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예니카 헤이즐을 잡기 위해 모인 용병과 세력들 사이에서 기묘한 소문 하나가 퍼졌다.
“…그거 들었어? 도르문트 군대가 완전히 개박살 났다던데?”
“뭐!? 도르문트 군대가 박살이 나?”
“그게 말이 되냐? 그 도르문트 군대가 어떻게 박살이 나?”
허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헛소문도 이런 헛소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르문트 군대가 박살 난 것도 안 믿기는데 어떤 미친놈이 그 도르문트를 건드려?”
“칠황과 해적도 그런 짓은 안 저지르겠다.”
“차라리 전쟁이 낫다고 이빨 까는 게 낫겠네.”
제국의 유서 깊은 가문.
동시에 이제는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도르문트 가문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니.
그렇게 잠시간 퍼진 가십은 금방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신 도르문트와 검은 십자가의 격돌에 관한 이야기가 용병과 세력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미친!! 그 광신도 놈들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도, 도르문트 군대를 먼저 습격했다고?”
“그놈들 진짜 또라이 아니야?”
일전에 퍼진 소문과 달리 이번에는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 소문과 달리 확실한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니카 헤이즐을 잡기 위해 북끝 마을에 상주하고 있던 용병들이었다.
“…내 생엔 그런 싸움을 본 적이 없어.”
“그냥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처럼 싸우던데?”
“특히 제국 최고의 기사 중 한 명인 이안 도르문트와 그 검은 십자가의 괴물은….”
그들의 입에서 전해져 오는 생생한 이야기에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누가 이겼대?”
이 말에 모두가 입을 모아 대답했다.
“당연히 이안 도르문트지. 그들이 광신도를 박살 냈어.”
* * *
아더와 지니는 기차역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
아더는 꾸벅꾸벅 졸았고, 지니는 힐끔힐끔 그런 아더를 훔쳐보았다.
‘잘도 저 자세로 졸고 있네.’
고개가 45도로 꺾인 상태로 무려 한 시간 째 졸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목이 아픈 자세에 지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지니가 아더의 어깨를 붙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더가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음… 지니?”
“그냥 자세요 공자님.”
“지니 허벅지 베고요?”
“…꼭 그걸 말씀하셔야겠어요?”
“제가 매너가 좀 뛰어나서요.”
“알았으니깐, 입 다물고 자세요. 공자님 보니깐 제 목이 다 아파서 그래요.”
아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니의 허벅지를 베게 삼아 다시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니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는 모습만 보면 참 귀여운데.”
이 잘생긴 청년이 불과 3일 전에 도르문트 군대를 썰어버렸다고?
잠시 고민하던 지니는 몸을 떨었다.
‘그런 지금 내 허벅지에 최악의 현상수배범이 누워 있단 소리야?’
제국 최고의 가문을 건드렸으니, 현상금이 얼마 정도 될까?
일단 만 골드는 가뿐히 넘기고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해적의 수장을 넘어 최고액 현상수배범이 될지도 몰랐다.
잠시 목울대를 출렁인 지니가 고개를 숙였다.
“…….”
아더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금화처럼 보였다.
잠시 고민한 지니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정신 차려 지니 데이븐…. 상대는 아더 바이에른이라고.”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좋은 시간 보내고 있네요?”
“……?”
“미녀와 미남이 벤치에 그런 식으로 앉아있다니… 후후. 청춘이네요.”
지니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잠에서 깬 아더도 검은색 챙모자를 눌러쓴 여인을 바라보았다.
“…황자님?”
아더의 질문에 여자가 대답했다.
“지금은 예니카 헤이즐이라 불러주세요.”
“……?”
“아직 변신을 못 풀었거든요. 그러니깐 레온이 아니라 예니카 헤이즐이에요.”
레온의 대답에 아더가 몸을 일으켰다.
“또또 쓸데없는 짓 하시네요.”
“쓸데없는 짓이라니요. 이 변장 때문에 당신이 도르문트 군대를 습격 할 수 있었던 건데.”
“이제 끝났으니깐, 원래대로 돌아오세요.”
“못 돌아가요.”
“……?”
“변신 시간이 아직 남아서 말이에요. 아주 가벼운 제약인데, 그때까지는 이 모습으로 있어야 해요.”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벤치에 털썩 주저앉은 레온이 제 얼굴에 가려진 면사포를 들어올렸다.
예니카 헤이즐과 똑닮은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보였다.
“폴리모프라는 엄청난 마법을 쓴 대가죠. 그러니깐 불편하더라도 잠시 참아주세요.”
