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지니는 자신을 찾아온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갑자기 왜 찾아왔대…?’
한쪽은 미친 공자님.
한쪽은 정신 나간 황자님.
제 입장에서는 그다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 두 명이나 들이닥치니 절로 한기가 들 정도였다.
그리고 불행히도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니. 저희랑 일 하나 같이 하죠?”
“…일이요?”
“네. 사람 하나 죽이는 건데, 지니 씨 도움이 필요해요.”
지니가 입을 벌린 채 경악했다.
“사람 한 명을… 갑자기 죽인다고요?”
“네. 도르문트라고 알아요?”
“도르… 문트요?”
중얼거림과 함께 지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도르문트가 이름이었던가?
아니면 가문?
곰곰이 고민하던 지니는 탄성을 터트렸다.
“혹시 제국의 최고 가문인 도르문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아하. 그런데 그 도르문트는 갑자기 왜?”
“저희가 지금부터 죽일 사람이 그 도르문트의 장남이거든요.”
“…….”
지니가 눈을 끔뻑이며 질문했다.
“진심이세요? 공자님?”
“그럼 진심이죠.”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지니 씨 도움이 필요해요. 당연히 도와주실 거죠?”
* * *
아케인에서 일어난 소란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군수군.
아케인 바깥에서 시위를 벌이는 중인 500명의 도르문트 군대.
사상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중단한 아케인 대학.
그리고 오랜만에 등장한 현상금 만 이천 골드짜리 현상수배까지.
뒷거리와 양지 가릴 거 없이 사상 초유의 사태에 떠들썩했다.
그 분위기를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양복점에서 지켜보던 윌렛은 중얼거렸다.
‘기묘하군. 이런 적이 몇 년 만이지?’
곰곰이 고민하던 그는 곧 어깨를 움찔 떨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사태가 일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던… 아니, 아더 바이에른. 그자가 바란스를 죽인 게 며칠 되지도 않았군.’
원래라면 이 이야기가 이렇게 쉬이 잠들어서는 안 되는데, 이번에 일어난 사건이 워낙 크다보니 쉽게 묻힌 감이 있었다.
그 속에서 곰곰이 고민하던 윌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지 않군.’
이 분위기에 잘 묻어간다면, 아더 바이에른의 이번 사태를 의외로 쉽게 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윌렛이 느긋이 아침 커피를 들이켠 순간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고개를 돌린 윌렛은 눈을 치켜떴다.
“아더 바이에른?”
“안녕하세요 윌렛 어르신?”
윌렛이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이 자가 왜?
그때 열린 문틈 사이로, 누군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지니?”
“안녕하세요, 윌렛 어르신….”
윌렛이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사이 한 사람이 더 안으로 들어왔다.
“오오!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인 모양이군!”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한 번 보면 쉽사리 잊기 힘든 얼굴이었다.
그 기묘한 조합을 잠시 바라보던 윌렛이 고개를 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윌렛 어르신에게 부탁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부탁?”
“네.”
윌렛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자네 설마….”
“네?”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어르신이 뭘 생각하건, 그건 아닐 것 같은데요?”
“확실한 겐가?”
“네.”
윌렛이 미간을 문지르다, 변장을 한 레온을 가리켰다.
“그런데 저자는 누구지?”
“아. 아는 분인데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 일단 따라오게. 밑에서 이야기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윌렛이 지하에 위치한 주점으로 향했다.
아더와 지니 그리고 레온도 그 뒤를 따라 밑으로 향했다.
“…….”
주점은 저번에 왔을 때와 달리 몇몇 용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테이블에 놓인 술을 들이켜다, 뒤늦게 아더를 발견하고서 눈을 치켜떴다.
“던?”
“그 소문의 던이라고?”
“뭐? 그 바란스를 잡았다는 던?”
수군거림과 함께 주점 아래에 있던 모든 용병들의 시선이 아더에게 모였다.
그중 몇몇은 몸을 들썩였는데, 윌렛이 먼저 입을 열어 경고했다.
“시비 털 거면, 나중에 털어. 괜히 주점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말고.”
윌렛의 말에 몸을 들썩이던 용병들이 일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아더를 노려보는 시선만큼은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레온이 너스레를 떨었다.
“워우. 살벌한걸? 이게 용병들의 세계인가?”
이 말과 함께 윌렛이 사무실로 들어갔고, 지니와 아더도 그 뒤를 따랐다.
철컥-!
문을 걸어 잠근 윌렛이 자리에 주저앉아 미간을 문질렀다.
그리고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을 향해 질문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아더가 손을 들며 대답했다.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왔어요, 어르신.”
“정보? 무슨 정보?”
“예니카 헤이즐. 그녀에 관한 정보.”
윌렛의 눈이 커다래졌다.
“예니카 헤이즐?”
“네.”
“아까는 내가 예상하는 그게 아니라며?”
“어라? 그럼 다른 생각 하신 거 아니에요?”
윌렛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잔소리 하는 걸 그리 즐겨하지 않는데, 숨죽여 있으라고 말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이러는 건가?”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너무 좋은 기회가 와버려서요.”
“너무 좋은 기회? 자네가 돈이 궁한 건 아닐 테고, 그쪽과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나?”
“음… 있긴 해요. 정확히는 예니카 헤이즐이 아니라 그녀를 뒤쫓는 사람하고.”
아더의 대답에 윌렛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원한이 있는 관계가 있다고? 설마 저번에 말한 그 복수를 말하는 건가?’
윌렛이 손가락을 툭툭 두들기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복수건 뭐건, 지금의 아더 바이에른은 숨죽여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저 눈빛을 보니,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내가 말리건 안 말리건, 이 일에 뛰어든다는 거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어 쉰 윌렛이 서류 몇 장을 꺼내 들어 아더에게 건네주었다.
