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76화 (76/265)

제76화

강의와 강의 사이의 남는 빈 시간.

그 시간을 이용해 아더는 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평소였다면 근처 카페에서 과제를 했겠지만,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니의 정령친화력이 왜 올라갔는지 알아봐야지.’

3개의 마탑 사이에 위치한 대학 도서관은, 탑을 제외하고는 제일로 큰 건물이었는데 그만큼 방대한 서적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양 때문에 대륙의 3대 도서관이라 꼽힐 정도.

나머지 두 곳이 제국 황실 도서관과 마법사들의 나라라 불리는 엘리시움에 위치한 수도 도서관인 걸 고려하면 아케인 대학 도서관이 얼마나 큰 곳인지 실감이 나는 부분이었다.

그 탓에 아더는 이곳에서라면 오늘 있었던 일의 현상에 관한 의문을 풀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게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깐깐한 인상의 사서가 아더를 향해 묻는다.

“1학년생이죠?”

“네.”

“그럼 이용할 수 있는 층은 1층뿐이에요. 2층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요.”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 이유가 있나요?”

“2층부터는 1학년생에게는 약간은 위험한 지식이 담겨 있는 책들이 있어서 그래요.”

“위험한 지식이요?”

“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간단히 예를 들자면 마법서적이 있죠. 수준에 맞지 않으면 다루지 말아야 할 마법들이 적힌 서적이.”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신기하네요. 마법서적은 귀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걸 개방하다니.’

깐깐한 인상의 사서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지식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아케인 대학의 덕목이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좀 이상한데요?”

“……?”

“지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면서, 층을 나누고 있잖아요?”

사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아직 지식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감당하지 못하는 지식은 아주 위험하니깐.”

설명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이상하네. 앞뒤 말이 맞지 않은데?’

하지만 굳이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린 사서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고개를 꾸벅 숙인 아더가 도서관 안으로 들어선다.

지켜보던 사서는 다시 시선을 돌려, 읽고 있던 책에 집중했다.

“오… 진짜 큰데?”

그 사이 도서관 내부로 들어온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넓은 아치형 공간.

그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은 책이었다.

책이 없는 공간이라고는 정중앙에 위치한 넓은 테이블뿐이었고, 그 외는 전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운동장만 한 넓은 공간에 책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혀를 내두른 아더가 잠깐 자리에 서서 고민했다.

저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종족에 관한 책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아더는 문득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시죠?”

“찾고 있는 책이 있는데 조금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한숨을 내쉰 사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책을 찾는데요?”

“이종족에 관한 책이에요. 엘프에 관한.”

사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눈에 깃든 호기심이, 그런 책을 왜 찾는 거지 라고 묻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서는 질문을 하는 대신 손짓했다.

“따라오세요.”

이 말과 함께 사서가 거침없이 책장 사이를 파고든다.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던 아더는 곧 탄성을 터트렸다.

‘오… 이게 전부 이종족에 관한 책이라고?’

거대한 책장 사이에 수백 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그 책장에 걸린 팻말이 ‘이종족’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이종족에 관한 서적이 있을 줄 몰랐던 아더가 혀를 내두르는 사이, 사서가 몇 권의 책을 꺼내들어 아더에게 건네주었다.

“추천드리는 엘프에 관한 책이에요.”

“앗. 감사합니다.”

“혹시 부족하시면 이쪽 칸을 뒤져보면 더 나올 거예요. 그럼.”

조언까지 남긴 사서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까칠하지만 뛰어난 사람이네. 책까지 직접 골라주고.”

이 말과 함께 사서가 건네준 책들을 안은 아더가 근처 테이블에 앉았다.

가장 먼저 펼쳐든 것은 [엘프 역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제법 방대한 양이었지만, 막힘없이 술술 읽어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지식을 얻기도 했다.

[먼 과거. 인간과 정령은 공존했다. 인간들의 대표는 왕이라는 칭호 대신 부족장이라 칭호를 써, 정령왕에게 예우를 표했고 정령왕은 그런 인간들에게 자연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줬다.]

