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04화 (104/265)

제104화

아더가 기차에서 내렸다.

그 순간 철로를 막아선 일당의 무리가 소리쳤다.

“악마들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교주님의 고행을 방해하지 마라!”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검은 십자가… 예니카를 따르는 신도들인가?’

그 사이 옆으로 다가온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어라? 시위 아니에요, 저거?”

“그런 것 같은데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육체의 감각을 일깨웠다.

그 순간 철로 앞을 가로막은 시위대와 승무원들의 대화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니깐요!”

“이러다 나중에 전투경찰분들한테 다들 잡혀가십니다!”

“이거 엄연히 공무 방해에요!”

승무원들의 설명에 시위대가 대답했다.

“신이 말하기를, 여기에 우리 교주님을 해하려는 악마가 있다고 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악마여!”

“절대로 교주님에게는 못 간다!”

그 대화를 지켜보던 아더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잘 찾아온 것 같네요.”

“그러게요. 저런 마크를 단 이들이 검은 십자가 말고 없을 테니.”

그때 뒤늦게 기차에서 내린 레온이 소리쳤다.

“이봐들! 여기로 와보게.”

시위를 바라보던 지니와 아더가 몸을 돌려, 레온에게 다가갔다.

레온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 친구들이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여기뿐만이 아니라 전부 같은 상황인 것 같군.”

“오… 다른 쪽에도 시위를 벌이고 있대요?”

“그런 모양이야. 흠… 예니카 양 머리를 좀 썼는걸? 어차피 노출된 위치니깐, 시간이라도 끌어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아.”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일단 기다려 보지. 걸어서 갈 수는 없지 않나?”

그때 지니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사람 보니 금방 해결될 것 같은데요?"

이 말에 아더와 레온의 시선이 돌아갔다.

어느 사이엔가 시위대 앞에 선 쿤이 보였다.

보통 평균보다 큰 신장을 자랑하는 쿤의 덩치에 시위대가 움찔 놀라 뒷걸음쳤다.

“다, 당신 뭐요!?”

시위대의 외침에 쿤이 씩 웃어 보였다.

“뭐긴 뭐야. 네놈들 같은 광신도의 머리를 깨부숴줄 천사님이지.”

이 말과 함께 쿤의 손에 불꽃이 휘감겼다.

지켜보던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배틀 메이지(Battle Mage)?”

“배틀 메이지? 저 사람이 마법을 다루는 전사라고요?”

“그래 보이는데요? 배틀 메이지는 흔치 않은데, 신기하네요.”

그 사이 불꽃에 지레 겁을 먹은 광신도들이 놀라 소리쳤다.

“아이고!! 선량한 시민을 겁박하는 미친놈이 있는데 아케인의 승무원은 구경만 하네!”

“절대 안 잊고 민원을 넣어야겠어!”

“저 나쁜 놈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고! 네 놈들이 그러고도 공무원이냐!”

터져 나오는 외침들에 아케인의 역무원이 화들짝 놀라 쿤을 말렸다.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런 식의 폭력을 행사하면 안 돼요!”

허나 아케인 역무원의 만류에도 쿤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저리 안 비켜! 네놈들 대가리부터 부숴줄까!”

결국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레온.”

“왜 부르는가?”

“그냥 걸어서 움직이죠.”

레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상황 보니깐 저 쿤이란 사람이 알아서 치워줄 것 같은데?”

“제 생각도 그런데, 느낌이 안 좋네요.”

“뭐가?”

“지금 철로를 막고 선 사람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요.”

아더의 말에 레온이 눈을 치켜떴다.

“믿는 구석이 있다고?”

“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불꽃을 둘렀는데도 다 같이 용감하게 철로를 막아설 리가 없잖아요?”

레온이 탄성을 터트렸다.

“설마 검은 십자가 인원이 이쪽으로 온다는 말인가?”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글쎄요…. 하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애초에 저희 목적은 검은 십자가가 아닌데?”

