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긴 추격전이 끝이 났다.
검은 십자가 도시를 벗어난 아더는 곧바로 바이에른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한 아더는 안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곧바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난 아더는 또 다시 안나와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잠과 밥만 먹으며 보내자, 안나가 슬슬 잔소리를 시작했다.
“공자님! 아무리 아케인 대학이 방학을 해도 그렇죠! 너무 나태해지셨어요!”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벗어난 아더가 저택의 마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햇살이 따사롭기 그지없었다.
또 다시 졸음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평소와 같이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자던 아더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다 잤다.”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 후 몸을 움직여 닫혀 있던 창문을 열었다.
밝은 햇살이 기다렸다는 듯 아더를 덮쳤다.
“오….”
탄성을 흘린 아더가 방긋 미소지었다.
잠을 자는 사이 여름이 훌쩍 다가와 있었다.
* * *
검은 십자가의 도시에서 돌아오니, 아케인 대학이 방학을 맞이해 있었다.
이유는 역시나 예니카 헤이즐.
그녀가 아케인 대학에 저지른 사고는 덕분이었다.
그 탓에 최초로 중간고사가 중단되고, 원래 정해진 날짜보다 훨씬 일찍 방학을 한 상태였다.
‘흠… 아쉽네. 아케인 대학에서 조금 더 공부하고 싶었는데.’
어깨를 으쓱인 아더가 마당에 놓인 흔들 의자에 몸을 뉘었다.
따사로운 햇빛에 푸른 이파리를 보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그 흥에 몸을 맡긴 아더가 이름 모를 운율을 흥얼거리며, 커피를 들이켤 때 안나가 다과를 담은 접시를 내놓았다.
“커피하고 같이 먹어보세요, 공자님. 맛있을 거예요.”
“오 고마워 안나.”
아더가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톡, 부서진 과자가 입안에서 사르륵 녹았다.
아더의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도 살며시 미소 지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공자님. 언제 가실 거예요?”
“응? 어딜?”
“수도 말이에요 수도! 슬슬 가셔야죠! 방학인데, 공작 각하한테 가보셔야죠!”
안나의 말에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오… 그러고 보니 그렇네?’
방학을 하기도 했고, 시간도 널널하니 수도로 올라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볼 절호의 기회였다.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데? 언제 갈까 안나?”
“아마 이번 주는 안 될 것 같아요. 다른 귀족 자제분들도 급히 수도로 올라간다고 티켓이 전부 매진됐거든요.”
“음… 어머니한테 부탁 좀 해볼까?”
“그러면 가능이야 하지만… 굳이 빨리 갈 필요가 있을까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 이유라도 있어?”
“공자님, 친구분들하고 인사도 하셔야 하고 공작 각하에게 드릴 선물도 준비해야죠!”
안나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선물? 어머니 생신도 아닌 데 왜?”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랜만에 보는 아드님이 아케인에 다녀왔는데 선물 하나 없이 빈손으로 오면 공작 각하께서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요!”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 흠… 하긴. 선물이 있으면 좋기야 하겠네.’
그럼 어머니 선물로 뭘 줘야 할까?
곰곰이 고민하던 아더는 눈을 치켜떴다.
생각해보니, 이미 최고의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안 도르문트의 목을 떠올린 아더가 씩 미소 지었다.
“미안한데 안나. 난 이미 선물을 준비했어.”
“…선물을 준비하셨다고요?”
“응. 그러니깐 안나만 준비하면 될 것 같아.”
안나의 시선에 의심이 깃들었다.
허나 굳이 더 캐묻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일주일 뒤로 티켓을 예매할게요. 저도 공자님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깐.”
꾸벅 허리를 숙인 안나가 멀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안나가 구워준 쿠키를 오독, 씹으며 중얼거렸다.
‘어머니한테 줄 선물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흠. 개인적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은 누가 있지?’
몇 사람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레온과 지니였다.
‘하지만 레온은 할 일 일이 있다면서 먼저 수도로 돌아갔고….’
그는 이안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매우 분주한 상태로 수도로 향해버렸다.
지니도 몸과 마음이 지쳤으니, 잠시 휴가를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상태였다.
‘그럼 남은 건 엘린 정도뿐인가?’
엘린 레버쿠젠.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그녀를 떠올리던 아더는 탄성을 터트렸다.
‘치즈이 교수님도 있구나. 그럼 치즈이 교수님부터 만나러가 야하나?
아더는 조금 더 고민하다 움찔 몸을 떨었다.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 사람을 빠트렸다.
살며시 미소지은 아더가 몸을 일으켰다.
“윌렛 어르신… 잘 지내고 계시려나?”
익숙한 향내가, 벌써부터 코끝을 간질이는 듯 했다.
* * *
윌렛은 차를 들이켰다.
호로록…
쟈스민 티였는데, 요즘 양주 대신 즐겨 마시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 손에는 쟈스민 티를, 한 손에는 아케인 신문지를 집어든 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도르문트가 군대가 실종됐다고?”
아케인 신문지 1면에 대문짝하게 실린 기사.
