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72화 (72/265)

제72화

흰수염이 웃는다.

그 미소를 지켜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악마가 웃는다면, 저렇게 웃지 않을까?’

올라간 광대나 비틀어진 입꼬리.

악마가 웃는다면 저렇게 웃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흰수염이 고개를 기울며 묻는다.

“내가 자네 몸뚱어리를 원하는 거… 어떻게 알았나?”

질문에 아더가 솔직히 대답했다.

“그냥 추측이었어요. 흰수염 씨는 혈통을 모은다고 했고, 저에게 호의를 보여줬죠.”

“그래서?”

“전 대가 없는 호의는 믿지 않아서 그 이유를 줄곧 생각해봤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흰수염 씨가 절 도와줄 이유가 없더라고요.”

흰 수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도와줄 이유가 없지.”

“그럼 답은 하나뿐이죠. 흰수염 씨가 절 도와주고 살려준 데에는 원하는 게 뭔가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금방 답이 나오더라고요.”

아더가 웃었다.

“제 혈통. 제 피를 원하는 거 아니에요? 프라킬 씨를 데리고 있던 것처럼?”

흰수염이 박수를 쳤다.

“너무 정확해서 놀랍군. 맞아. 난 자네의 피를 원하고 있어.”

“몇 방울쯤 드릴 수 있는데 드릴까요?”

“아니. 몇 방울 가지고는 수지타산에 안 맞지. 난 이미 자네 뒤치다꺼리를 두 번이나 했다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번이요? 한 번이 아니고요?”

“검은 십자가 일. 기억나나?”

“……? 예니카요?”

“오? 그 공주님하고 만났어?”

“네. 그런데 예니카가 왜요?”

흰 수염의 고개가 90도로 돌아가며 아더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자네를 죽이려 했어. 제 일을 방해한 대가로. 그래서 내가 큰돈을 쥐여주며 물러나라 했지.”

“…….”

“그래서 두 번이네. 일국의 왕도 내 도움 한번을 받기 힘든데 자네는 벌써 두 번이나 빚을 졌군.”

코앞까지 다가온 흰수염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도와달라 안 했는데요?”

“그러면 자네는 죽었겠지.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직 죽일 생각은 없다 이건가?’

솔직히 말해 조금 전 마주쳤던 할리버보다 눈앞의 노인이 더 위험했다.

할리버는 도망을 친다는 가정하에 살아날 확률이라도 있지, 이 노인은 그 확률마저도 보이지 않았으니깐.

그런 의미에서 당장 자신을 죽일 생각 없다는 걸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아직 죽일 때가 아니라거나…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편해진다.

“그럼 오늘도 살려주실 거죠?”

“…살려줘?”

“네. 그럴 생각이신 거 아니에요?”

90도로 돌아갔던 흰 수염의 고개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후 입을 열지 않고서 빤히 아더를 바라보았다.

“……?”

그 침묵 깃든 시선에 아더가 눈을 끔뻑일 때였다.

흰수염이 김이 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자네. 두려움을 못 느끼는군?”

“네?”

“두려움이란 감정이 없어. 그것 참 신기하군…….”

말을 흐린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지켜보던 아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였다.

“뭐 맞아… 일단 자네를 살려둘 생각이라네.”

아더가 멈칫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흰 수염이 시선을 돌리며 화아이 제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자네는 조금 더 성장해야 하거든. 자네의 핏줄에 섞인 능력을 반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고.”

이 말과 함께 흰수염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황혼에 젖은 노인 특유의 여유로움이, 그에게서 풍겨왔다.

‘신기하네… 분위기나 표정이 이렇게 확 바뀌다니. 그리고 하는 말도 재밌고.’

생각과 함께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질문했다.

“제 능력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자네는 여태 남의 혈통을 흡수하는데만 신경 썼지?’

“네.”

“그 능력의 진짜는 그런 게 아니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뭔데요?”

흰 수염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그건 자네가 알아가야지. 그래야 의미가 있는 능력이거든.”

“에이 그러지 말고 알려줘요.”

“알려줘서 금방 깨달아 버리면 나한테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새롭게 깨달은 능력으로 제가 흰 수염 씨를 죽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깐 좀 가르쳐줘요.”

흰 수염이 이번에는 폭소를 터트렸다.

“나를 죽여? 자네가?”

그 웃음에 아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지긋이 흰수염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흰수염의 웃음도 점차 잦아들었다.

“…진심이군.”

아더가 방긋 웃었다.

“진심이죠. 그럼.”

“허허… 이건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인데.”

“흰수염 씨 같은 위험한 사람에게 노려지는데 당연한 거 아닐까요?”