레온이 잠시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지. 다행히 근처에 마을 하나가 있어. 거기에 들렸다가, 내일 아침 다음 기차를 타고 가지.”

이 말과 함께 각자의 짐을 챙긴 레온과 아더가 철로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삐딱하게 서서 지켜보던 B등급 용병, 체니서가 중얼거렸다.

“정말 아까 전 그 사람이… 그 사신 던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한동안 뒷세계를 뒤집어 놨다 해도 과언이 아닌 괴인.

동시에 해적과 칠황에게 시비를 건 미친놈.

현재 가장 유명한 용병인 그 사신 던이 조금 전 얼빵한 그 청년이었다는 사실을 체니서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확인해봤어야 했나 이거?’

생각과 함께 체니서가 턱을 쓰다듬을 때였다.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나이블이 중얼거렸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있는 모양이군.”

“…당신도 꽤 신기한 모양이지?”

“신기하고말고. 그 사신 던을 이렇게 마주치다니….”

말을 흐린 나이블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된 거 목표물을 바꾸는 게 어떻나?”

“목표물을 바꿔?”

“그래. 어차피 이대로 검은 십자가를 쫓는다고 해서, 에니카 헤이즐을 우리 손으로 잡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체니서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러니깐 대신 사신 던을 잡자?”

“나쁘지 않지 않나? 둘 다 거물이라면, 확인된 쪽을 잡는 게 훨씬 낫지.”

체니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수익은 5대5인가?”

“그렇지.”

“흐음… 끌리는걸. 하지만 우리만으로 될까?”

“뭐하면 저기 배틀메이지도 끌어들이자고.”

체니서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 달라진 표정변화에 나이블이 중얼거렸다.

“…왜 그래?”

“…….”

“이봐? 갑자기 왜 넋을 놔?”

손을 휘저었지만, 체니서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탓에 의아해진 나이블이 뒤로 돌아본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뻗어나온 무언가가 시야를 덮었다.

콰직-!

그것은 나이블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 * *

레온의 말은 사실이었다.

근처에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아더와 레온 지니는 그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외지인이군.”

여관 주인의 말에 아더가 금화 하나를 튕겼다.

금화를 받아든 여관 주인이 놀라 중얼거렸다.

“이 정도의 돈을 거슬러 줄 돈은 없는데?”

“괜찮아요. 대신 제일 큰방에 여기서 제일 맛있는 메뉴로 3개 주문할게요.”

“…화끈한 손님이군. 잠시 기다리게.”

고개를 끄덕인 아더와 지니 레온이 테이블에 앉았다.

지니가 허벅지를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어우… 오랜만에 걸으려니 죽겠네요.”

“마사지라도 해줄까요 지니 양?”

“…이제 보니 레온 씨도 상당히 미친 분이셨네요.”

“제가요? 어허… 진짜 미친놈을 두고 그런 소리를!”

둘의 만담을 들으며, 아더가 의자에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

낡았지만 제법 넓은 여관의 주점 안에는 제 일행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장사가 안 되는 곳이네.’

하긴 이런 외지의 마을에 누가 들른다고 여관 장사를 할까.

어깨를 으쓱인 아더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여관 주인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스테이크와 수프.

그리고 빵을 내밀었다.

지니가 탄성을 터트렸다.

“세상에… 너무 맛있어 보이네요.”

“평범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것들이지. 잘들 먹게나.”

지니와 레온의 눈이 빛났다.

새벽 내내 걸은 탓에 배가 등에 붙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음식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아더가 물었다.

“그런데 마을이 왜 이렇게 조용해요, 주인장?”

“…마을이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네. 아무리 밤이라지만, 너무 아무도 없는 거 아니에요?”

주인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외지의 마을이 떠들썩한 것도 이상하지 않나?”

“흐음… 그래요? 그런데 그런 것치고도 너무 조용한걸요?”

옆에 있던 레온이 아더의 어깨를 툭쳤다.

