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23화 (123/265)

제123화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케인 도르문트. 칸 마드리드.’

이번 생에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들.

그들이 서로를 나란히 마주보고 있었다.

그 탓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 순간, 케인 도르문트가 입을 열었다.

[황자. 도대체 왜 바이에른에게 집착하시는 겁니까?]

케인의 질문에 칸 마드리드가 입을 열었다.

[바이에른에 왜 집착하냐고?]

[그들 가문이 우리와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노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칸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군.]

[예…?]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바이에른은 바이에른이니깐 노리는 걸세.]

케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이에른이니깐… 바이에른을 노린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게 뭔가?]

칸 마드리드가 천장을 가리켰다.

[‘신의 혈통’. 그 전지전능한 힘을 얻기 위함 아닌가?]

[……!]

[그 신의 혈통을 얻기 위해서는 바이에른….]

잔상이 깨졌다.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아… 환상이구나.’

눈앞의 광경은 현실이 아닌, 바이에른 혈통이 이뤄낸 기적.

하지만 눈앞의 두 사람이 너무 생생해 그만 그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왜 하필 이때 환상이 끊기는 거지?’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하려던 때, 잔상이 중단되다니.

‘제일 기분 나쁜 게 말하는 도중에 끊기는 건데… 너무한 거 아니야?’

잠시 투덜거린 아더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살아있는 이안의 피가 아니라 죽은 이안의 피를 먹어서 그런 거구나.’

아더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이안이 살아있을 때 피를 먹을걸.’

하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이미 지나간 일을 고민하는 건 어리석었다.

지금은 현재에 집중해야 할 때.

‘아직 잔상이 끊기지 않았어.’

그 사이 또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거대한 연구소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 이건… 쥴리가 갇혀 있던 연구소와 비슷한데?’

번개 혈통을 가진 미치광이 살인자 쥴리 프로스키.

하지만 지금은 또래의 아이보다 조금 조숙할 뿐인 10살짜리 꼬마.

지금 보이는 광경은, 그 쥴리가 갇혀 있던 연구소와 매우 비슷했다.

그때 누군가 걸어나왔다.

[연구는?]

이 기억의 주인공, 이안 도르문트였다.

[…진행되고 있지만 큰 성과는 없습니다, 이안님.]

[시간은 분명 넉넉히 줬을 텐데.]

[조, 죄송합니다… 하지만 프로젝트L의 방향성이 너무 광범위….]

이안이 버럭 화를 냈다.

[그딴 변명을 들으려고 내가 이 자리에 온 줄 아나!]

[…!]

[확실한 결과물을 이번 달까지 제출해! 신의 혈통을 찾기 위해서는 ‘혈통 복사!’ 그 주문이 반드시 필요하니깐!]

이안의 외침에 아더의 입이 벌어졌다.

‘혈통 복사? 프로젝트 L?’

어딘가 익숙한 단어.

아더는 어렵지 않게 이 단어들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세상에… 그때 쥴리가 갇혀 있던 연구소의 서류에 적혀 있던 내용이잖아?’

그와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뱀파이어도 아닌 이안이 성배의 힘을 탈취할 수 있었는지.

‘프로젝트L… 혈통 복사라는 주문을 사용한 거구나.’

숨겨진 내막을 알게 된 그때 주변의 모든 게 뒤바뀐다.

눈앞의 잔상이 깨지며,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아더는 다시 돌아온 광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혈통복사라. 그래서 케인과 칸이 그렇게 혈통에 집착했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두 남자는 집요하리만치 혈통에 집착했다.

아더는 그 이유가 줄곧 궁금했는데, 지금 이안의 기억을 통해 그 비밀을 엿볼 수 있었다.

‘프로젝트L… 혈통복사라는 주문을 만들고 있었구나.’

전생에도 알지 못했던 중대한 사실에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러는 한편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그 혈통복사라는 주문으로 찾고 있는 게 신의 혈통이라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혈통이라는 능력이 신비해도 그렇지, 신의 핏줄 같은 게 있을까?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혈통이라는 능력이 신비해도 그렇지, 신의 핏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뭔가 비유적인 표현이거나 그런 거겠지.’

그렇게 아더가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머릿속에서 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퍽이나 믿어주겠소. 바이에른의 작은 천사여(天使).’

그 목소리에 아더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어라?”

잠시 전율에 몸을 떤 아더가 중얼거렸다.

“…있었네? 신의 혈통이?”

천사.

만약 신의 혈통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천사의 혈통을 이은 바이에른에 밖에 없었다.

* * *

아더는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와… 뭐지? 내가 신의 혈통이라고?’

정확히는 천사의 혈통이지만, 넓은 맥락에서 보자면 신의 혈통도 맞았다.

애초에 신의 자식이 천사 아니던가?

‘그래서 케인과 칸이 바이에른을 노리는 건가?”

이 천사의 혈통을 노리고서?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신의 혈통치고는 그렇게 거창한 건 없잖아?’

각성을 하면 사람이 약간 미쳐버리고, 비정상적인 기억력도 얻기도 하고, 또 남의 혈통도 복사할 수 있지만.

