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돈은 얼마나 드릴까요?”
“일단 전에 쓰던 권총까지 처분한다면 100골드.”
주인장의 말에 아더가 군말 없이 100골드를 꺼내 건네주었다.
액수를 천천히 세어 나가던 주인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건다.
“음…. 정확하군.”
“이제 가져가도 되죠?”
“물론이지. 성능은 기대해도 좋을 거야. 일단 걸린 마법만 해도, 전에 쓰던 놈보다 훨씬 많고…. 일단 속성 강화가 붙어 있으니깐.”
설명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그런데 아무리 저주가 걸렸다 해도, 너무 싼 거 아니에요?”
“싸긴 하지. 하지만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주인이 없으면 어디다 쓰겠나?”
“…흠.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렇게 되지. 만약 그 권총에 그런 저주가 없었더라면? 나한테까지 흘러오지도 않았겠지. 속성까지 붙은 권총의 크게 차이가 있지만 만 골드가 훌쩍 넘어갈 때도 있으니깐.”
아더의 눈이 커진다.
‘만 골드면…. 지금 살고 있는 저택 2~3채를 살 수 있는 액수 아니야?’
조금 과장되게 말해 바이에른 가문의 한 달 운용 자금 하고도 비슷했다.
즉 요넬에게 부탁해도 쉬이 사지 못할 물건이란 소리였다.
좋은 권총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그 정도로 엄청난 물건일 줄 몰랐던 아더가 혀를 내둘렀다.
‘흠…. 그런데 이 정도로 좋은 물건에 임자가 안 나타난다는 건 저주가 진짜라 소리 아니야?’
아더는 참지 않고서 질문했다.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왜? 갑자기 불안하나?”
“아뇨. 하지만 궁금하잖아요. 도대체 몇 명이나 죽은 거예요?”
주인장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내가 아는 것만 다섯 명.”
“….”
“더 놀라운 건 그 다섯 명이란 주인이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이 1년이라는 거지. 전까지 합치면 몇이나 죽었는지 세지도 못하는 거고.”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왜 이 물건의 값이 낮은 건지 알겠네요.”
“제 주인을 물어뜯는 비스트. 그 이름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야.”
아더가 손에 들린 비스트를 보란 듯이 휘리릭 돌렸다.
“하지만 전 해당 안 되겠네요. 아무리 짐승 같은 놈이라도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을 또 죽이지 않을 거 아니에요?”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농담이에요. 그만큼 제가 미신을 안 믿는단 소리예요.”
주인장이 뒤늦은 웃음을 터트렸다.
“최근에 들어 본 농담 중에서 제일 재미가 없군. 여하튼 잘 사용하라고. 나도 내 손님이 죽는 건 썩 기분이 좋지 않으니깐.”
아더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가게를 나왔다.
그 후 손에 들린 비스트를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흠…. 총열에 둘린 이 기운 말고는 특별한 게 없는데? 하지만 다섯 명이나 죽었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긴 할 테고.”
고민하던 아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나도 이번에 죽으려나? 안 그래도 윌렛 어르신이 경고하기도 했는데?”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착각인지 몰라도, 그 웃음에 반응해 비스트가 진동을 일으키는 듯했다.
그사이 아더는 걸음을 옮겨 반대편에 위치한 대장간으로 향했다.
땅-! 땅-! 땅-!
A구역에 위치한 대장간답게, 보통 대장간과 다르게 매우 세련됐다.
일단 불 냄새와 쇠 냄새가 거의 맡아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른 대장간과는 매우 다른 점이었다.
그 때 새까만 피부가 인상적인 소년이 다가와 공손한 어조로 질문했다.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아더가 허리춤에 찬 운철검을 꺼내 들며 말했다.
“날을 좀 갈까 하는데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하죠. 날만 가는 거라면 한 시간도 안 걸릴 겁니다.”
이 말과 함께 소년이 어디론가 걸어갔고, 아더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밖에서는 맡지 못했던 쇠 냄새와 불 냄새가 물씬 풍겼다.
‘오…. 마법으로 차단하고 있었던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은연중에 감탄했다.
청결에 신경 쓰는 대장간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사라졌던 소년이 다시 나타나 아더에게 손짓했다.
“3번 대장장이님께서 지금 당장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아더가 소년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소년보다 족히 20살은 많아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날을 갈러 오셨다고요?”