“…아더. 실례되게 너무 집요하게 물어보는군.”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하. 실례되는 질문이었네요. 그럼 다른 걸 물어볼게요.”

아더가 방긋 웃었다.

“아주 독한 독을 음식에 타 넣으신 것 같은데, 이유가 뭐예요?”

빵을 집어 먹으려던 지니가 흠칫 놀랐다.

그건 레온과 여관 주인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덥수룩한 수염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독? 내가 이 음식에 독을 넣었다고?”

“어라? 아닌가요?”

“…내가 요리사는 아니지만, 선을 넘는군.”

“흠. 그럼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

“당신이 음식에 독을 탄 게 아니라면, 당당히 먹을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여관 주인장의 눈길이 가늘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니와 레온이 슬며시 제 무기를 붙잡을 때였다.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이번 손님들은 제법 눈치가 빠르군.”

“낄낄… 그래서 난 좋은데? 약 먹고 시체처럼 되어 있는 놈은 써는 맛이 없단 말이야.”

“닥쳐 이놈아. 어딜 신을 따르는 자가 그런 상스러운 말을….”

3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무리가 창과 칼.

그 밖의 여러 도검류를 든 채 여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온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평범한 마을이 아니었다고? 설마 산적인가?”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니가 눈치를 보며 같이 일어서려던 때, 레온이 만류했다.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좁은 공간에서 지니 씨 같은 저격수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겁니다.”

레온의 말에 지니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주인장과 제 앞을 가로막은 무리를 바라보던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평범한 산적 같지는 않은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다들 생김새가 지나치게 멀끔했다.

‘세상에 수많은 산적들이 있고, 그중에 멀끔한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다 치더라도 이상하단 말이지….’

그 탓에 아더는 이들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위대에 멈춘 기차.

때마침 보이는 마을.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질문했다.

“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살고 싶은 분 있나요?”

“…?”

“그런 분이 있으면 미리 손들어주세요. 어차피 한 분은 살려드릴 생각이거든요.”

아더를 노려보던 무리들이 눈을 끔뻑였다.

“…그게 뭔 헛소리지?”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나?”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제 마음대로 정할게요. 나중에 불평하기 없기에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칼집에 꽂아둔 마검을 휘둘렀다.

채액-!

휘둘렀다기보다는 쏘아져 나갔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은 일격에 순식간에 다섯 명의 목이 나가떨어졌다.

“…뭐?”

“이게 뭐야!”

“시, 시발?”

아직 살아남은 무리가 뒤늦게 깜짝 놀라며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허나 이미 늦은 뒤였다.

촤악-!

다시 한번 휘둘러진 아더의 검이 그들 사이를 날카롭게 헤집었다.

“끄아아악-!”

비명과 함께 30명에 달하는 무리 중 거의 대부분이 바닥에 쓰러지거나 죽음에 이르렀다.

그 광경에 지니와 레온이 놀라 입을 벌렸다.

“무, 뭐야…?”

“저거 검… 맞나?”

그 사이 아더가 시선을 돌려, 당황한 기색을 염려한 여관의 주인장을 향해 말했다.

“살아남으셨네요?”

“너, 너.….”

“의도한 건 아닌데, 음… 좋네요. 뭐. 저도 이미 한번 말을 터본 사람이랑 이야기 하는 게 편하니.”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방긋 웃었다.

“말씀을 안 하시면 고문을 해야 하는데, 제가 좀 서툴러서 그다지 추천은 안 드려요. 순순히 말씀해주실 거죠, 주인장?”

주인장이 턱을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었을 때였다.

여관 주인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뒤나 돌아봐라 이놈아.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깐.”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뒤편으로부터 검이 쇄도했다.

“호오?”

가볍게 그 일격을 피한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마검에 의해 사지가 잘렸던 괴한들이 어느 사이엔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사신? 음… 좀비? 이걸 뭐라 불러야 하나요?”

그 질문에 조금 전 아더에게 잘린 머리를 이어붙인 사내가 대답했다.

“뱀파이어다(vampire)!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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