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80화 (80/265)

제80화

엘린과 시선을 마주친 예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예니카?”

아더의 부름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예니카가 중얼거렸다.

“공자님 친구분이시네요.”

“제 친구요?”

“네. 엘린 레버쿠젠.”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진짜요? 괜히 걱정했네.”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사라진 따뜻한 온기에 예니카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그 사이 아더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엘린! 안녕하세요!”

입을 벌리고 있던 엘린이 예니카처럼 움찔 놀란다.

“어, 어 안녕…….”

“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아더의 질문에 엘린이 횡설수설 설명한다.

“아, 아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아더 너 찾아가려는 와중에 갑자기 마주쳐서….”

“아 진짜요? 무슨 이야긴데요?”

“어… 그런데 바빠 보이네?”

그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전혀 안 바쁜데요?”

엘린이 입을 다문다.

그 표정에서 드러나는 당혹감과 불안에 예니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귀엽네. 저 나이 때 소녀란…….’

생각과 함께 예니카가 시선을 돌렸다.

‘… 그런데 이 인간은 왜 안 귀여울까. 분명 같은 나이인데.’

혀를 찬 예니카가 고민하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엘린 양.”

“…안녕하세요, 예니카.”

“잠시 공자님하고, 조별 과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어요. 그러니깐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해요.”

엘린의 눈이 커진다.

“네, 네? 제가 무슨 쓸데없는 오해를……!”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에 또 다시 피식 웃음을 터트린 예니카가 몸을 돌렸다.

조금 더 놀릴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빚을 지기도 했으니깐.’

아더 바이에른은 괜찮다고 하지만, 그건 제 성미상 맞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이번 발표 덕에 모범생이라는 이미지도 얻었고, 이 이미지는 앞으로 이 학교에서 찾아내야 할 그 ‘물건’을 생각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이 관계에 초를 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아더와 엘린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려던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아더가 덥석 팔뚝을 붙잡는다.

“……!”

놀란 예니카가 시선을 돌리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오늘 저랑 할 이야기 있지 않았어요? 예니카?”

예니카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말이요? 공자님?”

“……? 그건 예니카가 물어야죠. 오늘 할 이야기 있다면서 시간 내라면서요.”

이 말에 예니카가 입을 다문다.

생각해보니 아더의 말대로 오늘 이야기를 나누려 했었다.

며칠 전 지하세계에 퍼진 기괴한 소문.

더불어 마시알 더스트, 그 산업 스파이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다.

‘깜빡 잊고 있었네. 하지만…….’

말을 흐린 예니카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보다 더 흔들리는 엘린 레버쿠젠의 표정이 보였다.

‘이런 오해 받으면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데.’

한숨을 내쉰 예니카가 고민하다 결국 제안을 거절했다.

“나중에 할게요.”

“흠… 뭐 저야 상관없는데, 계속 대화가 미뤄지는 기분이네요?”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공짜로 이야기 해 줄 것도 아니면서?”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동시에 붙잡고 있던 손도 멀어지자, 예니카는 잠시 아더의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까닥 숙였다.

“그럼.”

말을 남긴 그녀가 멀어져 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엘린을 향해 물었다.

“엘린 할 말… 응?”

“…….”

“왜 그런 표정이세요? 엘린은?”

이 말에 엘린이 떨리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으며 질문했다.

“둘이… 많이 친해진 모양이네?”

“예니카랑 저랑요?”

“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친한데요?”

“……?”

“엘린이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저 예니카랑 안 친해요.”

엘린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거짓말.”

“진짠데요?”

“둘이 그럼 왜 그렇게 가까이 있었어?”

“누가 갑자기 기척을 숨기고 다가와서?”

엘린이 움찔 놀란다.

“그, 그건! 갑자기 둘이 고개를 숙이면서 자세를 낮추니깐 그렇지!”

