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86화 (86/265)

제86화

바란스의 선언과 함께 시작된 난전 속에서 카셀은 생각했다.

‘여기서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누구?’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난전을 벌이는 용병, 마법사, 칼잡이, 브로커.

모두가 위험했지만 가장 위험한 건 제 옆에 있는 던이었다.

‘그날 보여 줬던 그 칼질은… 진짜다.’

그 탓에 난전이 시작된 순간,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해서 갑자기 칼을 들이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동료도, 그렇다고 해서 고용 관계도 아니야. 충분히 칼을 들이밀 수 있지.’

그렇게 카셀의 신경이 온통 던에게로 집중되었을 때였다.

턱을 쓰다듬던 아더가 난장판이 된 경매장 내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흠… 일단 확 쓸어버리는 게 좋겠지?”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윌렛이 흠칫 놀랬다.

“…뭐? 상급 정령이라고?”

탄성과 함께 아더의 옆에 나타난 푸른 머릿결의 여인이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음… 일단 싸움부터 멈춰 볼까, 운디네?”

[뜻대로.]

고개를 끄덕인 운디네가 손짓했다.

그 순간 마력으로 이루어 낸 가짜 기적이 아닌 진짜 기적이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다.

콰콰콰쾅-!!

거대한 물줄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것은 곧 거대한 허리케인이 되었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데스 매치를 벌이던 브로커와 용병들은 뒤늦게 그 재앙을 발견하고서 흠칫 놀랬다.

“저게… 뭐야?”

“마법사?”

“아니 저건….”

말을 흐린 마법사 중 한 명이 경악해 소리쳤다.

“무, 물의 상급 정령!?”

그 외침과 함께 운디네의 손을 벗어난 허리케인이 경매장을 강타했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쏟아진 자연의 분노가 모든 걸 잠재웠다.

“끄어어어….”

조금 전까지 총을 들었던 용병도, 칼을 휘두르던 브로커도.

그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오로지 바란스만이 놀란 눈빛으로 아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호라… 어떻게 C등급 용병이 상급 정령을 다루는 거지?”

이 말과 함께 찾아온 침묵 속에서, 아더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

칼을 치켜들고 있던 카셀이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치켜들었던 칼은 내려놓지 못한 채 아더를 노려볼 때였다.

아더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겁먹지 마세요, 카셀.”

“……?”

“안 잡아먹어요. 두 팀 남기라 했으니, 카셀을 남겨 둘게요.”

이 말과 함께 몸을 돌린 아더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카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얕잡아 보였어?’

충격에 카셀의 입이 벌어질 때, 옆에 있던 보니가 혀를 찼다.

‘흘러나오는 소문을 듣고 괴물이라고는 짐작했는데… 설마 이 정도였다고?’

마법사보다 귀하다 알려진 정령술사인데 상급의 정령까지 다루다니?

이 정도면 왕궁에 취직해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이었다.

‘도대체 윌렛 어르신은 어떻게 저 괴물을 영입한 거지?’

생각과 함께 보니가 입맛을 다실 때, 윌렛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더를 바라보았다.

‘뭐야… 도대체 언제 저렇게 성장한 거야?’

던에 관한 보고를 들었지만, 솔직히 말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던이 다루는 정령은 상급 정령이 아니라 중급 정령 아니던가?

‘그 짧은 사이에… 정령 친화력이 올라가서 상급 정령을 다루게 됐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마력이나 마나를 모으는 것보다 더 올리기 힘든 게 정령 친화력 아니던가?

그 탓에 아더의 등을 지켜보는 윌렛의 시선이 가늘어질 때였다.

물바다가 된 경매장 한복판에 멈추어 선 아더가 바란스를 향해 말했다.

“끝난 것 같은데, 슬슬 이야기해 주시는 게 어때요?”

질문에 바란스의 두 개의 목 중 하나가 갸웃거렸다.

