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07화 (107/265)

제107화

도르문트의 기사.

하얼빈은 끌려 나가는 검은 십자가의 이교도들을 바라보았다.

“악마야 물러가라-!!”

“절대로 우리 공주님에게는 못 보낸다!”

“차라리 날 죽여라! 날 죽… 으아아악!”

매를 맞으면서도 앞길을 비키지 않으려는 그들을, 도르문트 병사들이 거칠게 잡아 이끌었다.

하얼빈은 광신도라 하지만, 타국의 시민들을 저렇게 대해도 되나 라고 깊게 고민할 때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기사 하얼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

깜짝 놀란 하얼빈이 허리를 숙였다.

“이, 이안 도르문트 경을 뵙습니다! 지금 기찻길을 막은 광신도들을 지켜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하얼빈의 모습에 이안이 턱짓했다.

“그런 것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데?”

“…….”

“자네가 감독관이라면, 차라리 검이라도 뽑아 들어 검기라도 보여주는 게 낫지 않나?”

그의 말에 하얼빈이 놀라 눈을 치켜떴다.

“어… 하지만 검기를 일반 시민들한테 내보일 수는….”

하얼빈의 대답에 이안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쯧… 검기까지 다룰 줄 아는 칼잡이가 이렇게 물렁하다니.’

기사 하얼빈.

이른 나이에 6서클을 달성한 천재 중에 천재.

그 재능은 도르문트의 기사중에서도 가히 최고라 불렸다.

하지만 재능은 하늘에 닿은 반면, 그 심성은 안타깝게도 재능을 따라가지 못했다.

허나 심성이 부족하다 하여, 30도 채 안 되는 나이에 검기를 다룰 줄 아는 인재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이안은 그의 어깨를 적당히 두들겨 주고, 다시 기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저 경?”

“말해라.”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28이란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젖살이 빠지지 않은 물렁한 청년이 보였다.

“…뭐가 궁금하지, 기사 하얼빈?”

이안의 질문에 하얼빈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사실 이번 임무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임무가 이해가 안 간다?”

“예. 지금 한창 정복 전쟁 중인데, 어째서 이안 경을 비롯한 도르문트 정예병들이 이곳으로 왔는지… 또 그 찾으려는 보물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안이 턱을 쓰다듬다 대답했다.

“그 보물이, 도르문트의 가보라는 것만으로 부족한가?”

“그, 그건 아닙니다만… 듣기로….”

“듣기로?”

하얼빈이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였다.

“그 보물이 원래는 이교도의 보물이라고….”

“…….”

“죄, 죄송합니다! 풍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번 의심이 드니 쉽사리 마음을 가다듬기가… 이, 이안 경?”

하얼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사이 이안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중얼거렸다.

“자네… 정말 재밌군?”

“…….”

“기사가 자신의 임무를 의심하는 것도 모자라, 상관에게 해명을 요구하다니….”

하얼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렀다.

“버, 벌을 내려 주십시오-!”

외침과 함께 하얼빈이 무릎을 꿇었다.

이안은 터트리던 웃음을 멈추고 칼을 뽑아 들었다.

쉭-!

내질러진 검이 하얼빈의 목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에 하얼빈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 사이 이안은 하얼빈의 피가 묻은 검날을 털며 말했다.

“자넨 기사에 어울리지 않아.”

“…….”

“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하군. 자네가 과연 기사의 정신까지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이 말과 함께 이안이 기차를 가리켰다.

“차라도 한잔하게.”

“…….”

“설마 여기서 도르문트의 비사를 떠들어달라는 건 아니겠지?”

하얼빈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먼저 기차 안으로 들어간 이안이 다가온 부관을 향해 명령했다.

“녹차로 두 잔 내오게.”

“예. 알겠습니다.”

부관이 물러나고, 하얼빈과 이안이 자리에 앉았다.

묘한 침묵이 내려앉으려 할 때쯤, 사라진 부관이 찻잔과 함께 나타났다.

먼저 차를 들이켠 이안이 중얼거렸다.

“…흠. 어디부터 설명해줘야 할까.”

“…….”

“그래. 일단 이것부터 확실히 하는 게 좋겠군. 일단, 우리가 쫓는 게 광신도들의 성물은 맞아.”

하얼빈의 눈이 커졌다.

반대로 이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걸… 광신도의 성물이라 해야 하나?”

“…예?”

“정확히는 뱀파이어들의 성물이거든. 아, 자네 뱀파이어는 알지?”

