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드래곤 하트로 만든… 최상급 영단이 경매장에 나온다고요?”
윌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소문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와… 진짜로 그런 게 있긴 하나 보네요. 그것도 드래곤 하트로 만든 영단이라니.”
말을 흐린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최상급 영단을 먹으면, 어떻게 되려나?’
저번에 레온이 건네준 상급 영단을 먹고서 단번에 4서클이 됐다.
그 놀라운 효능을 생각하면 최상급 영단을 먹는다는 가정하에 5서클이 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어쩌면 6서클이 될지 모르지. 흠… 이거 욕심나는데?’
혈통도 중요하지만, 가슴팍의 고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했다.
특히 5서클의 달성은 의미하는 바가 컸는데, 5개의 고리를 엮게 되면 그때부터는 검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검기까지 두르게 되면… 이제 웬만한 상대한테는 안 질 것 같은데?’
고결한 검사만이 발현할 수 있는 절기.
지금 상태에서 그 절기마저 발현하면, 검은 십자가의 테이큰을 다시 만나도, 지지 않을것 같았다.
‘일단 검기를 두르게 되면 베어 내지 못하는 게 없으니깐. 뭐… 현실적으로 보면 나오지 않을 것 같지만, 나쁘진 않네.’
때마침 볼일도 다 봤으니, 경험 삼아 경매장에 참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윌렛에게 물었다.
“저도 참석해도 되죠, 윌렛 어르신?”
“…참석하는 거야 자유지. 그런데 자네 볼일은 다 끝마쳤나?”
“네. 때마침 저기 오네요.”
이 말과 함께 검을 들고 사라졌던 고블린이 다시 나타났다.
“끼룩끼룩. 손님, 여기 계산 끝마친 검입니다.”
“오. 고마워요, 고블린 씨.”
시선을 돌린 아더가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기이한 소리와 함께 드러난 핏빛 검면에 윌렛이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 나쁜 검이군. 이런 걸 왜 구매했나?”
“핏빛이 돌아서요.”
“…?”
“피를 잔뜩 머금었는데, 날이 생생하잖아요? 뭔가를 베는 데 딱인 검이란 소리죠.”
윌렛이 눈을 끔뻑였다.
옆에 있던 카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벌. 난 이제 자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 검은 결국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도구. 그 도구에 옳고 그름은 없지.”
정신을 차린 윌렛이 혀를 찼다.
“…보니. 자네 용병도 많이 독특하군.”
“후후… 재밌는 친구죠. 그래서 말인데 윌렛 어르신. 이왕 목적도 같아졌는데 같이 가는 건 어때요?”
윌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또 모르잖아요? 만약이라도 최상급 영단이 나오면 서로 힘을 합치게 될지?”
윌렛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자넨 그 영약이 정말로 나온다고 믿는 겐가?”
“글쎄요.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죠. 그래서 윌렛 어르신도 오신 거 아니에요?”
윌렛이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보니가 어깨를 으쓱였다.
“중요한 건 나올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니깐 저희 둘 다 여기에 온 거 아니겠어요?”
침묵하던 윌렛이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많이 컸군.”
“칭찬 고마워요.”
윌렛이 몸을 돌렸다.
둘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아더가 뒤따르며 말했다.
“보니라는 브로커랑 연이 깊어 보이시네요?”
“예전에 내가 관리하던 용병이었지.”
“…오? 보니 씨가 예전에 관리하던 용병이었어요?”
“꽤 오래전 일이야. 지금은 같은 사업을 하는 경쟁 상대일 뿐이지.”
윌렛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니와 카셀까지 합류한 네 사람은 탑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이미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런 아더의 일행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다들 수준이 높은데요?”
“그런 소문이 돌았으니, 웬만한 인간들은 다 모였다 봐야지.”
이 말과 함께 윌렛이 좌석 하나를 차지하고서 앉았다.
아더가 그 옆에 앉았고, 보니와 카셀이 순서대로 그 옆에 앉았다.
