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73화 (73/265)

제73화

A-12구역.

선택받은 소수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최고급 레스토랑.

나탈리에서 단 두 명의 손님이 식기와 나이프를 들었다.

“들어보니 저번에 한 번 방문했다면서요 공자?”

“저번에요? 아… 네. 한 번 방문하긴 했죠.”

“여자랑 있었다면서요?”

“여자긴 했죠?”

“흐음… 여자친구에요?”

“여자친구긴 하죠. 시장님이 생각하는 방향과는 약간은 다른.”

아더의 말에 스테이크를 자르던 안젤리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뭔데요?”

“연애 뭐 그런 쪽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죠? 보통 이런 데는 호감을 느끼는 이성과 함께 오니깐.”

아더가 미디엄 레어로 구워진 스테이크를 포크로 푹 찌르며 말했다.

“그거 나쁜 고정관념이에요 시장님.”

“……?”

“좋은 식당은 좋은 사람과 오는데죠. 그 호감도 굳이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아니라 순수한 호감일 수도 있고.”

안젤리나가 탄성을 터트렸다.

“와… 저한테 충고 하는 사람, 진짜 오랜만에 봐요.”

“어 진짜요? 그렇게 친한 사람이 없어요?”

“…그런 의미가 아닌데.”

“그럼요?”

눈을 끔뻑이는 아더의 모습에 안젤리나가 입을 다문다.

‘뭔가… 말려드네.’

저번에도 느겼는데, 이 소년과 대화를 하면 항상 페이스를 잃는다.

생각과 함께 안젤리나가 옆에 있던 잔을 집어 들었다.

“이 문제는 나중에 토론하는 걸로 하죠 공자. 일단 처리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죠. 일단 이 문제부터 처리해야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지인이 노예시장에 잡혀갔더라고요. 그래서 사고를 좀 쳐버렸어요.”

“흠… 노예시장에 지인이 잡혀갔다?”

“네. 함부르크라고, 아주 나쁜 노예 상인이 범인이더라고요.”

안젤리나가 턱을 괸다.

“그 사고가 마력발전소를 쾅.”

“…….”

“터트리는 사고였다?”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사고에요.”

대답에 안젤리나가 턱을 괸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믿기 싫은 데 진짜 진심이네요. 거짓말이 아니라.”

“안젤리나 시장님께서는 거짓말을 구별할 줄 아는데, 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그거야 모르죠. 이 능력은 만능이 아니라서 애매한 진실도 진실로 치거든요.”

안젤리나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더 자세한 내막이 있죠?”

아무렇지 않게 던진 질문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내막이야 있죠. 하지만 설명 드리긴 곤란하네요.”

“그걸 말씀 안 해주면, 도와드리기 곤란한데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대답에 안젤리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이렇게 물러나도 돼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들어줄 생각이 없으신데, 물러나야죠.”

“…….”

“사실 안젤리나 님이 사고를 수습해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조금 큰 사고기도 하고… 그러니깐 제 가문에서 일을 처리할게요.”

안젤리나가 웃었다.

그 웃음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혹시 제가 실언을 했나요, 시장님?”

“아뇨. 그냥… 공자가 참 무서운 사람이다 싶어서 말이에요.”

“제가요?”

“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잖아요.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공론화 해서 사건을 마무리하겠다 이거 아니에요?”

이 말과 함께 안젤리나가 눈빛을 번뜩였다.

그 날선 시선에 아더가 눈을 끔뻑이다, 머리를 긁적였다.

“흠…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건 참 불편하네요.”

“와… 진심이었어?”

“진심까지는 아닌 데 염두는 해두고 있었죠.”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에 안젤리나가 혀를 내둘렀다.

‘무섭네 이 꼬마. 날 상대로 협박을 한다고?’

아케인 시에서 노예시장이 버젓이 열린다.

그 와중에 바이에른 가의 사람이 납치를 당해 큰 봉변을 겪었다.