그 두 사람이 바이에른을 노리는 이유치고 빈약했다.

애초에 그 두 사람은 지금 나열한 것들보다 훨씬 좋은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던가?

‘지금으로 봐서는 바이에른 혈통 때문에 노리는 게 아니라, 혈통도 노리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이는데….’

생각과 함께 아더가 다시 고민에 빠져들 때였다.

뒷정리를 하던 노움이 소리쳤다.

[아더 다 끝났어!]

노움의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도르문트 기사부터 시작해, 이안의 시체까지.

조금 전 전투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깨끗이 정리된 제단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어꺠를 으쓱였다.

‘나중에 고민하지 뭐. 앞으로 남는 게 시간이니깐.’

그렇게 상념을 접어둔 아더가 예니카를 들쳐 업으며 말했다.

“노움. 여기를 폭파 시켜줘.”

아더의 말에 노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쿠크크크-!

그 순간 제단이 부서져 내렸다.

옆에 있던 피의 호수도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제단을 지탱하던 4개의 기둥도 천천히 부서져 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시선을 돌렸다.

노움이 파놓은 구덩이에 놓여있는 이안이 보였다.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본 아더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고마워요, 이안. 당신 때문에 많은 걸 얻고 가요.’

뱀파이어 로드라는 아주 거창한 혈통에, 새로이 깨닫게 된 바이에른 혈통의 능력.

마지막으로 케인과 칸의 목적 중 하나까지.

이렇게나 많은 성과를 얻은 것은 이번 생과 저번 생을 통틀어 처음이라 느낄 정도였다.

‘항상 저를 방해만 하던 당신이 처음으로 도움이 되었네요.’

살짝 고개를 숙인 아더가 몸을 돌렸다.

‘그러니 이제 진짜 헤어져요. 즐거웠어요, 이안.’

이안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제단이 붕괴 되었다.

모든 것이 어둠으로 떨어졌다.

그건 제국이 천재라 불리던 남자.

이안 도르문트도 다르지 않았다.

쿠크크크-!

죽음에 이른 그의 육신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에 든 채.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던 기사치고, 너무나도 허망한 결말이었다.

* * *

뱀파이어 도시를 습격한, 도르문트 군대는 빠르게 정리됐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괴물이야 괴물!”

도르문트 군대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은 평범한 병사.

기사라는 지휘관을 잃은 그들에게 뱀파이어의 반격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설원의 전사.

테이큰이 도르문트의 흑마법사, 원숭이의 목을 치켜든 순간 남은 도르문트 군인들은 완전히 사기를 잃어버렸다.

“항복, 항복입니다! 무조건 항복!”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들어 올린 도르문트 병사들.

하지만 광전사 테이큰은 그런 그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싸움을 걸어왔으면, 끝을 봐야지.”

이 말과 함께 테이큰이 제 두꺼운 대검을 치켜들었다.

그 광경을 카르페가 흐뭇이 지켜보던 그때, 뒤늦게 그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이안! 그 자식은 왜 안 보이는 거야!”

그의 말에 지니의 눈도 커졌다.

“공자님도… 안 보이네?"

그렇게 잊고 있었던 두 사람을 떠올린 지니와 카르페가 떠올렸을 때였다.

이 지하도시에서 가장 거대한, 신전이 예고 없이 무너져 내렸다.

쾅-!!!

폭음과 함께 천장이 뚫리고, 밝아오는 여명이 지하도시를 덮쳤다.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깜짝 놀라는 사이, 지니와 카르페가 중얼거렸다.

“서, 설마….”

“아, 아니지?”

지니와 카르페의 목울대가 동시에 출렁거렸다.

“…공자님!”

“공주님!”

한 박자 늦은 외침과 함께 카르페와 지니가, 신전을 향해 달려 나가던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 여러분!”

해맑게 웃고 있는 아더 바이에른과, 그의 등에 업힌 예니카 헤이즐이었다.

넋을 놓고 있던 지니가 뒤늦게 놀라며 소리쳤다.

“고, 공자님 괜찮으세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지니는요?”

“저, 저도 괜찮아아요!”

지니의 대답에 아더가 씩 미소지었다.

그때 지니의 옆에 있던 카르페가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

“고, 공주님!”

그의 외침에 아더가 업고 있던 예니카를 내려놓았다.

카르페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고, 공주님이 왜 이래!”

“잠시 기절한 거예요. 충격을 받아서.”

“…충격?”

“네. 이안이 성배에 힘을 훔쳐 가는 바람에, 예니카의 영혼도 같이 빼앗겼거든요.”

아더의 설명에 카르페의 눈이 치켜떠졌다.

“성배의 힘을… 도르문트가 훔쳐 갔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글쎄요? 죽은 이안에게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더의 말에 카르페가 움찔 몸을 떨었다.

“죽은… 이안?”

“네. 죽은 이안.”

“네가 그자를 죽였… 다고?”

“죽였죠. 그러니깐 이렇게 살아 돌아왔고.”

카르페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허어? 진짜야 거짓말이야?’

두 눈으로 멀쩡히 살아 돌아온 던을 보고 있지만, 믿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게 사실 던이란 용병에게 이번 의뢰를 맡긴 건, 이안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으니깐.