그 기사의 내용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가 힘들었다.
[실종된 도르문트!]
[아케인 전투 경찰들이 대거 출동….]
[제국과 아케인의 불화조심….]
도르문트가 어떤 가문인가?
현 제국의 가장 권세 높은 가문이자, 그 위세가 하늘을 뒤덮는다는 평가를 받는 곳 아닌가?
그런데 그 도르문트가 광신도들을 추격하다 실종됐다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아케인에 군대를 끌고 온 자가… 그 이안 도르문트였지?’
제국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
40도 채되지 않은 나이에 7서클이란 경지에 오른 고귀한 칼잡이.
그 밖에도 상급 정령을 다루며, 케인 도르문트를 뒤를 이어 차세대 권력자로 평가받는 지배자.
그러한 기사가 이끄는 군대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윌렛의 입장에서는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예니카 헤이즐… 그녀가 광신도의 수장이라 해도 말이 되나?’
윌렛은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 여파는 어떻게 커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케인과 제국의 전쟁? 아니면 도르문트의 무력 시위?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 은퇴를 결심한 윌렛에게 있어, 그러한 변화는 썩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최근 들어 조용 할 날이 없구만… 쯧.”
혀를 찬 윌렛이 보고 있던 신문을 접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쟈스민 티를 들이켜던 그 때,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시선을 돌린 윌렛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네?”
문앞에 선 사내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좋은 점심이에요.”
* * *
아더의 등장에 윌렛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설마 아니겠지?’
눈앞의 던이란 용병이 찾아올 떄마다, 요즘 위가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터지는 사건 마다, 매번 그 중심에 있으니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윌렛은 이번만큼은 제 예측이 빗나가기기를 기도했다.
‘이번 사건은…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만약 자칫 잘못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던이랑 엮인 사람들 전부가 죽을지 몰랐다.
그 때 아더가 탄성을 터트리며 질문했다.
“오. 어르신 술 끊으셨어요?”
아더의 질문에 윌렛이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마시고 있던 쟈스민 티가 보였다.
“…건강 생각해서, 조금씩 줄여나가고는 있지.”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볼 떄마다 술을 들키셔서, 걱정됐는데.”
윌렛의 입술이 달싹였다.
“자네….”
“네?”
“…아니. 밑에 가서 이야기하지.”
윌렛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를 으쓱인 아더가 그 뒤를 따랐다.
딸칵.
비밀 통로의 문이 열었다.
그렇게 지하로 들어가니, 주점이 보였다.
몇몇 용병들이 의례 그렇듯, 자리에 앉아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이 아더를 발견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사신 던?”
“정말로 윌렛 어르신네 용병이었다고?”
수군 거림과 함께 주점 안에 있던 자들의 시선이 모두 아더에게로 모였다.
“…….”
조금 전과는 달라진 분위기와 함께 용병들이 손에 들린 술잔이 하나둘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비어있는 손에는 그들의 무기가 슬며시 잡혀 있었다.
그 모습에 윌렛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다 신경 쇠약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 지 모르겠군.’
주점 내에서 시비를 걸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를 줬는 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하지만 윌렛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바닥 용병들은 명성을 떨치는 같은 용병을 보면 꼭 시비를 걸지.’
용병들 특유의 투쟁심, 그리고 관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집착하는 놈들이 놀랍게도 대부분 베테랑이라 불리는 녀석들이었다.
‘이 바닥에서 몸값을 불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개… 하나는 말도 안 되는 의뢰를 수행하거나, 다른 하나는 다른 용병의 명성을 빼앗거나.’
그 두 가지중 더 쉬운 쪽을 고르라면, 역시나 다른 용병의 명성을 뺴앗는 쪽이었다.
그래서 이름 난 용병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이바닥에서 하는 인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윌렛의 입장에서 썩 달갑지 않았다.
같은 사무소 용병들끼리 치고 박는 건 그렇다 치고, 기껏 꾸며놓은 주점 안이 망가지는 걸 두눈 뜨고서 볼 수 없었으니.
그 탓에 사고가 일어나기 전, 그들에게 주의를 주려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술을 들이켜던 용병 중 한명이 아더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호. 이런 유명인사를 여기서 만나뵙는 군.”
깜짝 놀란 윌렛이 아더의 앞을 가로막은 용병을 바라보았다.
‘B등급 용병 괴력의 볼품’
이 바닥에서 잔뼈가 제법 굵은 용병이자, 호승심이 높아 통제가 어려운 골칫덩어리기도 했다.
인상을 찌푸린 윌렛이 볼품을 향해 다급히 경고했다.
“물러나게 볼품. 주점 안에서 사고를 치면, 자네와의 인연도 끝이네.”
“에이, 또 그러신다 어르신. 하지만 이번만큼은 좀 봐주쇼.”
“뭘 봐줘?”
볼품이 입꼬리를 올렸다.
“저런 유명인사가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나? 그러면 나 다른 데 가서 욕 들어 먹어요. 내가 욕 들어 먹는 건 윌렛 어르신 욕 먹이는 거고.”