그녀의 말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이 느끼기론, 엘린이 먼저 기척을 숨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굳이 지적 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기에,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할 이야기가 뭐예요, 엘린?”

질문에 엘린이 입을 다문다.

어딘가 화가 난 듯한 그 모습에 아더가 눈을 끔뻑일 때, 엘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잠깐 한눈을 팔았다고, 그새 다른 여자랑 엮여?’

물론 예니카 헤이즐과는 예전부터 같이 다닌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탓에 엘린은 묘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 위기감의 정체를 뭐라 딱 정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건 확실했다.

‘일단… 관계부터 확실히 해야겠어. 그 다음 대책을 세우고.’

생각과 함께 눈빛을 빛낸 엘린이 손가락을 튕겼다.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

“그러니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달달한 게 들어가면 생각이 날 것 같아.”

황당한 제안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곧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제안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엘린 레버쿠젠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러죠. 어디 갈까요, 엘린?”

* * *

아케인 대학에는 총 3개의 카페가 존재했다.

각 탑 제일 아래층에 모두 위치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역시나 ‘스트로베리’ 카페였다.

다양한 메뉴가 있기도 하고, 야외 테라스가 넓게 펼쳐져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수많은 학생들이 점심시간이면 이곳을 애용했고, 엘린과 아더도 대화를 위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딸기쉐이크하고, 치즈 케이크… 그리고 마카롱도 주세요.”

엘린이 주문을 끝내고, 아더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아더는 제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언급했다.

“저는 샷 다섯 개 넣은 아메리카노 부탁드릴게요.”

종업원이 놀라 되물었다.

“저, 정말로 샷 다섯 개인가요? 많이 쓸 텐데?”

“네 괜찮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종업원이 기묘한 시선으로 아더를 바라보다, 주문을 받아적으며 말했다.

“딸기쉐이크, 샷 다섯 개 넣은 아메리카노. 그리고 치즈 케이크하고, 마카롱 맞으신가요?”

“네.”

대답에 종업원이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엘린이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질문 하나 해도 돼 아더?”

그녀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얼마든지 하세요.”

“예니카 그 아가씨랑 어떻게 만난 게 된 거야?”

“…예니카랑요?”

아더의 반문에 엘린이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음… 만난 건 학교에서가 처음이에요.”

“학교에서? 그런데 예니카 그 아가씨는 곧바로 네 옆자리에 앉던데?”

“아. 그건 예니카 쪽 사람들이랑 제가 좀 안면이 있어서 그래요.”

엘린이 눈을 치켜떴다.

‘친인척 쪽에 바이에른 가문과 관련된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의심해야겠지만, 바이에른 가문이기에 또 크게 이상한 부분은 아니었다.

제국 최고의 가문과 아케인의 거대 기업인 헤이즐이라면, 안면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 그럼 헤이즐 가문 쪽에서 일부러 접근시킨 모양이네.’

생각과 함께 엘린이 싸늘하게 웃었다.

이거 또 한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벙어리 공자라 불리며 놀림을 당했다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바이에른의 후계자.

그 후계자에게 잘 보여, 이런저런 상황을 만든다는 그림은 솔직히 말해 식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식상한 만큼 정공법이긴 하지.’

생각과 함께 엘린이 탄식을 터트렸다.

앞서나간다는 생각에 이런 빈틈을 보이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안일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눈치채서 다행이야… 그 예니카란 애.’

아더를 바라보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애틋하면서도, 달달한 그런 시선.

엘린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때였다.

침묵하던 아더가 입을 연다.

“저도 뭐 하나 물어도 돼요. 엘린?”

“…응?”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요.”

엘린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허락에 아더가 어느 사이엔가 자리에 도착한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며 말했다.

“엘린은 제가 예니카랑 친하게 지내는 게 싫어요?”

“……!”

엘린이 놀라 입을 벌린다.

그녀의 당황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진짜로 싫은 거예요?’

정신을 차린 엘린이 변명했다.

