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19화 (119/265)

제119화

이안을 마주한 순간, 아더의 세계는 핑그르르 돌았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고, 모든 색이 뒤죽박죽 섞여 선의 구분이 사라졌다.

그 속에서 예니카는 피에 젖은 새가 되었다.

‘희한한 새네?’

그리고 도르문트 기사들은 흉측한 괴물이 되었다.

‘으악 못 생겼어!’

허나 이안은 그대로였다.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무뚝뚝한 인상의 30대 초반의 남자.

케인 도르문트의 차기 후계자라 평가받으며, 제국이 낳은 보배라 불리는 사내.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안만큼은 조금 전 본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아더는 안도했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면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이야.’

거기다 괴물로 변한 이안을 죽여 봐야 흥이 돋지 않을 것이다.

이안은 이안이기에,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남자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 좋아.”

“…?”

“지금 상황 너무 좋네요. 안 그래요 이안?"

아더의 질문에 이안이 정신을 차렸다.

‘……좋다고? 지금 상황이?’

이안이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로서는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낯설고 이상했다.

아케인 대학에 있어야 할 아더 바이에른이 왜 여기 있다 말인가?

칼을 겨눈 아더 바이에른이 왜 자신을 죽인다 말하는 건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맞은편에 있던 예니카도 다르지 않았다.

‘아더 바이에른이 왜 여기에?’

그는 아케인 대학에서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어야 할 텐데?

‘설마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을 쫓아… 이곳에 온 건가?’

예니카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였으면, 이안 도르문트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눴을 것이다.

고민하던 예니카는 결국 입을 열어 질문했다.

당사자가 코앞에 있는 데 굳이 혼자서 궁리 할 이유가 없었다.

“공자님,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비스트를 입가에 가져다 되며 방긋 웃어보였다.

“쉿.”

“……?”

“지금 아주 중요한 순간이에요. 그러니깐 조용히 해주세요 예니카.”

아더의 말에 예니카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다시 고개를 돌린 아더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넋이 나가 있던 이안의 표정에 다시 생기가 돌고 있었다.

이윽고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가 고개를 들어 아더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래.”

“……?”

“아버지께서는 항상 바이에른에 관심이 많으셨지.”

이안이 입꼬리를 올렸다.

“난 그 이유가 궁금했어. 명문가라 하지만, 옛 시대의 영광. 대체 다 허물어져가는 그 가문에 왜 그토록 관심을 가지시는 걸까….”

“…….”

“그런데 지금의 널 보니 이해가 가는구나, 아더 바이에른.”

이 말과 함께 이안이 검을 뽑아들었다.

“바이에른은 이 세상에 없어야 하는 존속들이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짜였어.”

이안의 말에 아더가 다시 웃었다.

“하하….”

그 웃음과 함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더가 중얼거렸다.

“벌써 적응하신 거에요? 에이… 조금 더 당황해주세요. 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더의 말에 이안이 시선을 내리깔며 말며 말했다.

“당황할 필요가 뭐가 있지?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붙잡고 심문하면 그만인데.”

“그래요? 흠… 뭐, 그것도 맞네요. 역시 당신다워요.”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마검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내가, 예고없이 뛰쳐올랐다.

챙-!

거친 쇳소리와 함께 예고에 없던 전투가 시작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예니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이게 뭐야?’

갑작스럽게 등장한 아더 바이에른 덕분에 공들인 그림이 전부 박살났다.

‘내 손에 죽어야 할 이안이 왜 아더 바이에른과 싸우는 거지?’

그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깊이 고민 할 수 없었다.

“경들은 저 년을 붙잡아, 내 앞에 무릎을 꿇려라!”

아더와 격돌하던 이안이 내린 명령에 의해 침묵하던 10명의 도르문트 기사들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칼을 뽑아드는 도르문트 기사들을 바라보며 예니카가 중얼거렸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오래 끌어서는 안 돼.’

제물을 바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보름 달이 뜰 때까지, 이안을 죽여 놓지 못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그 탓에 예니카의 눈길에 살기가 깃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죽이는 수밖에 없어.’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뱀파이어, 달의 민족의 힘이 깨어났다.

파앗-!

그 힘의 여파로 피의 호수가 들썩였다.