윌렛이 표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살짝 떨렸다.
그때 아더가 입을 열었다.
“유명인사요? 누구요?”
모두의 시선이, 아더를 향했다.
그런 상황에서 볼품이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누구긴 사신 던, 바로 너지.”
“오… 사신이요?”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아케인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같은 별명을 들어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내가 사신이지? 천사면 또 모를까.’
그 때 볼품이 아더의 어깨를 툭 쳤다.
다소 거친 그 손길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어깨에 뭐가 묻었나요?”
“먼지, 먼지가 묻어서 털어준 거야.”
볼품의 도발에 윌렛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주점 안에 있던 용병들은 흥미진진한 눈길로 그런 둘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요. 그런데 먼지를 털어주는 것치고는 손길이 꽤 매섭운데요?”
볼품이 허리춤에 달아놓은 제 대검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게 그거야. 기분 나쁘잖아? 덤벼.”
볼품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싸우자는 건가요?”
“그렇지. 너 같은 거물을 보고 그냥 넘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거든.”
“오… 참신한 이유네요.”
“이 바닥에서 싸움을 하는 데 뭔 이유가 있어?”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죠. 죽는 데도 이유가 없고.”
아더의 말에 볼품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순간 마주보고 있던 아더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다.
“…!”
볼품의 입이 벌어졌다.
허나 이미 굳어진 몸어진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무, 뭐?’
마치 생쥐 앞에 고양이라도 된 것마냥 두 다리만 연신 부들부들 떨렸다.
그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볼품이 경악을 감추지 못할 때 아더의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을 바라본 볼품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죽는다?’
그 때 아더의 손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어라? 볼품 어깨에도 먼지가 묻었네요.”
방긋 웃은 아더가 그의 어깨를 소리내어 탁탁 쳤다.
“에구… 뭔 먼지가 이렇게 많대.”
“…….”
“빨래 좀 제대로 하셔야겠어요. 여기에 얼룩도 져있어요.”
아더가 고개를 까닥숙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볼품을 지나쳐 윌렛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상황에 용병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몇몇 용병들은 조금 전 광경에 탄성을 터트렸다.
그건 윌렛도 다르지 않았다.
‘…뭐야? 지금 눈빛만으로 볼품을 제압했다고?’
보면서도 믿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뭔 수로 눈빛만으로 B급 용병인 볼품을 제압한 거지?
그 때 굳어져 있던 볼품이 무너져 내렸다.
정신을 차린 윌렛이 표정을 굳히며 그런 볼품을 향해 경고했다.
“자네. 나중에 나좀 보지.”
“…….”
볼품은 대답하지 못했다.
윌렛도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는 던이 보였다.
윌렛은 그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꽤 신사적으로 처리했군?”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신사적으로요?”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난 자네가 볼품을 죽일 줄 알았어.”
“네? 제가 왜 볼품 씨를 죽여요? 사이코패스 살인마도 아니고.”
“…….”
“어라? 윌렛 어르신 그건 무슨 표정이에요?”
윌렛이 대답하는 대신, 술과 우유를 꺼냈다.
술은 자신의 책상 위에 우유는 아더 앞으로 건네주며 질문했다.
“그래서… 왜 찾아왔나?”
윌렛의 말에 아더가 우유가 담긴 잔을 잡으며 말했다.
“당분간 못 뵐 것 같아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인사?”
“네.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거든요.”
아더의 말에 윌렛의 눈이 커졌다.
“제국의 수도? 아케인을 떠나는 건가?”
“그건 아니고, 아케인 대학이 방학이거든요. 그래서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는 거죠.”
아더의 설명에 윌렛이 아아… 라는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도르문트 사건에 아케인 대학도 엮여 있는 바람에 예정보다 일찍 방학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덕분에 아케인이 머무르는 수많은 귀족 자제들이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그건 아더 바이에른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곧 있으면 돌아올 거 아닌가?”
“그렇기야 하죠.”
“…이별이라는 말을 담기에는 그러니, 술이라도 한 잔 할까?”
윌렛이 술잔을 들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어허. 안 되죠. 저 아직 미성년자에요 어르신.”
“…….”
“아무리 제가 어르신을 좋아해도, 미성년자한테 술을 권하면 안 되죠.”
아더의 말에 윌렛이 눈을 끔뻑였다.
‘그 미성년자가 사람을 목은 댕강댕강 썰어도 되고?’
허나 곧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정리했다.
아더 바이에른과의 대화에서 이런 식으로 당황하다 보면, 끝도 없이 당황해야 했다.
윌렛이 무너져 내린 표정을 수습하며 질문했다.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부탁이요?”
“그래. 아주 어렵고, 난해한 부탁이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렵고 난해한 부탁? 갑자기?’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어르신?”
윌렛이 천천히 대답했다.
“쥴리가 사춘기야.”
“…네?”
“쥴리가 사춘기라고.”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윌렛이 술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요즘 도통 말을 안 들어. 그러니깐, 자네가 가서 얼굴 좀 보고 와봐. 쥴리는 자네라면 끔뻑 죽는 아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