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92화 (92/265)

제92화

아더가 질문했다.

“당신이 죽으면, 반 프라임. 그분은 과연 살아있을까요?”

눈꼬리를 파르르 떤 슈가가 대답했다.

“살아 있겠죠. 전 인간이 아니라 인형이자 괴물이니깐.”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잖아요?”

“인간이 어떻게 괴물을 사랑하죠?”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과 결혼을 했을까요?”

슈가의 말문이 다시 막혔다.

그 사이 아더가 비스트를 휘리릭 돌려 잡으며 말했다.

“아니면 뭐, 호문클루스라는 걸 안 밝혔나요? 그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고.”

슈가의 눈가가 붉어졌다.

울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지만, 결국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다.

“아뇨… 그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

“제가 괴물이라는 것도, 제 이상형에 맞춰 의도적으로 제작된 인형이라는 사실도….”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슈가가 죽으면 슬퍼하지 않을까요?”

“그렇겠죠. 하지만… 제가 살아있으면 그 사람은 더 불행해질 거예요.”

“왜죠?”

“바란스는 그를 꼭두각시 왕으로 만들 생각이니깐요.”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바란스 씨, 생각보다 포부가 크신 분이었네요.”

“포부가 아니라 그릇에 맞지 않은 야망이 큰 인간이죠. 저는 절대로 그 꼴을 제 두 눈으로 못 보겠어요.”

슈가가 입술을 깨물었다.

“반은 프라임 왕국을, 백성을 사랑해요. 하지만 이대로 가면 반은 제 손으로 그 왕국과 백성을 파괴시킬 거예요. 바란스의 의지에 따라.”

“그래서 죽으시겠다?”

“네. 이성적인 선택이죠.”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도망치는 건 아니고요?”

“…네?”

“아니 그렇잖아요. 바란스가 문제면 바란스를 죽여야지, 왜 당신이 죽으려고 해요?”

슈가가 눈을 끔뻑였다.

“지금… 저 괴물을 저보고 죽이란 말씀이세요?”

“왜 못 죽여요? 사람은 누구나 다 죽어요, 슈가.”

아더의 비스트가 슈가의 이마에 겨눠졌다.

깜짝 놀란 그녀가 몸을 흠칫 떨 때, 아더가 경고했다.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

“당신 지금 모습이 옛날의 저를 떠올리게 해서 다시 선택권을 줄게요. 이대로 제 손에 죽을래요? 아니면 살아남을래요?”

정신을 차린 슈가가 중얼거렸다.

“살아남으면… 뭐가 있죠?”

“뭐가 있긴요. 당신 남편이 기다리고 있겠죠.”

“…….”

“그리고 바란스를 죽을 기회도 있고요. 하지만 죽으면 모두 끝이에요 슈가.”

설명을 끝마친 아더가 다시 질문했다.

“자. 제 오지랖은 여기까지예요. 이제 선택하세요. 죽으실 거예요?”

방아쇠를 쥔 아더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슈가는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살고 싶어요….”

“…….”

“살아서 그 남자랑 평생 같이 있고 싶어요.”

그 순간 겨누어졌던 비스트가 내려간다.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린 슈가가 털썩 주저앉았을 때였다.

아더가 입꼬리를 올리며 질문했다.

“그럼 재협상을 해 볼까요?”

“…협상이요?”

“원래 제 임무는 당신을 프라임 왕국까지 데려다주는 거였죠. 하지만 의뢰주가 아무래도 마음을 바꾼 모양이더라고요.”

슈가의 눈이 커졌다.

반대로 아더는 능글 맞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당신을 프라임 왕국으로 데려다주면, 저한테 뭘 해줄 수 있죠 슈가?”

* * *

아더는 생각했다.

‘바란스 씨. 어차피 나도 살려둘 생각이 없을 거야.’

제 딸마저 이용하는 남자가 목격자를 살려둘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저 남자와 맞서 싸워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정령들의 힘까지 모두 쓴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단 말이지.’

그 탓에 아더는 슈가를 이용하기로 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준 아더였다.

