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아더의 목이 댕강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니가 눈을 치켜떴다.
“던… 님?”
이 말과 함께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다.
그 변화와 함께 거친 돌풍이 그녀의 주위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개새끼가--!!!”
외침과 함께 돌풍이 칼날로 바뀌어 할리버를 향해 쇄도했다.
눈을 치켜뜬 할리버가 중얼거렸다.
“호오… 엘프라고?”
이 말과 함께 할리버를 향해 쇄도하던 돌풍이 사라졌다.
“!”
언제 휘둘렀는지 모를 거대한 대검이, 그 돌풍을 지워버린 것이다.
입을 벌린 지니가 다시 한 번 실프의 능력을 사용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후욱-!
둔기마냥 휘둘러진 대검이 실프의 보호막을 깨버리며 지니를 후려쳤다.
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벽면에 쳐박힌 지니가 그대로 기절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여기서 수명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과 함께 뛰쳐든 레온이 할리버의 뒤를 점한다.
동시에 반달 모양으로 물든 두 눈의 힘으로 할리버의 내면세계로 침투하려 할 때였다.
‘재미있는 능력을 사용하는군.’
귓가로 들려오는 속삭임과 함께 레온의 목이 떨어졌다.
정확히는 할리버의 내면세계로 침투하려던 레온의 정신체였다.
“……!”
입을 벌린 레온이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순식간에 두 명을 제압한 할리버가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중얼거렸다.
“흠… 이건 제국의 핏줄인데?”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놈은 엘프. 한 놈은 제국의 핏줄… 무슨 이런 조합이 다 있지?’
평생을 살면서 보기 힘든 핏줄의 주인들이 한 곳에 뭉쳐 있다니?
그 탓에 조금의 흥미를 느낀 할리버가 고민 할 때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 당신이 할리버였어요?”
움찔 놀란 할리버가 고개를 돌렸다.
“호오? 살아났어?”
이 말과 함께 떨어진 제 목을 주워든 아더가 끼워넣는다.
“살아나긴 했는데 저도 될 줄 몰랐네요. 이렇게 살아난 건 처음이라서.”
할리버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내 기사를 쓰러트린 건 우연이 아니라 이거지?”
“아 그 데스나이트요?”
“응. 제법 공들여 만든 놈인데, 쓰러져서 놀랐거든. 덕분에 이렇게 찾아왔고.”
“그분은 자기가 할리버라 주장하던데요?”
할리버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건 그 놈이 나한테 죽은 기사라 그래.”
“…죽은 기사라고요?”
“죽었던 영혼을 다시 이 세상에 묶어놓으려면 강한 집념이 필요한데, 그 매개체를 나에 대한 복수심으로 넣어놨거든.”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래서 스스로를 소드마스터라 부르고 할리버라 칭했군요?”
“집념이 너무 강한 나머지 제 이름도 잊어버린 거지. 자 그래서….”
말을 흐린 할리버가 다시 아더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이번에도 그 움직임을 쫓지 못한 아더였다.
“자네는 몇 번이나 더 죽으면 죽지?”
아더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살려주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요?”
“웬만하면 없지 않을까? 자네는 내가 후원하는 인간을 죽였고…….”
할리버가 재만 남은 데스나이트의 머리를 가리켰다.
“하늘 섬의 사자를 죽였지. 이야기 정도는 들어봤지? 조랑말을 타고온 데스나이트를 죽이면 하늘섬의 보복을 감당해야 할 거라고?”
할리버가 겨누었던 대검을 조금씩 밀어 넣었다.
대검이 목으로 파고드는 섬찟한 감각에 아더의 탄성을 내지르며 중얼거렸다.
“이 두 가지를 만회할 무언가를 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군요?”
“흠……? 뭐 그렇지.”
“잠시만요 고민 좀 해볼게요.”
할리버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뭘 줘야지 이 괴물이 마음이 풀까?’
아니 그전에 이 괴물을 상대로 싸우는 선택지는 없을까?
궁리하던 아더는 눈을 끔뻑였다.
‘어라? 하나도 없네?’
놀랍게도 이 외팔이 사내한테 뭔 수를 써도 이길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금 전 테이큰과 비슷한 경지의 데스나이트를 이겨냈음에도 말이다.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이번 생에서 하늘 섬의 흰수염.
그자와 만난 뒤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 응? 흰수염?’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의 눈이 커진다.
