란군이었네?”
“반란군이요?”
“모르는 척 하지마 이 새끼야! 너 같은 놈들을 잡으려고 이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 말과 함께 수색경찰이 입술을 핥았다.
“오늘 살아돌아갈 생각하지마라 새끼야!”
이 말과 함께 수색경찰이 예고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허나 아더는 고개를 비트는 것만으로, 그 주먹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설마 제 주먹을 피할 줄 몰랐는지, 수색경찰의 표정에 당황이 어린다.
그 사이 아더는 손가락 하나를 툭 내밀어 그의 목가에 찔러 넣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수색경찰에서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
눈을 끔뻑인 수색경찰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그 광경에 떠들썩하던 주점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그 사이 아더는 죽어버린 수색경찰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흠… 죽여버렸네. 하지만 뭐, 아직 많이 남았으니깐.”
이 말과 함께 몸을 돌린 아더가 주점의 문을 걸어잠그었다.
철컥-!
그렇게 입구를 막은 아더가 고개를 돌려 수색경찰들을 바라보았다.
입을 벌린 채 경악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더는 그제야 해적다운 표정을 짓는 그들의 모습에 방긋 미소지었다.
“이제야 좀 여러분 답네요. 솔직히 좀 이상했어요.”
“…?”
“해적분들은 범죄자인데,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거드름을 피울까… 그런데 이제야 좀 해적분들답네요.”
아더의 말에 해적 중 한명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너, 너 누구야?”
“저요? 아더 바이에른이에요.”
“…?”
“아더 바이에른이라고 모르시나요?”
아더의 말에 수색경찰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더 바이에른?
이런 독특한 이름을 가진 범죄자가 있었던가?
그 반응을 살피던,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손가락을 튕겼다.
“….흠. 모르시나 보네요. 그럼 이건 어때요?”
“…?”
“C등급 용병 던. 이건 기억나시나요?”
아더의 말에 수색경찰들이 또 한번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다른 수색경찰보다 왜소한 체구의 수색경찰이 놀라 중얼거렸다.
“던? 설마 사신 던?”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수색경찰이 물었다.
“던? 그 놈이 누군데?”
“그 ,그… 있지 않습니까? 7년 전에 저희 부선장을 죽인 용병.”
“…?”
“그, 그 놈 이름이 던이었습니다. 사신 던.”
이 말에 질문을 던졌던 수색경찰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주변에 있던 수색경찰들도 하나 둘씩, 잊고 있던 기억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C등급… 용병 던?”
“7년 전… 우리 부선장을 죽인 용병 이름 아니야?”
“그, 그 홀연히 사라졌다는 이 바닥 전설?”
그 혼란스러운 반응을 지켜보던 아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제가 그 던이에요.”
“…….”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해적 여러분. 그래서 제안 하나를 드리려 해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방긋 웃었다.
“혹시 맨 나중에 죽고 싶으신 분 있나요? 이왕이면 말주변이 좋으신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물어볼게 아주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