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아케인 기차역으로 가니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 지니와 레온이 보였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더의 질문에 지니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방금 막 도착했어요.”
“잘됐네요.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평소에 입던 화려한 옷이 아닌 검은색이 바탕이 된 무채색 계열의 옷과 망토를 두른 레온이 물었다.
“그런데 목적지가 어딘가? 기차로 간다는 걸 보니, 꽤 거리가 먼 모양이로군.”
“북쪽, 북부 설원이라는데요?”
레온이 놀라 눈을 치켜떴다.
“북부 설원? 그 북부 지대로 예니카 헤이즐이 도망쳤다고?”
“일단 윌렛 어르신이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그런 것 같아요.”
“흐음… 내가 알고 있기론 그곳엔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곳으로 간 거지?”
지니가 잠시 눈치를 보다 물었다.
“저기 혹시… 제가 아는 예니카 헤이즐이 그 검은 십자가의 예니카 헤이즐 맞나요?”
“음? 지니 양은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설명을 좀 해줘야 알죠. 누가 대뜸 도와달라고만 해서….”
레온이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내가 상황을 좀 설명해주지. 앞으로 같은 팀이니깐 돌아가는 상황 정도는 아는 게 좋으니깐. 아더 자네는 표 좀 끊고 오게. 아마 [북끝 마을]로 달라하면 알아서 예매해 줄 거야.”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기다리고 있으세요. 표만 예매하고 금방 돌아올 테니깐.”
이 말과 함께 아더가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레온이 아차 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절대 사고 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사고요? 에이 안 치죠.”
“…그런 말을 해놓고, 사고를 안 친 적이 없으니 더 불안하군.”
어깨를 으쓱인 아더가 성큼성큼 걸어가 표를 예매했다.
“앞으로 30분 뒤 출발입니다.”
역무원의 설명을 들은 아더가 뒤를 돌아보았다.
밤이 내려앉은 기차역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칼 든 자들이 다섯. 총을 든 이들이 넷.’
이쪽을 향해 딱히 살기를 보내는 건 아니지만, 경계 하고 있었다.
‘동료는 아닌가 보네. 서로 경계 하는 걸보면.’
아무래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예니카 헤이즐에게 볼일이 있는 자들인 것 같았다.
‘윌렛 어르신이 주신 정보에 따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에 뛰어든 것 같은데.’
무려 현상금 만이천 골드짜리 현상수배범이다.
그 상대가 뒷거리의 세력 중 하나인 [검은 십자가]라 하지만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액수였다.
‘만이천 골드면 작은 영지 하나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니깐.’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흰수염의 아티펙트를 일으켜 기척을 지웠다.
파앗-!
그럼에도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니와 레온을 향해 다시 돌아온 아더가 손을 흔들었다.
“표 예매했어요. 레온.”
“오. 아무 일도 없었군!”
“꼭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럴 리가. 난 의외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구.”
너스레를 떤 레온이 눈빛을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함께 쳐진 얇은 결계에 지니가 눈을 치켜떴다.
“…마법사였어요?”
“마법 비슷한 능력이죠.”
짧게 설명한 레온이 잠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아.”
목소리가 바깥으로 새지 않고 동굴 매아리 마냥 맴돌았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레온이 서류를 건네주었다.
“일단 이것들부터 보게.”
아더와 지니가 서류를 받아들였다.
-검은 십자가의 현재 숫자는 대략 2천명으로 확인…
-그중 신도가 일반 신도가 천명, 전투가 가능한 신도는 천명…
-주의해야 할 인물 도살자 테이큰을 비롯한 60명…
-예니카 헤이즐의 현재 위치는 특정되지 않아…
끝맺음이 맺지 않은 문장 단위로 여러 정보가 서류에 적혀 있었다.
아더는 그 정보들을 단어 하나 빠트리지 않고 모조리 외워나갔다.
-현재 예니카 헤이즐을 노리는 큰 세력은 4곳.
-해적, 칠황, 도르문트, 아케인 시병력
-그중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도르문트.
그렇게 몇 안 되는 도르문트의 정보까지 모조리 외운 아더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윌렛 어르신의 정보보다 훨씬 좋은데요?”
“아무래도 이쪽이 조금 더 최신이긴 할 거야. 마시알을 비롯한 날 도와주는 친구들이 모아준 정보거든.”
“그 도와주는 친구들이, 이안 도르문트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대요?”
“아케인 위성 도시 중 하나인, [브리렌]에 들려 대량의 기차표를 매수했다더군.”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케인으로 들어오지 못하니깐, 외각에서 기차를 탈 모양이네요?”