흰수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또 그렇군. 벌레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물며 인간인데 무슨 발악인들 못하겠나?”

이 말과 함께 흰수염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일의 뒤처리는 내가 해주지.”

“…….”

“골치아플 것 같지만, 이대로 두면 자네가 죽을 것 같거든. 너무 여러 명을 건드렸어. 그 중에는 꽤 위험한 자들도 섞여 있고.”

아더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흰 수염 씨.”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지 말게나. 나라고 해서 모든 인간들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니니깐.”

“그 정도는 제가 감수해야죠.”

“뭐… 믿고 있겠네. 그런데 문제가 있어.”

“문제요?”

흰수염이 위를 가리켰다.

“아케인 시.”

“…….”

“자네가 마력 발전소를 건드는 바람에 그 깐깐한 공무원들이 나설 거야. 잘하면 전투경찰도 투입 되겠지.”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맞네요… 폭발이 일어났으니 수사가 들어오겠네…….”

“내가 생각하기엔 그쪽이 더 까다로울 거야.”

“음… 그건 제가 알아서 한 번 해볼게요.”

흰수염이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있나 보군?”

“숨겨 놓은 패 한 장 정도는 있죠.”

대답에 흰수염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제 검은 도복을 툴툴 털어냈다.

“자. 그럼 이만 돌아가지. 나도 자네도…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이니깐.”

아더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언제 절 찾아오실 거예요?”

“글쎄…….”

말을 흐린 흰수염의 고개가 다시 45도로 돌아간다.

“때가 되면… 자네가 자네의 핏줄에 대해 정확히 깨달으면…….”

이 말과 함께 흰수염의 입꼬리가 눈꼬리까지 올라간다.

“그 때 자네에게 빚을 받으러 가지. 그러니 잘 지내고 있겠나. 바이에른의 작은 천사여.”

* * *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D-52구역.

그 구역에 일어난 소동을 조사하기 위해 투입된 아케인 시 전투 경찰 소속 제3팀장, 테넌 홈즈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지독하군.”

이 말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은 테넌이 주위를 둘러본다.

전쟁이라도 난 것마냥 내려앉은 건물.

포격이라도 맞은 것마냥 박살이 난 도보.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입은 피해로만 보면 테러라 규정지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하고. 왜 건물만 때려 부수고, 그 쓰레기들은 안 죽인 거지?’

생각과 함께 반밖에 피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그가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저 멀리서 토끼 귀를 가진 여자가 깡총깡총 뛰며 다가왔다.

“테넌 팀장님!”

외침에 테넌이 손짓하자, 토끼 귀를 가진 여자가 뛰쳐 오른다.

그 한 번의 도약으로 테넌의 곁에 다가온 토끼 귀의 여자가 거수경례를 박았다.

“현장 감식반이 도착했습니다! 테넌 팀장님! 그래서 허락을 맡…….”

“됐어. 일단 우리 조사가 먼저야. 그러니깐 빨리 가자고. 헬라 형사.”

“네, 넵!”

대답과 함께 헬라와 테넌이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그들은 얼마 안 있어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은 폭발의 중심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마력 발전소가 있던 장소였다.

“…워. 뭐 폭탄이라도 터트린 건가?”

중얼거림에 헬라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정말로 테러일까요? 소문으로는 그 혁명당인지 반란당인지 모를 놈들이 일으킨 사태라고…….”

“헬라 형사.”

“네?”

“내가 말했지. 그런 소문을 믿지 말고, 정보와 흔적. 그리고 제 직감으로 상황을 판단하라고.”

헬라가 눈을 끔뻑였다.

그 끔뻑임과 함께 그녀의 귀도 움찔거렸는데, 그 모습이 퍽 귀여웠지만 테넌은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 충고했다.

“그리고 매번 충고하잖아. 형사가 그렇게 얼빵한 표정 지으면 안 된다고.”

“아, 앗 넵넵!”

“대답은 잘하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건 그런 형식적인 대답이 아니야.”

“……?”

“한 번 생각해봐. 왜 반란당이니 혁명당이니, 그 미친 인간들이 이번 소동을 일으킨 게 아닐까?”

헬라가 미간을 살며시 모으며 중얼거렸다.

“음… D-52구역에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 좋은데? 계속 설명해봐.”

“네, 넵! 제 사견으로는… 만약 이런 소동을 일으킬 거였으면 B구역이나 C구역. 하다못해 A구역에 일으키는 게 그들로서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테넌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 반란당이니 혁명당이니… 그런 놈들이 원하는 건, 대개 거창한 명분을 앞세워 아케인 시나 기업들에게 돈을 뺏는 게 목적이야.”