“…변신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말투도 꼭 그렇게 해야해요?”
“이것도 폴리모프의 부작용 중 하나에요.”
“……?”
“폴리모프는 용들의 변신 마법이죠. 단순히 외양만 바꿀 뿐만이 아니라 종, 성별, 성격까지. 모든 걸 뒤바꾸는 말그대로 완벽한 변신 마법이죠.”
“오…?”
“그래서 지금 이 말투 성격을 바꾸라 해도 바꿀 수가 없어요. 제가 지금 시전한 마법은 드래곤이 직접 쓴 폴리모프가 아니니깐.”
레온의 설명에 아더가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그런 마법을 대체 어디서 배운 거예요?”
“아티펙트에요.”
“아티펙트요? 오… 엄청 비싸겠네요? 용들의 변신 마법을 담은 거니깐.”
“무려 황궁의 보물이랍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기차 안에서 할까요?”
레온의 말에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치치치포폭-!
때마침 거대한 철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온과 지니가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기차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방으로 된 객석에 나란히 앉았다.
레온이 기다렸다는 듯,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어우… 더워라.”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손으로 부채질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지니가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은데, 좀 보기 역하네요. 황자님.”
이 말에 레온이 방긋 미소 지었다.
“어머.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지니?”
“…네?”
“제가 당신보다 예쁘다고 그런 추한 질투 하면 안 되죠.”
지니의 입이 벌어졌다.
경멸과 엄청난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레온이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자. 그것보다 결산을 좀 해 보죠. 성과를 좀 거뒀어요, 아더?”
이 말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별거 없었어요. 레온 당신이 주목을 끌어 준 덕분에….”
시작된 아더의 설명을 귀담아 듣던 레온이 몸을 흠칫 떨었다.
“잠깐, 누굴 죽였다고요?”
“하얼빈 레인이요.”
“하얼빈 레인…? 그 도르문트의 천재 기사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이 예니카의 얼굴로 탄식을 터트렸다.
“세상에… 그는 수도에서도 정평이 난 기사인데, 그를 쓰러트렸다니.”
지니가 눈치를 보다 질문했다.
“그 하얼빈이란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
레온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사람이죠. 검술만 놓고 보면 제국의 차세대 소드마스터라 불릴 만큼.”
레온의 설명에 지니의 눈이 커졌다.
‘소, 소드 마스터?’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던 아더가 손가락을 튕겼다.
“자자. 죽은 사람 이야기 그만하고, 죽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죠.”
“…….”
“이안 도르문트. 그 사람은 진영에 없더라고요. 아마 북쪽으로 향했겠죠 레온?”
이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레온이 대답했다.
“…그럴 거예요. 제 소식통에 따르면, 이안은 이미 북끝 마을에 도착해 전투를 펼쳤다고 하니깐.”
“전투요? 누구랑요?”
레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검은 십자가.”
“…오?”
“그들의 최정예 병력이라 붙었다고 해요.
레온의 설명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최정예 병력?’
검은 십자가의 최정예 병력이라면, 그 사람뿐이지 않나?
‘괴물의 후손 테이큰.’
과거로 돌아와 칼로써 처음 벽을 느꼈던 상대.
이 의문을 레온이 확인시켜주었다.
“맞아요. 그 트롤의 혈통을 이은 설원의 전사. 그가 이안과 맞붙었어요.”
아더가 눈빛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누가 이겼대요?”
레온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아쉽게도, 도르문트 쪽이 이겼다 하더군요. 물론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긴 했지만, 패퇴한 쪽은 검은 십자가에요.”
아더가 탄성을 흘렸다.
‘테이큰 씨가 졌다고?’
이안이 정령술사에 뛰어난 칼잡이긴 해도, 테이큰도 트롤이라는 괴물의 혈통을 이은 굉장한 전사였다.
그런 테이큰이 패퇴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네요…. 그 테이큰이 지다니.”
“저희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흠… 뭐, 그건 그렇긴 하네요.”
아더가 다시 질문했다.
“이안은 그럼 북끝 마을을 넘어서 북부 설원으로 간 거예요?”
“네. 이미 예니카 헤이즐의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세력은 거의 손을 떼고 물러나는 중이고.”
“손을 떼고 물러났다?”
레온이 차분히 설명했다.
“네. 예니카 헤이즐의 위치가 다시 드러났지만, 도르문트 군대의 힘을 본 칠황과 해적. 그 외 기타 세력들이 전부 포기를 했나봐요. 아마 이번 전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겠죠.”
“…….”
