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새하얀 공간의 끝.
그 끝에서 있는 사내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아… 버지?”
혹여 착각인가 싶어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바이에른을 상징하는 검은색 머리칼.
약간 새초롬하게 올라간 눈꼬리.
주름이 졌지만, 젊었을 적 호쾌한 미남 소리를 들었을 것 같은 뚜렷한 이목구비.
초상화로만 보았던 제 아버지.
레오 바이에른이 놀랍게도 눈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자신이 3살이 되던 해, 불치병을 앓고 분명 죽었을 텐데?
그 탓에 아더가 목소리 끝을 살짝 떨며 물었다.
“진짜… 아버지에요?”
레오 바이에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비 역활을 못 하기는 했지만, 생물학적으로 네 아버지는 맞다.]
“…….”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구나 아들아.]
아더가 털썩 자리에 쓰러졌다.
충격을 받아 입을 벌린 그 모습에 레오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를 만난 게 그리 좋으냐?]
아더가 말을 흐리며 대답했다.
“어… 아뇨?”
[?]
“딱히 좋지는 않아요. 그도 그럴 게 아버지랑 저랑은 처음 만나잖아요?”
레오가 눈을 끔뻑였다.
[뭐야? 그럼 왜 놀라는 거야?]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오니 그렇죠.”
[…이 놈의 자식이! 죽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아 해야지!]
“…좋아 할 시간도 없이 가버리셨으면 무슨 소리세요?”
[어허 이 놈이!]
“그런데 진짜 아버지 맞아요?”
아더의 질문에 레오가 웃었다.
[좀 걷겠느냐?]
레오의 제안에 아더가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나 다가가지 못하고 쭈뼛쭈뼛 망설였다.
워낙 믿기기 않은 상황에 아직도 일말의 의심이 남아 있던 탓이었다.
‘지금 서 있는 아버지도… 흰 수염 씨의 저주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천년을 산 흑마법사.
죽음에 이르렀어도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지 몰랐다.
그 탓에 아더가 쉽사리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그 때, 레온이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남자끼리 손잡는 거 싫으냐?]
망설이던 아더가 결국 레오의 손을 붙잡았다.
살며시 미소 지은 레오가 그런 아더를 끌어당겨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그 뒤를 따를 때, 레오가 입을 열었다.
[손이 많이 거칠구나. 검을 오래 잡았나보지?]
아더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오래 잡긴 했죠.”
[몇 년을 잡았지?]
“흠… 한 40년?”
[뭐!? 40년이나 잡았다고? 그럼 우리 아들이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거냐?]
아더가 설명했다.
“많을 수 밖에 없죠. 저 이번이 2회차거든요.”
[…2회차?]
“네. 죽다가 살아나서 과거로 돌아왔어요. 그러니깐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을 수 밖에 없죠.”
레오의 표정에 놀람이 깃들었다.
[2회차… 그렇군. 우리 아들도 나 따라서 황천길을 한 번 갔다 온 거구나.]
“…황천길이요?”
[죽은 사람이 걷는 길을 저 바다 건너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더군.]
“오호… 그래요? 그거 신기하네요. 그런데 아버지.”
[응?]
“제가 죽었다는 거에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레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죽었다 살아난 게 뭐 대수라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게 더 한 기적인데.]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어… 그런 건가요?”
[그렇지.]
“아버지. 많이 독특하시네요?”
[그게 네가 할 말이냐? 죽다 살아난 놈이?]
이번에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레오가 설명했다.
[이 모습은 네 몸속에 깃든 내 피에 각인된 기억이란다.]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아버지가 아니라, 기억이라고요?”
[그래.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면….]
말을 흐린 레오가 입을 다물었다.
[…흠. 기억이 끊겨있군. 아쉽게도 이건 설명을 못하겠구나. 하여튼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건 내 기억이다.]
레오의 말에 아더가 생각했다.
‘지금 이 모습에 아버지 피에 섞인 기억이라고?’
말이 되면서도 말이 되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레오 바이에른의 자식이니 그의 피가 섞인 것은 맞는 데, 그 피의 잠든 기억이 나타나다니?
아더의 상식으로는 쉽사리 이해 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 때 레오가 입을 열었다.
[요넬은 잘 지내고 있느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요?”
[그래 내 부인, 네 어머니.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 요넬.]
대답과 함께 레오가 고개를 돌렸다.
눈부시게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를 멍하니 지켜보던 아더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어… 지금은 잘 지내고 계세요.”
[그 말은 전에는 잘 못 지냈다는 거구나.]
“네.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뭐 때문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아더가 망설였다.
아버지에게 도르문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될지,
2황자 칸 마드리드가 바이에른을 위협한다고 설명해도 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탓에 침묵이 길어진 그 때,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런, 시간이 얼마 없군.]
“…네?”
[슬슬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 요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듣도록 하마.]
아더가 입을 벌렸다.
“헤어져야 한다고요? 이렇게 갑자기요?”
[만남도 이별도 원래 갑작스러운 법이지. 그러니 지금부터 잘 들거라 아더.]
레오가 살며시 허리를 낮추었다.
아더도 그렇게 작은 체구가 아니었지만, 레오의 키는 그것보다 훨씬 커 그제야 부자의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그 속에서 레오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소드 마스터(Sword Master)가 되어야 한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 갑자기 웬 헛소리세요?”
아더의 질문에 레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빠르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검기는 무엇도 베어내지만, 벨 수 없는 것을 베어내려면 그보다 더 위의 경지의 검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검강(劍罡).]
“…….”
[네가 검강을 발현하게 되면, 흑마법사의 저주를 베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와 헤어지게 되면 반드시 소드마스터가 되어야 한다.]
아더가 살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아는데 갑자기 소드 마스터가 되라고요? 그건 아무리 저라도 불가능 하죠.”
