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30화 (130/265)

제130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3살 때 말을 했으며 5살 때 제국어를 비롯한 3개 국어를 능숙히 쓸 줄 알았고 7살 때는 마을의 촌장까지 와 그 지혜를 빌릴 정도로 총명했다.

그 소문을 들은 방랑 마법사가 소년을 찾아와 제안했다.

‘세상의 진리를 알려주겠다. 함께 가겠느냐?’

소년은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좁은 시골 마을에 더 이상 배울 것도, 흥미를 느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법사의 제자가 된 소년은 대륙을 떠돌았다.

그 긴 방랑 끝에서 소년이 가장 많이 본 것은 ‘죽음’과 ‘전쟁’이었다.

인간과 인간.

괴수 대 괴수.

인간과 괴수.

어딜 가나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시체 썩는 냄새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밤새 울려퍼졌다.

소년은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다 덜컥 겁을 먹었다.

‘나도 저렇게 죽으면 어떻게 하지?’

자신이 왜 죽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그들의 허망한 표정에서 소년은 깊은 공포를 느꼈다.

남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가졌기에 소년은 죽음이란 계산되지 않은 영역에 극심한 공포를 느꼈고 결국 불면증에 걸려 잠을 자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소년이 죽음을 두려워해,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한 사내가 찾아왔다.

‘죽음이 두려우냐? 죽음에서 달아나게 해주마.’

소년은 놀라 질문했다.

‘당신이 누구길래, 죽음에서 달아나게 해준다는 겁니까?’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사내가 대답했다.

‘악마.’

‘……!’

‘또는 천사라 불리지. 대답으로 충분하였느냐?’

소년은 태어난 뒤 가장 큰 충격을 받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충분합니다. 저를 죽음에서 달아나게 해주십시오.’

후드를 눌러 쓴 사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네 스승을 죽여, 목을 가져와라.’

‘……!’

‘그럼 너에게 죽음에서 달아날 힘을 선사하마.’

사내의 제안에 소년은 고민했다.

허나 그 고민은 3일을 넘기지 않았다.

자신을 마법사로 만들어준 스승과 함께 한 지 딱 10년이 되던 날.

소년은 잠들어있던 스승의 목을 조르고 악마와 거래했다.

* * *

흰 수염은 눈앞의 아더 바이에른 덕에 오랜만에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천사의 혈통을 가졌다고 해도, 어떻게 이 모습을 보고 겁을 먹지 않는 거지?’

천 년을 살아왔지만, 이런 경우는 본적이 없었다.

칼을 잡고 필멸자의 운명을 벗어난 소드마스터도, 진리를 깨달아 밤하늘의 별이 된 대마도사도 이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데 살아온 지 고작 17년 밖에 되지 않은 핏덩이가 이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흰 수염 씨. 손 떨리는 데 겁먹은 거예요?’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흰 수염은 되레 겁을 먹었다.

오랫동안 믿고 있던 진리 중 하나가 어긋나는 기분까지 느꼈다.

그 감정을 흰 수염은 숨기지 않았다.

“…자넨, 정말로 놀랍군.”

“그런 모습으로 변신한 흰 수염 씨가 더 놀라운데요? 그런데….”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악마가 되신 거예요?”

흰 수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답 할 마음이 없네요. 흠… 그럼 다시 이어가볼까요?”

이 말과 함께 아더 바이에른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제 뒤에서 나타난 아더 바이에른이 검을 휘둘렀다.

콰직-!

마법과 검기가 격돌하며, 세상의 일부분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 이변을 지켜보던 흰 수염이 손을 휘저었다.

“어라?”

탄성을 내지른 아더 바이에른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오른 쪽 다리가 날아갔다.

“…!”

눈을 치켜뜬 아더가 입을 벌렸다.

그 모습에 흰 수염은 조금 전 사라졌던 여유가 다시 되돌아오는 걸 느꼈다.

‘흑마법사란 본디 두려움을 먹는 존재.’

그리고 그 두려움이 커질수록 마법의 위력이 강해졌다.

흰 수염은 아더 바이에른의 표정에서 엿보인 두려움을 이용해 다시 마법을 시전하려 할 때였다.

한 쪽 다리를 잃은 아더 바이에른이 소리쳤다.

“얍!”

정체불명의 기합소리와 함께 잘린 단면에서부터 새로운 다리가 솟아났다.

“…”

흰 수염은 조금 전 가셨던 당황이 다시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 사이 지면에 착지한 아더가 너스레를 떨었다.

“위험한데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람 다리를 잘라 내다니.”

이 말과 함께 비스트의 탄환이 쏟아졌다.

정신을 차린 흰 수염이 손을 휘저어 그 탄환을 막아냈다.

