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레온이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도르문트 백작이 아케인 대학에 아주 귀중한 무언가를 맡겨놓은 모양이더라고.”
“귀중한 무언가요?”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여튼 백작가의 보물 중 하나라고만 하더군.”
레온의 이야기에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서 도르문트가 나온다고?’
이번 생에 반드시 죽여야 할 가문의 등장에 아더의 눈빛이 달라졌다.
‘흐음… 그런데 도르문트 백작가의 보물이라.’
이건 전생에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 조심성 많은 도르문트 백작이 뭣 때문에 아케인 대학에 가문의 보물을 맡겨놨을까?
‘그자의 성격상, 이럴 리가 없는데?’
고민하던 아더는 다시 질문했다.
“흥미롭네요. 뭐 다른 이야기는 없나요?”
“여기까지네. 예니카 헤이즐이 뒷세계의 세력 중 하나인 [검은 십자가]의 수장이었고 아케인 대학의 보물을 훔쳐 달아났다, 그런데 그 보물이 하필 도르문트 백작가의 보물이었다.”
설명을 끝마친 레온이 아더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나?”
“그렇네요. 아주 구린 냄새가 펄펄 나요.”
“도르문트 백작가의 일원 중 한 명이 이번 일로 직접 움직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
“오… 설마 케인 도르문트가 오는 건가요?”
“그건 나도 몰라. 내 소식통도 거기까지는 정보를 수집하지 못한 모양이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신기하네요. 그 소식통이 누구길래, 이런 정보를 말해 주는 거예요?”
“있어. 경찰청에 심어 놓은 내 충성스러운 부하가.”
“흠… 뭐 알겠어요. 일단 믿을 만한 정보죠?”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또 재미있어지네….’
때마침 본격적인 사냥을 나서려던 시점.
도르문트 백작가의 일원이 아케인을 방문한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네… 하늘에서 이놈을 죽이라고 점지해 준 것 같잖아?’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망설일 이유가 없지. 누가 오건 죽이는 수밖에.’
어차피 도르문트 혈족들은 이번 삶에서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더는 매우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 일로 어떤 혈족이 오건, 죽인다.
그렇게 다짐을 한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이번 삶이 뭔가 술술 풀리네요. 하늘이 돕는 것처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있어요. 그런 게. 그래서 말인데 레온.”
“말하게.”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이번 일에 끼어드실 거예요 안 끼어드실 거예요?”
* * *
레온이 눈을 끔뻑였다.
“끼어든다는 말이 정확히 뭔가?”
“여러 의미가 있죠.”
“그 여러 의미가… 뭔가?”
“도르문트 혈족을 죽이는 것.”
“…!”
“제가 끼어들 의미가 이것밖에 더 있겠어요?”
레온이 입을 벌렸다.
“자네… 제정신이지?”
“그럼 제정신이죠.”
“그런데 도르문트 백작가의 혈족을 죽이겠다고?”
“어라? 그럼 왜 안 죽여요?”
“…?”
“도르문트 백작가, 정확히는 케인 도르문트는 1황자 칸 마드리드의 개죠.”
“…!”
“그런 그의 혈족을 죽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레온이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흠칫 몸을 떨었다.
‘…미친 소리 같긴 하지만, 놀랍게도 맞는 소리군.’
아더 바이에른.
제국 최고의 명문가의 자제인 이 소년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몰라도 제 형님인 칸 마드리드에게 복수를 한다는 가정을 하면 이게 맞았다.
‘도르문트 백작은 내 형님… 칸 마드리드의 수족. 그런 그의 혈족을 죽인다는 건 큰 의미가 있지.’
하지만 레온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칸 마드리드의 수족인 도르문트 백작은 현 제국의 실권자다.
그런 그의 혈족을 죽인다는 건, 제국 최고의 권력자를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
‘과연 지금 시점에서 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맞는가?’
레온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아더가 혀를 찼다.
“레온은 겁쟁이네요. 어쩔 수 없죠. 저 혼자 할게요.”
레온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혼자서 도르문트 백작을 죽인다고!?”
“정확히는 그의 혈족이죠.”
“그의 혈족을 죽인다는 게 도르문트 백작을 건든다는 의미지!”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요?”
“…뭐?”
“어차피 저는 그 자들을 다 죽일 거예요. 그게 늦든 빠르든 어차피 이룰 목표인데 지금 죽이나 나중에 죽이나 무슨 차이가 있죠?”
“…!”
레온이 진심으로 경악했다.
‘허… 이 미친놈.’