그녀가 있다면 적어도 섣불리 덤벼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사이 슈가가 고민했다.

‘…뭘 해줘야 하지?’

던이란 용병이 저를 도와준다고는 했지만, 그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몰랐다.

‘애초에 그는 용병. 합당한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마음이 바뀌는 것도 순식간일 거야.’

더군다나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웬만한 보상으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려 칠황… 삼목의 바란스님을 피해 달아나야 하니깐.’

그 탓에 슈가는 고민했다.

만약 이대로 아더 바이에른이 저를 돕지 않는다면, 높은 확률로 다시 아케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제 배신을 바란스는 절대로 간과하지 않을 거기 때문이다.

‘기억이 지워지고 완전한 꼭두각시 인형이 되겠지.’

그걸 고려하면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제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 몰랐다.

고민하던 슈가는 곧 결심을 하고서 말했다.

“보통 보상으로는 안 되겠죠?”

“그런 건 아닌데 제 마음이 동할 물건이면 좋죠.”

어차피 원하는 건 슈가.

당신 그 자체니깐.

아더가 속으로 이 말을 삼켰을 때였다.

슈가의 표정이 뒤바뀐다.

“…?”

그 표정 변화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그녀가 질문했다.

“만약 합당한 무언가를 준다면… 절 책임지고 프라임 왕국으로 데려가 주실 건가요?”

“어… 그렇죠?”

이 말에 슈가가 대답하는 대신 눈을 감는다.

그 모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저런 비장한 말을 하지 이 사람?’

그 때 그녀의 가슴에서 갑작스러운 빛이 터져나왔다.

“…!”

놀란 아더가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섰다.

그 사이 눈을 뜬 슈가가 숨을 몰아내쉬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최상급 영단을 원했었죠.”

“…….”

“하지만 최상급 영단이라는 건, 실존하지 않아요. 그 어떤 영단도, 이 심장의 조각만도 못하니깐.”

이 말과 함께 슈가가 제 가슴으로 부터 빠져나온 무언가를 내밀었다.

‘저게… 뭐지?’

작은 결정석이었는데, 엄청난 마나가 그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니… 마나 뿐만이 아니야. 마력도 뿜어져 나오고 있어.’

그 탓에 아더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인간을 닮은 인형, 혹은 호문클루스.

이 말도 안 되는 실험이 완성되려면 그에 걸맞는 대가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그 대가에 어울리는 게 뭐가 있을까?

‘한 생명을 창조하는 일…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아더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설마 그거… 드래곤 하트 인가요?”

슈가가 힘 없이 웃었다.

“정확히는 조각이죠.”

이 말과 함께 드래곤 하트 조각이 내밀어졌다.

“완전한 드래곤 하트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조각 중 하나. 이걸 보수로 드릴게요 던.”

* * *

계산을 벗어난 상황 전개에 아더는 당황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드래곤 하트 조각이 슈가의 가슴에서 등장한다고?

그리고 그 조각을 자신에게 준다고?

그 때 슈가가 중얼거렸다.

“이건… 제 몸속에 있던 조각 중 반을 때어 낸 거예요. 이렇게 되었으니 제 알 수 없는 수명도 이제 기간이 정해졌겠죠.”

“…….”

“그뿐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제 늙어갈 수 있을 거예요.”

슈가가 웃었고, 아더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조각을 보수로 주신다고요?”

“당신이 받지 않으면, 어차피 바란스의 손에 다시 넘어갈 물건이에요.”

“…….”

“그럴 바에는 이런 도박도 나쁘지 않죠. 당신이 이 하트를 먹고 강해지면 저는 남편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깐.”

설명을 끝마친 슈가가 기절했다.

“…슈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더가 그녀를 안아들었다.

옆에 있던 운디네가 속삭였다.

[아더 단순 기절이에요.]

그녀의 설명에 아더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어딘가 넋이 나간 채로 눈을 끔뻑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네 이거….’

그 때 슈가의 손에 들린 하트 조각이 번쩍였다.

파앗-!