“나는 죽이라고 했지, 기절시키라고 안 했는데?”

“에이.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어떻게 칼질을 해요.”

“……?”

“이 정도면 됐잖아요? 딱 보니깐 이런 재미없는 데스 매치를 하는 이유가 실력 검증도 할 겸, 입을 다물게 할 목적 아니었어요?”

바란스가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맞긴 한데… 태도가 불순하군?”

물음에 아더는 대답하는 대신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를 지켜보던 바란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아. 그만한 실력이 있으면 그래도 되지. 꼭 자네 브로커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군.”

이 말과 함께 바란스가 손짓했고, 어느 사이엔가 등장한 고블린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치우도록 하거라. 기억을 지우는 약도 좀 먹여 놓고.”

“끼룩끼룩… 알겠습니다, 주인님!”

대답과 함께 고블린들이 물러났다.

그 속에서 몸을 돌린 바란스가 손짓했다.

“그럼 의뢰 이야기를 해 볼까. 이곳에서 할 수는 없으니 내 방으로 따라오게.”

* * *

바란스는 경매장 뒤편에 난 문을 통해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 뒤를 따르던 윌렛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일부러 소문을 흘린 거였군.”

옆에 있던 아더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일부러 소문을 흘렀다뇨?”

“최상급 영단에 관한 소문 말이네. 안 그래도 이상하게 여기고는 있었는데, 설마 용병과 브로커를 모으려고 일부러 흘린 거였다니….”

그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요, 어르신. 의뢰를 맡기고 싶으면 그냥 특정 용병과 브로커를 지목하면 되지 않나요?”

“해도 되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건 눈에 띌 거야.”

“…눈에 띈다고요?”

“자네가 아는 것보다 이 바닥은 좁네. 한 다리를 거치게 되면 다른 10곳에서 소문이 나는 게 이 바닥이니깐.”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그럼 최상급 영단은 사실 없고, 미끼였다?”

윌렛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더도 굳이 더 질문하지 않았다.

‘쩝… 먹지는 못하더라도 실물 정도는 확인하고 싶었는데.’

상급 영단까지는 어떻게 해서는 구할 수 있지만, 최상급 영단은 말 그대로 전설이었다.

‘애초에 드래곤 하트 같은 재료를 넣어 만들어진 게 최상급 영단이니깐.’

그리고 지금은 드래곤이 자취를 감춘 시대다.

드래곤 하트를 노리고 칼을 든 드래곤 슬레이어도 하나의 구전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걸 고려하면… 지금 시대에 최상급 영단이 나올 리가 없긴 하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앞장서 걸어가던 바란스가 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는데, 그의 입이 달싹인 순간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공간이 드러났다.

“오….”

탄성을 흘린 아더가 고급스러운 자재가 즐비한 응접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봤던 묘비의 마법이랑 똑같네?’

하긴 이 암시장을 만든 단체가 칠황이니, 바란스가 마법을 걸었다 해서 놀라울 것은 없었다.

그때 찻잔과 차를 들고 나타난 바란스가 미소 지으며 권했다.

“편하게들 앉게나.”

“…….”

“초대 과정이 다소 불친절했어도, 지금은 내 손님이니깐.”

그의 말에 보니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칠황의 바란스 님을 두고 어떻게 편하게 앉을 수 있을까요?”

“자네 옆에 있는 둘은 벌써 앉았는데?”

“……?”

시선을 돌린 보니가 자리에 착석해 있는 카셀와 아더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어, 앉으면 안 되는 건가, 보니?”

“…아뇨. 계속 앉아 있어요, 카셀.”

한숨을 내어 쉰 보니가 자리에 앉았다.

윌렛도 천천히 허리를 숙여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 차를 따른 찻잔을 건네준 바란스가 다시 미소 지었다.

“독이나 그런 건 타지 않았으니 안심하게.”

윌렛과 보니가 몸을 움찔 떨었지만, 카셀과 아더는 태연히 차를 들이켰다.