몇 번이나 느끼는 거지만, 아더 바이에른은 미친놈이 맞다.
제국 최고의 실권자를 죽이는 일을 이렇게 쉽게 생각해버리다니.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레온은 묘한 기대감을 느꼈다.
‘…만약 아더 바이에른이 도르문트 혈족을 죽인다면?’
그리고 케인 도르문트의 분노를 아더 바이에른이 이겨낸다면?
이번 일로 하여금, 대륙 최고의 명문가의 위치가 다시 한번 바뀔 수도 있었다.
그 상상을 하던 레온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칸 마드리드… 그자의 가장 한 축을 무너트릴 수도 있는 기회다.’
레온은 목소리 끝을 떨며 말했다.
“난 도박을 안 좋아하는데, 자네와 함께 있으면 계속 도박을 하게 되는군.”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다시 동맹인 거네요?”
“동맹은 무슨. 우리는 처음부터 한배였네!”
“누구 마음대로요?”
레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당분간 얌전히 있게.”
“왜죠?”
“정보를 모아서 움직여야 할 거 아닌가? 이번 일은 복잡해. [검은 십자가]의 예니카 헤이즐. 도르문트 백작. 거기다 아케인 대학까지 엮여있지.”
레온이 눈빛을 빛냈다.
“한쪽만 엮여도 큰일 날 판에 그런 단체가 세 곳이나 엮여있으니 신중히 움직일 필요가 있어.”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레온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좋아! 나만 믿고 지금처럼 기다리고 있게! 정보를 모아오지!”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고서 아더는 생각했다.
‘누가 오려나….’
도르문트 백작의 혈족이 방문한다면,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몇 없었다.
‘케인 도르문트 그자가 다 죽여버렸으니깐.’
자신에게 방해가 될만한 도르문트 핏줄들을 일찌감치 제거한 탓에 도르문트 혈족의 이름을 단 자들이 몇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모두 변방으로 내쫓겼거나 도르문트 이름을 버린 자들이었다.
‘그럼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그의 아들들인데.’
생각과 함께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을 때였다.
아더의 이런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세상에-!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제국에서 그 사람이 온대!”
케인 도르문트의 3명의 자식 중 장남.
“이안 도르문트-! 제국 차세대 기사 중 한 명이며 상급 정령술사! 그 사람이 온대!”
이번 삶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가 제 발로 아케인으로 걸어들어왔다.
* * *
아케인 대학이 들썩였다.
“시험 중단은 거의 최초 아니야?”
“그런 거 같은데?”
“헐… 그럼 학점은 어떻게 하지?”
“재시험 치러야 하는 거 아니야?”
아케인 대학 건립 이래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던 중간고사가 전부 중지됐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소문 들었어? 우리 학교에 광신도의 수장이 있었다나 봐!”
“…광신도 수장? 그게 누군데?”
“예니카 헤이즐! 그 애가 사이비 광신도의 수장이었다나 봐!”
“뭐!? 그 예니카 헤이즐이 사이비 광신도의 수장이었다고?”
알음알음 퍼지는 소문 속에서 아케인 대학의 학생 중 한 명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 정체는 놀랍게도, 사이비 광신도의 수장.
학생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하며 예니카 헤이즐을 언급했다.
“그 애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매일 혼자 다니고, 말수도 적고!”
“생긴 거하고는 다르게 음침하기도 했는데… 사이비 광신도 수장이었다니.”
그러한 상황 속에서, 아케인 대학 교수진들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케인 대학 건립 이래 이런 위기가 있었던 적이 있었소?”
“허허… 학생 중 한 명이 저 더러운 뒷거리의 사이비 광신도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보물 중 하나를 훔쳐 달아나다니.”
“절대로 이번 사태를 좌시해서는 안 되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간악한 사이비 광신도를 잡아야 하오!”
아케인 대학은 대륙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그런 교육기관에 다니는 학생들도 최고여야 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그 명성에 금이 간 것이다.
아케인 대학의 교수진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격분했다.
그 분노는 곧 여러 방면의 조취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시행된 것은 예니카 헤이즐의 공개수배였다.
[예니카 헤이즐]
[현상금:12000골드]
그녀의 사진이 걸린 현상금 포스터가 아케인 시 전역으로 뿌려졌다.
아케인 학생들은 그녀의 정체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 놀랬고, 아케인 시의 뒷거리 용병과 세력들은 그 현상금에 경악을 토했다.
“들었어? 이번에 검은 십자가의 수장의 목에 12000골드가 걸렸더군?”