그 속에서 경매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나와 마력을 살피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재밌네. 4서클에 이른 칼잡이도 있고, 20년 된 마법사도 있어.’
단순히 뒷거리의 용병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수준이 높은 자들이었다.
‘이런 사람들까지 참석한 걸 보면… 영 헛소문은 아닌 모양인데?’
하긴, 윌렛이 직접 나선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진짜로 최상급 영단이 나온다는 소리인가?’
턱을 쓰다듬은 아더가 제 통장에 넣어 둔 비자금을 떠올렸다.
‘흠… 천 골드 정도 있는데, 그걸 털어도 살 수 있으려나?’
어디 가서 부족한 금액은 아닌데, 막상 최상급 영단을 구매할 돈이라 생각하니 부족해 보였다.
그 탓에 아더가 입맛을 쩝 다시는 사이, 경매가 시작됐다.
사회자로 등장한 것은, 턱시도를 입은 고블린이었다.
“끼룩끼룩….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쓰고 있던 안경을 추켜올린 고블린이 손짓했다.
그 순간 거대한 플라스크가 등장했다.
지켜보던 아더가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오. 문어잖아?”
그것도 보통 문어보다 배는 큰 덩치를 자랑하는 문어가 플라스크 안에 잠들어 있었다.
그사이 턱시도 고블린이 플라스크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수백 년 전, 바다를 지배했던 크라켄의 후손입니다. 끼룩. 아주 보기 드문 몬스터죠.”
“…….”
“튀겨 먹건 삶아 먹건, 맛이 좋습니다. 끼룩끼룩. 경매 시작가는 100골드부터 하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푯말이 들어 올려졌다.
“120… 150… 200골드에 낙찰됐습니다, 끼룩끼룩.”
플라스크 문어가 사라지고, 다음에 등장한 것은 웬 시체였다.
지켜보던 아더는 눈빛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웨어 울프 시체네?”
조금 전 등장했던 크라켄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보기 드문 몬스터였다.
‘확실히 암시장이라 그런지, 보통 경매장하고는 다르네.’
시체가 경매 물건으로 나오는데, 그걸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이런 경매장이면… 진짜 최상급 영단이 나오는 거 아니야?’
은근한 기대감과 함께 아더가 집중력을 놓지 않고 경매를 지켜봤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색하게, 최상급 영단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끼룩…! 이 지팡이를 끝으로 경매는 끝입니다.”
턱시도를 입은 고블린이 절도 있게 허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 모습에 관객석으로부터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이게 끝이라고?”
“그럼 최상급 영단은 헛소문인가?”
“…역시 이 바닥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
그 소란 속에서 아더도 입맛을 쩝 다셨다.
“킁. 사지는 못하더라도 실물은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순간, 줄곧 침묵하던 윌렛이 입을 열었다.
“다시 앉게, 던.”
“…왜요, 윌렛 어르신?”
윌렛이 턱짓했다.
그 턱짓에 따라 시선을 돌리니, 머리가 두 개인 노인이 어느 사이엔가 단상 위에 나타나 있었다.
‘칠황의 삼 목… 바란스잖아?’
눈을 치켜뜬 아더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 단상 위에 올라선 바란스가 입꼬리를 올린 채 설명했다.
“지금부터 내가 지목하는 사람들은, 잠시 남아 주게나. 맡기고 싶은 의뢰가 있어.”
* * *
바란스가 제일 먼저 언급한 건 윌렛과 보니였다.
“데리고 온 용병도 같이 남아 주게.”
그 후, 바란스는 몇몇의 이름을 더 추가 언급했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몇몇만 지목하는 걸 보니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가려 뽑은 거구나.’
그가 가려낸 사람들 모두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실력이 제법 좋은 이들이었다.
그 때 쉼 없이 지명을 하던 바란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선언했다.
“음… 이쯤이면 되겠군. 나머지는 돌아가도 좋네.”
