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62화 (62/265)

제62화

“뒷세계 인간들은 크게 두 종류지.”

이 말과 함께 윌렛이 잔 하나를 꺼내 든다.

금으로 만들어진 잔이었는 데,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잔이었다.

그 잔에다 보드카를 콸콸 쏟아 부은 윌렛이 설명을 이어 나간다.

“하나는 미치광이 또라이. 또 다른 하나는 인간 말종.”

아더가 웃으며 대답했다.

“둘 다 제정신은 아니네요?”

“제정신인 인간이 그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겠나?”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정당한 노동을 해서 돈을 벌 테니까.”

윌렛도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 그러면 여기서 문제네. 미치광이 또라이와 인간말종. 어느 쪽이 더 위험하다 보는가?”

“오…. 어려운데요?”

“잘 생각해 보게. 금방 답이 나올 거야.”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손가락을 튕겼다.

“인간말종 아닐까요?”

“이유는?”

“둘 다 쓰레기라면, 계산된 쓰레기 짓을 하는 쪽이 보통은 더 나쁘더라고요.”

윌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네 말대로 보통 후자가 위험해. 그리고 지금 자네가 죽이려는 인간이 바로 그 계산된 쓰레기 짓을 하는 자네.”

이 말과 함께 윌렛이 한 장의 서류를 툭 내민다.

서류를 받아 든 아더는 안에 적힌 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함부르크 에리슨: <랄랄랄> 노예 경매 주최자.]

….

윌렛이 입을 열어 물었다.

“대충 감이 오나?”

“뭐가요?”

“내가 왜 자네가 그곳으로 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유를.”

아더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함부르크 이 사람이 가진 연줄…. 혹은 인맥 때문인가요?”

윌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보통 이런 쓰레기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지. 바로 제 목숨 하나는 끔찍이 여긴다는 것.”

“...”

“남의 목숨은 등한시하면서 참으로 웃긴 일이지. 여튼… 함부르크도 이런 종류의 인간이고 그중에서도 더욱 철저한 쪽이지.”

윌렛이 술잔을 기울였다.

“노예 상인…. 더 나아가 노예 경매장을 운영하면서 놈은 뒷세계의 거물들뿐만이 아니라 이 도시의 VIP들하고도 연줄을 만들어 놨네.”

“….”

“그건 고객 유치용 인맥이 아니야. 일이 틀어졌을 때를 대비한 함부르크만의…. 비장의 카드지.”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흠…. 그러니깐 함부르크를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함부르크를 죽이고 난 뒤가 문제다. 이 말씀이군요?”

“그렇지. 자네가 만약 함부르크를 죽인다 쳐도….”

말을 흐린 윌렛이 입가에 건 미소를 지운다.

“자네는 죽을 걸세. 함부르크에게 제 치부를 틀어잡힌 이 도시의 권력자들에게.”

“….”

“그렇게 되면 나도 도와줄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나?”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윌렛 어르신이라도 그런 인간들에게서 날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말이구나.’

생각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뭐….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오히려 윌렛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고.’

윌렛에게 있어 자신은 사무소에 등록된 수많은 용병 중 한 명일 뿐이다.

그 용병 중 하나 때문에 굳이 뒷세계의 거물들과 척을 질 필요는 없을 터.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입맛을 쩝 다셨다.

“어렵네요.”

“살아가다 보면 매번 이런 순간이 있을 걸세.”

“그 순간을 넘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죠?”

아더의 질문에 윌렛의 눈꼬리가 살짝 떨렸다.

“기어코 그자를 죽일 생각인가?”

“네.”

“단순한 원한 때문에?”

“그렇죠.”

윌렛은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두툼한 서류를 꺼내 들어 아더에게 건네주었다.

함부르크 에리슨에 관한 정보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양이었다.

“그자에 관한 정보야. 충고해 줄 내용도 거기 다 들어가 있을걸세.”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윌렛의 입장에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었다.

그 탓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고마워요, 윌렛 어르신.”

“….”

“윌렛 어르신 덕분에 항상 많은 걸 얻어요.”

덤덤한 작별인사에 윌렛의 표정이 흔들렸다.

허나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아더는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렇게 아더가 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한 달 뒤에 열려.”

“…?”

“잊지 말고 오게나. 어렵게 구한 티켓. 버리게 하지 말고.”

아더가 몸을 돌렸다.

팔짱을 낀 윌렛이 무신경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티켓…. 아. 그때 말한 암시장 티켓이구나.’

검은 십자가를 상대로 끝까지 자리에 남아 윌렛이 자신에게 선물한 티켓.

그 기억을 떠올린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그럼요. 잊지 않고 찾아올게요.”

