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95화 (95/265)

제95화

슈가가 바닥에 누워있는 아더와 카셀을 향해 다가왔다.

“끝났어요. 카셀, 던.”

아더와 카셀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럼 이제 저희 가도 되나요, 슈가?”

“예. 가셔도 돼요. 차도 준비되어 있어요.”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고마워요! 안 그래도 어떻게 걸어가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싱긋 웃어보인 아더가 몸을 돌렸다.

옆에 있던 카셀이 당황했다.

“으, 응? 이렇게 헤어진다고?”

그 당황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카셀은 좀 더 남아있다가요.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빨리 돌아가야 해요.”

“아, 아니! 같이 가세! 나 혼자 있기엔 좀 그래!”

이 말과 함께 카셀이 아더의 곁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 모습을 자리에 서서 지켜보던 슈가가 불쑥 입을 열어 소리쳤다.

“던-!”

“…?”

“혹시 나중에 또 볼 수 있을까요?! 프라임 왕국에 들려줘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시간 되면 갈게요. 슈가.”

아더의 말에 슈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사이 아더와 던은 프라임 왕국 측에서 준비해둔 차량에 올라탔다.

부와와왕-!

울려 퍼지는 배기음과 함께 떠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슈가는 중얼거렸다.

“…이게 맞나 싶네.”

오늘 밤 있었던 일의 결말을 이런 식으로 맞이해도 되는 걸까?

‘무려 칠황의 삼목이 죽고, 해적의 부선장이 죽었어.’

아케인 뒷 세력의 거물 중 두 사람이 무려 죽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모조리 쓰러트린 새로운 강자가 탄생했다.

고민하던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어차피 소문은 자연스레 퍼질 것이다.

아케인의 뒷거리는 생각보다 좁고, 그만큼 소문은 빨리 퍼지니깐.

그 속에서 슈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전설이 탄생하는 거구나.’

아케인에 존재하는 수많은 괴담과 전설.

그것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비밀을 엿본 느낌이었다.

* * *

아케인으로 돌아온 아더는 카셀과 헤어졌다.

“나중에 다시 만나지 라이벌.”

마지막 인사를 한 카셀이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다, 결국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갑자기 또 라이벌이 되어버렸네. 카셀 씨도 참 특이하단 말이지.”

그 후 몸을 돌린 아더는 윌렛의 양복점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윌렛에게 보고를 하는 게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의 문을 여니 고민에 빠져있던 윌렛이 흠칫 놀랬다.

“던… 자네인가?”

“네 윌렛 어르신.”

“진짜 자네라고?”

“그럼요. 진짜 던이에요.”

아더의 말에 윌렛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믿기지가 않는군…. 자네가 정말로 살아있다니.”

“어라? 왜 또 절 죽은 사람으로 만드시는 거예요?”

“자네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건, 칠황의 바란스와 해적의 부선장을 죽인 게 자네란 소리기 때문이지.”

아더가 순수하게 놀랬다.

“벌써 소문이 그렇게 퍼졌어요?”

윌렛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짜 자네가 그들을 죽인 겐가?”

“음… 일단은요?”

윌렛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게 하염없이 웃음을 터트리던 윌렛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미치겠군… 그래. 일단 밑으로 내려가지.”

자리에서 일어난 윌렛이 양복점에 위치한 지하실로 향했다.

평소와 달리 지하실에 위치한 주점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 탓에 윌렛은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고 바를 가리켰다.

“또 우유지?”

“네 또 우유요.”

윌렛이 컵 가득히 우유를 따라 아더에게 건넸다.

잔을 받아든 아더는 단번에 들이켠 뒤 탄성을 터트렸다.

“캬아~! 죽여주네요!”

“…….”

한숨을 내어 쉰 윌렛이, 독한 보드카를 꺼내 제 잔에 따랐다.

그리고 아더처럼 원샷을 때린 뒤,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사건이 끝나자마자 여기에 왔다는 건, 내 도움이 필요해서겠지?”

윌렛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오… 역시 날카롭네요, 윌렛 어르신.”

“날카롭긴… 일단 설명부터 해보게.”

아더는 천천히 입을 열어 설명했다.

열차가 습격받았던 일.

그 과정에서 마주친 해적의 일원들.

그 해적의 부선장과 바란스와 싸웠던 일.

그 모든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윌렛이 중얼거렸다.

“진짜 그 모든 일이 어제 하룻밤 만에 일어났다고?”

“네.”

“그리고 자네는….”

말을 흐린 윌렛이 눈빛을 번쩍였다.

“그 드래곤 하트를 먹었고?”

“일단은요?”

아더의 대답에 윌렛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 후 어느 사이엔가 꺼내든 시가를 입에 물더니 불은 붙이지 않고,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윌렛의 그 고민을 아더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서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미묘한 침묵이 주점 내부에 내려앉으려 할 때, 윌렛이 다시 입을 열었다.

“최선의 결과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렸군.”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윌렛 어르신이 생각해도 그렇죠?”

“그래. 이번 일로 자네의 명성은 크게 퍼지겠지만, 반대로 보자면 이 거리에서 가장 큰 두 세력과 척지게 된 거야.”

윌렛의 말에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윌렛 어르신을 찾아왔잖아요? 귀찮은 일 좀 막아달라고.”

윌렛이 혀를 찼다.

“그게 뭐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아나?”

“에이. 그런 걸 해주는 게 브로커의 역할이죠.”

윌렛이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을 두들겼다.

툭툭…

그 규칙적인 두들김과 함께 윌렛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일단 최대한 막기는 할 테지만… 소문을 퍼지는 건 막을 수 없을 거야. 결국 늦든 빠르든 칠황과 해적이 자네한테 복수를 하러 온다는 거지.”