만약 이 사실을 알려지면 아케인 시의원들은 물론이고, 제국 전역에서도 크게 문제 삼을 것이다.

‘그 점을 노려서 순순히 협력하란 소리겠지. 대단하네… 이 꼬마.’

일반적인 거래를 할 줄 알았던 자리를 설마 교섭의 자리로 만들 줄이야.

생각과 함께 안젤리나가 제 손톱으로 툭, 와인잔을 두드렸다.

“공론화시키세요.”

“…….”

“그리고 공자는 아케인 법에 따라 처벌받을 거예요.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생각 안 해놨어요.”

“…….”

“안젤리나 시장님같이 넓은 아량을 가진 분이라면 분명 편의를 봐줄 거라 믿고 있거든요.”

안젤리나가 눈을 치켜뜬다.

“…….”

그 상태 그대로 아더를 바라보던 안젤리나는 곧 폭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와… 이것도 진심이라고?”

“…….”

“하아… 졌어요 공자. 부탁 들어드릴게요. 이번 사건은 공자의 요청대로 [아더 바이에른은 엮이지 않았다.] 이렇게 마무리 지을게요.”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시장님. 부탁을 들어줘서.”

“원래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했잖아요? 물론… 이런 소원이 될 줄은 몰랐지만.”

이 말과 함께 안젤리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하지만 공자 명심하세요. 넘어가는 건 이번뿐이에요.”

“…….”

“아케인의 법을 다시 한번 어기면, 그 때는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역할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돈을 쓰는 거예요. 다른 귀족놈들처럼.”

아더가 똑같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저는 경제 관념이 투철해서 그럴 순 없어요.”

“……?”

“돈은 계획대로 써야죠. 땅을 파도 안 나오는 게 돈인데.”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시장님. 볼일이 있어서.”

꾸벅, 인사를 한 아더가 정말로 자리를 떠,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턱을 괸 채 지켜보던 안젤리나는 중얼거렸다.

“땅를 파도 돈이 안 나온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또 왜 거짓말이야? 진짜 종잡을 수가 없네…….”

* * *

나탈리 레스토랑을 빠져나온 아더는 기지개를 켰다.

‘의외로 쉽게 정리된 거 같은데?’

뒷거리의 세력은 흰 수염이.

양지의 전투경찰은 안젤리나가.

든든한 두 후원자의 힘으로 생각보다 사태의 뒷수습을 수월하게 한 듯했다.

‘미쳐있던 나라면, 이렇게 깔끔하게 수습하지 못했겠지?’

수습은커녕 오히려 더 사건을 키우고 다녔을 것이다.

그 옛 시절을 떠올리던 아더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그때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몰라. 사실 과거의 나는… 운이 좋았던 거 아닐까?’

생각과 함께 아더가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올라탄다.

“모시겠습니다, 공자.”

부드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리무진이 도로를 내달렸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더는 창문을 열고 밝은 햇빛에 휩싸인 아케인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모르겠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한 구역 전체가 박살 나는 폭발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겠지. 저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 그 중 절반도 나는 알아채지 못할 거야.’

그래서 흥미로웠다.

한 도시 한 거주 공간에 사는데 이렇게나 다른 삶을 살다니.

생각과 함께 아더가 제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선선한 바람을 느낄 때였다.

어느 사이엔가 바이에른 저택에 도착했는지 리무진이 멈춘다.

차에서 내린 아더는 저택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온도.

익숙한 풍경.

그 탓인지 몰라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더는 나른해지는 감각을 굳이 거스르지 않으며, 저 멀리 서 있는 안나를 향해 인사했다.

“안나! 나 왔어!”

인사에 안나가 고개를 돌린다.

“공자님…….”

말을 흐린 그녀가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뭔 상황이에요?”

* * *

개 조련사에게 사육당하던 다섯 마리의 개들이 안나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컹컹-!

원인은 그녀의 손에 들린 개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개들의 억센 힘에 안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도, 도대체 이 친구들은 다 어디서 데려오신 거예요!”

