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아더가 카셀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난 사실에 질문했다.
“카셀 씨 혹시 여기 드래곤 때문에 온 거예요?”
“드래곤? 갑자기 용은 왜 찾아?”
아더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그때 드래곤에게 당하는 환각에 걸렸다 하셨잖아요.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요.”
카셀이 움찔 놀랬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그가 툭 중얼거렸다.
“그런 적 없다. 날 현혹하지 마라, 라이벌!”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뭐…. 그럼 뭐 때문에 오신 거예요?”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원하는 물건이요? 그게 설마 드래곤의 피?”
“…아니라니깐, 계속 그러네!!”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거짓말을 진짜 못 하네.’
떨리는 눈꼬리나 입꼬리가, 조금 전 외침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그럼 진짜로 드래곤과 관련된 뭔가가 있다고?’
전설 중에 전설이라 불리는 드래곤이 암시장에?
말이 안 된다 생각하지만, 또 그럴 수도 있었다.
아더가 생각에 잠겨 턱을 쓰다듬는 사이, 표정을 수습한 카셀이 툭 질문한다.
“그러는 던, 너는 칼을 사러 온 모양이지?”
“네.”
“이 칼을 사려고?”
질문에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조금 전, 제 눈길을 끌었던 검 한 자루가 날카로운 예기를 번뜩이고 있었다.
보통의 칼하고는 다르게, 붉은빛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래서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좋은 칼은 피를 잔뜩 머금은 칼이지.’
그 많은 피를 먹고도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좋은 칼이란 증거.
그리고 제 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건 이 칼이었다.
“네. 아마 산다면 이 칼을 고를 것 같아요.”
대답에 카셀이 혀를 찼다.
“골라도 이런 마검을 고르는군.”
“…마검이요?”
“이놈 꽤 유명한 놈이야. 에고 소드까지는 아닌데, 피를 머금으면 크기가 커지는 아주 독특한 놈이지.”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피를 머금으면 크기가 커진다고요?”
“지금은 평범한 레어피어지만, 일정량의 피를 머금으면 바스타드 소드까지 커진다더군.”
아더가 탄성을 터트리며 물었다.
“오… 그런데 이 칼을 카셀 씨는 어떻게 알고 있어요?”
“칼잡이가 칼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당연하지 않나? 뭐…. 그중에서도 이놈의 악명은 꽤 자자해서 모를 수가 없지.”
말을 흐린 카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피를 안 주면, 주인의 피를 빨아먹는 저주받은 마검… 최근 사라졌다 들었는데, 흘러들어 온 곳이 이 경매장인 모양이군.”
그의 말에 아더가 시선을 돌려 다시 칼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네. 제 주인의 피를 빨아먹는 칼이라니?’
그래서 피를 머금은 예기를 띠었던 걸까?
고민하던 아더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저주가 어떻건 간에… 마검이란 별칭까지 붙을 정도면 쓸 만하단 소리잖아?’
더군다나 이미 비스트라는, 악명이 자자한 권총의 성능을 느껴 본 바.
이런 소문을 떨치는 아티팩트들은 대게 성능이 좋았다.
그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린 아더가 앞에 있는 고블린을 향해 물었다.
“가격이 얼마죠, 고블린 씨?”
옆에 있던 카셀이 흠칫 놀랬다.
“내 말 못 들었나, 라이벌? 이거 마검이라니깐?”
“마검이니 명검이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
“칼이면 칼이지. 명검은 사람 안 죽여요? 둘 다 똑같이 위험한 물건인데.”
아더의 지적에 카셀이 입을 다물었다.
“…과연. 그것 또한 맞는 소리군. 명검도 결국엔 칼. 사람을 죽이는 무기지….”
카셀의 탄성과 함께 고블린이 가격표를 보여 주었다.
이 마검을 보고 간 손님들이 제시한 가격이었다.
‘흠… 100골드부터 시작해서, 지금 400골드네.’
그런데 가격이 4배나 뛴 것치고, 그걸 적은 손님은 단 3명뿐이었다.
그 탓에 아더는 자연스레 윌렛의 조언을 떠올렸다.
‘나한테 사기를 치고 있구나. 이 고블린.’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솔직히 말해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서 뻔한 사기를 당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은 금방 떠올랐다.
사기에는 사기로 맞대응하는 게 제일로 좋았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품속을 뒤져, 흰 수염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
아더가 꺼내 든 카드를 지켜보던 고블린이 눈을 끔뻑였다.
“이게… 뭐죠 손님?”
질문에 아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고블린이 움찔 놀랬다.
“…주, 주인님?”
이 말과 함께 입을 벌린 고블린이 예고 없는 비명을 토해 냈다.
“끼에에에에엑!!!!”
그 난데없는 소음에 갤러리를 거닐던 손님들이 놀라 소리쳤다.
“깜짝이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난데없는 소란에 이변을 느낀 나머지 고블린들이 허둥지둥 다가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교묘히 손을 움직여 가격표를 수정했다.
“이게 무슨 일?”
“이놈 미쳤나?”
그사이 도착한 고블린들이 게거품을 문 채 기절한 동료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저놈… 이제 죽었다.”
“주인님들께서 화가 났을 거야.”