“네.”
“검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더가 운철검을 내밀었다.
3번 대장장이가 운철검을 면밀히 살펴보다 흠칫 놀랬다.
“…독특한 검이군요. 아니 독특한 게 아니라 희귀한 검이군요.”
그의 말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듣기로 운석으로 만들어진 검이라 하더라고요.”
“운석? 허…. 그럼 더 대단한 검이군요. 우주에서 날아온 광석으로 만들어진 검이라니….”
말을 흐린 대장장이가 눈빛을 빛냈다.
“태생적으로 날이 서 있는 검이라, 금방 끝날 것 같습니다. 10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말과 함께 대장장이가 몸을 돌렸고, 소년이 넌지시 질문한다.
“차가운 커피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오, 차가운 커피가 있어요?”
“네! 아주 맛있어요!”
아더가 동화 하나를 튕겼다.
동화를 받아든 소년이 금세 얼음이 잔뜩 들어간 커피 한 잔을 들고 와 내밀었다.
“맛 좋은데요?”
“헤헤! 다들 제가 내린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하세요!”
소년의 말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 느긋이 커피를 들이켜며 날을 가는 대장장이의 모습을 구경할 때였다.
운철검을 집어 든 대장장이가 어딘가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흠…. 손님?”
“네?”
“혹시 이 검, 최근에 어떤 큰 충격을 받았습니까?”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어…. 글쎄요? 제가 좀 험하게 다뤄서 그런 적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날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검 자체의 내구도, 정확히는 중심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끔뻑거리던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럼 이제 못 쓰는 건가요?”
“가급적 안 쓰는 게 좋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만 해도 보통 칼보다는 훨씬 좋을 겁니다.”
“주의해서 쓰면 문제가 없다?”
“네. 진짜 무식하게 기사의 검기를 정면으로 막아내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부러질 리는 없을 겁니다.”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럼 그때 테이큰 씨 주먹을 막아내서 그런 건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며칠 전에 제가 검기를 두른 주먹을 이 검으로 막아냈거든요. 워낙 급해서 생각 없이 막기는 했는데, 앞으로는 주의를 좀 해야겠네요.”
“…?”
대장장이가 눈을 끔뻑였다.
그건 옆에 있던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검도 아니고….’
‘검기를 두른 주먹을 막아냈다고?’
허나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아더는 건네받은 운철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인사와 함께 아더가 대장간을 빠져나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대장장이와 소년이 중얼거렸다.
“저 선생님···…. 검기를 주먹에 두를 수 있어요?”
“글, 글쎄? 그건 나도 처음 들어 보는데?”
“그럼…. 저분이 거짓말한 거예요?”
대장장이가 입을 다문다.
“….”
조금 전 건네받은 검.
그 검의 검면에 난 희미한 자국이 처음에는 험하게 써서 난 줄 알았는데 저 설명을 들으니 진짜로 주먹에 얻어맞아 난 흔적 같았다.
‘그럼…. 진짜로 검기를 두른 주먹을 막아냈다고?’
생각과 함께 대장장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미친 인간이 검기를 주먹에 두른다 말인가?
대장장이는 소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여기 찾아오는 칼잡이들의 허풍이 어디 한두 번이더냐? 그냥 그러려니 하거라.”
* * *
정비를 마친 아더는 윌렛이 건네준 함부르크의 정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전투 갱단 300명,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용 중인 용병 30명.’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많은 호위 병력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군 병력으로 따져도 일개 중대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터.
‘일단 전투 갱단 300명은 그렇다 치고…. 용병들이 문제인데.’
고민과 함께 아더가 함부르크 측에 고용된 용병 30명의 정보를 바라보았다.
‘최소 D등급 이상, 거기다 세 명은 B등급.’
B등급이란 소리는 며칠 전 마주쳤던 카셀 혹은 카르페에 준하는 실력자들을 뜻했다.
‘까다롭네…. 양도 많고 질적 수준도 나쁘지 않으니.’
그렇다 해서 포기할 건 아니지만, 계획을 조금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경매가 열린 틈을 탄 암살…. 혹은 누군가를 포섭해 이쪽도 전력을 늘리는 쪽. 현실적으로 보면 전자 쪽인가?’
제일 좋은 것은 누군가와 협업해, 함부르크를 죽이는 거지만 그럴 사람이 없었다.