아더가 서류를 받아들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호… 검은 십자가의 위치, 경로가 다 나와 있네.’
그뿐만이 아닌 아케인 시의 정규군의 참여 현황과 이번 사태에 관한 정보들이 모두 서류에 담겨 있었다.
‘역시 윌렛 어르신이야. 제일 먼저 찾아오길 잘했어.’
아더가 만족스레 웃는 사이 윌렛이 경고했다.
“안 들을 것 같긴 한데 경고 하나만 하지.”
“뭐죠?”
“자네는 자네 원한 때문에 움직인다 했는데, 반대로 자네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뒤쫓는 자들도 있어.”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어라? 그게 누구죠?”
“해적과 칠황.”
“오호….”
“그 두 단체가 자네의 뒤를 쫓고 있어.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냥 아케인 대학에 처박혀 있으라 말하고 싶군.”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충고 고마워요. 어르신.”
그 미소에 윌렛이 혀를 찼다.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군.’
하긴, 그럴 사람이었으면 이런 조합까지 만들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윌렛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다른 자들이었다면, 말렸겠지만… 자네는 모르겠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하죠.
“이번에도 언제나 그렇듯, 살아 돌아오게.”
“그럼요. 쥴리랑도 만나야 하고.”
“많이 기다리고 있어. 이만 나가보게.”
윌렛의 손짓에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니도 눈치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윌렛이 시가를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얼굴색이 많이 좋아졌군. 지니.”
“…네?”
“얼굴색이 많이 좋아졌어. 많이 행복한가? 지금은?”
윌렛의 질문에 지니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예전보다는요.”
윌렛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부럽군.”
“윌렛 어르신도 얼른 은퇴하세요.”
“생각 좀 해보지. 최근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지니가 살며시 웃으며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윌렛은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젊음… 새로운 세대인가.”
그런 것치고, 조금 급격한 물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젊었을 적에도 저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었는데.’
윌렛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동시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이 새로운 물결이 이번에는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
* * *
윌렛의 사무실을 빠져나온 아더가 서류를 펄럭이며 말했다.
“각자 준비하고, 오늘 저녁에 보죠.”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개인적으로 준비를 좀 해둬야지.”
드물게 진지한 표정인 레온이 자리를 떴고, 지니도 생머리를 질끈 묶으며 말했다.
“후우… 내가 이 짓거리 다시는 안 하려 했는데.”
지니가 투덜거린 뒤, 레온을 따라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더는 몸을 돌려 저택으로 돌아갔다.
“어라? 공자님?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응. 혹시 수정구 연결되어 있어? 어머니랑 통화를 좀 할까 하는데?”
“그럼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죠.”
안나의 안내에 따라 저택으로 들어선 아더가 수정구를 가동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더?]
아더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어머니. 아더에요.”
[… 우리 아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연락하기가 힘들어?]
“최근 바빴거든요. 여러 일이 있었어요.”
[시험 준비 때문에?]
“음… 솔직히 말하면 시험 준비 때문은 아니에요.”
[어허! 아무리 내가 아들을 좋아해도, 학교에 갔는데 배움을 게을리하면 안 되지!]
어머니, 요넬의 말에 아더가 웃었다.
“저 모범생이에요 어머니.”
[믿어도 되지?]
“그럼요. 교수님들이 얼마나 절 좋아한다고요.”
요넬이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아들. 무슨 일 있어?]
“네?”
[목소리가 많이 어두운데?]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둡다고 내 목소리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입을 열었다.
“흠… 전 잘 모르겠는데요? 목소리가 어둡나요?”
[우리 아들 평소 목소리 같지가 않아.]
“그래요? 음… 전 솔직히 말해서 지금 기분이 굉장히 좋은데.”
[기분이 좋다고? 무슨 일이라도 있니?]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목표를 찾았거든요.”
[목표?]
“네. 일생일대의 목표 중 하나를 이제 조금 있으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기분이 너무 좋아요.”
아더의 말에 요넬이 웃었다.
[역시 우리 아들이네. 벌써 목표도 이루고.]
“후후…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좀 대단하긴 하죠.”
[그래. 아이린 바꿔 줄까?]
“아뇨. 슬슬 다시 나가봐야 해서, 나중에 통화할게요.”
[으음…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아참, 아들?]
“네?”
[아케인이 지금 약간 어수선하다니깐… 너무 돌아다니지 말고, 무슨 말인지 알지?]
요넬의 말에 아더는 고민했다.
[…아더?]
그 고민 끝에 아더는 처음으로 미간을 살며시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럼요. 절대로 안 돌아다닐게요.”
요넬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우리 아들 항상 사랑해.]
“저도요 어머니.”
그렇게 통화를 끊은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 역시 무슨 이유가 있더라도 어머니에게 거짓말하는 건 영 기분이 좋지 않네.”
하지만 곧 찝찝한 기분을 떨쳐낸 아더는 웃었다.
‘그래도 뭐… 이번 일로 큰 선물을 가져다드릴 수 있을 거니깐.’
이안 도르문트.
전생에도 죽이지 못한 원수.
그리고 케인 도르문트 다음으로 죽이고 싶은 인간.
동시에 어머니를 제일 많이 괴롭혔던 사람.
“…후후.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요. 제가 좋은 소식을 전달해 드릴게요.”
흰 수염의 아티펙트를 발동시킨 아더가 저택을 빠져나왔다.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만연하게 차올라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자… 그럼 가볼까?”
아마 다음에 이 도시로 돌아올 때는 많은 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 생각과 함께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