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이안은 구멍이 뚫린 제 가슴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칼을 잡은 뒤로 죽음은 언제나 각오한 일이었다.
허나 이런 식의 결말은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천하의 이안 도르문트가, 벙어리 아더 바이에른에게 가슴이 꿰뚫려 죽다니.
이안은 가래가 낀 피를 토해내며 웃었다.
“큭큭… 크하하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어요, 이안? 죽어가는 게 기뻐요?”
“크큭… 기쁘기 보다는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다고요?”
“그래… 이 내가 고작 이런 죽음을 맞이 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왜 어이가 없어요.”
“뭐?”
“전 당신을 죽이려고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까지 했는데.”
“…….”
“그것도 모자라 과거로까지 돌아왔죠. 이 정도 했으면 당신이 죽어주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아더의 말에 이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런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이안은 결국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미쳤군.”
“다 당신 때문이죠.”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코앞으로 다가온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숨을 간신히 붙들어 맨 그가 중얼거렸다.
“…너도 곧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그것보다 당신 아버지하고 칸 마드리드가 먼저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네가 그들을 죽인다고?”
“네.”
아더가 방긋 웃었다.
“그러니깐 그런 외로운 표정 짓지 마요.”
“…뭐?”
“당신 지금 무섭잖아요.”
“…!”
“죽는 게 무서우니깐, 계속 저한테 말을 거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이안의 눈이 커졌다.
그는 마치 제 치부가 들킨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나는….”
말을 흐리는 그를 향해 아더가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요.”
“…….”
“당신의 마지막은 제가 옆에서 지켜줄 테니깐.”
그 미소를 지켜보던 이안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아더… 아더 바이에른!!!”
고함을 지른 그가, 아더의 멱살을 붙잡았다.
아더는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행동마저도 이안의 화를 부추겼다.
“네 놈은…! 네놈은 끝까지 날…!”
거칠게 소리친 이안이 아더를 목을 덥석 붙잡았다.
그 과격한 행동에도 아더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이안이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왜… 날 죽인 것이냐… 왜 날… 나는 여기서 죽을….”
말을 흐린 이안의 입이 벌어졌다.
“…….”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더의 목을 붙잡고 있던 이안의 손도 같이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죽었네.”
이안 도르문트.
저번 생에 죽이지 못한 복수의 대상 중 한 명.
그가 마침내 생을 다했다.
그 순간 아더는 탄성을 터트렸다.
“아….”
흐리멍덩하던 세상이 다시 원래의 색감을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벅차오르는 감격 속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결국 복수를 하면 할수록 괴로워지는 건 결국 너다.’
미래, 복수에 미쳐있던 자신을 향해 누군가 했던 조언이었다.
그 당시 자신은 이 말이 진짜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수만을 쫓는 자신의 삶은 너무나도 피폐했으니깐.
하지만 이안을 죽인 지금, 아더는 알 수 있었다.
“이게 괴롭다고?”
아더는 빛이 나는 세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복수를 하지 못한 게 더 괴로운 거야.”
복수에 성공하니 이렇게나 세상이 밝아졌는데,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데.
그 사람은 아무래도 복수에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기대되네. 케인과 칸… 이 두 사람마저 죽이면 과연 무슨 기분일까?”
그 끝을 기대하며, 아더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분노한 원숭이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죽여주마, 네 놈!]
아더 바이에른이 건네준 도르문트의 지팡이.
그 지팡이를 보고 후방에 있던 도르문트 병사들을 학살한 것이 레온이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분노에 찬 원숭이의 주먹질에 레온이 황급히 변명했다.
“자, 잠깐 오해! 오해라고 원숭이!”
[뭐가 오해냐!]
“도르문트 병사들을 죽인 건 내가 아니야!!”
[네가 한 게 아니라고? 그럼 누구 짓인데?]
“이건 내가 아니라 아….”
말을 흐린 레온이 입을 다물었다.
‘…잠깐. 여기서 아더 바이에른을 언급하면, 원숭이가 아니라 화가 난 미친놈에게 쫓기는 거 아니야?’
레온이 신음을 흘렀다.
원숭이와 화가 난 아더 바이에른 중, 누구를 상대하는 게 더 고역이냐 물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제, 젠장! 그 개자식! 분명 이걸 노리고 나한테 지팡이를 준 걸 거야!’
결국 레온은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숭이의 눈이 돌아갔다.