하얼빈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 동화 속에 나오는 전설의 뱀파이어 말씀입니까?”

“맞아. 동화 속과 다르게 낮에는 못 움직이고, 피만 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

“하여튼, 아케인 대학에 보관 중이던 도르문트의 비보는 그 뱀파이어들의 성물이지. 그래서 사실, 도르문트의 비보라 부르기에는 뭐해. 남의 성물을 가져다가 빼앗은 거니깐.”

하얼빈이 당황했다.

‘도, 도르문트의 치부 아닌가 그럼?’

허나 굳이 입을 열어 묻지는 않았다.

이 정도 눈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이안은 녹차를 들이켜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성물에는 여러 전설이 있지. 적합한 뱀파이어의 왕위 계승자가, 성배의 피를 마시면 검은 달이 떠오른다는 전설.”

“…검은 달? 그게 무엇입니까?”

“추상적인 의미긴 하지만, 새로운 왕이 탄생한다는 의미겠지.”

하얼빈의 눈이 치켜떠졌다.

“새로운… 왕?”

“불로장생에, 다루는 마법은 100년을 수련한 마법사와 비견되며, 그 어떤 빛에도 굴하지 않은 어둠의 왕.”

“…!”

“그게 뱀파이어들의 왕, 뱀파이어 로드라고는 하는데… 사실 정확한 건 없어. 그 누구도 그 실체를 본 적이 없으니깐.”

“…….”

“하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지. 전설이란 건, 때로는 실재하기도 하는 거니깐. 그 성배를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도르문트가 들고 있었다….”

이안이 녹차를 들이켰다.

“이 정도로 이번 임무를 이해하면 되네. 더 설명이 필요한가?”

하얼빈이 고민에 빠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후 이안의 눈치를 보며 질문했다.

“…외람되지만,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하게.”

하얼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르문트가 그러한 목적으로 성배를 들고 있는 거였다면… 그냥 없애버리는 게 낫지 않습니까?”

이안이 들이켜던 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얼빈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기사 하얼빈.”

“…예?”

“다시 임무로 돌아갈 시간이네.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나중에 해주지.”

“어, 어엇 넵-!”

기사 하얼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재밌는 친구군.”

그 후 천천히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고서,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릴 때였다.

방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부관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이안 경-!”

“말하게.”

“그, 그게 큰일 났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큰일? 무슨 일이지?”

부관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예니카 헤이즐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예니카 헤이즐을 쫓는….”

* * *

현상금 만이천 골드 짜리 범죄자는, 아케인의 뒷거리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시에서 이렇게 큰 현상금을 얼마만에 건 거지?”

“해적의 수장이 나타난 뒤로 10년만 아닌가?”

“도대체 검은 십자가 그놈들이 뭘 훔쳤길래 만이천 골드나 되는 현상금을 걸어?”

무려 10년 만에 나타난 현상금 만이천 골드 짜리 범죄자.

아케인의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해도, 만이천 골드면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었다.

단적인 예로 예니카 헤이즐의 목에 걸린 만이천 골드면 작은 영지 하나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 탓에 아케인의 뒷거리를 주름잡는 내로라하는 용병들이 모두 뛰어들었다.

“이런 건은 못 먹더라도 한 번 뛰어들어봐야지.”

“혹시 알아? 하늘이 도와 예니카 헤이즐을 내가 잡을 줄?”

“잡기만 한다면 인생 은퇴인데, 못 먹더라도 참여는 해야지!”

그뿐만이 아닌, 뒷거리를 양분하는 두 거대 세력인 해적과 칠황.

두 단체를 포함해 수많은 아케인의 팀들도 발을 걸쳤다.

그 혼란한 상황에서 소문 하나가 퍼졌다.

“들었어? 예니카 헤이즐이 북부 설원이 아니라, [테니아]마을 근처에 나타났다는데!?”

“테니아 마을…? 그곳이면 북부 설원에서 얼마 떨어진 곳이 아니지 않아?”

“나는 테니아 마을이 아니라, [하루인] 마을이라 들었는데?”

처음에는 신빙성이 없는 소문이었다.

현재까진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예니카 헤이즐은 이미 북부 설원에 도착한 상황이다.

북부 설원 근처 마을도 아니고, 그 초입에 해당하는 마을에 모습을 드러낼리가 없었다.

하지만 곧 여기저기서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테니아 마을이 맞다더군!”

