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94화 (94/265)

제94화

아더는 바란스의 시체를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윽-!”

우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뭉쳐있던 뼈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더는 그 여운을 한동안 즐기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와아… 힘들어 죽겠네.”

오늘 밤 동안 도대체 몇 번의 전투를 치른거지?

횃수를 세어보던 아더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의미가 없네. 그냥 주궁창창 싸우기만 했으니.’

이렇게 온몸의 근육이 떨릴 정도로 싸운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상쾌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그 복잡 미묘한 기분 속에서 가슴 팍의 고리가 진동했다.

우웅-!

그 순간, 흘러넘치는 마나가 비명을 지르는 근육을 감싸기 시작했다.

탄성을 내지른 아더가 중얼거렸다.

“아직... 마나가 흘러넘쳐?”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눈을 감았다.

낮게 가라앉은 의식의 세계 속에서 가슴에 개겨진 다섯개의 고리가 보였다.

우웅-!

그 다섯개의 고리 옆에 아직 정제 되지 않은 마나의 덩어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덩어리를 잠시 지켜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저 덩어리까지 고리로 만들면 6서클.’

그렇게 되면 마침내 전생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과거로 돌아온지 고작 2년… 2년만에 6서클에 도달했다라.’

그 어떤 천재가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난다긴다 하는 소드마스터도 이런 일은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좋긴 했어. 드래곤 하트도 먹고, 좋은 영단들도 먹고.’

물론 그 운이 따르기 까지, 살아남고 싸워온 건 순전히 제실력이었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다시 눈을 떴다.

“후우.”

쉼호흡을 내쉬니 조금 전보다 나아진 몸상태가 느껴졌다.

“쉬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깐, 지금은 움직여둬야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이곳의 뒷정리도 해야하고, 슈가를 프라임 왕국까지 대려다 줘야한다.

그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 탓에 아더가 걸음을 돌려, 반쯤 폭파된 열차를 향해 다가가려 할 때였다.

눈을 뜬 채로 죽은 바란스가 시선에 들어왔다.

“아 맞다. 바란스 씨 카드 챙겨가야지.”

다시 몸을 돌린 아더가 바란스의 시체를 뒤졌다.

그리고 검은 색 카드 한장을 꺼내들었다.

‘여기에 있는 돈 절반은 나보고 가지라했지?’

얼마가 들어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은 금액은 아닐 것이다.

무려 칠황의 3목.

바란스의 카드이지 않은가?

살며시 미소 지은 아더가 미처 감기지 못한 바란스의 눈을 감겨주었다.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말은 못하겠네요 바란스 씨. 대신 편히 잠은 드세요.”

조의를 표한 아더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쓰러져 있는 슈가가 보였다.

곁으로 다가간 아더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흠… 단순 기절이네.”

그 순간 운디네가 나타나 속삭였다.

[아더 괜찮아요?]

“괜찮아.”

[그래도….]

“일단 슈가부터 먼저 치료해줘 운디네.”

운디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그녀의 손으로부터 흘러나온 청량한 기운이, 슈가의 몸을 감쌌다.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던?”

제 칼을 지팡이 삼아 걸어오던 카셀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더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카셀 씨는 참 무쓸모하네요.”

“…응?”

“도대체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 오신거예요?”

아더의 타박에 카셀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뭘 하긴! 나도 나름대로 힘들었다고! 갑자기 열차가 폭파하지 않나! 몸은 독에 중독되서 움직이지도 않고….”

설움이 담긴 외침을 쏟아내던 카셀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 후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던 자네?”

“네?”

“그… 게 뭔가?”

“뭐가요”

“왜 고리가… 다섯개야?”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카셀이 놀고 있는 동안 저는 열심히 의뢰를 해서 기연을 얻었죠.”

“기연이라고?”

“네. 드래곤 하트라고 들어보셨어요?”

카셀이 경악했다.

“그,그걸 자네가 먹었다고!?”

“네.”

“진짜인가!? 아니… 고리가 다섯개가 된 걸보면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을 흐린 카셀이 어쩔 줄 몰라하다 아더 곁으로 다가왔다.

그 후 탄성을 내지르며 중얼거렸다.

“진짜군… 드래곤의 향기가, 자네한테서 느껴져.”

이 말에 아더가 물었다.

“그런데 카셀.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드래곤하고 무슨 관계에요?”

“…응?”

“아니 이상하잖요. 보통 사람은 드래곤의 향기니 이런 소리를 안 하는데.”

카셀의 눈이 커졌다.

고민하던 그는 곧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런 관계 아니네.”

“진짜로요?”

“진짜로!”

“섭섭하네. 같이 사선을 넘은 사이인데 그 정도도 말 못해줘요?”

“…우리가 언제 사선을 넘었다고?”

“이 정도면 사선을 넘은거죠. 각자 죽을 고비를 넘고 다시 만났잖아요?”

카셀이 입을 다물었다.

미간을 모은 카셀의 표정에서 갈등이 스쳐지나갔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미안하네. 이거에 관해서만큼은 이야기해줄 수 없어. 이건 내 숙명이거든.”

사연이 많아보이는 대답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저런 반응을 보이니 더는 묻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기절해있던 슈가가 인상을 찌푸렸다.

“윽-!”

신음과 함께 슈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더와 카셀이 동시에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으시오?”

이 말에 잠시 머리를 흔들던 슈가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카셀을 바라보며 흠칫 놀랬다.

“…당신은 괜찮으세요?”

“누구 말이오?”

“당신이요 카셀.”