[시간이 흘러 정령왕은 인간 아내를 맞이한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것이 바로 엘프. 인간과 정령. 두 존재의 핏줄을 모두 이은 숲의 주인의 첫 탄생인 것이다.]

흥미로운 가설.

그 탓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정령은 정령계라는 아주 특수한 공간에만 존재하는 사념체라 알고 있는데… 사실 현실에 존재하는 인격체였다?’

곰곰이 고민하던 아더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운디네를 바라봤다.

‘운디네라면 알고 있을지도?’

생각과 함께 아더가 질문했다.

“운디네? 혹시 인간하고 결혼도 할 수 있어?”

소녀에서 여인이 된 운디네가 눈을 끔뻑였다.

[…저 말이에요?]

“응. 결혼할 수 있는 거야?”

운디네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저, 정령하고 어떻게 인간이 결혼을 해요, 아더?]

“그래? 하지만 이 책에는 가능하다고 나오는데?”

이 말에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더의 옆에 섰다.

그리고 잠시 책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주 과거의 일이에요. 정령이 현실에 존재했을 때.]

“지금은 현실에 존재하지 못하는 거야?’

[아뇨. 상급 정령이 되면서 가능하기는 한데… 그래도 약간은 다른 느낌이에요.]

운디네의 대답에 아더가 말을 흐렸다.

“흠… 현실에 존재하는 것 말고 뭔가 특별한 게 더 있어야 한다?”

[특별한 거라기보다는… 뭔가 제약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그래서 계약된 정령만이 특정 장소를 벗어나 움직일 수 있는 거고.]

조곤조곤한 설명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이해가 간 건 아니지만, 근본적인 맥락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좋은 설명인데? 말솜씨가 확 는 것 같아 운디네.”

[그래요? 흠… 전 예전하고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니야. 뭔가 좀 달려졌어. 좀 어른스러워졌달까? 그래서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운디네가 움찔 놀랬다.

[예, 예전이 더 좋아요?]

“그건 아닌데 지금은 약간 나한테 거리를 두는 느낌?”

[…….]

이 말에 운디네가 입을 다물고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아쉬움과 불안.

떨림을 눈치챈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지? 조금 전 내 행동에 저런 감정을 내보일 만한 이야기가 있었나?’

그때였다.

맞은 편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노움이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정령도 인간과 같아. 상위 존재가 되면 지식과 인격이 성숙하지. 그런 의미에서 운디네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거야.]

“……?”

[그러니깐 아더 당신도 우리를 조금 더 상위인격체로 대할 필요가 있어. 예전과 같이 어린애로 대하는 건 곤란하단 이 말이야.]

노움의 진지한 설명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옆에 있던 운디네는 당황해 입을 벌렸다.

[노, 노움?]

허나 그 미묘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 노움이 도도한 자세를 계속해서 취할 때였다.

아더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며 질문했다.

“노움도 변했네요?”

[당연하지. 상급 정령이 되면서 난 완벽한 인격체가 되었으니깐.]

“오… 조금 전 말처럼 어른이 됐다?”

[맞아. 그러니깐 날 조금 더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어.]

노움의 당당한 요구에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음… 노움의 말도 일리가 있어. 성장했으면 그에 걸맞게 대접해줘야지.’

확실히 지금까지 정령들을 어린아이 같이 대해준 감이 있기는 했다.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어투가 어린아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함부로 못 굴렸지… 위험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배제하고. 하지만 노움의 말처럼 어른이 됐다면.’

굳이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요. 앞으로 노움을 어른처럼 대우하겠어요.”

[…후후. 좋은 대답이야 아더 바이에른.]

이 말과 함께 노움의 콧대가 착각인지 몰라도 조금 올라갔을 때였다.

노움의 머릿속으로 아더의 생각이 전해진다.

