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75화 (75/265)

제75화

바이에른의 피가 꿈틀거렸다.

정확히는 바이에른 피에 잡아 먹인 지니의 피였다.

‘뭐지? 왜 갑자기 지니의 피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무언가 발목을 간지럽혔다.

‘잔디?’

몰랐는데 어느사이엔가 훌쩍 자란 잔디가 발목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곳의 잔디는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잔디만… 지니가 꽃을 만졌을 때처럼 커졌어.’

생각과 함께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운디네와 노움을 바라봤다.

[어?]

[…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년과 소녀.

그 소년과 소녀는 어느 사이엔가 훌쩍 자라 있었다.

소녀에서 여자로.

소년에서 남자로.

그렇게 훌쩍 커버린 노움과 운디네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했다.

‘진화했어. 중급에서 상급의 정령으로.’

생각과 함께 아더가 탄성을 터트린다.

설마 조금 전 느꼈던 그 변화가 노움과 운디네를 진화시킨 건가?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상식적으로 정령친화력은 단번에 늘어날 수 없다.

아니, 재능에 가까운 정령친화력은 솔직히 말해 늘릴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아니야. 바이에른 혈통을 이용해 지니의 피보다 뛰어난 혈통을 흡수하면… 나는 보다 뛰어난 정령친화력을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혈통을 흡수하지 않았다.

그럼 어째서 정령친화력이 늘어난 걸까?

고민하던 아더는 흠칫 놀랬다.

“지니?”

부름에 지니도 흠칫 놀라 중얼거렸다.

“던 님?’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던 아더와 지니가 동시에 경악한다.

“어떻게……?”

“중급에서 상급… 으로?”

이 말과 함께 한동안 서로를 지켜보던 때, 아더는 문득 떠올렸다.

‘설마 지니의 혈통 능력이 성장한 건가?’

떠오른 가정을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말이 되기는 해… 지니의 혈통 능력이 성장했다, 그래서 상급 정령을 다룰 수 있게 됐다.’

왜 갑자기 혈통 능력이 성장 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핏줄은 '엘프'라는 범상치 않은 이종족인 걸 고려하면 말이 되기는 했다.

‘정령왕하고 계약한 선조가 있다고도 하니깐.’

문제는지니의 능력이 성장했는데, 왜 제 혈통능력도 같이 성장했냐는 것이다.

‘설마 이게 흰수염이 말한 바이에른 혈통인가……?’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대단한 변화기는 했지만, 그 악마 같은 흑마법사가 고작 이 능력 하나 때문에 자신을 도와줬을 도와줬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지니 쪽에 뭔가 문제가 생겼고, 내 피가 그에 따라서 반응했다 정도인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으로 봤을 때, 이쪽이 조금 더 그럴 싸 했다.

‘더 자세한 이유는 시간을 드려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이 능력은 전생에서 경험하지 못했으니깐.’

생각과 함께 시선을 돌린 아더가 지니를 바라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니가 일단 필요한 것 같고.’

고민하던 아더는 입을 열어 말했다.

“지니. 갈 데 있어요?”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갈… 데요?”

“네. 가실 곳 없으면… "

제안과 함께 끔뻑이던 지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거 어때요?”

* * *

“던님… 집에요?”

“네. 어차피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잖아요. 그럼 그때 동안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거 어때요?”

“아니 뭐, 그건 상관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공짜로 머물 수는…….”

지니의 말에 아더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저희 가문에 취직하실래요?”

“…….”

“그렇게 되면 돈도 벌고 머물 집도 생기는 거잖아요?’

지니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진심이세요?”

“진심이죠.”

“…그럼 왜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 말해줄 수 있죠?”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궁금해서요.”

“…궁금하다고요?”

“네. 갑자기 왜 우리 둘 다 상급 정령술사가 되었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는가, 이게 궁금해서 제안 드리는 거예요.”

대답에 지니의 눈이 커졌다.

‘서, 설득력이 있어?’

예상치 못한 아더의 설득력 있는 답안.

설마 이 미친놈이 이런 정상적인 답을 할 줄 몰랐던 지니가 진심으로 놀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왜 갑자기 둘 다 성장한 걸까요?”