[끝까지 날 우롱해!!!]
괴수로 변한 원숭이의 거대한 주먹이 레온의 머리 위로 쇄도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시알이 원숭이의 주먹이 닿기 전, 아슬아슬하게 레온을 안고서 옆으로 굴렀다.
쾅!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그 엄청난 힘에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수명을 받쳐서라도 원숭이를 제압해야겠어.”
옆에서 신음을 흘리던 마시알이 깜짝 놀라 수화를 시도했다.
[황자, 안 됩니다!]
“어쩔 수 없네, 마시알.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 힘을 썼다가는….]
마시알의 만류에 레온이 투덜거렸다.
“만약 내가 죽거든, 아더 바이에른에게 똑똑히 전하게. 일이 잘못되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따지러 간다고.”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제국의 혈통 능력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제 뒤편에서 들려왔다.
“…황자님 뭐해요?’
아더 바이에른의 메이드.
지니였다.
깜짝 놀란 레온이 고개를 돌렸다.
“지니 양! 어디서 오신 겁니까!”
“…어디서 오긴요? 여태까지 카르페 씨랑 같이 도르문트 병사들 막고 있었는데.”
“크흑! 때마침 잘 오셨습니다! 저 놈! 저놈을 처리해야 합니다!”
레온의 말에 지니의 뒤편에서 나타난 네크로맨서, 카르페의 눈이 커졌다.
“아니 저 놈은…? 그 놈이잖아! 도르문트의 흑마법사!”
단번에 괴수의 정체를 알아본 카르페가 레온을 제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이 흑마법사!”
카르페의 외침에 원숭이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네크로맨서!]
“꼴을 보니, 흑마법사가 아니라 변신쟁이라 불러야겠구만!”
[닥쳐라! 시체술사 주제에 누굴 지적하는 것이냐!]
이번에는 카르페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뭐!? 음침하게 골방 구석에서 저주나 외우는 놈이 누구 보고 시체술사래!”
[내가 할 말이다! 음침하게 골방 구석에서 시체나 만지는 놈이!]
그런 둘의 설전을 지켜보던 레온과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상당히 기가 막힌 대화네요.”
“동감합니다.”
그때 원숭이가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잘 됐군. 어차피 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전부 죽여놓을 생각이었는데 제 발로 날 찾아올 줄이야.]
원숭이의 말에 카르페가 눈을 치켜떴다.
“니 놈이 나를?”
[왜? 못 죽일 것 같으냐?]
카르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이런 멍청한 흑마법사를 봤나.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놈이었군.”
카르페의 말에 이번에는 원숭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군 시체쟁이.]
“쯧쯧.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날뛰어 보거라.”
카르페의 도발에 원숭이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사양하지 않지. 단숨에 죽여주마 시체쟁이.]
이 말과 함께 원숭이가 주먹을 내질렀다.
지켜보던 레온과 지니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카르페 씨!”
그 다급한 외침에 카르페는 느긋이 팔짱을 꼈다.
그 모습에 레온과 지니의 눈이 커진 순간, 카르페가 버럭 소리쳤다.
“테이큰!!!”
그 외침과 함께 카르페를 향해 쇄도하던 원숭이의 주먹이 빗나갔다.
쾅-!
애꿎은 지면을 때린 원숭이가 비틀거렸다.
지니와 레온의 입이 벌어질 때, 저 멀리서 누군가 나타났다.
“…카르페. 저놈은 뭐지?’
두 눈이 붉게 충혈된 북부 설원의 전사.
테이큰이었다.
그의 등장에 카르페가 신이 나 대답했다.
“테이큰! 그놈이야! 너한테 저주를 건 그놈!”
“…!”
카르페의 설명에 테이큰의 눈이 커졌다.
그사이 갑작스레 날아온 대검에 얻어맞아 신음을 내뱉던 원숭이가 흠칫 놀랬다.
[고, 괴물!]
원숭이의 외침에 테이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며 질문했다.
“어떤 식으로 죽고 싶지? 흑마법사? 사는 건 안 되니, 그것만 빼고 말해라.”
* * *
이안의 시체를 뒤로한 아더는 턱을 쓰다듬었다.
“흠… 예니카. 죽으려나?”
괴물이 된 이안에게 어떤 주술을 당한 뒤, 그녀는 줄곧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내쉬는 숨이 끊어질 듯 말듯 매우 가늘었는데, 상태만 보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탓에 운디네까지 소환했지만, 물의 상급 정령조차 그런 그녀를 치료하지 못했다.