“맛이 좋은데요?”

“좋을 수밖에. 드루이드가 기르는 찻잎이거든.”

“오… 드루이드라면 원시인 아니에요?”

“옛날에는 자연을 숭배하는 사제이기도 했지. 지금은 뭐…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낙오자가 됐지만.”

이 말과 함께 두 손으로 두 개의 찻잔을 집은 바란스가 두 개의 입으로 호로록 차를 들이켰다.

그 모습을 아더가 눈빛을 반짝이며 지켜보던 그때, 윌렛이 입을 열었다.

“이제 설명을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설명?”

“의뢰의 내용이건, 지금 상황에 관해서건 해명이 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바란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성격 급한 건 여전하군, 윌렛.”

“제가 불합리한 상황을 못 참아서.”

“크큭… 그래. 자네도 그럴 자격은 되지…. 그래서 뭐가 궁금한가?”

윌렛이 눈빛을 빛냈다.

“이런 쇼를 벌이는 이유가 뭡니까?”

“쇼?”

“최상급 영단을 미끼로 소문을 흘려서, 용병과 브로커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바란스가 두 개의 턱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야 의뢰를 맡기기 위해서지 않겠나?”

“그 이유가 전부입니까?”

“그건 아니긴 한데… 흠.”

잠시 고민한 바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히 설명을 하는 게 좋겠군. 그래야 의뢰를 수행할 자네들도 상황을 파악할 거고.”

바란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어디선가 튀어나온 전단지 하나가 허공에 떠올랐다.

‘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눈빛을 빛냈다.

전단지에 그려진 인물이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다.

[캡틴 마시우스]

[현상금: 3만 2천 골드]

아케인의 뒷거리를 양분하는 세력 중 하나인 해적.

그 해적을 이끄는 캡틴의 현상 수배 전단지였기 때문이다.

그사이 바란스가 허공에 떠오른 그 전단지를 툭, 윌렛 앞으로 건넸다.

“…해적과 엮인 일이었습니까?”

“엮였다기보다는 놈들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노리는 거지.”

바란스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나도 이런 쇼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해적 놈들의 숫자가 여간 많나? 우리 조직 내부에도 놈들의 첩자가 수두룩해. 아무리 골라내도 다시 자라는 잡초인 양.”

“…….”

“그래서 적당한 무대를 꾸며 봤지. 아케인에 존재하는 수많은 용병과 브로커. 그들이 가장 원하는 물건을 소문으로 흘려, 나를 찾아오게끔 말이야.”

윌렛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사이 끌끌, 웃음을 터트린 바란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뭐…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의뢰 자체는 간단하네. 내 딸을 [프라임 왕국]까지 안전하게 호위해 줄 것.”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바란스 님의 따님을요?”

“그래.”

“…결혼을 하신 분이셨어요?”

바란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결혼 못 할 사람으로 보이냐?”

아더가 아차 싶어 사과했다.

“이런, 제가 실수했네요. 머리가 두 개인 사람도 결혼이 가능한지 궁금해서 그만….”

“…….”

“사과드릴게요, 바란스 님. 사람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데 쩝….”

바란스가 눈을 끔뻑였고, 윌렛이 경악해 입을 벌렸다.

그 침묵 속에서, 카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사람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

그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보니였다.

“그, 그! 일단 호위 대상부터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바란스 님?”

이 말에 넋을 놓고 있던 바란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자네들 고생이 꽤 많겠구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니의 말에 바란스가 손뼉을 쳤다.

그 순간 공간이 일렁이더니, 검은 흑발의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지켜보던 아더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바란스와 달리 검은 흑발의 여인은 머리가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딸 맞나? 완전 다르게 생겼는데?’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검은 흑발의 여인과 바란스를 번갈아 지켜볼 때였다.

인형 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검은 흑발의 여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프라임 왕국의 세자빈(嬪), 슈가 하이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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