그녀의 외침에 아더가 웃으며 말했다.

“길 가다 만난 애들인데, 날 잘 따르더라고. 주인도 없어 보여서 데려왔지 뭐야?”

“이, 이 덩치들을 길가에서 만났다고요? 군견들 같은데?”

날카롭게 찔러 들어온 안나의 질문을 은근슬쩍 무시한 아더가 손뼉을 쳤다.

“자자. 애들아. 안나 그만 괴롭히고 여기로 오렴.”

이 말에 흥분하던 개들이 일제히 멈춘다.

컹컹-!

안나에게서 멀어진 개들이 조심조심 아더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어이가 없어져 중얼거렸다.

‘뭐야? 공자님 앞에서는 저렇게 순해진다고?’

저 개들 덕분에 온종일 고생을 했는데, 괜히 억울해진 안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사이 개들을 쓰다듬던 아더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안나 말도 따를 거야.”

“…제 말을요?”

“응. 앉아 해봐.”

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순순히 아더 말에 따랐다.

“앉아.”

그러자 놀랍게도 달려들기만 하던 개들이 안나의 말에 따라 일제히 착석했다.

안나가 입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공자님 개 조련사예요?”

“응?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으로 통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먼저 온 손님들은 어디에 있어?”

“공자님 방안에 일단 모셔놨어요. 그… 다른 시종들이 봐서 좋을 게 없어 보여서.”

그녀의 설명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안나야. 고마워.”

이 말에 안나가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제국의 황자님하고 어떻게 엮었고, 또 그 아름다운 여자분은 누구고 으… 다 묻고 싶은데 참아야겠지?’

처음에 레온과 지니라는 여자가 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무려 제국의 황자가 심한 부상을 입고서 저택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황자 못지않게 부상을 입은 묘령의 여자도 같이 있었고.

뭔가 엄청난 사연이 있다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안나는 굳이 묻지 않고 자리를 피해줬다.

아더가 그런 상처를 똑같이 입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유를 알아냈겠지만, 이 저택의 주인은 옷만 조금 해졌을 뿐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야.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고.’

생각과 함께 안나가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 사이 아더는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지니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레온이 보였다.

“여러분 저 왔어요.”

이 말에 레온이 시선을 돌리고, 지니가 몸을 일으켰다.

“아더!”

“던님!”

각기 다른 외침과 함께 둘이 흠칫 놀라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 모습에 아더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요 레온. 이미 여기 데려온 마당에 정체를 숨길 생각은 없어요.”

“…하긴 그렇겠군. 나도 이미 들킨 마당이고.”

이 말과 함께 레온이 절도 있게 허리를 숙인다.

“숲의 주인이자 미의 화신. 그 후손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제국의 칠황자 레온 마드리드라고 합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니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어, 어… 네. 전 지니 데이븐입니다.”

“그렇군요. 편하게 지니 양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편한 대로 해주세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지니 씨가 저렇게 당황한다고?’

하긴, 제국의 황자가 무려 허리를 숙이며 인사해왔는데 당황하지 않는 게 이상할 것이다.

그 사이 숙였던 허리를 들어올린 레온이 아더를 향해 질문했다.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할까?”

“일 이야기요?”

“그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이 말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음… 그건 맞긴한데 황자님 뭐 했어요?”

“…뭐?”

“아니 정보를 공유하려면, 뭔가 한 일이 있어야 하는데 레온 이번 일에서 한 게 뭐 있어요?”

레온이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뒤늦게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치려다 멈칫했다.

‘… 진짜로 한 게 없네?’

함부르크를 죽인 것도 아더였고, 데스나이트를 무찌른 것도 아더였으며, 마시알의 말에 따르면 대피할 시간을 벌어준 것도 아더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한 일은 놀랍게도 하나도 없었다.

여기까지 각한 레온이 입맛을 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경매장에서 빠져나오는데는 도움을 줬잖아?”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양심 없으세요, 황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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