그 사이 할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기다려 줄 만큼 기다려줬는데 뭐 좀 생각나는 게 있나?’
“음… 네. 뭘 줄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저도 하나 가진 게 있긴 해요.”
“가진 게 있다?”
“네. 당신이 혹할 만한 무언가죠.”
할리버의 눈에 흥미가 깃든다.
그 반응을 확인한 아더가 품속을 뒤져 지갑을 꺼내들었다.
지켜보던 할리버가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돈은 아니지?”
“어라? 돈이면 되나요?”
“설마.”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이 모셔놓았던 검은색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할리버가 눈을 치켜떴다.
“그건……?”
“역시 알아보시네요.”
“…….”
“이걸 건네주신 분이 저한테 그렇더라고요. 하늘 섬의 흰수염이라고.”
할리버가 입을 다문다.
조금 전하고는 다른 그 반응에 아더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제가 듣기로 이 카드가… 그분의 비호를 받는 자의 증표라던데, 아닌가요?”
할리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카드를 가진 사람은 흰수염 씨의 비호를 받지… 그런데 신기하네.”
말을 흐린 할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카드를 직접 본 건 나도 처음이라서 말이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는군.”
“아마 맞을 거예요. 흰 수염 씨 눈 없잖아요?”
“오? 직접 만나보기까지 했다고?”
탄성과 함께 할리버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더가 먼저였다.
휙-!
공간도약을 통해 그 일격을 피해낸 아더가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에 할리버가 다시 한 번 감탄하는 사이, 아더는 생각했다.
‘이 일격은 피하라고 휘두른 거야. 진심으로 휘두르면… 또 목이 잘렸어.’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다시 살아날지는 미지수였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저 소드마스터는 재생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사이 할리버가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중얼거렸다.
“흰 수염 씨하고 대적하고 싶지 않지만…….”
말을 흐린 그의 전신에서 푸른 빛의 마나가 솟구친다.
“이건 내 자존심 문제야. 아무리 흰 수염 씨 비호를 받더라도 목은 가져가야겠군.”
아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요.”
“대적할 셈인가?”
“아뇨? 도망칠 생각인데요?”
“동료는 내버려두고?”
아더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린 할리버가 눈을 치켜떴다.
‘언제?’
쓰러져 있던 한 쌍의 남녀가 사라진 상태였다.
설마 저 기괴한 능력을 쓰는 놈이 피신시킨 건가?
고민하던 할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저 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제삼자가 있다는 건가?’
생각과 함께 할리버가 웃음을 터트렸다.
목이 잘리고도 살아있는 놈 하나, 엘프 하나, 그리고 제국 황실의 혈통까지.
그런데 여기서 제 감각을 속이는 쥐새끼까지 있다고?
급격히 기분이 나빠진 할리버의 표정이 굳어질 때였다.
이변을 느낀 아더가 손을 들고서 인사한다.
“다음에 보죠. 할리버 씨.”
“내가 놓칠 것 같나?”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검을 휘두른다.
그 순간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운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죽는다.’
보이지도 막을 수도 없는 일격.
아더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공간도약을 사용하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솟아난 거대한 벽이 그 일격을 막아낸다.
쾅-!
폭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퍼져나갔다.
그 속에서 눈을 끔뻑이던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흰 수염 씨?”
이 말에 눈이 없는 노인.
흰수염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항상 사건을 몰고 다니는군. 바이에른의 작은 천사여.”
* * *
할리버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진짜 흰수염이 나타났다고?”
“…자네도 오랜만이군, 할리버.”
“오랜만입니다, 영감.”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치켜들고 있던 검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몰랐는데 50년만이던가요?”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 하긴… 정식 모임이 열린 것이 벌써 70년 전이니.”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린 흰 수염이 지팡이를 툭 두들겼다.
그 순간 조금 전 할리버가 박살낸 지면은 물론이고, 조금 전 격전으로 인해 망가졌던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그 기이한 광경에 아더의 눈이 휘둥그레 해진 순간, 흰수염이 할리버를 향해 제안했다.
“마음이 상한 건 알겠네.”
“…….”
“하지만 이쯤에서 물러나 줄 수는 없는가? 이 소년은 내게 꽤 중요한 인간이라서 말이지…….”
할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녀석이 대체 뭐길래 그러는 겁니까?”
“음… 내 소원을 이뤄줄 나만의 작은 신님?”
“……?”
“비유하자면… 그래. 나만의 작은 신이지. 그러니 내 체면을 좀 차려주겠나?”
