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10화 (110/265)

제110화

하얼빈과 아더의 검이 교차했다.

챙-!

타오르는 검기에서 떨어져나온 빛의 알갱이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하얼빈과 아더는 그 빛의 알갱이 속에서 계속해서 검을 나눴다.

상대방이 찌르면 방어하고, 방어하면 다시 찔러 들어갔다.

그 무수한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띠가 되어 규칙적인 박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화음은 얼마 가지 못하고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큭!”

하얼빈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새어나가는 신음은 숨길 수는 없었다.

그와 동시에 쇄도한 아더의 검에 주르륵 밀려난 하얼빈이 숨을 몰아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검을 휘리릭 고쳐잡았다.

탕-!

동시에 몰래 숨겨두고 있던 비스트가 불을 뿜었다.

하얼빈은 여섯 개의 고리로 강화한 반사신경으로 그 일격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쾅-!

반대편에 있던 막사가 사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얼빈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강하다… 그리고 까다롭다.’

검기를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눈앞의 괴인은 혈통과 총까지 다루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수준이 검기만큼이나 결코 낮지 않다는 거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검기를 뿜어낼 줄 아는 칼잡이가 총과 혈통 다룬다니?

이 정도 괴물이면 분명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의 괴한은 그 대륙의 어떤 칼잡이와도 달랐다.

‘이런 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도르문트 병영지를 습격한다고?’

잠시 고민하던 하얼빈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궁리해봐야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괴한의 정체를 따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상황도 따져봐야 했다.

그래서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눈앞의 상대는 잡념을 가진 채로 싸울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

그 순간 잡념과 떨림.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동시에 흔들리던 하얼빈의 눈동자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우… 까다로운 사람.”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다시 뛰어들었다.

하얼빈이 제 손에 들린 검으로 그런 아더의 돌격을 막아냈다.

쾅-!

검기와 검기끼리 부딪쳐 뿜어져 나오는 파장에 두 사람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그와 동시에 아더가 비스트의 총구를 하얼빈의 가슴팍에 겨눴다.

하지만 하얼빈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아더의 검을 쳐내고 검을 내려그었다.

그 일격에 아더의 눈이 커지고 하얼빈이 확신했다.

‘잡았다-!’

하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아더의 눈이 호선을 그린 순간, 하얼빈은 움찔 몸을 떨었다.

‘지금 상황에 웃어?’

생각과 함께 뒷목이 스산해졌다.

그 감각에 하얼빈이 몸을 비틀려던 때, 먹구름 사이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쾅-!

직통으로 벼락을 맞은 하얼빈이 비틀거렸다.

“크윽…!”

신음을 내뱉은 그의 중심이 무너졌다.

아더는 그 틈을 노리지 않고, 마검을 뻗었다.

“…!”

깜짝 놀란 하얼빈이 몸을 틀려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코앞까지 다가온 아더가 검기를 치켜들며 웃었다.

“끝났네요 하얼.….”

그 순간 아더의 신체도 거칠게 뒤흔들렸다.

“…?”

동시에 쏘아져나간 마검이 경로를 틀어 하늘로 솟구쳤다.

아더는 눈을 끔뻑이며, 제 신체를 뒤흔든 마법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쏴-! 지금 있는 것, 다 쏴버려!”

피를 흠뻑 묻힌 마법사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도르문트 병사들의 손에 쥔 수십 정의 총이 아더를 향해 겨누어졌다.

“오….”

탄식을 흘린 아더가 뒤늦게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총이 먼저였다.

콰콰콰쾅-!!

뿜어져 나오는 불길과 함께 수십 발의 탄알이 아더를 향해 날아갔다.

쾅-!

평범한 인간이라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죽었을 화력에 비바람이 한순간 멈추었다.

하지만 아더를 향한 폭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쿠으으으… .쾅-!

공성전 때나 쓸법한 대포가 불을 뿜었다.

그 순간 비바람이 날아가고 거대한 폭발이 도르문트 야영지를 휩쓸었다.

콰콰쾅-!

장대비마저 집어삼키는 타오르는 매캐한 매연.

그 광경에 병사들이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허….”

“대포를 인간을 향해 쏠 줄이야.”

이 말에 옆에 있던 마법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시발… 이 정도 했으면 안심돼야 하는 데 왜 이러지?’