윌렛은 대답하지 않고서 손을 휘저었다.

아더도 더는 입을 열지 않고 몸을 돌렸다.

탕-!

방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윌렛이 남아 있는 보드카를 털어 낸다.

그리고 아더가 빠져나간 방문을 한동안 바라보다, 문득 중얼거렸다.

“…도통 모르겠군.”

이 말과 함께 윌렛이 꺼내 든 시가에 불을 붙인다.

“바이에른 공작가의 후계자가…. 왜 노예 상인을 죽이려 드는 거지?’

* * *

윌렛의 사무소를 나온 아더는 생각했다.

‘인맥과 연줄이라…. 하긴. 이 바닥에서 장사하려면 그런 스폰서는 필수지.’

그래서 딱히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도 이 불합리함도.

‘지난번의 삶에서도 매번 이랬으니깐.’

제국 최고의 권력자인 칸 마드리드.

그와 대적하다 보니 매번 상대하는 인간들이 제국의 백작 후작 이런 대귀족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포기해라, 목숨이 아깝지 않나 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아더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작 그런 뒷배가 무서워서 포기할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지.’

물론 그렇다 해서 아무런 대비 없이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다음 목적지인 총포상으로 향했다.

“어서 오…. 응? 그때 그 용병 아니야?”

주인장이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네, 안녕하세요.”

“여전히 흐리멍덩한 인상이구만.”

“주인장께서도 여전히 졸고 계시네요?”

아더의 대꾸에 주인장이 거친 웃음을 터트렸다.

“그 요상한 말투도 여전하군. 그래…. 우리 돈 많은 용병님께서 오늘 무슨 일로 방문했을까?”

아더가 품속에 지니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지켜보던 주인장이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 좋은 물건이 왜 맛탱이가 갔어?”

“…? 고장 났어요?”

“고장 난 건 아닌데, 고장 나기 직전인데?”

대답과 함께 아더가 건네준 권총을 집어 든 주인장이 혀를 찼다.

“도대체 얼마나 굴린 거야? 이 녀석이 내구력이 약하긴 해도, 반년도 채 안 돼서 망가질 놈은 아닌데.”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냥 쏘고 싶을 때마다 쐈는데….”

“뭐 전쟁이라도 나갔나?”

주인장이 대답과 함께 총을 건네준다.

“…뭐 어찌 되었건, 정비해 달라고 온 모양인데 그건 못 고쳐.”

“왜죠?”

“전에 말했잖아. 그건 실전용이 아니라 관상용에 가깝다고. 군 장교들의 지급품에 가까운 시제품이라 수리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새로 한 자루 사는 게 나아.”

아더가 입맛을 쩝 다셨다.

“그럼 쓰다 부서지면 버려야 한단 거네요….”

“돈이 아까운 건가, 아니면 권총이 아까운 건가?”

“권총이 아깝죠. 이 물건…. 꽤 좋았는데.”

아더의 말에 주인장이 옅은 탄성을 내질렀다.

“손맛이 좀 있었나 봐.”

“네. 반동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웬만한 인간들은 이 권총에 다 죽어 나가서 편했거든요.”

주인장이 눈을 끔뻑였다.

“다 죽어 나가서 편했다고?”

“네.”

“농담이지?”

“아뇨? 진담인데요?”

주인장이 입을 다문다.

그사이 건네받은 권총을 챙긴 아더가 몸을 돌렸다.

“그럼 다음에 방문할게요.”

이 말과 함께 가게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정신을 차린 주인장이 소리친다.

“다른 물건 보고 갈래?”

“…?”

“꽤나 좋은 녀석이 들어왔는데, 이왕 방문했는데 맨손으로 돌아가기도 그렇잖아?”

아더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 권총보다 더 좋은 녀석인가요?”

“글쎄….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위험하다고 해야 할지.”

“…?”

“일단 보면 알아. 따라와 보게.”

주인장의 손짓에 따라, 아더는 가게 뒤쪽의 공간으로 향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앞쪽과는, 여러모로 용도가 달라 보이는 총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총포상의 주인장은 그 속을 뒤지더니 웬 박스 하나를 꺼내 들고 왔다.

“열어 보게.”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이건….”

“비스트(Beast)”

주인장이 입가에 걸고 있던 미소를 지우며 중얼거렸다.

“저주받은 아티펙트이자 마탄(魔彈). 흔치 않은 물건이지.”

아더의 시선이 다시 박스 안에 든 권총으로 향한다.

“….”

기다란 총열.

그 덕인지 몰라도, 권총이라기보다는 소총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다.

허나 아더가 주목한 것은 그 특이한 외형이 아니었다.