레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 어렵기야 할 테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게다.]
레오가 아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내 아들이잖냐?]
“…….”
[내 아들이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란다. 검이야 말로 네가 가진 진짜 재능이니.]
그 쓰다듬에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하나도 모르겠어요 아버지.”
[이해 할 필요 없다. 지금 너가 집중 할 건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
레오가 아더의 턱을 잡고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더의 눈동자에 레오의 새까만 눈동자가 담겼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아더. 그 저주는 악마와 계약한 흑마법사가 건 아주 악질적인 마법이란다.]
“…….”
[자칫 잘못하면 평생 그곳에 갇혀 지낼 뿐만 아니라 시기를 놓치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영 마주칠 수 없을 지도 몰라.]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버지?”
[그곳과 현세의 시간이 다르더라도, 어찌되었건 시간은 흘러간단다.]
“…….”
[만약 그곳을 늦게 빠져나가면, 네 어머니와 여동생과 영영 헤어질지 몰라.]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그 반응에 레오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이제 좀 감이 오느냐?]
“…네.”
[그래. 그거면 됐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얼마든지.]
“아버지와 제가 어떻게 만난 거예요?”
레오가 설명했다.
[너와 내가 만난 건, 아주 특별한 기적 덕분이란다.]
“기적이요?”
[네 몸속에 깃든 내 피와, 미치지 않은 너의 정신.]
아더의 눈이 커졌다.
“미치지 않은 정신이요?”
[그래. 그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 만나 이뤄낸 또 다른 특별한 기적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느냐?]
레오의 설명에 아더가 중얼거렸다.
‘이해는 안 가지만… 뭔지는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
미치지 않은 정신.
즉 조금 전 편안했던 기분이, 진짜 미치지 않은 내 정신이라는 소리 아닌가?
그 때 레오의 손이 멀어졌다.
깜작 놀란 아더가 고개를 돌리니 어느사이엔가 그의 몸이 반투명해져 있었다.
아더가 다급히 소리쳤다.
“제가 미치지 않으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아버지!”
아더의 말에 레오가 미소지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다. 그리고 그때는 이런 기억이 아니라….]
레오가 말을 흐림과 동시에 새하얀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진짜 내 몸뚱아리로 널 안아주마.]
레오의 말에 아더의 눈이커졌다.
“지,진짜 몸뚱아리요? 아버지, 설마 살아 계신 거예요?’
레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더의 볼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사랑한다 내 아들. 요넬과 아이린을 부탁하마.]
* * *
아더가 눈을 떴다.
“…….”
새카만 하늘이 보였다.
정확히는 하늘인지도 모를 검은 천장이 보였다.
그 천장을 바라보던 아더는 알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왔네?”
몸을 일으킨 아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 천장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새카만 공간이 보였다.
그 순간 아더는 옅게 몸을 떨었다.
또 다시 홀로 남겨졌다는 고독감이 전신을 뒤덮은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한 그 감정에 아더는 중얼거렸다.
‘혼자가 된다는 것. 생각보다 많이 힘드구나.’
어쩌면, 흰 수염의 저주는 이 공간에 갇히는 게 아니라 이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랑 만나고 와서 그런가, 생각보다 더 외롭고 아프네.’
그 고독감이 아더를 잡아먹었다.
점점 깊게 내려앉는 의식 속에서 아더가 중얼거렸다.
‘사실 아버지를 보고 온 건, 내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하나 같이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죽어버린 아버지의 기억이 제 피속에 잠들어 있다 깨어난다 말인가?
기억의 아버지는 지금 이 모든 일이 기적이 말했지만, 사실 ‘소망’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내 소망이 만들어낸 환상….’
흘러가는 상황만 보면 그쪽이 더 그럴 싸했다.
그 탓에 아더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터져나왔을 떄였다.
오른손에서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어라?”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몰랐는데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 빛을 바라보던 아더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건… 운철검?”
혹여 착각인가 싶어, 눈을 감았다 떴지만 아니었다.
홀란 레버쿠젠.
제 대부가 자신에게 건네주었던 아버지의 유품.
그 검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짜릿한 전율이 몸을 관통했다.
‘착각이 아니었어. 나는… 진짜 아버지를 만난 거야.’
그 순간 낮게 가라앉던 정신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 채 중얼거렸다.
“아버지 고마워요.”
가짜가 아니라 진짜여서.
뒷말을 속으로 삼킨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어쉰 아더가 운철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 상태에서 심신을 편안히 가라앉힌 아더가 운철검을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그어내렸다.
훅.
한순간이지만, 어둠이 갈라졌다.
빛으로 된 운철검이 흰수염의 어둠을 가른 것이었다.
그 이변을 지켜보던 아더는 눈빛을 빛냈다.
‘아버지가 말했지. 베어낼 수 없는 걸 베어내려면, 검기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검기보다 더 강한 무언가는 역시나 검강 밖에 없다.
‘검의 끝에 선 자들이 뿜어내는 마지막 절기.’
검기가 무엇도 베어낼 수 있다면, 검강은 베어낼 수 없는 걸 베어낼 수 있었다.
‘즉, 검강을 두르게 되면 이 저주조차 베어낼 수 있는 거야 아버지 말씀처럼.’
문제는 지금의 자신이 검강을 뿜어낼 수 있는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고민하던 아더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못할 건 뭐가 있어?”
검은 누군가에게서 빼앗아온 재능과 혈통이 아니다.
아더 바이에른이라는 인간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
그리고 그 재능은 여태 단 한번도 배신한적이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검을 휘둘렀다.
화악-!
다시 한 번 어둠이 갈라지고, 운철검의 빛이 조금이나마 강해졌다.
그 속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정답이다 아들아.]
아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