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77화 (77/265)

제77화

아더는 오랜만에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복수를 하기 위해 피와 칼에 미쳐있던 그 시절.

그 시절의 아더 바이에른은 난폭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미친놈이라 부를 만한 기행들을 자주 저질렀으니, 남들의 시선에서도 당연히 미친놈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친놈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부르짖은 것은, 역시나 칸 마드리드에 동참해 바이에른 가문을 멸망시킨 자들이었을 것이다.

‘일단 마주치면 죽였지. 그게 아니더라도 칼을 휘둘렀고.’

덕분에 그때 당시 미쳐있던 아더 바이에른이 가지고 있던 혈통 대부분은 칸 마드리드를 따르는 자들의 것이었다.

‘수급도 편하고, 혈통 능력 자체도 좋고… 딱히 흡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긴 했어.’

허나 지금의 아더 바이에른은 달랐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가지고 있는 혈통의 원 주인들이 대부분 살아 있었다.

그 탓에 아더는 새롭게 발견한 변화가 이 차이점에서 왔다고 짐작했다.

‘원 주인의 혈통이 살아있으니깐… 그 능력이 성장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혈통도 성장 한 거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또 다른 가능성을 손에 쥔 것이다.

바로 전생에서 얻었던 혈통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번개의 혈통과 트롤의 혈통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이다.

‘두 혈통의 능력을 생각하면...어우. 이렇게 손쉽게 강해져도 되는 거야?’

엄청난 가능성을 손에 넣었단 사실에 기쁨도 느꼈지만 아쉬움도 동시에 느꼈다.

이 능력의 변화를 이제야 발견했다는 아쉬움이었다.

‘역시 미쳐있던 시절의 나는 바보였어. 복수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어떻게 흡수한 혈통의 주인들은 다 죽이고 다녔는지 몰라.’

입맛을 쩝 다신 아더가 과거의 기억을 털어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성장해 나가냐는 거지… 그렇다면 일단 쥴리의 혈통 능력이 가장 급선무인가?’

사실 지금 쥴리의 번개 혈통은 반쪽짜리였다.

아더 자신이 아는 미래 미치광이 살인자가 된 쥴리는 번개를 다루는 것만이 아니라 ‘번개’그 자체가 되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린 만큼, 조금만 교육해줘도 더 빠르게 성장할 것 같은데?’

문제는 쥴리가 혈통 능력을 성장시키고 싶어 하냐는 건데, 그 문제도 저번 기억을 되살려보면 딱히 문제 되지 않았다.

‘혈통을 다루는 법에 대해 알려주니 좋아했으니깐,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거야.’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서클도 긍정적으로 늘어나고 혈통 능력도 이런 식의 발견도 하고… 흠. 너무 순조로운걸?’

이런 상황에서 오늘 있을 치즈이 교수의 조별 과제만 완벽히 수행해낸다면, 최고의 하루가 될 듯싶었다.

“오. 자네 왔나?”

약속에 장소에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레온이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 예니카도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꽤나 심상치 않아 보였다.

“왜 그런 음흉한 표정이에요 예니카?”

아더의 질문에 예니카가 입꼬리를 히죽 올리며 말했다.

“소문이 자자한 공자님을 보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요.”

“……?”

“아주 거하게 사고 치셨던데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도 만나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탄성을 내질렀다.

“아. 벌써 소문이 돌았어요?”

“소문이 안 돌 리가 있겠어요? 그런 일을 저질렀는데.”

“흠… 딱히 유명인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이 말에 예니카가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 묘한 미소를 훔쳐보던 레온이 제 능력을 슬며시 일으켜 질문했다.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레온의 말에 아더가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둘은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지?’

한쪽은 이교도의 광신도.

한쪽은 제 형님을 죽이려는 정신 나간 놈.

아마 서로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면 꽤나 재밌는 상황이 펼쳐질 듯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이런 일은 타인이 알려주기보다는 자연스레 알아야 더 재밌는 법이었으니.

[있어요, 그런 게.]

[… 이해할 수 없지만, 자네 꽤 이성에게 인기가 있는 타입이었군?]

아더가 어깨를 으쓱이며 손뼉을 쳤다.

“자자. 사담은 이쯤에서 하죠! 다들 알겠지만, 오늘 중요한 날이에요!”

“…….”

“서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면서 만나기를 3주! 드디어 그 고생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니깐요!”

예니카와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나날이긴 했지…….”

“맞아요, 고욕이었어요.”

둘의 동의를 얻은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그 고생을 했으니깐, 마지막은 화려하게 장식해야겠죠? 반드시 조별 과제 점수 A를 받아야 해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발표에 있기 앞서, 마지막 정비를 했다.

예니카와 레온도 드물게 의욕을 내보이며 참여한 덕에 순식간에 마지막 정비가 끝이 났다.

그 결과물을 들여다보던 레온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흠…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이 정도면 충분히 점수 A를 받을 수 있겠는데?”

그의 말에 예니카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결과물을 놓고 보니,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자료였다.

“자, 이제 문제는 누가 발표하냐는 건데… 뭐 이것도 정해진 건가?”

레온의 말에 예니카가 시선을 돌렸다.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저요?”

“자네 말고 누구 있나?”

“흠… 없긴 하네요.”

이 말에 레온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말해 연구 자료도 자네 걸로 했고, 이번 실험 전체를 자네가 주도했으니 자네가 발표해야 하는 게 맞지.”

그의 칭찬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발표하는 걸로 알게요. 예니카도 불만 없으시죠?”

예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요. 공자님이 하세요.”

이 말과 함께 준비한 자료를 챙겨 든 세 사람이 치즈이 교수의 강의실로 향했다.