“예니카 헤이즐이 몇몇 용병들과 격전을 벌이다 사라졌다고해!”

“이제보니깐 북부 설원에 도착했다는 건 거짓정보였어!”

그 증언과 함께 용병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브로커들조차 이 소문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 순간 북부설원으로 향하던 수많은 용병들이 방향을 돌려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테니아 마을을 벗어나, 이번에는 [하루인]마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더군!”

“거리상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이렇게 되면 먼저 발견한 놈이 만이천 골드 먹는 거야!”

그러한 상황에서,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예니카 헤이즐이 북부설원이 아니라, 이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이미 그가 가진 소식통에 의하면 검은 십자가와 예니카 헤이즐은 북부설원에 도착한 뒤라고 말했으니깐.

‘정보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저들의 계략인가?’

정보가 잘못된 것치고는 쏟아지는 증거가 너무 많았고, 계략이라 보기에는 허술한 점이 너무 많았다.

그 탓에 이안이 고민하던 그때, 하얼빈이 조심스레 조언했다.

“경. 다음 열차를 타지 못하면, 북부설원으로 향하는 [북끝]마을 행 기차는 다음 날 오후쯤에나 출발합니다.”

그의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이안이 책상을 두들겼다.

툭.툭.툭

일정간격으로 이어지는 그 두들김 속에서 마침내 고민을 끝낸 이안이 선언했다.

“방향을 돌린다.”

“…!”

이 말에 하얼빈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 사이 이안이 계획을 설명했다.

“지금부터 예니카 헤이즐이 나타났다는 그 마을을 수색한다. 단….”

* * *

지니가 고개를 들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로부터 비가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그녀는 레온의 말을 떠올렸다.

‘시선은 내가 끌겠네.’

‘도르문트도 소문이 퍼지면 움직일 수밖에 없겠지.’

‘병력이 움직이면 그때 아더, 자네와 지니가 움직이게나.’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아무리 예니카 헤이즐과 똑같이 변신을 했다 하더라도 고작 이런 거에 그 수많은 용병들과 세력들이 속아넘어간다 말인가?

‘더군다나 예니카 헤이즐은 이미 북부설원에 도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하지만 결과는 그녀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예니카 헤이즐로 변장한 레온은 놀랍게도 모두를 속였다.

그 덕에 북부설원으로 향하던 용병들과 뒷거리 세력들이 방향을 돌려, 남쪽으로 다시 내려온다는 이야기마저 있을 정도였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지니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현상금이 만이천 골드나 되니깐,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건가?’

그럴 만한 금액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비현실적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만큼 다들 광기에 차 있었다.

예니카 헤이즐이란 현상금 만이천 골드에 눈을 멀어 말이다.

그때 아더가 입을 열었다.

“지니.”

“…네?”

“지니는 여기서, 혹시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봐 주세요.”

아더의 말에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저… 공자님?”

“네?”

“혹시 지금 혼자 저곳으로 들어가려고요?”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네. 혹시 뭐, 문제 있나요?”

지니가 입을 다물었다.

지적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지적 할 곳이 너무 많아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헷갈린 것이었다.

‘지, 지금 혼자서 도르문트 병력들이 모인 야영지를 습격하겠다고?’

하지만 아더는 그녀의 그 고민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지니가 소리쳤다.

“저, 저!! 공자님! 그, 그렇게 대놓고 들어가시면 어떻…!”

하지만 때마침 쏟아진 폭우에 그녀의 목소리가 묻혀 버렸다.

그 사이 도르문트의 군대가 집결해 있는 야영지 걸어가던 아더는 웃었다.

“하하….”

그 웃음소리도 쏟아지는 폭우에 파묻혔다.

그러나 아더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흥분이,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넘쳤기 때문이었다.

그 중독될 것만 같은 짜릿한 감각 속에서 아더가 걸음을 멈췄다.

동시에 보초를 서고 있던 도르문트의 병사가 아더를 발견하고 흠칫 놀랬다.

“…뭐야 저놈?”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웬 남자가 폭소를 터트리고 있으니 놀라지 않은 게 만무했다.

그는 잠시 눈을 끔뻑이다, 들고 있던 창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이, 거기 미친놈. 여긴 도르문트 사유지니깐 목이 달아나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

그의 경고에 아더가 웃음을 멈췄다.

“…어?”

동시에 아더에게 경고 한 도르문트 병사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린 그를 지나치며 아더가 중얼거렸다.

“일단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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