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윌렛이 술잔 속에 남겨진 술을 모두 털어낸 뒤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해도 되나?”
“네.”
“자네 같은 사람이 왜 이 뒷세계로 들어온 거지?”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잠시 고민했다.
“흠…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대답만 해준다면 도움이 될지 모르지.”
“오… 말하면 도와주실 건가요?”
“내 능력에 닿으면 도와줘야지. 애초에 그러려고 있는 게 브로커란 직업이니깐.”
윌렛의 대답에 아더가 잠시 고민했다.
‘말해도 되려나?’
말한다고 딱히 큰일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윌렛 어르신이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고민하던 아더는 결국 반쪽짜리 답을 내놓았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죽이고 싶은 사람?”
“네. 그런데 그 사람을 죽일 능력이 되지 않아서, 이 거리에 들어왔어요. 어르신도 알다시피 이 거리에는 없는 게 없잖아요? 영약이건 아티펙트건 말이죠.”
아더의 설명에 윌렛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뭔가를 숨기고 있군.’
솔직히 말해 아더의 정체를 몰랐더라면 납득 할 수 있는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청년은 무려 바이에른 공작가의 하나뿐인 후계자다.
‘제국 제일의 가문의 후계자가 영약과 아티펙트 때문에 뒷거리에 들어온다?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말이군.’
그렇다 해서 조금 전 했던 말이 모두 거짓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말은 진심인 것 같은데.’
문제는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쯤 되는 자가 죽이고 싶다는 인물이 누구냐는 거였다.
그때 아더가 입을 열었다.
“저도 한 가지 질문해도 되나요, 어르신?”
“…말하게.”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제가 바란스 씨를 죽이기 전에 대화를 나눴거든요.”
“…무슨 대화?”
“윌렛 어르신의 과거에 대해서요.”
“…….”
“들어보니 꽤 재밌더라고요. 혹시 과거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아더의 말에 윌렛이 혀를 찼다.
“…영악해졌군.”
“제가요?”
“이 질문을 하려고, 조금 전 질문에 대답한 거 아닌가?”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기브 앤 테이크 아니겠어요?”
그 미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윌렛이 질문했다.
“…어디까지 들었지?”
“윌렛 어르신이 마을 하나를 없애버렸다는 이야기 정도요?”
윌렛이 흠칫 놀랬다.
“…그 늙은 망령이 쓸데없는 입을 놀렸군.”
“오. 그럼 진짜란 소리예요?”
“…….”
입을 다문 윌렛이 머리를 박박 긁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 들어야겠나?”
“들을 수 있으면 좋죠.”
아더의 대답에 윌렛이 고민하다 시가 하나를 새로 꺼내 들어 입에 물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용병 출신이야.”
이 말과 함께 시가의 끝이 불꽃에 타올랐다.
한 모금 빨아들여 연기를 내뿜은 윌렛이 허공을 바라본다.
“그것도 꽤 이름있는 용병이었지.”
“오… 바란스 님 말에 따르면 최고의 용병이었다는데요?”
윌렛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최고까지는 모르겠고, 끗발은 좀 날렸지.”
“끗발이 좀 날렸다?”
“그 시절에 끗발이 좀 날렸다는 건, 적어도 어디 가서 무시당할 수준은 아니었단 거네.”
아더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윌렛 어르신이 이런 고리타분한 소리를 다 하네?’
그 사이 윌렛의 눈동자가 추억에 잠겼다.
“옛날은… 수준이 높았어. 지금이야 돈과 명예, 그리고 제 욕심만 보고 내달리는 자들밖에 없지만, 그 시절에는 낭만이라는 게 있었거든.”
“…….”
“단순히 제 목표만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그래. 신념이라는 게 있었지. 이 뒷거리에도 기사와 같은 자들이 있었단 거네.”
아더가 웃었다.
“그게 윌렛 어르신인건가요?”
“글쎄. 내게 신념이 있었다면, 그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겠지.”
“그 일이라 하면…?”
“자네가 말했던 그 마을을 없앴다는 이야기.”