“흠… 그럼 그 두 단체와 다시 싸워야 한다는 거네요?”

“물론 당장은 아닐 거야. 내가 파악하기론 칠황과 해적은 아직도 분쟁 중이니깐 적어도 자넬 찾아가는 건 그 분쟁이 끝난 뒤겠지.”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즉, 지금 당장 뭔짓을 할 수는 없다?”

“그건 장담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추천하지.”

윌렛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이대로 이 뒷거리를 뜨는 거지.”

아더의 눈이 약간 커졌다.

“오… 신분 세탁을 하라는 소리인가요?”

“아니. 완전히 뜨란 소리네.”

“……?”

“자네라면 굳이 이 뒷거리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그의 말에 아더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죠 윌렛 어르신?”

“모른 척해주려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더는 힘들군.”

윌렛이 입에 물고 있던 시가에 불을 붙였다.

“바이에른 가문. 제국 역사상 가장 유서 깊은 공작가의 후계자가 왜 이런 뒷거리에 있는 건가?”

아더가 입을 다물었다.

윌렛도 입을 열지 않았다.

“…….”

그렇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 아더가 뒤늦은 탄성을 터트렸다.

“와…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전부 알고 계셨네요?”

윌렛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꽤 최근이야. 물론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흠… 혹시 누구한테 말 안 했죠?”

“왜? 말했으면 날 죽이려고?”

“아뇨? 들은 상대방을 죽이려 했죠.”

“…….”

“소문이 퍼지면 귀찮아지거든요. 그래서 묻는 건데 혹시 누구한테 말 하셨어요?”

윌렛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아는 선에서 이 정보를 아는 건 나와 내 정보원 둘 뿐이네. 그 정보원은 절대로 말 안 할 사람이고.”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어깨를 으쓱였다.

“흠… 어쩔 수 없네요. 윌렛 어르신의 정보원이면 입이 무거운 자니 그냥 넘어가죠.”

그런 아더의 반응에 윌렛은 안도해야 할지, 아니면 헛웃음을 터트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폭소를 터트렸다.

“크크큭.….”

그 웃음에 아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라? 왜 웃으세요, 어르신?”

“자네는 안 웃기나? 이 상황이?”

“…?”

“아케인의 뒷거리 브로커나 하는 놈하고,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하고 이따위 대화나 하고 있는데?”

“…그게 이상한 건가요?”

“이상하지. 원래라면 자네와 난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니깐.”

“지금 만났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한 거야. 이렇게 다 털어놨으니 또 한번 묻겠네. 던. 아니 아더 바이에른. 자넨 내 천사의 집에 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윌렛의 질문에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흠… 애매한 질문이네요.”

“자네 신분을 묻는 질문이 더 애매하지 않았나?”

“그건 대답 할 수 있는 부분인데, 여기는 대답 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윌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속에서 아더는 입맛을 다셨다.

‘내가 사실 한 번 죽었다 깨어난 뒤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어떻게 말하겠어?’

아마 이 비밀은 평생 무덤에 안고 가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윌렛이 보드카를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처음엔 난 자네가 나에 대해 조사를 하고, 접근한 스파인 줄 알았어.”

“…스파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갑자기 들이닥쳐서 용병을 하고 싶다 말하고 누구도 알지 못하던 천사의 집에 언급했으니깐.”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윌렛 어르신이 절 용병으로 받아주지 않았을 거잖아요?”

“그건 맞아. 그래서 또 의문점이 생기지. 자넨 왜 그리 날 믿는 겐가?”

“…….”

“우리가 정말로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건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면 말을 좀 해주게. 나이가 들어서 깜빡깜빡 잊거든.”

그의 말에 아더는 고민했다.

‘말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던 아더는 곧 그래도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윌렛 어르신이 미리 알고 있던 내 정체를, 이제야 언급한 건 슬슬 나 믿는다는 신호겠지.’

그렇다면 이쪽도 어느 정도의 비밀을 밝혀도 나쁠 게 없어 보였다.

결심을 한 아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어가던 절 윌렛 어르신이 구해주셨어요.”

“…뭐?”

“독에 중독되어 반병신이었던 저를 길거리에서 구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윌렛 어르신을 믿는 거예요.”

아더의 대답에 윌렛의 눈이 커졌다.

“…그건 무슨 개소리야?”

“넵?”

“내가 아무리 기억이 없다 하더라도, 그런 일을 기억 못 하겠는가?”

아더가 입맛을 쩝 다셨다.

“진짠데요. 너무하시네.”

“…다음부터 거짓말을 하려면, 좀 그럴듯하게. 그래 가지고 누가 속아주겠어?”

충고와 함께 윌렛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잔을 기울던 윌렛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악 좋아하나?”

“음악이요?”

“최근 즐겨 듣는 재즈음악이 있어. 들어볼 텐가?”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윌렛이 낡은 레코드 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위잉-!

레코드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은은한 재즈음악이 흘러나왔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밑에 위치한 이 낡은 주점과 퍽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오… 나쁘지 않은데?’

그 음악에 몸을 맡겨 아더가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사이, 윌렛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려두었던 시가를 다시 입에 물고서 말했다.

“이번 일은 걱정 말게.”

“…?”

“없던 일은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큰일은 나지 않을 걸세.”

윌렛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그렇게 믿고 싶은데, 해적과 칠황 분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가만히 있어야지. 내가 직접 나설 건데.”

“…?”

“그러니 자네는 당분간 숨죽이고 숨어있게나. 아니면 다니던 학교나 열심히 다니던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윌렛이 툭 말을 내뱉었다.

“내 용병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 설령 그게 해적이나 칠황이라 할지라도.”

이 말에 정신을 차린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드디어 인정하셨네.’

이번 생에 들어와 처음.

윌렛 크리스톨이 저를 제 용병이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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