“그런 듯해. 그래서 우리가 현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네.”
레온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대로 이안 도르문트가 올 곳을 미리 점검해 습격하는 별로 좋지도 않고, 단순한 방법이지.”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좋지도 않고 단순한 방법이면, 두 번째로 가야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자네 스타일이 아니라서 대안을 두 개 제시한 거네.”
“어떤 건데요?”
레온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기억나나, 아더? 자네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아하. 그때 D구역 쓰레기 매립촌 때요?”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용병들이 날 찾아왔지만, 결국 나와 대면한 건 자네뿐이었지. 나는 이번에도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볼 생각이야.”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예니카 헤이즐을 뒤쫓는 수많은 용병과 세력. 그들을 적당히 엉켜볼 생각이네.”
* * *
레온의 설명에 아더가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데?”
만약 레온과 처음 만났을 때 상황이 연출 된다면, 예니카 헤이즐을 노리는 수많은 세력들이 중간에 부딪힐 것이다.
‘그 틈을 노려 우리는 이안 도르문트를 치자?’
그림만 제대로 그려진다면, 이보다 나은 수는 없어 보였다.
이안을 따르는 그 군대만 발목을 묶어준다면, 훨씬 수월하게 그를 죽일 수 있을 테니.
“좋은데요? 그렇게 가시죠.”
아더의 허락에 레온이 흡족한 표정을 띠어 보였다.
동시에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 계획에 한 가지 맹점이 있어.”
“뭐죠?”
“우리의 존재가 눈에 띄어서는 안 돼. 그래야, 이 계획 자체가 성립되거든.”
레온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효과적으로 기습을 할 수 있으니깐?”
“그렇지. 그러니 되도록이면, 난장판은 만들 대 우리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 돼.”
설명을 끝마친 레온이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는 기차 안에서 설명하지. 곧 있으면 출발할 것 같으니깐."
이 말에 아더가 걸음을 옮겼고, 레온이 그 뒤를 따랐다.
지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 둘을 따랐다.
탁-!
역무원에게 표를 제시하고, 기차에 탑승한 셋은 적당한 곳에 자리에 앉았다.
“…….”
이미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런 셋을 올려다 바라보았다.
그중 한 사내는 지니를 향해 노골적으로 소리쳤다.
“휘유~! 예쁘게 생겼는데!? 그렇게 예쁜 얼굴로 밤 기차에 올라타도 되는 건가!?”
지니가 입술을 삐죽였다.
“저놈 죽여도 돼요? 공자님?”
“참아요, 지니. 벌써부터 사고를 치면 안 되죠.”
“저도 웬만해서는 넘어가는데, 공자님이랑 있다 보니깐 굳이 참아야 되냐, 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참으면 좋긴 해요. 단지 참다 화병이 생기면 문제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지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 대화를 끝으로 기차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덜컹 덜컹-!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소음과 함께 같은 객실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를 은연중에 견제했다.
‘전부 다 용병이네.’
문득문득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상당히 날카로웠다.
저런 기세를 가진 자들이 일반인일 리는 없고, 예니카 헤이즐을 쫓는 용병인 듯했다.
그때 이쪽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소리쳤다.
“분위기가 너무 숨 막히지 않나 다들!?”
그 난데없는 외침에 아더 일행을 포함한 객실에 있던 8명의 시선이 그 남자에게로 돌아갔다.
“어차피 목적지는 다 같아 보이는데, 대화라도 하는 게 어때?”
그 제안에 레온이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저놈이 제일 수상한 놈이군.”
“저도 동감이에요.”
“그래도 일단 지켜보자고.”
그때 지니를 흘겨보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목적지가 같아? 내가 어디 가는 줄 알고?”
“예니카 헤이즐, 그 현상금 만이천 골드짜리 광신도 수장을 쫓으러 가는 거 아닌가?”
“그으래~? 난 전혀 모르는 사실인걸?”
뭐가 웃긴지 사내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 미소에 지니가 코웃음을 쳤다.
“분위기도 읽을 줄 모르는 바보가 한 명 있었네.”
“…나보고 한 말인가?”
“그럼 너보고 한 말이죠?”
사내와 지니가 서로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더가 가만히 있으니, 지니 씨가 난리군.’
괜히 둘이 친구가 아닌 듯싶었다.