“이걸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지니가 우리 집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야 좋긴 한데, 취직하면 시녀로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시녀 일이 마음에 안 드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지니가 아더의 눈길을 피하며 대답했다.

“조금 그렇잖아요…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의 시중을 드는 게.”

“…….”

“다른 집안의 시녀라면 상관없는데, 안면 있는 사람의 시중을 드는 건 조금…….”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흠… 지니 이런 데서 묘한 부끄럼을 타네.’

턱을 쓰다듬은 아더가 질문했다.

“그럼 저희집에서 일하는 건 괜찮아요?”

“…하는 거야 상관없죠. 문제는.”

“문제는?”

지니가 눈빛을 반짝인다.

“돈.”

“…….”

“돈이죠. 얼마를 주느냐에 따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죠.”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이건 또 지니답네요.”

“…저답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돈 밝히는 수전노?”

지니가 인상을 팍 일그러트렸다.

“참 어려운 말을 쉽게 하시네요.”

“굳이 빙빙 돌려 말할 필요 없잖아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조금 더 머물면서 생각해봐요. 돈은 안나하고 상의해서 결정할 테니깐.”

지니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정말로 여기 머물라고요?”

“네.”

“…저랑 같이 있어도 되는 거예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당연한 듯이 되묻는 아더의 말에 지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던님은 잘 모르겠네요.”

“저도 지니가 그럴 때마다 이해가 안 가요.”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제안했다.

“그럼 이건 어때요 던 님? 차라리 제가 던 님의 일을 도와드릴게요.”

아더의 눈이 커졌다.

“제 일을요?”

“네. 용병 일이건… 아니면 이번 사건처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던 님을 도와드릴게요.”

“…….”

“그러면 상황 자체가 깔끔하지 않을까요? 저도 조금 더 편하게 이 집에 머무를 수 있고, 명분도 적당하고.”

아더가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그런데 지니 더 이상 용병 일은 하지 않는다면서요?”

“그건 맞죠. 하지만…….”

말을 흐린 그녀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던 님은 절 도와주기도 했고…….”

“…….”

“또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그쪽 방면이기도 하니깐, 던님이 부탁하면 해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지니가 다시 시선을 돌려 아더를 바라봤다.

“전 누군가한테 빚지는 건 싫거든요.”

“오…….”

“그러니깐 던 님이 오늘 일을 구해준 거에 대한 빚을 갚을 때까지, 뭐든 도와드릴게요. 어때요? 이 조건이면?”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좋네요. 거절할 이유가 없을 만큼.”

“좋아요, 그럼 계약 성립?”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마주 잡은 지니가 장난기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아더 바이에른 공자님이라 불러야 하나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편한 대로 해주세요. 그건 그렇고.”

아더가 방긋 웃으며 환영 인사를 건넨다.

“바이에른 가문에 오신 걸 환영 해요, 지니.”

* * *

다음 날.

아더는 안나한테 간략한 상황설명을 했다.

“…이렇게 돼서 지니가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게 됐어 안나.”

옆에 있던 지니가 우물쭈물, 걸어 나와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려요, 안나 양. 저는지니… 데이븐이라고 합니다.”

안나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 지니 씨는 완벽하게 우리 사람인 거예요 공자님?”

“음… 일단 그렇지? 사정이 있어서, 머물기는 할 텐데 그래도 공짜로 머물기는 싫다고 해서 적당한 일을 줘야 할 것 같아 안나.”

옆에 있던 지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나눈 대화에서는 적당히 집에 머물다, 아더가 요청할 때마다 일을 도와주기만 하면 되었지만 지니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눈치 볼 바에야 그냥 적당히 구실 만들어서 일이나 하는 게 낫지.’

아더의 시종을 드는 건 제외하면 어떤 일이건 가능했다.

아케인에서 10년간 생활하면서 못해본 일이 없으니 말이다.

생각과 함께 지니가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짜로 지낼 생각은 없으니깐 뭐든 시켜 주세요, 안나 양.”

“그냥 편하게 지내셔도 되는데요, 지니 씨.”

“저도 눈치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흠…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겠네요. 그럼 얼마나 머무시는 거예요?”

질문에 지니의 말문이 막혔다.

‘… 그러고 보니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 거지?’

일주일? 한달?

아니면 갑자기 상급 정령술사가 된 이유를 밝혀낼 때까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그 때 아더가 입을 연다.