[이건 외상이 아니에요, 아더. 영혼 자체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어요. 아무리 저라도 영혼마저 치료하지 못해요.]
운디네의 설명에 아더가 떠올렸다.
‘설마… 괴물이 된 이안이 빨아들인 연기가 예니카의 영혼이었나?’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세상에… 영혼이라는 게 진짜로 존재하는구나.”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후세계라는 것도 있는 걸까?
잠시 다른 쪽으로 상념에 빠진 아더가 곧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흠… 그런데 내가 이안의 힘을 흡수했잖아?”
그렇다는 건, 예니카에게 영혼을 되돌려 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곧바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뱀파이어.
정확히는 뱀파이어 로드의 피가 깨어났다.
아더는 그 상태에서 정신을 집중했다.
‘예니카 영혼… 예니카 영혼… 예니카… 흠?’
그러고 보니 예니카의 영혼이라는 게 대체 뭐지?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감고 있던 눈을 떴을 때였다.
손가락 끝에서 가느다란 실이 빠져나와 있었다.
“오?”
눈빛을 빛낸 아더가 그 실을 예니카의 입에 물려주었다.
기절한 예니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실은 알아서 예니카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손가락 끝에서 빠져나온 실을 먹기 시작한 예니카의 안색이 몰라보게 좋아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충격의 여파가 있는 것인지 깨어나지는 못했다.
아더는 조금 더 손가락의 실을 그녀에게 먹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나도 참 정이 많아서. 이런 광신도 수장도 아는 사람이라고 외면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럼 뒷정리 좀 해볼까?”
이안의 시체나 도르문트의 시체가 눈에 띄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 탓에 아더는 노움을 소환해 그들의 흔적을 지우라 명령했다.
[흔적을 치우라고 아더? 어떻게?]
“음… 깔끔하게 매장해 버리자.”
아더의 말에 노움의 눈이 커졌다.
‘매, 매장이라고?’
노움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제 손에 죽은 자들을 매장을 하라니.
노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여, 역시 아더야!]
“…?”
미묘한 칭찬과 함께 노움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아더가 말없이 지켜보던 그때,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기억은 뭐였을까?’
지금 기절한 예니카의 혈통을 흡수했을 때, 그녀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흘러들어왔다.
어린 시절 학대당하던 예니카 헤이즐.
젊은 시절의 카르페와 테이큰을 만나던 예니카 헤이즐.
아케인 대학에 입학해 자신을 바라보는 예니카 헤이즐.
아직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녀의 기억들을 되새기던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어라 이거 설마…?”
그때 흰 수염이 말했던 바이에른의 숨겨진 혈통의 능력 중 하나인가?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그럴싸한데?”
그게 아니고서야, 갑자기 예니카의 어린 시절이 보일 리가 없었다.
아더가 눈빛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건… 이안의 피를 들이켜면 그 기억을 훔쳐볼 수 있다는 거잖아?’
만약 제 예측이 맞다면,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의문들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성배의 비밀부터 시작해, 바이에른 가문의 비밀까지.’
그뿐만이 아닌 이안이 가지고 있던 도르문트의 은밀한 정보까지.
아더는 감탄을 숨기지 않으며, 곧바로 노움을 향해 소리쳤다.
“노움! 이안의 시체는 가만히 놔둬!”
[…이안? 이 할아버지 말이야?]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이안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안의 손바닥을 찢어, 흘러내리는 피를 손에 담기 시작했다.
그 난데없는 행동에 깜짝 놀란 노움이 입을 벌렸다.
‘서, 설마…! 아니지!?’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으로도 모자라, 시체의 피까지 마신다고?
경악한 노움이 몸을 부르르 떨 때, 아더가 생각했다.
‘아직 따뜻하네. 흠… 그런데 시체의 피인데 가능하려나?’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기보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게 좋아 보였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아더가 이안의 피를 들이켰다.
꿀꺽.
쓰고 맛없는 피가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갔다.
아더는 그 맛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집중력을 끌어올린 순간,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
깜짝 놀란 아더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갑작스레 바뀐 주변 풍경이 보였다.
“어라? 여긴 어디지?”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황자. 대체 왜 바이에른을 노리는 겁니까?]
케인 도르문트.
이안의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