그 기이한 현상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방심하지마라! 저 년은 뱀파이어! 괴물이다!”

거친 외침과 함께 뱀파이어와 기사.

유서 깊은 두 존재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칼과 칼이 교환된다.

챙!

아더가 찌르면 이안이 막아내고, 아더가 막으면 이안이 찔러들어왔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공수를 교환하던 둘은 서로의 검을 똑같이 떨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

잠시 서로를 노려본 아더와 이안이 다시 부딪쳤다.

이안과 아더의 검이 어지럽게 교환됐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이안의 눈은 점차 커졌다.

‘아더 바이에른이… 내 검을 따라와?’

그 머저리라 불리던 녀석이 어떻게?

머릿속에 든 의문에 이안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는 숙련된 기사이자 칼잡이였다.

그리고 숙련된 칼잡이는 그 어떤 적을 마주하고서라도 전투 중에 상념을 하지 않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의 모든 의문을 지운 이안이 눈빛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시간 끌 거 없이, 곧바로 제압한다.’

그 다음 이 의문을 해소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결정을 내린 이안이 아더의 검을 거칠게 튕겨내며 숨을 몰아내쉬었다.

그 순간 그의 검을 타고 회색 빛 검기가 치솟아 올랐다.

우웅.

7서클의 기사.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10서클의 경지까지, 몇 걸음 남겨두지 않은 지고한 칼잡이의 검기가 어둠을 잡아먹었다.

이안은 그 검기가 둘린 검을 아더에게 겨누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지 아더 바이에른.”

그의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투항이요? 갑자기요?”

“검기를 두른 내게 설마 이길 생각인가?”

“오? 설마 그쪽만 검기 쓸 수 있다 생각하는 거에요?”

“…?”

아더가 방긋 웃었다.

그 모습에 이안이 웬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순간, 아더의 마검에서 검기가 치솟아 올랐다.

파앗-!

붉은 빛 검신을 타고, 치솟은 붉은 빛 검기가 이번에는 광장의 어둠을 잡아먹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안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검기라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호… 좋은 표정이네요 이안.”

“…….”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지으니깐, 굉장히 자극적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아더의 말에 이안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저게… 무슨 말이지?’

하지만 깊이 고민 할 수 없었다.

어느 사이엔가 쇄도한 아더가 검을 내질렀기 때문이었다.

챙-!

검기와 검기끼리 부딪치며 불씨가 튀어 올랐다.

그 속에서 표정을 수습한 이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점점 더 너에 대해서 궁금해지는 군.”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피차일반이네요. 저도 당신의 일그러진 표정을 조금 더 보고 싶어요.”

이 말과 함께 이안이 뛰어올랐다.

아더도 그런 이안에 맞추어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챙-!

허공에서 서로의 검이 교환됐다.

그걸 시작으로 다시 치열한 수싸움이 시작됐다.

쾅!

지상으로 내려왔음에도 두 칼잡의 공방은 멈추지 않았다.

검기와 검기끼리 부딪치는 파장이 작은 돌풍을 만들어냈고, 떨어지는 불씨가 별똥별이 되어 주변을 밝혔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검을 주고받던 그 때, 이안은 생각했다.

‘이 녀석 위험하다.’

제 검을 맞받아칠 때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기를 발현 한 건 다른 이야기였다.

‘그 벙어리 아더 바이에른이 검기를 두를 수 있을 리가 없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그런데 그 일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어떠한 이유건,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탓에 이안은 서둘러 전투를 끝내고자 했다.

그 의지는 곧, 도르문트 가문의 혈통.

[축복의 정령]을 일깨우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혈통이 발현된 순간, 아더의 뒤편에서 거친 불꽃이 터져 나왔다.

[명을 받듭니다 주인이여.]

불의 상급 정령.

이프리트가 토해낸 불꽃이었다.

깜짝 놀란 아더가 눈을 치켜뜨고, 이안이 입꼬리를 올렸다.

‘잡았다.’

아더의 표정에 확신을 한 이안이 이프리트와 함께 양면에서 공격 하려 할 때였다.

아더가 놀란 표정 그대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정령 쓸 거예요?”

“…?”

“곤란하네요. 전 조금 더, 당신과 칼을 나누고 싶은데.”