아무리 검기를 뿜어낼 줄 아는 칼잡이라도 전면에서 수 백발의 탄환과 대포까지 얻어맞고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제 몸을 떨리게 만드는 불안감에 고개를 저었다.

‘부족해… 여기서 뭔가 더 큰 한방을 먹어야 해.’

생각과 함께 마법사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빛이 났다.

도르문트 가주에게서 하사받은 지팡이의 이름은 '붉은 도마뱀의 분노.’

상급의 불꽃 정령의 힘이 담긴 아티펙트였다.

그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화염이 쏟아지는 포탄 셰레와 더불어 아더를 덮쳤다.

쾅-!

천지가 뒤흔들리는 괴음과 함께 마법사가 탈진해 쓰러졌다.

철컥… 철컥-!

그건 도르문트 병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총알을 모두 소비한 탓에 총이 더 이상 격발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끝났나?”

이 말에 옆에 있던 병사가 그 병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야 이 미친놈아! 불길하게 왜 그딴 말을!”

“하, 하지만… 이정 도면 끝나야 정상 아닙니까!”

“끝나야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딴 말을 지껄이면 죽어야 할 놈도 살아난다고!”

머리를 얻어맞은 병사가 투덜거렸다.

도대체 그건 어디나라 미신인 거지?

그때 몰아치는 비바람에 드리워진 연기가 거둬졌다.

“…!”

현장에 있던 모두가, 조금 전 포격이 쏟아진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건 하얼빈도 다르지 않았다.

“…어?”

입을 벌련 놀란 하얼빈이 중얼거렸다.

“끝… 났어?”

수 백발의 총탄과, 마법사의 마법까지 포격 당한 현장에 남은 것은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과 파헤쳐진 지면.

그리고 그을린 인간의 팔 뿐이었다.

그 탓에 하얼빈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죽었나?’

믿기지 않았는데, 일단은 그래 보였다.

괴한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고, 그을린 팔만 보였다.

도르문트 병사 100명을 넘게 살해하고 오랜만에 자신에게 패배라는 걸 안겨준 그 괴한이

마침내 죽은 것이다.

그 순간, 쏟아지던 장대비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

고개를 드니 장대비를 쏟아내던 먹구름이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있었다.

그 너머로 옅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날이 갰어?”

이 말과 함께 병사들이 하나둘 자리에 쓰러졌다.

“허….”

“설마 꿈속은 아니지?”

“그 괴한이 죽자마자 햇살이 비친다고?”

그 수군거림 속에서 하얼빈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였다.

강렬한 햇살이 제 턱밑에서부터 비쳐 왔다.

“…?”

왜 햇살이 제 턱밑에서 비치는지 의아해진 하얼빈이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제 가슴팍을 꿰뚫고 나온 붉은 빛의 검이 보였다.

“…어?”

탄성을 내지른 하얼빈이 피를 왈칵 토해냈다.

동시에 하얼빈의 뒤편에 서 있던 아더가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어우… 위험했네요.”

“…….”

“역시 비장의 패는 항상 숨겨둬야 한다니깐요. 노움 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진짜 죽을 뻔했네.”

이 말에 하얼빈이 피를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먹구름이 개고, 쏟아지는 밝은 햇살을 받고있는 한 청년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얼빈이 피를 토하며 물었다.

“노… 움? 정령까지 다룬다고?”

그의 질문에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마검을 뽑아들었다.

촤악-!

흩뿌려지는 핏줄기와 함께 각자의 상념에 빠져있던 도르문트 병사들이 움찔 놀랬다.

그리고 뒤늦게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하얼빈을 바라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레, 레인 경-!”

그 외침에 아더가 걸음을 옮겨 도르문트 병사들을 향해 다가가려 할 때였다.

바닥에 쓰러진 하얼빈이 아더의 발목을 붙잡으며 외쳤다.

“이쯤 했으면 그만하게-!”

그 외침에 아더가 시선을 돌리고, 병사들이 깜짝 놀랐다.

“도르문트에 원한이 있으면 날 죽였으면 된 거 아닌가! 굳이 이 이상 피를 봐야겠는가!”

그의 말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그래. 그러니깐 제발 이쯤해서 그만….”

“하지만 하얼빈 씨. 과연 저 병사들이 당신이 죽어가는 데 자리를 이탈해 도망칠까요?”

이 말에 하얼빈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이를 악물고서 창과 칼을 집어드는 병사가 보였다.