‘미친놈이긴 해도… 실력 하나는 뛰어나니깐 테이큰이 깨어날 때까지 고기방패 역할 정도는 해줄 줄 알았지.’

그런데 그 고기방패가 이안을 직접 처리했다고?

카르페의 표정이 복잡하게 얽힐 때, 아더가 예니카를 가리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의사한테 진찰 한 번 받아봐요, 카르페.”

“…!”

상념에서 빠져나온 카르페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지!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

예니카를 들쳐 업은 카르페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해, 햇빛!”

“아, 안 돼! 애들아 이리 오렴!”

“절대로 다가가면 안 돼!”

무너져 내린 천장.

그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밝은 햇살에 몸부림치는 뱀파이어들이 보였다.

그들의 표정에 어린 공포, 두려움, 그리고 억울함.

그것들을 잠시 지켜보다 카르페의 말을 떠올렸다.

[공주님은… 뱀파이어에게 걸린 저주를 풀고 싶어 해. 그게 그녀의 평생 숙원이야.]

아더가 그 말을 잠시 되새기는 그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슈렉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르문트 병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소녀였다.

아더는 그 소녀를 발견하고서 방긋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꼬마 아가씨?”

“어? 아저씨… 아니 오빠?”

“네 오빠예요. 부모님은 어디에 계세요?”

아더의 질문에 소녀가 우무쭈물 입술을 달싹였다.

“집 좀 보고 온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어요.”

“아하. 그렇군요. 흠… 꼬마 아가씨?”

“네?”

“햇빛 처음 보죠?”

아더의 질문에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

뚫린 천장에서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따사로웠다.

태어난 뒤, 줄곧 이 도시에서 자라온 그녀에게는 그런 따사로움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네 처음 봐요.”

소녀의 대답에 아더가 질문했다.

“햇빛, 쬐고 싶어요?”

“…….”

소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그 햇살이 이 소녀에게는 당연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뱀파이었구나, 이 아이도.’

아더가 잠시 턱을 쓰다듬다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아더의 새빨간 입술 사이로 두 송곳니가 삐쭉 튀어나왔다.

아더를 남몰래 훔쳐보던 지니의 눈이 그 변화에 커졌다.

“고, 공자님? 왜 송곳니가 갑자기….”

하지만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파앗-!

어느 순간 아더의 몸에서 치솟아 오른 하얀 빛이 내리쬐는 태양을 넘어 하늘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무, 뭐야 저게!!’

경악한 지니가 입을 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다들 기절한 예니카를 쫓아갔는지 그 변화를 보지 못한 듯했다.

그 탓에 지니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한 뱀파이어의 눈이 커졌다.

“어…?”

아더와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뱀파이어 꼬마였다.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리쬐는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와… 햇빛?”

그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부터 매일 볼 수 있을 거예요.”

“……?”

“키가 쑥쑥 크려면 햇빛 많이 쬐야 하니깐, 꼭 염두에 두시고요. 아시겠죠?”

아더의 말에 소녀가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더도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소녀의 머리만 한 차례 쓰다듬어 주었다.

그 후 시선을 돌린 아더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걷히고, 밝아오는 새벽이 보였다.

그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며 아더가 중얼거렸다.

“아… 끝이다.”

모든 사건이 끝났다.

이제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칠흑 같은 밤.

그 밤의 중앙에 떠오른 보름달과 그 옆을 수놓은 수만 개의 별들을 텅 빈 안광으로 바라보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금제가 깨졌구나.”

노인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제국의 황제가 직접 뱀파이어에게 직접 건 저주.

그 누구도 깨지 못한 저주가 무려 천년 만에 깨졌다.

하지만 노인이 주목한 건 그 천년 만에 깨진 저주가 아니었다.

‘마침내… 진짜 능력을 깨우쳤구나. 나의 작은 천사여.’

공작가의 벙어리.

아케인 대학의 천재.

뒷거리의 전설적인 용병.

무려 한 이름으로 3개의 삶을 살아가는 기이한 존재.

노인은 잠시 그 존재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리다 텅 빈 제 눈구멍을 쓰다듬었다.

“때가 왔구나.”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금고를 열었다.

금고 안에 든 것은 놀랍게도 두 개의 눈이었다.

노인은 그 두 개의 눈을 꺼내 들어, 텅 빈 눈구멍에 직접 끼워 넣었다.

그 순간 노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 이 얼마만에 보는 밤인가?”

100년만에 보는 밤의 하늘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노인은 그 풍경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하늘에서 추락한 미쳐버린 천사만 못하지….”

말을 흐린 노인이 웃었다.

그 웃음과 함께 혹자에게는 전설적인 흑마법사로.

누군가에게는 천년을 살아온 괴물로.

또 누군가에게는 [흰 수염]이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세상의 초월자가 몸을 떨었다.

“때가 왔네. 아더 바이에른.”

[최악의 흑마법] 흰 수염이 몸을 일으켰다.

“자네와 했던 거래. 그 거래의 대가를 지금 받으러 가겠네.”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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