이 말과 함꼐 아더를 향해 쇄도하던 이프리트의 불꽃이 사라졌다.

파앗-!

정확히는 어느 사이엔가 나타난 물의 상급정령이 이프리트의 불꽃을 지워버린 것이다.

아더와 칼을 맞대던 이안의 눈이 커졌다.

“…뭐? 운디네라고?”

그 순간 이안이 딛고 있던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

깜짝 놀란 이안이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동시에 이안을 붙잡기 위해 솟아올랐던 노움의 손이 애꿎은 허공만 붙잡았다.

“노움… 까지 다룬다고?”

이 말과 함께 이안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더듬었다.

“너 어떻게 정령을… 그것도 상급의 정령을….”

그 모습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벌써부터 놀라기에는 이른데요?”

“…….”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게 많은 데 고작 이런 거에 놀라서야 되겠어요?”

아더의 대답에 이안의 입이 벌어졌다.

‘고작 이런 거?'

몇년만에 다시 만난 머저리가 검기를 다루고 상급 정령 두 마리를 다루는 것보다 놀라운 일이 있다고?

그 때 아더가 제 가슴팍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죽이려고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데, 벌써부터 놀라시면 많이 곤란해요.”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벌컥 화를 냈다.

“네 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허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탕-!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이안의 볼에 생채기가 났다.

“…!”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에 이안의 몸이 굳어졌다.

덩달아 그의 사고도 잠시 멈췄다.

‘내가… 피를 흘렸어?’

그 아더 바이에른의 총에 반응하지 못해 부상을 입어서?

그 때 눈앞에 있던 아더 바이에른이 사라졌다.

“…!”

깜작 놀란 이안이 몸을 틀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라졌던 아더 바이에른이 코앞에서 나타나 검을 내질렀다.

동시에 난데없이 터져나온 벼락이 이안의 몸을 마비시켰다.

콰지지직!

그 타오르는 벼락에 이안이 경악해 중얼거렸다.

‘벼락, 마법? 아니… 혈통?’

그 생각이 끝마친 순간, 아더의 마검이 이안의 어깨를 꿰뚫었다.

“끄헉!”

신음을 토해낸 이안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렇게 이안을 벽면까지 몰아넣은 아더가 그의 목을 덥석 붙잡았다.

“컥!”

숨이 막힌 이안이 아더의 손에 붙잡힌 채로 발버둥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더가 중얼거렸다.

“제가 말했죠, 이안? 벌써부터 놀라면 곤란하다고.”

“끄, 끄헉.”

“아직도 못 보여준 게 너무 많아요. 그러니 너무 놀라지 마요. 심장이 갑자기 충격을 받아 덜컥, 죽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아더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안이 중얼거렸다.

“…미쳤나 네놈?”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그걸 이제 알았어요?”

“…뭐?”

“미친 건 한 10년 뒤에요. 당신 때문에 아주 미쳐버렸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웃었다.

“다행히 지금은 정상이에요. 그러니깐 음….”

말을 흐린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일시적으로 미쳐버린 거죠.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어요?”

아더의 말에 이안은 침묵했다.

조금 전 말이 질문인지 대답인지, 알 수 없는 걸 넘어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더 바이에른… 정상이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안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

공포.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조금씩 차올랐다.

그 감정을 인정 할 수 없던 이안이 이를 악물 때였다.

아더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첫 번째는… 음. 그래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형제였던 빌처럼 눈부터 시작해보죠. 마음에 드세요 이안?”

이안의 눈이 커졌다.

“…뭐? 빌처럼 시작해보자고?”

“네. 당신 형제 있잖아요. 그 약삭빠른 막내.”

아더의 눈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 막내처럼 먼저 눈을 뺄까 하는 데 마음에 안 드세요?”

이 말에 이안은 정신세계가 덜컹 흔들렸다.

‘빌? 내 막내 동생 애꾸 빌?’

그 빌처럼 눈을 뺀다고?

‘그럼 그 때 그 사고가… 우연이 아니었다 말인가?’

생각과 함께 이안의 입이 다물어졌다.

동시에 낮게 가라앉은 아더 바이에른의 눈이 보였다.

심연과도 같은 눈을 바라보던 이안은 이제는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

웃고 있는 아더 바이에른이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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