이 말과 함께 테넌이 D-52구역을 가리켰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뒷거리에 굳이 큰 소동을 일으킬 필요가 없단 말이지. 차라리 A구역에 거주하시는 높으신 분들 몇을 인질로 잡는 게 훨씬 돈을 뜯어내는데 좋을 테니 말이야.”

헬라가 눈빛을 반짝였다.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다음부터는 나한테 그런 소문을 들고 오지 않겠지?”

“넵!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힘찬 대답에 테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원래라면 마력발전소가 있어야 할 장소의 흔적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 흠. 자신만만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나도 범인은 모르겠네.’

누가 그 함부르크에게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생각과 함께 테넌이 떠올린다.

‘D-52구역의 함부르크.’

뒷세계의 거물과 잔챙이.

그 어딘가쯤에 노예 상인.

그래서 아케인 시 전투 경찰도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거물이면 예의 주시했을 것이고, 잔챙이라면 밀어버렸을 텐데.’

함부르크는 노린 것인지 몰라도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다.

그런데 그 함부르크와 그가 건설한 지상낙원이 단 하룻밤만에 사라졌다.

D-52구역을 예의주시하던 테넌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힌 이 아케인에서 이런 미친 사건이 벌어지는 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번임에도 직접 현장에 나와 이번 사태의 소동의 원인을 밝혀내려 했지만 별다른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 날아가서 뭐 하나 남는 게 없네… 이래서는 감식반이 와도 별 쓸모가 없겠는데?’

중얼거림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테넌이 고개를 든다.

‘그렇다 해서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한 구역 전체가 날아가는 폭발이다.

그 폭발의 시발점이 되는 장소는 말할 것도 없이 모두 녹아내렸을 것이다.

‘즉, 이 폭발을 터트린 인간은 높은 확률로 죽었단 소리지.’

물론 예외는 있었다.

텔레포트가 가능한 마법사나 특수한 아티펙트의 능력.

그들이라면 이 폭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그럼 마법사가 범인인가?’

던져진 질문에 테넌이 고개를 저었다.

경찰청 특수 아티펙트.

통칭 마력 감지 시계에 잡히는 특정 개인 마력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범인이 현장을 벗어난 도주의 수단이 마법이 아니란 소리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테넌은 입맛을 쩝 다셨다.

“미스테리한 사건이네.”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테넌 팀장님?”

“현장까지 왔는데 뭐 하나 발견하고 특정하지 못하는 건 오랜만이라서 말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테넌의 말에 헬라의 눈이 커졌다.

‘테, 테넌 팀장님이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제상관인 테넌 홈즈는 경찰청 내부에서도 가장 뛰어난 경찰관이다.

그가 해결하지 못할 사건이면 애초에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니 말이다.

그 탓에 헬라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팀장님이 찾지 못할 정도면… 그냥 단순 사고 아닐까요?”

“마력 발전소가 터졌는데 사고? 글쎄… 난 그럴 확률은 없어 보이는데.”

이 말과 함께 테넌이 씩 입꼬리를 올린다.

“일단 내 생각엔 범인이 있어. 문제는 범인의 동기와 사고를 일으킨 수단인데… 그건 뭐 이제부터 알아나가야지.”

테넌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뒤는 감식반에 맡기고, 경찰청으로 이만 돌아가지. 부장님께 보고 올리고, 정식으로 수사팀 꾸려야겠어.”

“넵! 알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테넌과 헬라가 A-11구역에 위치한 경찰청으로 돌아갔다.

그 후 현장 보고서를 부장에게 올린 테넌이 수사팀을 꾸리려 할 때였다.

“그만 둬.”

“……?”

“이번 건은 여기서 덮는다. 자네한테는 다른 건을 맡길 걸세.”

부장의 말에 테넌이 놀라 질문한다.

“아니 이 사건을 덮는다고요?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나도 몰라. 위에서 까라니 까는 거지.”

테넌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청장님이 그 노예 상인에게 상급 영단이라도 받았답니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

“그 썩어빠진 인간이 또 뇌물을 받고 사건 덮으라 했으면 좋겠다고.”

테넌의 눈이 커졌다.

“…청장님의 지시가 아니란 소리입니까?”

“그래 맞아.”

“그럼 누구입니까?”

질문에 부장이 하늘을 가리켰다.

“저 위.”

“……?”

“우리 청장님보다 더 위… 그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야. 그러니깐 함부로 움직이지 말게.”

테넌의 입이 벌어졌다.

아케인 경찰 청장보다 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고?

‘… 그럼 대체 어디야?’

공식적으로 경찰 청장보다 위의 직급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경찰 청장에게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케인 시장.

안젤리나 베이비, 그녀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