“그들이 아케인 뒷거리를 대표하는 세력이라 하지만, 상대는 무려 제국을 대표하는 군대. 그들을 상대로 감히 이 레이스에 뛰어들 배짱은 없었던 거죠.”
레온의 설명과 함께 아더가 볼을 긁적였다.
“흠… 아쉽네요. 뭔가 더 뒤죽박죽 뒤엉키길 바랐는데.”
“맞아요. 저도 조금 더 난장판이 되길 바랐는데, 어쩔 수 없죠. 그만큼 도르문트 전력이 세다는 거니.”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말인데 아더. 손을 잡는 게 어떨까요?”
“손이요?”
“네.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요?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 사이 레온이 손뼉을 쳤다.
“들어오세요. 마법사님.”
이 말에 객실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오?”
탄성을 흘린 아더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오랜만이네요 네크로맨서 씨?”
* * *
네크로맨서 카르페가 아더를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그 후 입꼬리를 씰룩이며 중얼거렸다.
“미친놈… 살아있었군.”
“어라? 왜 절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거예요?”
“네 놈 하는 꼬라지 보면 금방 죽어나갈 줄 알았지.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 살아있을 줄이야.”
카르페의 말에 아더가 총을 꺼내들어 그의 미간에 겨눴다.
그 돌발행동에 지니와 레온이 움찔 몸을 떨었다.
깜짝 놀란 카르페도 두 손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오, 왜 그러는 거야 또! 난 지금 손님으로 온 거라고!”
그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정신을 차린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흠… 적의 적은 친구. 그게 검은 십자가를 말하는 거였어요?”
레온이 황급히 설명했다.
“마, 맞아요! 좋은… 방법이지 않아요? 어차피 저희 목적은 검은 십자가가 아니잖아요?’
이 말에 턱을 쓰다듬던 아더가 카르페의 미간에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려놓았다.
“뭐 그렇긴 하죠. 저희 목적은 예니카가 아니니깐.”
그 사이 카르페가 간담을 쓸어넘기며 중얼거렸다.
‘시, 시발! 저, 저 미친놈! 하나도 안 변했군!”
너무 오랜만에 만나 잠시 잊고 있었다.
저 미친놈은 웃으면서 사람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넣는 놈이라는 걸.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본체가 아니라 인형을 보내는 거였는데 실수했어.’
카르페가 뒤늦은 후회를 하는 그 때 아더가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일단 앉으세요 네크로맨서 씨.”
카르페의 눈이 커졌다.
“…네 놈 옆에?”
“그럼 어디에 앉게요?”
“그 반대편에 앉으면 안 돼?”
“3명이면 비좁잖아요? 제 옆에서 앉으세요.”
카르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직 권총을 놓지 않은 아더의 모습에 차마 불평 하지 못하고 얌전히 그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불쑥 질문했다.
“그래서 저희랑 손잡고 싶다고요?”
이 말에 카르페가 옆에서 느껴지는 아더의 강렬한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의뢰지.”
“…의뢰요?”
“네 놈은 용병이잖아? 그러니깐 동맹,혈맹,아군. 이런 것보다는 의뢰라는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게 편하지.”
아더가 탄성을 흘렀다.
“오… 그건 저도 바라던 바이긴 한데, 보수를 뭘로 주실 건데요?”
“뭘 원하는데?”
“…흠 네크로맨서 씨 목?”
아더의 말에 카르페가 놀라 어깨를 떨었고, 지니와 레온도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가, 갑자기요 공자님?”
지니의 질문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농담이에요 농담. 다들 왜 그러세요?”
“…….”
“네크로맨서 씨가 너무 얼어붙어 있어서 농담 좀 해본 건데 다들 유머감각이 없으시네.”
아더의 말에 지니와 레온이 눈을 끔뻑였다.
카르페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소리쳤다.
“그, 그런 재미없는 농담! 어디 가서 절대 하지 마! 나니깐 참아주는 거야….”
“흠… 그래요? 난 좀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
“뭐 어쨌든, 보상을 말하라고 했죠?”
카르페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래… 뭘 원하는데?”
“일단 의뢰가 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더의 질문에 카르페가 잠시 고민했다.
“…….”
그 모습을 객실에 앉은 세 사람이 빤히 바라볼 때였다.
고민을 끝낸 카르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맡기고 싶은 의뢰는 두 개야. 하나는 이안 도르문트의 암살.”
아더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두 번째는요?”
“두 번째는….”
말을 흐린 카르페가 눈빛을 빛냈다.
“예니카 헤이즐. 아니, 공주님을 막아주게.”
아더의 눈이 커졌다.
“에니카 헤이즐을… 막아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