그 기이한 곡예를 지켜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무섭네 흰 수염 씨. 저게 진짜 마법사인가?’

정확히는 흑마법사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저 모습을 변한 뒤로, 마법을 발현하는 데 있어 전조가 없어.’

지금껏 보아온 마법사들은 모두 마법을 발현하는 데 있어 준비동작이 있었다.

그건 흑마법사도 다르지 않았다.

허나 악마로 변한 그는 마법을 발현하는 데 있어, 사전 동작이 없었다.

‘눈빛만으로 내 다리를 잘라내고, 손짓만으로 탄환을 막아냈어. 이게 진짜 마법이란 건가?’

아더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짜릿한 감각 속에서 아더는 다시 흰 수염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순간 흰 수염의 등 뒤로 솟아난 날개가 퍼덕였다.

파앗-!

흰 수염이 허공으로 달아났고, 아더가 그 뒤를 쫓았다.

허공에서 펼쳐진 추격 전 속에서 아더가 비스트를 난사했다.

흰 수염은 그 탄환을 조금 전과 같이 막아냈다.

일반 탄환으로는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판단한 아더가 예비로 챙겨두었던 검은 색 탄환을 장전했다.

흰 수염이 눈빛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그건 위험하군.”

이 말과 함께 비스트 쥐고 있던 아더의 왼쪽 손목이 날아갔다.

솟구치는 피분수에, 깜짝 놀란 아더가 뒤로 물러났다.

탁-!

맞은편에 있는 건물의 벽면에 착지한 아더가 트롤의 혈통을 일으켜 왼쪽 손목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딛고 있는 벽면을 디딤돌 삼은 다시 뛰어들었다.

제 손목이 날아갔음에도, 당황조차 하지 않은 아더의 모습에 흰 수염이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자네는 두려움이란 걸 모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흰 수염이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자네는 나와 가장 천적이로군. 흑마법사에게 있어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만큼이나 까다로운 상대는 없으니.”

이 말과 함꼐 흰 수염의 손바닥에서 쏘아져 나간 검은 색 광선이 아더를 노렸다.

“…!”

깜짝 놀란 아더가 생각했다.

‘피하기는 늦었다.’

그 판단과 함께 아더가 검기가 둘린 마검을 휘둘렀다.

쾅-!

그 무엇도 베어낼 수 있다 알려진 검기가 검은 색 광선을 두 조각냈다.

하지만 베어내기만 하였을 뿐, 그 여파는 막아주지 못했다.

“어라?”

정체불명의 기포가 피부에서 부글부글 꿇더니 고름이 터졌다.

드드드득-!

그 고름 사이로 괴상한 벌레가 피부를 좀먹기 시작했다.

아더는 제 눈 밑을 지나다니는 벌레를 바라보다 숨을 참았다.

팡-!

그 순간 솟구쳐 오른 핏방울이 피부 위를 기어 다니던 벌레들을 집어삼켰다.

흰 수염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트롤의 혈통에 뱀파이어 로드 혈통… 저 둘이 합쳐지니 거의 불사신이나 다름없군.’

그 때 아더가 다시 마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흰 수염 씨 대단하시네요. 마법을 그런 식으로 발동시키다니.”

“…마법에 대해 아는 가?”

“잘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발동시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죠.”

흰 수염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보통의 마법은 이런 식으로 시전 할 수 없지. 하지만 흑마법은 다르네. 충분한 공포만 있다면, 흑마법은 뭐든 가능하니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포에서 나온다고요?”

“그래. 그 어떤 흑마법사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 상대방이 어떤 공포를 느끼느냐,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가. 그것에 따라 마법의 위력이 달라지지.”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 그래서 흰 수염 씨 마법이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거였군요.”

흰 수염이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지금의 나는, 꽤 당혹스럽네. 자네와 같이 공포와 두려움을 못 느끼는 존재는 처음이거든.”

이 말과 함께 흰 수염이 웃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기로 했네.”

“…?”

“지금의 나는 몹시 두렵네. 아더 바이에른.”

흰 수염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흰 수염의 오른 팔이 제 왼손을 잘라냈다.

파앗-!

뿜어져 나온 피와 함께 흰 수염이 잘린 제 왼 손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그의 왼손이 살점 단위로 조각나더니 붉은 빛이 되어 거대한 원을 그렸다.

그 이질적인 광경에 아더의 입이 살짝 벌어진 그 때, 흰 수염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공포를 느끼지 않은 자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내 팔이 사라진 것에 공포를 느끼네.”

“…”

“처음 맞이하는 이 상황에 가슴이 떨리고, 불합리한 지금의 순간에 심장이 멎을 것 같네.”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쏟아내는 흰 수염의 말에 아더는 처음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위험해. 이건 진짜 위험하다.’