어느 누가 뒷세계의 연줄을 가진 노예 상인을 죽이려 들겠는가?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힌 이 뒷바닥에서 밉보이면 끝일 텐데.
그래서 아쉽지만 홀로 함부르크를 암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때였다.
“…왜 그렇게 빤히 바라봐?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치즈이 교수의 조별 과제 수업을 위해 황자와 예니카를 함께 만난 자리.
아더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온 마드리드를 발견하고서 입꼬리를 올렸다.
“있었네. 그런 사람이.”
* * *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온을 바라보며 아더는 생각했다.
‘신뢰할 수만 있다면 딱 적당한데.’
이해관계도 일치하고, 능력도 탁월했다.
문제는 레온을 믿을 수 있냐는 것이다.
‘…흠.’
계획해 두었던 것보다 급하게 사냥을 나선 것도 레온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옳은 판단일까?
고민하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옳은 판단은 아니겠지만, 득은 볼 수 있겠네.’
거기다 이번 일로 하여금, 그의 진심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진심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다면 그 때는 정말로 목을 베면 되는 것이고.
‘오… 일거양득이네. 레온의 신뢰도 확인하고 일도 수월하게 하고.’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레온을 향해 물었다.
“혹시 오늘 과제가 끝난 뒤에 시간 되나요?”
“나?”
“네.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이 말에 레온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뭐 시간이야 넘치지.”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예니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먼저 가 볼게요. 오늘 분량은 끝이니깐.”
“수고했어요, 예니카.”
아더의 인사에 예니카가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온이 시선을 돌리며 질문했다.
“그래서 할 이야기란 게 뭐야? 설마 인제 와서 나랑 같이 협업….”
“아. 협업은 아니고, 같이 일 하나 할래요, 황자님?”
“…일?”
“네, 일. 황자님도 흥미를 느낄 만한 일일 거예요.”
레온이 눈을 끔뻑였다.
‘일? 갑자기 뭔 일?’
의문과 함께 레온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아더가 방긋 웃으며 제안했다.
“저랑 여행 안 가실래요?”
“….”
“제가 어떤 티켓 한 장을 구했거든요. 그런데 때마침 동반 여행도 가능하다 하더라고요.”
황자가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네.”
“…그게 일이야? 나 남자한테는 관심 없는데.”
“뭐라는 거예요? 저도 관심 없어요.”
황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나랑 여행을 가려는 거야?”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쪽 여행사 사장이 저한테 빚을 졌거든요. 그런데 빚을 안 갚고 계속 숨어 있지 뭐예요?”
“….”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받아낼 생각인데, 황자님이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안하는 거예요.”
황자가 눈을 크게 떴다.
“자넨…. 정말 예측을 깨는군.”
“뭐가요?”
“지금 나보고 살인을 도와달라···…. 뭐 그런 건가?”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한데, 들으면 아마 혹하실 거예요.’
“혹한다고?”
“네. 이 사람 노예 상인이거든요.”
“노예 상인?”
“네. 지금은 경매까지 주최한다고 하더라고요.”
설명에 레온의 눈가에 흥미가 깃들었다.
‘노예 상인, 그것도 경매를 주최하는 자라….’
이야기만 들어 보았을 때는, 당장 목을 쳐도 할 말이 없는 범죄자기는 했다.
문제는 그 범죄자를 아더 바이에른이 왜 죽이려 하냐는 것이다.
‘빚이 있다면…. 설마 노예를 구매하려다 일이 잘못됐나?’
고민에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더 바이에른이 노예를 사들이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정의의 사도라서?
레온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쪽은 아예 말이 되지 않았다.
그 탓에 고민하던 레온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함께 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조금 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나?”
“이유요?”
“돌아가는 상황 정도는 알아야, 나도 뭔가를 준비하지.”
그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긴 하네요. 그럼 그냥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직설적으로?”
“네. 노예 상인, 지금은 노예 경매장의 주인 함부르크 에리슨은….”
레온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케인 도르문트 백작. 이 자의 뒷자금을 조성하는 사람이에요. 무슨 뜻인지 이해 가시죠?”
레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호오…. 이해했네. 그것참 재밌는 이야기군….”
“그렇죠? 제가 재밌는 이야기라 했잖아요.”
레온이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수락할 테니 혹시 더 설명해 줄 수 있나? 그 함부르크 에리슨이란 자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