웅성웅성.

이미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이 불안과 흥분을 느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너희 조별 과제 어땠어?”

“…개 망했어.”

“헐? 어쩌다가?”

“아니… 준비도 제대로 못 했어. 조원 몇 명이 바쁜 일 있다고 참석 자체를 안 하더라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예니카를 향해 속삭였다.

“다른 조 이야기 들어보니깐 저희 조가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데요?”

“…괜찮을 수밖에 없죠.”

“…왜요?”

“공자님이 그렇게 열심히잖아요?”

이 말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과제니깐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열심히 해도 공자님처럼은 하지 않죠.”

예니카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이게 평범한 거 아닌가?’

완벽한 연구 결과를 선보이기 위해, 그에 맞는 논문 50개 정도를 요약 압축했고 비슷한 실험 결과의 사례를 찾기 위해 500페이지 서적 32개 정도를 뒤졌다.

하지만 아더는 이것마저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연구를 통해 정당한 결과를 내놓기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니카와 레온과 만났을 때 그 실험을 12번 정도 반복한 끝에야 조별과제를 완성 시켰다.

‘이 정도는 해야, 연구의 결과를 선보일 수 있는 건데… 그럼 다른 조들은 어떻게 했단 소리야?’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고민할 때였다.

그 모습을 엿보던 예니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학생 조별 과제에서 논문을 50개나 압축해?’

하물며 뒤진 서적의 페이지만 조금 과장되게 말해 10000페이지는 훌쩍 넘어갈 듯했다.

이 정도 노력이라면 지금 당장 새로운 논문을 써도 가능한 분량이었다.

‘이 정도 수준은… 하고 말고 자시가 아니라, 불가능하지. 학생들의 수준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또 다시 아더 바이에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예니카였다.

‘머리가 좋아. 천재의 기준에서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소 괴짜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아더 바이에른이 주도한 연구와 과정은 그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일단 마도공학이란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자신을 이 정도로 이끌었다는 것만 해도 말이다.

그래서 참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낮에는 아케인 대학의 천재. 밤에는 뒷거리에서 가장 정신 나간 용병…….’

이 정도로 특색있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과 함께 예니카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교실 문이 열리고 치즈이 교수가 들어왔다.

“……!”

소란스럽던 교실이 그의 등장에 단번에 숙연해진다.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단상 위로 올라선 치즈이 교수가 쓰고 있던 안경을 추켜올린다.

“아… 여러분. 잘… 지내셨습니까?”

그의 질문에 학생들이 네라는 대답을 했지만, 표정은 대답만큼 밝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치즈이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하긴… 연구를 하는데 잘 지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군요.”

“…….’

“하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여러분은… 끈기와 인내. 더 나아가 지식을 탐구하는… 재미를 느꼈을 겁니다. 그 결과가 좋건… 안 좋건 말입니다.”

이 말에 학생들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이게 재밌다고?’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해?’

‘하아… 진짜 수업 잘못 골랐어.’

그 불평 속에서 아더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힘들긴 하지만, 재밌긴 했지.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게.’

전생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배움의 기쁨.

아더는 그래서 즐거웠다.

‘경험하지 못했던 걸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 특히 그게 취향에 맞는다면.’

그 탓에 아더는 치즈이 교수의 말대로 이번 과제를 통해 여러 가지를 얻었다 생각했다.

물론 만족은 하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건 성과지. 이렇게 노력했으니깐 반드시 A를 받아야 해!’

생각과 함께 아더가 발표하기에 앞서 느껴지는 가벼운 흥분을 다스릴 때였다.

치즈이 교수가 두툼한 서류를 들어 올리며 선언한다.

“그럼 첫 번째 조는… 아더 바이에른 학생 조입니다. 준비해서 나와주세요.”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설마 첫 번째로 조로 지목 당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건 옆에 있던 레온도 다르지 않았다.

“우, 우리가 첫 번째라고!? 이거 별로 안 좋은데… 발표는 뭐든 중간이 최곤데…….”

그의 말에 예니카도 동의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더는 동요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첫 번째도 나쁘지 않죠. 그리고…….”

말을 흐린 아더가 씩 웃는다.

“저희 준비 열심히 했잖아요? 그럼 떨 이유가 없죠.”

이 말에 예니카와 레온은 더 이상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 기묘한 침묵 속에서, 레온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네. 웬일로… 정상적인 말을 하는군?”

“그 말을 황자님한테 들으니 진짜 기분 나쁘네요.”

“…왜?”

“저보다 정신 나간 사람이 황자님이잖아요.”

레온이 눈을 끔뻑인다.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준비한 자료들을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가려 할 때였다.

“아더 바이에른… 학생? 왜 당신이 나오는 겁니까?”

이 말에 아더가 멈칫했다.

“어… 제가 발표를 맡기로 해서 그런데요 교수님?”

치즈이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

“발표는 제가 정해준… 사람으로 합니다. 준비된 사람만 발표를 할 수 있다면… 그건 조별 과제가 아니니깐요.”

“……!”

충격적인 선언에 교실이 술렁인다.

그건 아더도 다르지 않았다.

“…어. 이게 뭘까?”

설마 이런 식의 변주를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

하지만 또 맞는 말이기에 딱히 반박할 거리도 없었다.

‘그럼… 누가 나가야 제일 좋은 상황이지?’

고민에 아더가 흠칫 놀란다.

예니카 헤이즐과 레온 마드리드.

두 사람 중 누가 나가도 최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아더의 입이 서서히 벌어진 순간, 치즈이 교수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정해보죠.”

이 말과 함께 치즈이 교수의 한 사람을 지명한다.

“…예니카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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