“지니가 원할 때까지.”

“……?”

“지니가 원할 때까지 머무르게 할 거야. 그러니깐 잘 대해줘 안나.”

대답에 지니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안나가 만족스레 웃었다.

“그럼 일단 적당한 일부터 가르쳐 볼게요, 공자님.”

“응 그래 줘.”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집안을 나섰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이제 늦장 부리면 정말로 지각이라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손을 흔들었고, 지니도 얼떨결에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두 여자의 배웅을 받은 아더가 저택을 나섰을 때, 옆에 있던 안나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니 씨.”

“네?”

“앞으로 편하게 부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지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도 그냥 지니라고 불러주세요.”

“흐음… 그럼 지니.”

“네?”

“우리 공자님하고… 무슨 사이에요?”

날카롭게 찔러 들어온 질문에 지니가 입을 다문다.

그 반응에 안나가 속으로 탄성을 터트리는 사이, 지니가 모아진 미간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음… 일단 친구 사이예요.”

안나가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그렇죠. 원래 친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긴 해요.”

“……?”

“그런데 어떻게 두 분 친구 사이가 된 거예요? 보니깐 지니는 아케인 대학도 안 다니는 것 같은데?”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뭔가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한데?’

어떤 일을 하고 싶냐, 또는 어떤 일에 자신 있냐, 라는 질문을 들을 줄 알았던 지니였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저하고 공자님하고 연이 있는 분이 있는데 그분 소개로 만나다 친해졌어요.”

“연이 있는… 분이요?”

말꼬리를 흐린 안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레온 마드리드… 황자님한테 서로를 소개받은 건가?’

돌아가는 정황으로는 그래보였다.

‘서, 설마 삼각관계는 아니겠지?’

짐작이 맞다면 공자님이 불행해질 가능성이 컸다.

‘보통 서브 남주 포지션은… 끝 결말이 안 좋던데.’

한 여자만 줄곧 바라보다, 결국 주연 남자와 엮이는 것이 로맨스의 정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는 걸 안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뀔 수가 있다는 거지… 그러니깐 여기서 내가 힘내야 하는 거고!’

생각과 함께 안나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희 공자님 진짜 좋은 분이죠.”

“……?”

“가끔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심성은 착한 분이에요 그렇죠, 지니?”

질문에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심성이 착하다고? 아더 바이에른이?’

지금껏 보아온 아더 바이에른은 심성이 착하기보다는 심성이 없는 미친놈이었다.

그 탓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아더 바이에른의 시종인 안나한테 이런 말을 할 순 없었다.

“그, 그렇죠. 심성이 착하긴… 하죠?”

“역시 지니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그리고 공자님 가만 보면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잖아요? 왜 여태 여자친구가 없는지 모르겠어요!”

“…확실히 키가 크고 얼굴도 준수하시죠.”

그래서 더 괴리감이 크기도 했다.

저 멀쩡한 허우대를 가지고 왜 그런 미친 행동만 골라서 하는 걸까?

허나 이런 지니의 마음을 모르는 안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서 제안했다.

“후후… 이거 뭔가 수다를 떨어야 될 타이밍 같은데요?”

“수다요?”

“네! 원래 친해지려면 수다도 떨고 티타임도 가지고 그래야 하잖아요! 잠시 기다리세요, 차와 과자를 가지고 올 테니깐!”

이 말과 함께 안나가 콧노래를 부르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니는 눈을 끔뻑였다.

‘…명문가의 시녀쯤 되면, 제 주인한테 저렇게 자부심이 있구나.’

그 탓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더 바이에른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그 생각과 함께 조심스레 거실에 비치된 소파에 앉았을 때였다.

“…….”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이 창살을 통해 들어왔다.

그 탓인지 몰라도 집안의 분위기는 따스했고, 몸과 기분도 덩달아 나른해졌다.

“좋네…….”

이 말과 함께 지니가 미소 짓는다.

처음엔 불편하기만 했던 저택, 그러나 머물 장소로 정해진 순간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니는 문득 떠올린다.

‘만약 여기서 계속 머물면… 나는 꿈을 이루는 거 아닐까?’

생각과 함께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식으로 꿈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런데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미소 지은 지니는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걸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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