미묘한 걱정과 함께 혀를 찬 고블린들이 혼절한 동료 고블린을 들쳐 업은 채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남은 한 고블린이 아더를 향해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사과에 아더가 방긋 웃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것보다 이 칼 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가격 적어 주세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조금 전 소란을 통해 은근슬쩍 수정한 가격표에다 150골드를 적어 보였다.
지켜보던 고블린이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150골드?”
“왜요? 문제 있나요?’
태연스러운 질문에 고블린이 머리를 긁적였다.
은연중에 떨어진 명령을 통해, 뻥튀기 됐어야 할 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멍청한 고블린이 또 실수를 했구나, 끼룩끼룩.’
손님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멍청한 고블린.
그런 고블린이라면 이런 실수를 충분히 저지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수를 자신이 수습해야 할 필요성은 없었다.
고블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문제없습니다.”
“좋네요. 그런데 혹시 이 검을 단번에 살 수는 없는 건가요?’
고블린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게 되면 비싸게 사야 됩니다.”
“50골드를 더 줄게요. 어때요?’
아더의 말에 고블린이 좋아라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고블린이 허리를 숙여 보이더니, 어딘가로 달려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우던 때, 옆에 있던 카셀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칼을 210골드에 산다고?”
“원래는 얼마였는데요?”
“…마검이라 하지만, 못해도 최소 400골드는 받을걸?”
아더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양심 있네요. 고블린들은.”
카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블린들 보고, 양심이 있다니… 내가 보기엔 자네 운이 좋은 거야.”
“운이라기보다는 실력이라 해 주세요. 그런데 카셀은 뭘 구하러 이곳에 온 거예요?”
질문에 카셀이 흠칫 놀랬다.
“…말해 줄 수 없다!”
대답과 함께 시선을 돌린 카셀이 입을 다문다.
하지만 미묘하게 떨리는 입꼬리와 눈꼬리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싶었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그런 카셀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말해 줘요. 아니면 힌트라도 주든가.”
“…힌트?”
“네.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대답 안 하는 거 아니에요.”
카셀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그건 남자답지 못하긴 해.”
“그럼요. 남자다운 카셀은 그러면 안 되죠.”
카셀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사실 난 여기에 뭔갈 사러 온 게 아니라, 경매에 참석하기 위해 온 거야.”
“경매요?”
“그래. 경매에 아주 귀한 물건이 나오거든… 무려 드…!!!”
카셀의 말이 끊긴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나타난 고운 손이 카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 우리 드래곤 슬레이어 님께서 또 말실수를 하고 있네.”
눈을 치켜뜬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카셀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핑크 머리의 여자가 윙크했다.
“안녕하세요 던. 이렇게 마주하게 되네요.”
아더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저요? 으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A-14 구역의 브로커예요.”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카셀의 브로커구나.’
하긴, 이런 대규모 암시장에 윌렛 혼자 브로커일 리가 없었다.
그 사이 핑크 머리의 여자 손에서 벗어난 카셀이 흔들리는 동공을 제대로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누, 누님… 여기는 어쩐 일로….”
“사고 칠 것 같으니깐 왔겠죠? 조용히 칼만 구경하라 시켰더니, 그새를 못 참고….”
말을 흐린 여자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던 님께서 이곳에 와 있다는 건 윌렛 어르신도 같이 와 있다는 건가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이곳 '검은 보름달' 암시장에 오는 용병들은 대개 그렇거든요. 특히 등급이 낮은 용병이라면.”
그녀의 말에 아더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함부로 질문에 대답해 주는 거 아니네 던.”
“어머. 윌렛 어르신.”
“…보니인가.”
“네. 이렇게 만나 뵙는 건 거의 3년 만이던가요?”
인사와 함께 보니라 불린 여자가 싱긋 미소 지었다.
어느 사이엔가 나타난 윌렛은 그 미소를 본 척 만 척 무시하며 질문했다.
“자네가 이곳에 왔다는 건… 아무래도 그 소문이 맞는 모양이군.”
“여전히 능구렁이 같으신 분이네요.”
“자네야말로 능구렁이지. 일부러 내 소속 용병에게 먼저 작업을 치지 않았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에게 작업을 쳤다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때 보니가 고개를 살며시 기울이며 대답했다.
“에이… 작업이라기보단 궁금해서죠. 최근 일어난 빅 이벤트의 주인공이, 이런 선한 인상의 청년이었다니.”
그녀의 말에 윌렛이 교묘히 아더의 앞을 가로막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더가 속삭였다.
“아시는 분인가요? 윌렛 어르신?”
“연이 있기야 하지.”
“흐음… 그런데 물건은 사신 거예요. 윌렛 어르신?”
“아니, 아직.”
“그럼 윌렛 어르신도 경매에 참여하시는 건가요?”
질문에 윌렛이 미간을 모았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저기 카셀이란 용병에게서요.”
“…쯧.”
혀를 찬 윌렛이 설명했다.
“맞아. 아무래도 내가 구하려던 물건이, 그 경매장에 나오는 것 같더군.”
“어떤 물건인데요?”
“하트.”
대답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트? 경매장에서 결혼하실 분이라도 찾았나요?”
“…자넨 참 예상을 깨는군.”
윌렛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설명했다.
“그 하트가 아니라 드래곤 하트를 말하는 거야.”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 하트… 그걸 재료로 써서 만든 최상급 영단이 이번 암시장에 나온다는 소문이 있더군. 난 그걸 사러 온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