조각이 내뿜는 찬란한 빛에 아더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 박동과 함께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벽 좀 쳐줘 노움.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벽을.”

노움이 아더의 말에 따라 거대한 벽을 세웠다.

쿠크크크-!

모든 빛이 차단된 그 어둠 속에서, 아더는 손에 쥔 드래곤 하트 조각을 바라보았다.

‘뭔지 모르지만… 기회야.’

그것도 최고의 영약으로 소문이 난 드래곤 하트 조각을 먹을 수 있는 기회.

그래서 아더는 필요없는 잡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지금은 이 하트를 먹고,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그게 중요한 거지.’

아더는 벅차오르는 심정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과거 내가 이륙했던 경지는 6서클.”

과연 이 조각으 먹게 되면 그 경지를 달성 할 수 있을까?

아더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서 드래곤 하트 조각을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 순간.

파앗-!

터져나오는 빛과 함께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

동시에 아더의 심장 팍에 새겨진 고리가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 기묘한 감각 속에서 아더가 중얼거렸다.

“보여… 전생의 경지가.”

* * *

“크헉.”

피를 토한 아론이 제 심장을 부여잡는다.

그 광경을 피로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바란스가 잘려버린 또 하나의 제 머리를 바라보았다.

“…피해가 크군. 설마 내 머리가 잘릴 줄이야.”

이 말과 함께 아론이 충혈된 눈으로 바란스를 노려보았다.

“이… 개자식이!”

외침과 함께 아론이 마지막 발악을 시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피투성이가 된 카시야스와 파란이 아론의 몸에 칼과 창을 꽂아넣는다.

“끄어어어….”

신음과 함께 해적의 부선장이 추락했다.

아케인 뒷거리를 주르잡던, 해적의 2인자의 결말치고 허무한 죽음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지.’

이 뒷거리에 저런 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재능이 있고 패기 넘치던 젊은이들이 그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생을 달리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단지 아론, 저 자가 유독 그 재능이 컸을 뿐이다.

‘결국 살아남는 건, 재능있고 패기 넘치는 자가 아니라 나 같은 늙은이지.’

이 바닥의 격언이 괜히 오래 살아남는 놈이 승리자란 말이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해적의 2인자를 처치한 바란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군. 자네들은 괜찮나?”

질문에 카시야스와 파란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것 같군요.”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습니다.”

바란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이네. 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프라임 왕국을 손에 넣고 숙적이었던 해적을 마침내 끌어내는 거야.”

바란스의 말에 카시야스와 파란이 입꼬리를 올렸다.

“기대되는 군요.”

“드디어 이 거리를 먹는 겁니까?”

바란스가 대답하는 대신 방긋 미소지었다.

그 후 시선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응?”

잠시 눈을 끔뻑인 바란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뭐지?”

정지한 열차 사이에 거대한 흙더미가 보였다.

옆에 쓰러진 것은 슈가 하이빈으로 보엿는데, 저 흙더미는 아무리 고민해봐도 정체를 짐작 할수 없었다.

“흠… 뭐 상관 없나. 뭐가 되었건.”

어차피 해적의 부선장이 죽은 이상 상황은 종결 됐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바란스가 부유마법을 해체했다.

카시야스와 파란도 같이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 후 걸음을 옮긴 바란스가 슈가 하이빈을 회수하기 위해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거대한 흙더미가 갑작스레 무너지며, 빛이 터져나왔다.

“뭐?”

탄성을 터트린 바란스가 저도 모르게 눈을 치켜떴다.

‘이 마나는… 대체 뭐라 말인가?’

이 말과 함께 바란스의 몸이 저도 모르게 굳어졌을 때였다.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아더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바란스가 저도 모르게 질문했다.

“자네… 뭔가?”

많은 의미가 함축된 그 질문에 아더가 웃으며 대답했다.

“글쎼요. 일단 인간이지 않을까요?’

그 후 감고 있던 눈을 뜬 아더가 제 심장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느껴지는 진동에 아더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렀다.

“아아….”

여윤에 몸을 떨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길었네요. 이제야 전생의 경지에 다시 들어서다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