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69화 (69/265)

제69화

하늘섬.

천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비밀 조직.

그 구성원들 대다수가 흉악한 범죄자로 판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 골드가 넘는 현상금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그들이 유명해진 이유는 어마어마한 현상금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지만, 몇백 년 전.

하늘섬의 조직원 중 한 명이 고대 왕국 하나를 멸망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 일화를 대다수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몇몇 이들은 이 이야기를 진짜라 믿었다.

그때부터 하늘섬은 괴담이자 전설.

그 중간 사이의 무언가에 속하며, 대륙 최고의 범죄 조직이라 불려왔다.

그리고 레온은 이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어떻게 인간이 천년을 넘게 살아?’

또 어떻게 일개 개인의 힘으로 나라를 전복시킬 수 있다 말인가?

허나 눈앞에 그 전설의 일부가 등장한 순간, 더는 허황된 이야기라 치부할 수 없었다.

“저, 정말입니까 지니 씨? 저 해골이… 하늘섬의 일원이라고요?”

“…정확히는 사자예요.”

“사자요?”

“네.”

지니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늘섬이 보내온 경고. 저 데스나이트를 죽이는 순간, 하늘섬의 분노가 덮칠 것이다.”

“…그럼 하늘섬의 일원이 아니란 소리 아닙니까?”

“사자라 하니, 하늘섬의 일원은 아니더라도 의지까지는 되지 않을까요?”

레온이 입을 다문다.

‘사자… 전쟁터의 그 사자를 빗대어 만든 말장난이라 말인가?’

생각과 함께 레온이 헛웃음을 터트릴 때, 해골이 입을 열었다.

[함.부.르.크.]

“...?”

[함.부.르.크.죽.었.다. 너희가 죽였다.]

이 말과 함께 해골이 칼을 내리그었다.

그 순간 뿜어져 나온 불길한 기운에 레온이 눈을 크게 떴다.

‘참격. 5서클 경지에 이른 칼잡이만이 쓸 수 있는 기술.’

그 기술을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이 쓴다고?

입을 벌린 레온이 지니와 쓰러진 마시알을 껴안고서 몸을 굴렀다.

쾅!

그 사이 레온을 스쳐 지나간 참격이 반대편 벽면에 흉측한 상처를 남겼다.

레온이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펴, 평범한 해골이 아니야?”

“데스나이트라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뭘 멍하니 있어요! 얼른 움직여요!”

지니의 재촉에 레온이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데스나이트가 칼을 휘둘렀다.

챙-!

두 개의 단검을 뽑아 들어 그 일격을 막아낸 레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기랄! 상성이 너무 최악인데!’

최면을 걸려고 해도 상대는 이미 죽어 있는 망자다.

몇십 년의 수명을 지불해도, 최면에 걸릴 일이 없는 존재란 소리다.

‘마킹을 해 둔 장소도 없어서 순간이동도 불가능해.’

상황을 판단한 레온이 데스나이트의 검을 떨쳐 내며 소리쳤다.

“지니 씨-! 일단 제가 시간을 끌 테니깐, 그 틈에 마시알을 데리고 도망…!”

그 순간 거센 돌풍이 휘몰아쳤다.

동시에 이쪽을 향해 달려오던 데스나이트가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쾅!

그 광경에 레온이 입을 벌리는 사이 지니가 소리쳤다.

“이 틈에 도망쳐요! 빨리 와요!”

정신을 차린 레온이 고개를 돌렸다.

지니가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던 님이 오기까지 시간을 벌어야 해요! 가요, 어서!”

고개를 끄덕인 레온이 부상을 입고 쓰러진 마시알을 업었다.

그 후 지니를 따라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

그 사이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킨 데스나이트가 손짓한다.

휘이잉-!

조랑말이 달려와 데스나이트 앞에 허리를 숙였다.

그 위를 올라탄 데스나이트가 고삐를 잡고서 중얼거렸다.

[놓.치.지.않.는.다.]

이 말과 함께 조랑말이 내달린다.

* * *

건물의 잔해에 파묻혀, 밤하늘을 바라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와 죽을 뻔했네….”

마력 발전소에 일어난 거대한 폭발.

사실 그 폭발은 아더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고였다.

그도 그럴게 마정석이 폭발한다는 이야기는, 미래의 자신도 들어 보지 못한 사실이었으니.

‘덕분에 정전만 시키려 했는데…. 도시 전체를 부숴 버렸네, 쩝….’