아직 자리에 남아 있던 사람 중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돌아가라고? 지명이 끝났단 말이오?”
“그렇다네.”
“아니, 뽑는 기준이 대체 뭐요? 나도 저들에 비….”
호기롭게 자리에서 일어난 사내가 입을 다문다.
정확히는 벌려야 할 입이 사라졌다.
툭.
호기롭게 소리쳤던 사내의 얼굴이 잘려 바닥을 굴렀다.
지켜보던 아더는 탄성을 터트렸고, 주위에 있던 자들은 흠칫 놀랬다.
그사이 바란스가 피를 묻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중얼거렸다.
“또 불만 있는 사람 있나?”
“…….”
“없으면 나가 주게. 경매는 끝나도 암시장은 계속 열려 있을 테니 즐거운 시간이 될 거야.”
지목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 바란스가 시선을 돌렸다.
“흠… 50명. 뭐 충분하겠군.”
고개를 끄덕인 바란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4마리의 고블린이 거대한 의자를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와인과 치즈도 좀 가져오너라.”
“네, 주인님.”
고개를 숙인 고블린들이 다시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사이 시선을 돌린 바란스가 50명의 용병과 브로커를 향해 말했다.
“다들 서로 알지?”
“…….”
“아마 알 거야. 리스트를 쫙 뽑았거든. 최근 뜨는 신인들, 과거의 망령, 현재 명성을 떨치는 자들까지. 내 기대보다 꽤 괜찮은 자들이 몰려왔으니 아마 모를 리가 없겠지.”
끌끌 웃음을 터트린 바란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런 의미에서 딱 두 팀. 두 팀만 살려 놓을 생각이야.”
“……?”
“그 두 팀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좀 죽여 주게. 무슨 말뜻인지 알겠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바란스가 두 개의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두 팀만 살아서 내게 의뢰를 받을 수 있네. 나머지는 좀 죽어 줘야겠어.”
선언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은 바란스가 어느 사이엔가 손에 쥔 와인을 들이켜는 순간 깨졌다.
“…뭐?”
“죽여서 딱 두 팀만 남겨 놓으라고?”
“지금 우리보고 데스매치라도 하란 소리야?”
웅성거림과 함께 자리에 남아 있던 용병과 브로커가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그 혼란을 지켜보던 윌렛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일이 꼬였군….”
“일이 꼬였다고요, 윌렛 어르신?”
“저 인간이 나타났을 때, 자리를 떴어야 했어.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켰군.”
이 말과 함께 윌렛의 시선이 바란스에게로 향할 때였다.
옆에 있던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시작했는데요?’
바로 맞은편 자리에 있던 용병들이 거칠게 소리치며 칼과 권총을 뽑아 들었다.
“야 이 개새끼야! 왜 내 뒤로 오는 거지!”
“뭔 개소리야! 그쪽이야말로 총구를 겨눴잖아!”
외침과 함께 두 용병이 서로의 목에 칼과 총구를 겨눴고, 그걸 신호로 경매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가오면 죽인다!”
“허튼짓 하지 마! 바로 쏴 버릴 거니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힐끔 시선을 돌렸다.
보니와 카셀도 어느 사이엔가 거리를 벌린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윌렛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윌렛 어르신.”
상념에서 깨어난 윌렛이 대답했다.
“오는 놈만 처리하고, 굳이 가지는 말게.”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다 쓸어버리면 안 돼요?”
“…뭐?”
“그럼 빨리 끝나잖아요. 제가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를 싹 쓸어버리면, 굳이 죽이지 않고도 끝날 것 같은데?”
윌렛이 눈을 끔뻑였다.
“…자네가 저들 모두를 기절시킬 수 있다고?”
“네.”
“갑자기 소드 마스터라도 됐나?”
방긋 웃은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소드 마스터는 아닌데, 좀 강해졌어요. 음….”
말을 흐린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저 정도 수준이면 딱 5분 안에 정리가 끝날 것 같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