“뭐? 12000골드?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더군. 나도 보고 깜짝 놀랬어. 최근 범죄자 중에서 12000골드가 걸린 범죄자가 있던가?”
오랜만에 나타난 거액의 현상수배범에 뒷거리가 들썩였다.
“10000골드를 넘기는 현상수배범은 거의 10년만 아니야?”
“이거 잘하면 한탕 땡길 기회인 것 같은데?”
“아서라. 그러다 죽어. 상대는 무려 그 사이비 광신도의 수장이야.”
“그렇지? 하지만 그래도 나서는 놈들이 있지 않을까?”
“듣기로 [해적]과 [칠황]이 관심을 보인다더군.”
“뭐!? 해적과 칠황이 관심을 보인다고!?”
그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아케인 대학의 교장.
하이엔즈 프레이야는 입맛을 다셨다.
‘씁….’
그때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귀공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책임은 어떻게 지실 거요. 교장?”
도르문트 백작.
아니 다음 세대 도르문트 백작이 될 남자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 * *
아케인 대학의 교장인 하이엔즈가 고개를 숙였다.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이번 사태에 아케인 대학은 책임을 크게 통감하고 있습니다. 아케인 대학의 대표로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이안 도르문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치를 보던 하이엔즈 프레이야가 설명을 이었다.
“이번 사태에 관한 여러 대책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긴 시간 설명이 이어졌지만 이안은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열띠게 설명하던 하이엔즈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따로 원하시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닫혀 있던 이안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그렇소.”
“어떤 걸 원하시는 겁니까?”
“이번 사태를 조사할 책임 수사권.”
“…!”
하이엔즈가 입을 벌려 놀랬다.
“공자! 아무리 사태가 엄중하다 하지만, 그건 아케인 시의 법규를 어기는 일입니다! 절대 외부세력이 아케인 시의 사태에 직, 간접으로 참여….”
이안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럼 교장의 목을 내놓겠소?”
“…!”
“이번 사태에 케인 도르문트 백작 각하께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소. 그래서 내가 생각한 해결책은 두 개요.”
“…….”
“이 사태의 책임으로 교장의 목을 가져가거나, 아니면 [성물]을 다시 회수하거나.”
이안이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하지만 전자는 불가능하고, 후자는 이쪽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군.”
“…….”
“그래서 내가 생각한 최고의 타협책은 이거요. 도르문트 백작의 수색병력을, 아케인 시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시오.”
하이엔즈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통보입니까, 권유입니까?”
“통보요.”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안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그 때는 나혼자 오는 것이 아닌, 도르문트의 군대와 함께 올 것이오.”
그의 말에 하이엔즈 옆을 지키던 놀스 교수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말을 삼가시오! 이안 경! 이 앞에 계신 분은 아케인 시를 대표하는 대마도사이자 모든 교육의 아….”
“그만하세요, 놀스 교수님.”
“하지만 하이엔즈 님!”
“그만하시고 자리에 앉으세요.”
놀스 교수가 흥분한 기색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표정을 수습한 하이엔즈가 대답했다.
“조금 시간을 드린 뒤에, 답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소.”
“금방 답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놀스 교수가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하이엔즈 님! 아무리 저자가 제국의 실권자라 해도 저 발언은 아케인 시 전체를 모독….”
그 외침을 방을 나서며 조용히 엿듣던 이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일부러 도발을 했는데도 영 재미를 못 봤군.’
괜히 아케인 시를 대표하는 대마도사가 아닌 듯싶었다.
그렇다 해서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거절해도… 수락해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다.’
거절하면 명분을 쥐는 것이고, 수락하면 아케인 시에 합법적으로 군대를 들여올 수 있게 된다.
그 어떤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도르문트의 입장에서는 나쁜 게 없었다.
‘문제는… 그 성배인데.’
생각과 함께 이안이 저도 모르게 살며시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그의 날카로운 감각에 무언가 걸렸다.
“…!”
깜짝 놀란 이안이 저도 모르게 칼에 손을 올렸다.
‘뭐지? 이 살기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감각에 이안의 시선이 황급히 주변을 훑었다.
그때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오… 누가 올지 궁금했는데, 당신이 왔네요, 이안.”
이안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뭐?’
익숙한 얼굴.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운과 체격을 가진 사내가 벽에 기댄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탓에 이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더… 바이에른?”
그의 기억 속의 나약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던 소년이, 몰라보게 바뀌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깐.
그 사이 아더가 웃으며 말했다.
“네 아더 바이에른이에요. 잘 지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