아더는 그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곧바로 자리에서 뛰어오른 아더가 마검을 휘둘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흰 수염이 오열을 토해냈다.

“무서워서 죽어버릴 것 같네 아더 바이에른. 그러니 제발 죽어주게.”

흰 수염의 외침과 함께 아더의 검이 그의 목에 닿았다.

아니 닿은 것처럼 느껴졌다.

“…!”

아더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시간이… 멈췄어?’

이건 시간을 느리게 한다는 차원의 개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렸다.

그 기이한 감각 속에서 아더가 눈을 끔뻑일 때, 흰 수염이 손을 뻗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흰 수염의 손이 아더의 볼을 살며시 매만졌다.

그 기분 나쁜 감각에 아더의 눈길이 좁혀진 순간, 흰 수염이 입을 열었다.

“나에 관한 소문 중에는 그런 것들이 있지.”

“…소문이요?”

“자네도 들어봤을 거야. 천 년을 산 흑마법사가 나라 하나를 멸망시켰다는 소문을.”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 그거 진짜였어요?”

흰 수염이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와 함께 아더의 볼을 매만지던 흰 수염의 손이 천천히 멀어졌다.

“전설과 구전은 때로 맞는 법이지.”

아더가 흠칫 몸을 떨었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소음이 갑자기 사방에서 진동했다.

인상을 찌푸린 아더가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그리고 탄성을 터트렸다.

“어라?”

지하도시의 천장 위.

그 위로부터 정체불명의 운석이 내려오고 있었다.

쿠크크크-!

그 운석이 지하와 가까워질수록,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타 없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에 아더의 벌어진 순간, 흰 수염이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한 나라를 멸망시킨 마법이네. 부디 죽지는 말게 아더 바이에른.”

이 말과 함께 흰 수염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린 아더가 발버둥쳤지만, 정지한 몸은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사이 허공에서 떨어지던 운석이 이제 거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더는 발버둥을 멈추고, 그 운석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허. 운석에 깔려 보는 건 또 처음이네.”

그렇게 아더의 표정에 약간의 공포가 어린 순간.

쾅-!

떨어져 내린 운석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흰 수염이 제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구만.”

100년 정도를 투자해 만들어 놓은 아케인의 지하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빈 말이 아니라, 진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시전한 마법을 보면, 그럴만 하기는 했다.

‘설마 이 마법을 여기서 시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썼던 메테오 스트라이크.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 마법을, 한 인간을 상대로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딱히 후회는 없었다.

그만큼 아더 바이에른이란 존재는, 흰 수염에게 있어 이질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다니… 내 생에 그런 미친놈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 때 흰 수염의 입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쏟아져 나온 썩은 피가, 흰 수염의 수염을 붉게 물들였다.

흰 수염은 혼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없군. 죽음이 드리워졌어.”

천년 전, 악마와의 거래에 의해 죽음에서 달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음에서 달아났을 뿐, 결국 죽음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세상을 진동시킬 수 있는 힘을 거머쥐었지만 결국 그 또한 인간.

필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흰 수염은 천 년 전 맛보았던 지독한 공포에 몸을 떨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탁-!

거대한 크레이터.

운석이 중심부에 내려앉은, 웜홀이 보였다.

흰 수염은 웜홀을 향해 가볍게 뛰어내렸다.

촤아아악-!

한참을 내려간 끝에 지면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개를 든 흰 수염이 웜홀을 정중앙을 바라보았다.

발가벗은 사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무리 시간 역행을 걸어두었다 해도, 저렇게 멀쩡히 살아있다니.’

트롤과 뱀파이어 로드.

괜히 불사에 가까운 혈통이라 불리는 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뻥 뚫린 천장으로 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소나기인지, 장대비인지 모를 그 폭우 속에서 흰 수염은 아더 바이에른을 향해 걸어갔다.

조금 전까지 망나니처럼 날뛰던 아더 바이에른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수월하게 아더에게 접근한 흰 수염이 방긋 미소지었다.

“잘 먹겠습니다.”

나직한 기도와 함께 흰 수염의 입이 벌어졌다.

그 상태 그대로 흰 수염이 기절한 아더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꿀렁 꿀렁~!

그의 목울 대와 배가 출렁거렸다.

아더의 체격이 워낙 큰 탓에 집어삼키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렸다.

하지만 흰 수염은 개의치 않고, 끝까지 아더를 먹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아더를 마침내 집어삼킨 흰 수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 탁, 탁.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고개를 든 흰 수염이 입을 벌렸다.

“…꺼억.”

트럼을 한 흰 수염이 웃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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