윌렛이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야기도 다시 시작됐다.
“마을의 이름은… 하리타. 아케인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산간 마을이었지. 인근 마을까지 합치면 주민 천 명 정도 사는… 아주 작은 마을.”
“…….”
“그 당시의 나는 신성교회에게 의뢰를 받았어. 그 마을을 없애 달라는.”
아더의 눈이 커졌다.
“신성교회가 왜 그런 의뢰를?”
“듣기로 악마 숭배자가 그 마을에 있었다더군.”
“…그런 산간 마을에요?”
“믿기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싸 했어. 하리타 마을은 신성교회의 신이 아니라 토속 신앙을 믿었거든.”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단이었겠군요.”
“맞아. 그래서 나도 그 외뢰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솔직히 말해 내 입장에서는 교회도 이단이거든. 하지만 내 동료들은 달랐지.”
윌렛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꽤나 큰돈을 교회는 보수로 내걸었고, 내 동료들은 그 돈에 눈이 멀어 하리타 마을을 없애기로 했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럼 윌렛 어르신이 마을을 없앴다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고 진짜야.”
“…?”
“하리타 마을에는 놀랍게도 악마가 있었어. 정확히는 악마를 숭배하는 놈이었지. 그놈이 신성교회의 기사단과 내 동료들이 들이닥친 순간 숨기고 있던 정체를 드러낸 거야.”
아더가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윌렛의 목소리는 자조적으로 변해갔다.
“얽히고 얽힌 상황이었지… 그 상황에서 결국 신성교회의 기사단과 내 동료는 죽었고 하리타 마을은 악마의 본거지가 되었어.”
“…….”
“동료의 죽음의 죽음을 참지 못했던 나는 하리타 마을을 쳐들어갔고, 악마를 죽였네. 더불어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동료와 그 마을 주민까지도.”
윌렛의 눈동자가 추억에서 벗어난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공허함과 후회, 심한 자책뿐이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 마을 어린아이의 비명 소리도, 동료들의 목을 자르던 감각도.”
이 말과 함께 윌렛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그날의 사건을 버티지 못한 나는 은퇴했지.”
“…….”
“최고의 용병이니, 칼잡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어도 결국 수많은 용병 중 하나였던 거지. 저지른 죄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멸로 나아간 흔하디흔한 용병.”
침묵하던 아더가 입을 열었다.
“음… 그건 동의할 수 없네요.”
“뭐가 말인가?”
“윌렛 어르신이 파멸했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윌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아더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윌렛 어르신은 지금도 살아계시잖아요.”
“…?”
“살아계셔서 천사의 집도 운영하시고, 수많은 용병, 후배들을 관리하고 있죠. 이런 멋진 삶을 사는데 어떻게 그게 파멸이에요?”
윌렛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 잘 들었어요 어르신. 당분간은 못 찾아뵐 것 같아요.”
“…….”
“여러모로 일이 바쁘거든요. 쥴리한테는 안부 좀 전해주세요.”
정신을 차린 윌렛이 말했다.
“다시 돌아올 건가?”
“안 돌아올 이유가 있나요?”
윌렛이 눈을 끔뻑이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돌아오지 않을 이유도 없군.”
아더가 싱긋 웃어 보인 뒤, 주점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윌렛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다시 양복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많고. 던. 아니 아더 바이에른이 저지른 그 사고를 수습….’
그때 윌렛의 눈에서 무언가 툭툭 떨어졌다.
“…?”
깜짝 놀란 윌렛이 제 눈에서 나온 분비물을 바라보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갱년기라니, 이제 진짜 은퇴할 때군.”
* * *
집으로 돌아온 아더는 일주일 동안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틀어박혔다.
다행히 중간고사 준비 기간이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먹고 자고 살아있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행위만을 제외한 채 명상에 몰두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넘어가는 밤이 되었을 때.
아더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슴 속에서 휘몰아치는 마나의 덩어리가 마침내 고리로 변한 것이었다.
그 순간 아더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
파앗-!