“…아! 괜찮소! 독에 찔린 곳이 따끔하긴 하지만.”

카셀의 대답에 슈가가 어딘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반면 카셀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눈을 끔뻑였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제 몸을 찌른 여자를 이렇게 용서해주네. 이런 걸 보고 호구라 하는 거구나.’

그 때 흠칫 놀란 슈가가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던! 제 아버지는….”

“아버지요?”

“네! 바란스….”

그녀의 말에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네요. 일어설 수 있겠어요?”

아더의 말에 슈가의 눈이 커졌다.

옆에 있던 카셀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바란스? 설마 칠황의 삼목! 그 바란스가 여길 왔다 말인가!”

아더는 대답하는 대신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슈가와 카셀이 따랐다.

그 후 드러난 광경에 카셀이 숨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게?”

세상이 갈라져 있었다.

뭐에 두들겨 맞기라도 한것마냥 대지는 움푹 파여 있었고 곳곳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카셀이 주목한 것은 그 난장판이 아니었다.

‘마력…마나. 세상에…도대체 무슨 싸움이 벌어진 거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두 힘이 충돌한 여파가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최소 50년의 마법사와 5서클의 칼잡이가 충돌해야 생기는 여파일 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이건 싸움 뒤에 남은 찌꺼기들이니깐…’

그 탓에 카셀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 슈가가 소리쳤다.

“바… 바란스?”

그녀의 외침에 카셀의 시선이 돌아갔다.

“어?”

탄성과 함께 카셀이 저도 모르게 흠칫 물러섰다.

그도 그럴 게 칠황 삼목인 바란스가 두 개의 머리 중 하나가 잘린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그 사이 바란스에게로 다가간 슈가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정말로 죽은 건가요 던?”

“네. 불사신이 아닌 이상 확실히 죽은 게 맞아요.”

아더의 말에 슈가가 입을 다물었다.

그건 카셀도 다르지 않았다.

‘더, 던이 칠황의 삼목을 죽였다고?!’

그 경악과 함께 카셀이 아더를 빤히 바라볼 때였다.

아더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이제 슈가가 나설 차례에요.”

이 말에 싸늘한 시체가 된 제 아버지를 바라보던 슈가가 고개를 돌렸다.

“제가 나설 차례요…?”

“네. 제가 다른 건 다 자신있는데, 뒷정리를 못하거든요.”

아더가 방긋 웃었다.

“그러니 슈가가 대신 수습 좀 해줘요. 왕세자비라면 그 정도는 가능 할 거 아니에요?”

* * *

뒷정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열차가 폭파당한 덕에, 그 소식이 생각보다 빠르게 퍼져나간 탓이었다.

“허어….”

슈가의 호출을 받고 온 프라임 왕국의 깃발을 단 군인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뭐야?”

수백 구에 달하는 해적의 시체.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아케인 뒷거리를 주름잡던 거물들의 죽음까지.

하나같이 놀라운 이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 이자는 칠황의 삼목 바란스… 아니야?”

“다른 칠황들의 목도 떨어져 있어!”

“…미친!!! 다들 여기 와봐! 해적의 부선장! 아론 프라일도 죽어 있어!”

외침과 함께 뒷정리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해적과 칠황의 충돌만으로 놀라운데, 그 과정에서 아케인의 뒷거리의 주축 세력이라 불리는 이들이 무려 4명이나 죽었다.

특히 해적의 경우에는 2인자로 불리던 아론 프라일이 쓰러져 있을 정도.

“…누, 누가 이 사람들을 죽인 거지?”

설마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가 이곳에 왔던 걸까?

그 생각과 함께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 때였다.

제 아버지의 시체를 바라보던 슈가가 눈물을 터트렸다.

‘내가 왜 눈물을…?’

저를 이용하던 사악한 마법사를 죽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눈물이 흘러나오는 걸까?

그렇게 하염없이 바란스의 시체를 바라보며 울던 그녀는 중얼거렸다.

‘역시 난… 정상이 아니야.’

이럴 때마다 종종 느끼고는 했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호문클루스라는 사실을.

살며시 입술을 깨문 슈가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세자빈. 일어나셔야 합니다.”

프라임 왕국의 기사단장.

케단 하시빈이었다.

제 남편과 가장 절친한 사이인 남자의 조언에 슈가가 눈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정리는 모두 끝난 건가요. 케단?”

“예. 모두 끝내놨습니다. 남은 건….”

말을 흐린 케단이 아더와 카셀을 가리켰다.

“저 둘입니다.”

“…….”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세자빈. 제 경험상 이런 자리의 목격자를 살려두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의 조언에 슈가의 눈이 커졌다.

“그 말씀은…?”

“흔적을 지워야 합니다.”

“…….”

“이건 아주 큰 일입니다. 아케인 뒷거리 세력이 프라임 왕국의 세자빈을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면 여러 파장이 있을 겁니다.”

그의 단언에 슈가의 커졌던 눈이 점차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뇨 케단. 그냥 보내주죠.”

“하지만 세자빈!”

“저도 어젯밤 만난 저 둘을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케단.”

케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 을?”

“만약 저 둘…정확히는 던을 건든다면, 케단은 몰라도 저 병사는 다 죽는다는 사실 말이에요.”

“……!”

“제가 바란스를 만나고 어떻게 여기 있겠어요? 그리고 저 둘은 또 어떻게 바란스에게서 살아남은 걸까요?”

슈가의 말에 케단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 사이 슈가가 나직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굳이 벌집을 건드리지 말아요. 이건 세자빈으로서 명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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