‘마력이…. 아니 이걸 마력이라 불러야 하나?’

무언가 특별한 기운이 이 권총에 서려 있었다.

턱을 쓰다듬던 아더는 조심스레 권총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비스트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권총의 손잡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아더의 손에 감겼다.

운철검을 쥐었을 때랑 비슷한 그 감각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릴 때 주인장이 경고한다.

“이봐. 내가 저주가 걸려 있다고 했는데, 너무 무신경한 거 아니야?”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저주요? 어떤 저주인데요?”

“죽어.”

“네?”

“그거 다룬 사람들 모두가 죽었다고. 그래서 놈의 이름이 비스트야.”

주인장의 얼굴에 약간의 공포가 서린다.

“제 주인을 잡아먹는 짐승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성능을 가졌음에도 이쪽까지 흘러온 거고.”

그 감정을 면밀히 살피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주인장께서는 왜 이걸 가지고 계신 거예요?”

질문에 주인장의 얼굴에 서려 있던 공포가 사라진다.

“멋지잖아.”

“…?”

“비스트라는 이름도 그렇고, 저 기괴한 외형도 그렇고. 무엇보다 저놈이 가진 말도 안 되는 성능을 고려하면 그 정도 괴담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아더가 눈을 끔뻑이다 탄성을 터트렸다.

“그런 저주도 상관없을 만큼 좋은 녀석이다, 이 말이죠?”

“그렇지! 듣기로 [탄창 강화] [위력 증대] [명중 조준] 뭐 이런 기본적인 마법은 당연히 걸려 있고….”

말을 흐린 주인장이 눈빛을 빛낸다.

“놀랍게도 속성 강화가 붙어 있다더군. 그것도 [암흑] 계열로.”

“암흑 계열이요?”

“나도 저주가 무서워서 쏴 본 적은 없지만, 일단 듣기로는 그래.”

“특이한 계열인가요?”

“[화속]계열이나, [수속] 같은 평범한 속성들하고는 아무래도 다르지. 진짜라 불리는 [암흑] 계열은….”

주인장이 어디선가 꺼내든 종이 한 장을 와락 뭉개 버린다.

“터트리는 게 아니라 으깨 버리니깐…. 성능만 따지고 보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거기다 그놈은….”

주인장의 목울대가 출렁인다.

“듣기로 사람 100명을 단 한 번의 사격으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더군.”

“오…. 저번의 샷건처럼요?”

“아니. 그것과는 달라. 터트린 게 아니라…. 뭉쳐서 으깨 버렸다니깐.”

아더의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간다.

‘흐음…. 과장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해도 그런 게 가능한가?’

사실이라면 아더 자신이 보아온 그 어떤 아티펙트보다 살상력이 뛰어났다.

그 탓에 흥미가 깃든 눈길로 비스트를 바라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파시는 건가요?”

“팔긴 하지.”

“그렇게 좋은 권총인데요?”

“임자가 나타나야지. 원래 그쪽 바닥 인간들이 미신 잘 믿지 않나?”

질문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기야 하죠. 하지만 전 안 믿어요. 고작 그런 미신 따위에 휘둘린다는 건….”

말을 흐린 아더가 비스트의 방아쇠를 살며시 당겨 본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없단 소리잖아요?”

주인장이 순수히 감탄했다.

“역시 보여 준 보람이 있군. 이런 독특한 물건은 자네 같이 독특한 인간이 다루어야 해.”

“그래서 이 권총 판다는 거죠?”

주인장이 눈빛을 빛냈다.

“팔지. 그것도 아주 싼값으로. 다만 한 가지 약속 좀 해 줄 수 있나?”

“무슨 약속인데요?”

“쓰고 나서 이놈이 어떤 물건인지 이야기 한번 해 줘.”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주인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설명한다.

“우리 같은 총에 미친 놈들은 이런 고급품만 보면 환장을 하거든. 하지만 난 아직 이놈이 어떤 놈인지 내 눈으로 보지 못했어.”

아더가 눈을 끔뻑이다, 뒤늦게 주인장의 설명을 이해하고서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니깐 비스트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고깃덩어리로 만드는지 설명해 달라는 거군요?”

아더의 말에 주인장이 당황한다.

“어…. 꼭 그런 건 아닌데.”

“좋네요.”

아더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린다.

“안 그래도 고깃덩어리로 만들 인간이 있는데, 진짜로 그럴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이야기 들려 줄게요.”

설명에 주인장이 입을 다문다.

‘또 농담이겠지?’

그런데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누군가를 고깃덩어리로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비스트를 요리조리 뜯어보던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이걸로 할게요. 얼마면 돼요,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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