그 빛과 함께 아더의 감겨 있던 아더의 눈이 떠졌다.
“아….”
나직한 탄성과 함께 아더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 기분. 진짜 오랜만이네….”
힘이 흘러넘치다 못해, 폭주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진짜 폭주했다.
우웅-!
6개의 고리가 끊임없이 마나를 토해냈다.
항상 부족함으로 허덕이던 고리의 공명이 충만하다 못해 흘러넘쳤다.
‘짜릿하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각을 다시 느낀 탓일까.
그간의 노력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전생에 달성했던 6서클을 달성했고, 혈통도 나름 잘 모았어.’
이 정도면 전생보다 확실히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생보다 강해졌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전생의 경지보다 강해졌다면, 더이상 복수를 망설일 이유가 없지.’
이제는 검기까지 다룰 수 있으니, 상대방을 누구건 간에 칼부터 뽑아도 된다는 소리.
“오… 이렇게 생각하니깐 강해진 게 실감이 나네.”
옅은 탄성과 함께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방문을 빼꼼 열고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지니가 보였다.
“…왜 쥐새끼처럼 그러고 있어요, 지니 씨?”
아더의 질문에 지니가 고운 미간을 팍 일그러트렸다.
“쥐새끼라뇨. 집중하고 있길래, 방해 안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요.”
“흐음… 그래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기다리는 게 아니라 훔쳐보고 있던 것 같은데.”
지니가 대답하지 않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일이네. 지니 씨가 먼저 날 찾아오고.’
아침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면, 얼굴도 보기 힘든 그녀 아니었던가?
그때 지니가 팔짱을 끼더니 갑작스레 허리를 숙였다.
“던 님.”
“…네?”
“음… 아니다. 공자님.”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지니가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제가 어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
“어떤 미친 용병이 해적과 칠황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뭐 이런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아더가 눈을 끔뻑이다, 웃음을 터트렸다.
“오… 그 미친 용병 아무래도 저인 것 같은데요?”
“…진짜예요!?”
“네.”
“왜 그런 미친 짓을 저질렀어요!”
“음…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안 되죠, 당연히! 뒷거리에서 칠황과 해적에게 찍힌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세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지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 진짜 이 사람이었다고?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지금 뒷거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칠황과 해적이 모두 분노해, 한 용병의 이름을 부르짖은 덕에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칠황과 해적 모두에게 분노를 산 사람이 눈앞에 있다니.
지니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 고민 할 때, 아더가 먼저 침묵을 깼다.
“지니. 아침밥 준비되어 있어요?”
“…밥이요?”
“네 밥.”
“안나가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오 잘됐네요.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아더의 말에 지니가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그래요. 밥이나 먹죠… 무슨 상황이건, 밥은 먹어야죠.”
이 말과 함께 지니가 먼저 앞서 나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이제 공자라고도 부르고, 완전히 적응했네, 지니 씨.’
처음에는 많이 어색해 보였는데, 어찌 되었건 좋은 변화였다.
그렇게 지니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선 아더는 안나와 지니와 함께 뒤늦은 아침을 먹었다.
“음… 좋네.”
느껴지는 포만감에 아더가 잠시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질문했다.
“오늘 뭔가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공자님?”
“응? 아… 기분이 좋기야 하지.”
전생의 경지를 다시 밟았으니 기분이 안 좋은 게 이상했다.
그 여유로움 속에서 잠시 고민하던 아더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디 놀러라도 갈까?”
“…네?”
“날씨도 좋고, 오늘 할 일도 없고 가까운 곳에 피크닉이라도 갈까?”
아더의 제안에 지니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건 안나도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공자님이 먼저 놀러 가자는 말을 꺼내다니!’
‘이, 이런 상황에서 놀러 가자고? 진짜 저 사람은….’
각자 다른 생각과 함께 탄성을 터트리는 두 여자를 바라보며 아더는 생각했다.
‘앞을 생각하면 오늘이 마지막 여유겠지?’
그래서 하루 정도는 푹 쉴 생각이었다.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한다면, 더는 쉴 시간 따위는 없을 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