말을 흐린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큰의 혈통 능력과 운디네의 치료가 아니었다면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사지가 어느 사이엔가 재생되어 있었다.

[아, 아더!]

[…괜찮아?]

두 정령이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더는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미소지었다.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나 봐.”

[주, 죽다니!]

[그런 소라 하지 마!]

“사람은 누구나 죽어. 그때가 다를 뿐이지.”

이 말과 함께 기지개를 켠 아더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비스트와 운철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D-52구역을 바라보았다.

“….”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은 빈민가의 거리에서는 기쁨에 찬 환희도, 광기에 찬 웃음소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무거운 침묵만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시선은 확 끌었겠지?”

이런 큰 사고가 일어난 이상 함부르크를 위해 지니와 레온을 추격할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간의 경험상, 서로의 이득을 위해 모인 조직은 대개 그랬으니.

생각을 끝마친 아더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폐허가 된 도심 속을 내달린 아더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라?”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나 먼저와 기다리겠다던 레온과 지니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날 버리고 둘이서 도망친 건가?”

고민에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레온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지니는 그런 의리 없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 탓에 허리를 숙인 아더가 둘의 흔적을 찾기 시작할 때였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고개를 든 아더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조금 전 마주쳤던 개 조련사의 개들이었다.

“내가 말한 곳으로 잘 찾아왔구나?”

멍멍-!

“그런데 여기 다른 사람은 없었어? 만나기로 한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멍멍-!

개들이 아더의 옷을 물더니 어디론가 잡아 이끌었다.

아더가 순순히 끌려가 주니, 벽면에 새겨진 거대한 흠집이 보였다.

“오… 참격?”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급의 칼잡이가 여기 왔었다?’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또 다른 흔적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말발굽이었다.

꽤나 덩치가 작은 모양인지, 움푹 팬 지면의 크기가 상당히 작았다.

“…조랑말 아닌가 이거?”

그런데 기사가 조랑말을 타던가?

눈을 끔뻑이던 아더는 몸을 일으켰다.

‘뭐… 일단은 기사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둘 다 살아 있으려나?’

레온이 그 최면을 쓴다면 모를까, 만약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라면 기사급의 칼잡이를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건 지니도 다르지 않을 것이고 최악의 상황의 경우 두 사람 모두 죽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레온은 몰라도, 지니는 곤란한데….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개구멍 앞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이 도시를 탈출하려면 이 개구멍 이용해야 했고, 그렇다면 자연스레 두 사람의 생사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아더가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다섯 마리의 개들이 아더 앞에 다가와 울부짖기 시작했다.

“응? 너한테 타라고?”

멍멍!

“...나 태울 수 있겠어? 꽤 무거울 텐데?”

다섯 마리의 개들 중 가장 덩치가 큰 개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오… 잘하면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안 그래도 다른 개들에 비해 덩치가 큰 다섯 마리의 개였는데, 앞으로 나온 개는 늑대라 해도 믿을 만한 덩치였다.

‘아니… 늑대보다 어쩌면 더 클지도?’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위에 올라탔다.

“개 위에 올라타는 건 처음인데 재밌겠는걸?”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개가 대답한다.

멍멍-!

외침과 함께 개들이 개구멍 안쪽으로 달려 나갔다.

상당한 속도탓에 시야로 들어오는 모든 게 흐릿해지자 아더가 감탄해 중얼거렸다.

‘와… 개를 타고 이렇게 내달릴 수 있다고?’

덕분에 한참을 내달려야 할 거리를, 순식간에 돌파할 때였다.

저 멀리서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컹-!

영민한 개들이 속도를 늦추더니 이내 구석진 곳에 몸을 숨겼다.

올라타 있던 아더도 폴짝 뛰어내려 개들의 턱을 쓰다듬어 주었다.

“너희 나중에 우리 집 갈래?”

멍멍!

“마당도 넓으니깐 뛰어놀기 좋을 거야. 밥도 좋은 걸로 줄게.”

멍멍!

개들이 발라당 드러누워 복종의 표시를 보내왔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챙!

레온이 무언가와 대적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아더는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스카프를… 두른 해골?”

이 말과 함께 해골의 검이 레온의 복부를 스친다.

“큭!”

신음을 내뱉은 레온이 주르륵 뒤로 물러나더니 털썩 쓰러졌다.

지켜보던 아더가 탄성을 터트린 순간, 레온의 목을 치려던 해골이 멈칫 한다.

[거.기.누.구?]