그건 아더를 잠시나마 묶어두었던 마법사도 다르지 않았다.

“하… 시발.”

욕설을 내뱉은 그가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얼빈이 놀라 소리치려던 순간 아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미안한데 저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살려둘 생각이 없어요.”

“…….”

“똑같이 해줄 작정이거든요. 도르문트가 바이에른에 했던 일. 그들이 우리 가문의 사람들에게 했던 그 모든 일을 말이에요.”

하얼빈의 눈이 치켜 떠졌다.

“바이에른…? 설마 그 제국의 바이에른.”

아더가 대답하지 않고서 고개를 돌렸다.

그 후 자신을 노려보는 도르문트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준비는 되셨나요? 그럼 시작할까요?”

도르문트 마법사가 다 죽어가는 눈빛으로 아더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안 님과 가주님이 이 복수를 해주실 거다!”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기대할게요. 뭐, 그러기 전에 내가 그 두 사람을 죽일 테지만.”

* * *

하얼빈이 피를 토했다.

“…….”

죽어가던 그는 생각했다.

‘바이에른? 바이에른이라면… 내가 아는 그 바이에른인가?’

도르문트와 유일하게 비견되는 명문가.

제국의 건립과 함께 해 온 유서 깊은 가문.

그 정보를 떠올리던 하얼빈은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저 괴한은 바이에른의 칼잡이인가?’

생각과 함께 하얼빈이 다시 피를 토했다.

아더의 마검에 의해 구멍이 뚫린 가슴팍의 통증에 점차 의식이 흐려졌다.

칼을 잡은 이상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각오했기에, 미련은 없지만 치밀어오르는 궁금증은 어쩔 수 없었다.

저 사내는 정말로 바이에른 쪽 사람인가?

그런데 그 바이에른의 사람이 왜 도르문트를 습격하는 건가?

복잡해진 머릿속과 함께 그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질 때였다.

피가 잔뜩 묻은 청년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오… 아직 살아계시네요. 역시 6서클의 기사인가?”

그의 말에 하얼빈이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다 죽였나?”

“일단은요.”

“…죄책감은?”

“없어요. 애초에 죽이지 않았더라면 절 죽였을 사람들이니깐.”

하얼빈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많은 얼굴이네요 하얼빈.”

“…많지. 대답해줄 건가?”

“뭐, 마지막이시니깐 대답해드릴게요.”

하얼빈이 중얼거렸다.

“넌 바이에른 쪽 사람인가?”

“네.”

“바이에른 쪽 사람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바이에른 쪽 사람이니깐 이런 짓을 벌이지 않을까요?”

“…바이에른 쪽 사람이니깐 이런 짓을 벌인다?”

아더가 고개를 돌려 하얼빈을 바라봤다.

“도르문트가 바이에른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세요.”

“…….”

“멀쩡한 가문을 박살내기 위해 세작을 심고, 영지를 뺴앗았으며, 가주를 농락하기 위해 유치한 짓을 벌이고 후계자를 독살하려 했죠. 그뿐일까요?”

아더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바이에른 영지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었으며, 그 가주와 직계 혈족을 시궁창이 인생으로 만들었죠. 그런데도 제가 복수를 안 할 이유가 있을까요?’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에 하얼빈이 몸을 떨었다.

‘…도르문트가 그랬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도르문트는 제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그 누구보다 앞장서는 가문이다.

그런 삼류 양아치나 할 짓을 할 가문이 아니었다.

그 탓에 하얼빈은 단언했다.

“도르문트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흠… 그래요?”

“그래! 도르문트는… 도르문트는… 그 어떤 가문보다 정의롭고 빛이 나는….”

말을 흐린 하얼빈이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

“지금 내가 한 짓이, 도르문트가 다른 가문, 다른 세력, 다른 부족, 다른 나라에게 한 짓이라는 걸.”

“…….”

“그때 당신은 죄책감을 느꼈나요?”

하얼빈 도르문트의 동공이 흐려졌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죽었네.”

먼 미래, 도르문트 최고의 기사로 활약하며 그 누구보다 많은 바이에른 사람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

그런 그가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아더는 그런 하얼빈의 최후를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을 보니 딱 그 말이 생각나네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미처 감기지 못한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무지도 죄다. 지옥에 가서 반성 좀 하세요, 하얼빈 레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