“무, 뭐? 가, 갑자기 그게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예니카 그 아가씨랑 친하게 지내는 걸… 신경쓰겠어?”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흠… 거짓말이죠?”

엘린이 입을 다문다.

“…….”

그 침묵 속에서 갈등하던 엘린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맞다고 하면 어떻게 해줄 건데?’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그 말에 아더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친하게 안 지낼게요.”

“…….”

“사실 친하지도 않아요. 앞으로도 친해질 이유도 없고.”

엘린이 숙였던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민폐인 부탁 아니야?”

“전혀요? 말했잖아요. 친해질 이유가 없다고.”

엘린의 표정이 모호해진다.

‘… 지금 날 배려해주는 건가?’

흘러가는 상황은, 일단 그래보였다.

아더 바이에른이 자신의 기분을 걱정해, 빈말이라 할지라도 예니카와 친해지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이런 상황으로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그 탓에 기분이 좋아진 엘린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밀당… 잘하네, 아더 바이에른.’

전부터 느낀 건데, 줄다리기를 참 교묘히 잘한다.

예상치 못하게 확 제 마음으로 파고들어,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타고났다고 봐야겠네… 전에 여자친구는 없다고 들었으니깐.’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그냥 당해줄 수는 없었다.

자고로 밀당이란 밀어주면 당겨줘야 상호작용이 있는 거니깐.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는 한 발자국 물러나 줘야 했다.

적당한 핑계를 대며 말이다.

“아니… 뭐. 친해져도 좋은데, 아더는 바이에른 가문 공작의 후계자잖아?”

“……?”

“그러면 항상 조심해야지. 대귀족의 가문 자제면 항상 이런저런 소문이 따르니깐. 물론 예니카 양 정도면 친해져 상관없지만… 또 모르는 일이잖아?’

그녀의 설명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렇지. 그러니깐 누굴 만나더라도 절대 흠 잡힐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돼.”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린이네. 이런 뜻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긴, 엘린 정도 되는 사교성 좋은 사람이라면 예니카의 그 음흉함을 본능적으로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경고해주는 모양이구나. 예나카와 어울리는 내가 걱정돼서.’

역시 마음씨 착한 엘린다웠다.

고작 친구일 뿐인 자신에게 이런 오지랖을 부려주다니.

기분이 좋아진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알겠어요, 엘린. 예니카와는 앞으로도 계속 거리를 둘게요.”

“음… 뭐. 아더가 굳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래!”

이 말과 함께 엘린이 어두운 표정을 집어던지고 환히 웃는다.

그 미소를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문득 떠오른 의문에 질문했다.

“아, 그런데 저한테 할 말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엘린이 탄성을 터트렸다.

“아 맞다…….”

“……?”

“이 이야기를 안 할 뻔했네.”

이 말과 함께 엘린이 설명한다.

“그… 검술 강의 중간고사 대련 상대가 정해졌어.”

“중간고사요?”

“교수님께서 공지하셨잖아. 일주일 뒤에 중간고사를 볼 거라고. 그런데 그 대련 상대가 정해졌어.”

그녀의 말에 아더가 뒤늦게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제 중간고사 시즌이구나.’

어느 사이엔가 아케인 대학에 다닌 지 5개월이 되었다.

그렇다는 소리는 슬슬 중간고사 시즌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검술 강의는 엘린의 말대로 대련으로 중간고사를 치렀다.

‘그 대련 상대가 정해진 모양이구나… 흠. 누구 되려나?’

사실 누가 되건 딱히 상관은 없었다.

마나를 쓰건 안 쓰건,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깐.

그 탓에 아더는 다소 편안한 심정으로 질문했다.

“흠… 그렇군요. 그럼 엘린 상대는 누군데요?”

“너.”

“……?”

“너라고 아더.”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반대로 엘린의 눈은 기대감에 부풀어 반짝거렸다.

“이번 중간고사… 아무래도 너랑 내가 붙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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