다시 한 번 건네오는 제안에 할리버가 고민한다.
“…….”
손가락을 툭툭 두들기며 고뇌하던 그는 고개를 들고서 물었다.
“뭘 줄 수 있습니까?”
“수명 30년을 주지. 그리고 부서진 데스나이트도 고쳐주고.”
할리버가 탄성을 내질렀다.
“너무 좋은데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자네의 화를 식히는데 이 정도는 써야지.”
“그게 아니라, 그만큼 저 소년이 중요하다는 거 아닙니까?”
흰수염이 빙그레 웃었다.
눈이 없어 기괴한 웃음이었지만, 그래서 할리버는 놀랬다.
자신이 아는 흰 수염은 미소라는 걸 짓지 않은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저 소년이 뭐길래?’
제법 특이하다 하지만, 저 괴물 같은 노인네가 관심을 가질 요소는 딱히 안 보이는데?
호기심이 일었지만 할리버는 이쯤하기로 했다.
여기서 흰수염을 더 자극하는 건 자신으로서도 꽤나 큰 리스크를 져야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모임 때 뵙죠.”
“잘 가게나. 선물은 내 좀 있다 전해주지.”
이 말과 함께 할리버가 검을 내리긋는다.
그 순간 거대한 문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는 그 문을 열고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침묵한 채 지켜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와… 죽다 살아났네.”
흰수염이 고개를 돌렸다.
“알긴 아나 보군. 자네 방금 진짜로 죽을 뻔했단 사실을.”
“네. 도대체 저 분 누구예요? 소드마스터인 것까지는 알겠는데 완전 처음 보는데?”
“700년 전 검제의 칭호를 받았던 인간이야. 현 대륙에서 제일로 강한 칼잡이지.”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700년 전 검제의 칭호를 받은 칼잡이라고?’
대륙 제일검에게만 전해지는 명예로운 칭호.
당대 최고의 칼잡이에게 내려지는 수식언이기도 했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데, 흰수염은 저 할리버가 무려 700년 전, 그 칭호를 받은 칼잡이고 대륙 최고라 언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격을 보지도 못한 거구나…….’
생각과 함께 아더가 탄성을 터트릴 때 흰수염이 앓는 소리를 냈다.
“자네 덕에 무리하게 움직여서 허리가 아프군…….”
“앗.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가.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좀 내주겠나?”
제안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어디 가서 차 한잔이라도 할까요?”
흰수염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거 좋군. 이리로 오게나.”
이 말과 함께 흰수염이 지팡이를 두들기자 또 다시 문이 생겼다.
아더는 흰수염의 뒤를 따라 그 문을 넘었다.
그 순간 푸른 해변과 아름다운 모래사장.
그리고 내리쬐는 밝은 햇빛이 인상적인 해안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어디에요 여기?”
“화아이라고 내가 즐겨 찾는 섬이지.”
“화아이라고요?”
“와본 적 있는가?”
“아뇨? 그런데 요즘 이곳에서 파는 티셔츠를 입는 게 유행이라 하더라고요. 그 야자수 그려진 티셔츠.”
흰수염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 티셔츠가 유행이라고? 요즘 젊은이들의 미적 감각은 도통 모르겠군.”
“저도 잘 이해가 안 가요. 그런 옷이 뭐가 이쁘다고.”
흰수염이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테이블과 의자.
푸른색의 파라솔이 나타났다.
흰수염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고, 아더도 그 앞에 앉았다.
그렇게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때, 흰수염이 입을 열었다.
“많이 달라졌군.”
“제가요?”
“여러 혈통을 흡수하니 피부도 좋아 보이고.”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어라? 흰수염 씨. 제 능력에 관해 알고 있어요?”
“그럼 알지. 모르고 있겠나?”
“흠… 하긴. 저도 어렴풋이 눈치채고는 있었어요.”
흰수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눈치챘단 말인가?”
“흰 수염 씨 절 도와주는 이유 말이에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빙그레 웃었다.
“제 몸을 가지고 싶어서 도와주시는 거 아니에요? 흰 수염 씨?”
흰수염이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말을 흐린 아더가 웃었다.
“제 몸뚱이 말고 흰 수염 씨가 절 도와줄 이유가 없더라고요. 아닌가요?”
흰수염이 입을 다문다.
그 묘한 침묵 속에서 흰수염의 고개가 돌아간다.
“정답이네 바이에른의 작은 천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