정령과 계약자와의 유대감이 강해져 새긴 일종의 이변이었다.

그 속에서 아더의 생각을 읽어낸 노움이 흠칫 놀란다.

‘흠… 그럼 어른이 된 노움을 앞으로 어디에 써먹어야 하지? 방어에 특화된 능력이니깐 고기방패로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

‘스스로 어른이라 했으니깐 죄책감도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미끼 삼아 던지는 것부터 해볼까?’

진지한 어조로 이 말을 중얼거리는 아더가 여러 장면을 상상한다.

그 상상까지 읽어낸 노움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이, 이게 아더 바이에른의 어른 식 대접?’

믿기지 않았지만, 정말로 그런 듯했다.

아더 바이에른은 조금 전 상상을 현실에서도 시도해 볼 생각인 것 같았다.

그 탓에 노움이 뒤늦게 제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린다.

‘미친놈… 상식을 벗어나는 미친놈…….’

여기까지 생각한 노움이 쭈뼛쭈뼛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 아더?]

“응?”

[아, 아직 어른으로 대접하는 건 조금 이르다고 생각해.]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으, 응! 외형이 커졌다고 해서, 인격체도 성숙해진 건 아니잖아?]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옆에 있던 운디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네?]

그 어색한 분위기에서 노움이 아더를 향해 애원했다.

[어, 어쨌든 나 아직 어른 아니다?]

“어… 네. 아직 어른 아닌 것 같네요.”

[확실하지? 고기방패로 안 쓸 거지?]

이 말에 아더의 눈빛이 변한다.

“오… 노움 씨. 이제 제 생각을 읽어낼 수도 있어요?”

[……!]

“흠… 이건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꽤 재미난 사실이네요?”

이 말에 노움이 입을 바보처럼 벌렸다.

그 모습에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다시 사서에게 다가갔다.

“책을 빌릴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이름하고 오늘 날짜를 적어주세요.”

“네.”

아더가 슥슥, 제 이름과 날짜를 적어 내려갔다.

사서가 그 이름과 날짜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반납일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예요. 늦지 말고 가져다주세요.”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후 도서관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이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얻었는데?’

엘프의 탄생 비화는 물론이고, 진화한 정령들이 가지는 특수한 능력까지.

아직 실험을 조금 더 해봐야겠지만, 제 생각을 전할 수 있다면 이번 능력은 여러모로 쓸 곳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책의 지식을 통해 얻은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니의 능력이 성장한 이유… 그 이유가 뭔지 드디어 알겠네.’

책에 의하면 엘프는 인간보다 상위의 인격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격체가 성숙해질수록, 보다 강력한 정령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즉, 지니가 이번 사고를 통해 인격이 성숙해지면서 성장했다는 거지…….’

인격이 성숙해짐에 따라 정령친화력이 높아지는 이종족.

어쩌면 책에 적힌 대로 엘프란 종족은 정령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종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운디네와 노움도 상급 정령이 되니깐 인격이 성숙해졌으니깐.’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흠… 그럼 앞으로 지니의 인격이 성숙해질수록, 내 정령친화력도 올라간다는 거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저번 생에서 흡수한 혈통이 성장하는 경우는 보지를 못 했으니 말이다.

그 차이가 무엇일지 곰곰이 고민하던 아더는 곧 깨달았다.

‘아… 혹시 살아 있어서 그런가?’

문득 떠오른 가정에 아더의 눈이 반짝였다.

‘오… 그럴 수도 있겠는걸? 저번 생에 내가 흡수한 혈통을 흡수한 인간들은 전부 죽었으니깐.’

탄성과 함께 아더가 눈빛을 빛냈다.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아주 엄청난 발견을 한 것이다.

‘테이큰 씨의 혈통과 쥴리의 혈통.’

저번 생에서 얻은 혈통들과 비교해도 아주 강력한 혈통으로 손꼽을 수 있는 트롤의 피와 번개의 피.

이 두개의 혈통 또 한 '성장'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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