숨어 있던 아더가 숨을 죽였다.

허나 해골의 검 끝에서 날아온 참격에 순간 더는 숨어 있지 못하고 폴짝 튀어 올랐다.

“검기를 두른 해골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말에 올라탄 해골을 바라본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존재를 깨달은 레온과 지니가 소리쳤다.

“아더-!”

“던 님!”

반가움이 묻어나는 둘의 목소리에 아더가 손을 흔들었다.

“지니 괜찮아요? 레온은 살아 있고?”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시선만 끌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구역 전체를 폭파했지 뭐예요?’

지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친다.

“던 님이라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오? 진짜요? 저도 예상 못한 일이었는데?”

대답과 함께 시선을 돌린 아더가 해골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 말 탄 해골은 뭐예요? 어울리지도 않게 스카프를 두르고 검기도 다루고 있네?”

질문에 쓰러져 있던 레온이 소리쳤다.

“데스나이트야!! 지니 씨 말로는 하늘섬의 사자라더군!”

아더가 놀라 물었다.

“하늘섬의 사자요?”

“그래! 뭐가 되었건 조심해! 진짜 기사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

그사이 데스나이트는 말머리를 돌리며 칼을 겨누었다.

[너.가.함.부.르.크.죽.였.구.나]

“오. 말도 하네?”

[너.죽.인.다.]

데스나이트가 검을 휘둘렀다.

그 일격을 폴짝 튀어 피해 낸 아더가 비스트를 치켜들었다.

탕-!

쏘아져 나간 총탄이 데스나이트의 어깨에 명중했다.

하지만 마력 발전소를 부셨을 때처럼의 위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함부르크의 비명도 안 들리네? 설마 단 한 발만 그렇게 쏠 수 있는 건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미간을 좁혔다.

‘그것도 그렇고…. 테이큰처럼 마나를 갑옷처럼 두르고 있어. 까다롭네. 그 테이큰과 거의 동급의 실력이니.’

판단을 내린 아더가 칼을 늘어뜨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포.기?]

“아뇨. 어떻게 해야 당신을 죽일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데스나이트가 낄낄 웃음을 터트린다.

[너.나.못.죽.인.다.]

“오?”

[기.사.아.니.면.나.못.죽.인.다.]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기사면 죽일 수 있는 거네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휘파람을 불었다.

컹컹-!

그 순간 숨어 있던 개들이 뛰쳐나왔다.

그 광경에 지니와 레온이 눈을 부릅뜰 때, 조금 전 자신을 태운 개의 등 위에 폴짝 올라탄 아더가 검을 치켜든다.

“말은 아니지만, 저도 이제 기사예요.”

[….]

“기사답게 일격으로 승부 내죠. 어때요, 해골 씨?”

데스나이트가 입을 다문다.

[….]

그 순간 내려앉은 숨 막히는 침묵.

지니와 레온이 그 달라진 분위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데스나이트가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기사의 명예를 모욕하는 거냐 애송이?]

이 말에 지니와 레온이 입을 벌리며 놀랬다.

처음 등장 때부터 줄곧, 이상한 어투를 사용하던 데스나이트가 처음으로 정상적으로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더는 개의치 않고서 어깨를 으쓱였다.

“죽은 자가 기사도를 논하는 게 더 웃기지 않아요?”

개의 갈기를 고삐인 양 붙잡은 아더가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기사가 뭐 별거 있나요. 말과 칼. 그리고 결투에 걸 목숨.”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것만 있으면… 기사지. 안 그래요?”

데스나이트가 입을 다문다.

[….]

그 침묵 속에서 타오르는 푸른 안광.

섬뜩함이 느껴지는 그 시선에 아더는 알 수 있었다.

‘저 데스나이트…진짜다.’

그 때 데스나이트의 조랑말이 울부짖는다.

휘이잉-!

동시에조랑말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이더니, 그 형체가 변화한다.

얇은 두 다리는 군마인 양 두꺼워지고, 꼬리와 눈에서는 불길이 치솟았다.

그 외형은 흡사, 지옥의 사신들이나 탈 법한 역마.

그 탓에 지켜보던 레온과 지니가 경악을 감추지 못할 때였다.

데스나이트가 검을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결투를 신청한 애송이. 내 이름은…]

말을 흐린 데스나이트가 눈빛을 번뜩인다.

[‘소드마스터’. 할리버 칸이다. 네놈의 이름은 뭐지?]

이 말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던. 아케인의 용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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