생각과 함께 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그만들 싸우고, 저분 말씀처럼 조금 솔직해지죠. 어차피 같은 곳을 목적으로 가는데 굳이 기 싸움 할 필요가 있습니까?”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기 싸움 까지는 할 필요 없는데, 친해질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죠. 그러니 정보를 교류할 사람은 교류하고, 아닌 사람은 분위기 정도만 흐리지 말죠. 어떻습니까?”
레온의 정리에 다섯 명의 용병들이 눈치를 보다 대답했다.
“…나쁘지 않군.”
“어차피 갈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그렇게 하지.”
제일 먼저 제안을 건넨 사내가 몸을 일으켜 입을 열어 말했다.
“내 이름은 나이블. B등급 용병.”
그의 이름이 밝혀지자, 4명의 용병이 눈을 치켜떴다.
“나이블이면 붉은빛의 대도 나이블?”
“허어… 저런 거물이 여기 있을 줄이야.”
그때 여자가 손을 들었다.
“내 이름은 체니셔 마찬가지로 B등급 용병.”
이 말에 남은 3명의 용병들이 경악했다.
“그, 그 푸른 채찍의 체니셔였다고!?”
“마주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그 푸른 채찍의!?”
그 사이 지니를 노려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쿤. B등급 용병.”
스스로를 쿤이라 밝힌 사내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 순간 대머리에 새겨진 기괴한 문신이 불을 뿜어냈다.
그 광경에 남은 두 명의 용병이 손을 벌벌 떨었다.
“지옥의 문!! 쿤 에드릭-!!”
“혼자서 천 명의 사병들을 죽이고 탈출했다는 그 쿤 에드릭이었다고!?”
그 호들갑을 침묵한 채 지켜보던 레온이 속삭였다
“저 3명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
“글쎄요? 전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때 스스로를 체니서라 밝힌 여자가 레온을 가리켰다.
“그쪽도 통성명하는 게 어때? 제일 먼저 제안했잖아?”
체니서의 말에 레온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싱긋 지어 보였다.
“제 이름은 하반입니다.”
“등급은?”
“등급은 C등급이죠.”
레온이 스스럼없이 가명과 거짓된 정보를 말했다.
허나 굳이 의심하지 않고서 넘어간 체니서가 눈짓으로 지니를 가리켰다.
지니가 쿤이란 자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지니 레이븐. 등급은 C.”
체니서가 마지막으로 아더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더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던이고요. C등급 용병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체니서가 남은 두 명의 용병에게로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멈칫했다.
“잠깐… 던이라고?”
“네.”
“거기다 C등급 용병?”
“네.”
체니서의 눈꼬리가 파르르르 떨렸다.
그사이 남은 두 명의 용병이 눈을 끔뻑이다, 소리쳤다.
“서, 설마--!!!!”
“그, 그… 사신(邪神) 던… 이라고?”
그 외침과 함께 맨 처음 대화를 시도했던 나이블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어… 저 사신 던이 여기 있었다고?”
이 말과 함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체니서와 나이블은 아더를 노려보았고, 그건 쿤도 다르지 않았다.
“크큭… 그 던이 저런 얼빵한 놈이었다고?”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는 자들은 없었다.
아더를 노려볼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이름을 밝힐 기회를 잃어버린 두 명의 용병이 중얼거렸다.
‘칠황과 해적을 적으로 돌리는 희대의 미친놈!”
‘천명에 달하는 해적을 잔인하게 죽인 사신, 던!’
그뿐만이 아닌 칠황의 삼목인 바란스를 갈기갈기 찢어 죽였으며 해적의 부선장의 머리까지 잘라낸 엄청난 실력자.
‘하, 하지만… 그 실력에 비해 자비가 없다고….’
‘완전 미치광이 싸이코패스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 탓에 두 명의 용병이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아더를 바라볼 때였다.
아더의 옆에 있던 레온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흠… 깜빡했군. 자네가 워낙 유명인사라는 걸.”
“그러게요. 저도 깜빡했어요.”
“이제 어쩔 건가?”
“뭐 어쩌겠어요. 그냥 가야지.”
레온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런 분위기에서 6시간은 더 달려야 하다니. 잠이라도 자야겠군.”
그때, 갑자기 달리던 기차가 멈추었다.
끼이이익-!
그 이변에 깜짝 놀란 객실의 인원들이 시선을 돌렸다.
그건 아더도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왜 멈춘 거지?’
설마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을 리가 없는데?
이 생각과 함께 아더가 창밖으로 목을 내밀었을 때였다.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저게 뭐야? 예니카 씨가 들고 다니던 십자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