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신문과 각종 소식통을 이용해 수집한 정보를 정리한 스크랩 북을 꺼내 들었다.
“….”
그 안에 적힌 것은 이번 생에 반드시 죽여야 할 사냥감들의 정보.
그중에서도 아케인을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이들의 정보였다.
절대로 잊히지 않는 그리고 절대로 잊어서도 안 되는 그들의 사진과 정보를 들여다보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아무리 미래 지식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래와 지금은 달라.’
그 예로 한 달 전 마주쳤던 아레스 아레키스.
그 남자 또 한 여러모로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아더는 새로이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이 스크랩 북이었다.
‘때가 되면 사냥하려고… 모아 놓은 정보였는데,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즉흥적으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레온 마드리드라는 변수.
생각보다 빠른 제 성장 속도.
그 여러 요인이 합쳐 나온 판단이었다.
‘조금 더 확실히 성장하고 난 뒤에 움직여도 되지만…. 레온 마드리드라는 변수가 마음에 걸려.’
아직 아군인지 적인지 판단이 안 서는 남자.
그의 불길한 눈동자는 여러모로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아더는 예정보다 일찍 사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판단했다.
‘급히 서둘러서 좋을 건 없지만…. 반대로 간만 보다 기회를 놓치는 것도 어리석지.’
레온 마드리드가 칸 마드리드를 노린다면 사냥감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더는 그 사냥감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쥴리에게 말했던 것처럼 복수는 제 손으로 이루어야 의미가 있는 거니깐.
‘흠…. 그럼 사냥에 나선다면 어떤 자가 좋을까.’
생각과 함께 아더가 첫 페이지를 넘겼다.
고민하던 아더는 한 사내의 사진을 툭, 손으로 짚었다.
“노예 상인 함부르크.”
저번 삶에서 죽이지 못한 복수의 대상 중 한 명.
그리고 바이에른 가신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범인.
그의 사진을 손끝으로 문지르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 쓰레기가…. 가장 적당할 것 같은데?”
* * *
바이에른 가문을 파멸로 몰아넣은 인간은 도르문트 백작이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가문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은, 도르문트 백작이 아니었다.
‘바이에른 가문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건…. 놈을 따르는 인간쓰레기들이었지.’
그리고 그 쓰레기 중 한 명이 바로 노예 상인 함부르크였다.
그는 바이에른 가문의 이름이 찢어진 순간, 바이에른 가신을 잡아다 노예시장에 팔아 버렸다.
허나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바이에른이 다스리는 영지의 영주민들도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죄질로만 따진다면 케인 도르문트에 버금간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 했지만, 미래의 자신은 그 함부르크를 죽이지 못했다.
‘함부르크는 케인 도르문트의 뒷자금을 조성하는 자본줄 중 한 명이라, 극진한 비호를 받고 있었지.’
그 탓에 놈은 이곳저곳을 요리조리 숨어 다녔고, 그런 그를 미래의 자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하지만 현시점의 함부르크는 달랐다.
아더는 스크랩 북에 있는 함부르크의 정보를 읽어 내려가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여행 사업가? 재밌는 짓을 하고 있네, 이 인간….”
현시점의 함부르크는 <랄랄랄>이라는 여행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더는 믿지 않았다.
“아케인 여행 패키지… 슈트리아 여행패키지…. 위장치고는 꽤 공을 들였는걸?”
공식적으로 아케인에서는 노예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케인과 같이 거대한 자본이 모여드는 도시에 노예 시장이 발달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마 본업을 위해 세운 위장 회사일 테지….’
그래서 적당한 사냥감이었다.
노예 상인인 함부르크는 아마 이미 여러 곳에 원한을 사고 있을 것이다.
돌연사를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고 들킨다 해도 큰 뒤탈은 없을 것이다.
물론 암살 자체는 쉬워 보이지 않았다.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그 또한 아케인의 뒷세계 인간 중 한 명.’
아마 꽤 많은 수의 용병 혹은 전투 갱단을 고용한 상태일 것이고 준비를 하지 않고 들이닥쳤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턱을 쓰다듬었다.
‘흠…. 그럼 일단 함부르크가 운영한다는 여행사에 먼저 가 봐야 하나?’
고개를 끄덕인 아더는 안나에게 부탁해, 그가 운영하는 여행 회사에 예약을 넣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니, 안나가 다소 의아한 표정과 함께 답을 전해 왔다.
“이번 주 일요일이라는데요 공자님. 그런데….”
“그런데?”
“준비물로 가면을 들고 오라고…. 하네요?”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가면?”
“네. 가면.”
“웬 가면?”
“그, 그러게요? 웬 가면일까요?”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끔뻑이던 안나와 아더가 곧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적당히 알아서 하나 구해 올까요?”
“응. 그래 줘.”
대답과 함께 안나가 표를 내밀었다.
<랄랄랄>여행 회사의 티켓이었다.
그 티켓을 받아 든 아더는 시선을 돌려 달력을 바라보았다.
“일요일…. 아직 그럼 시간이 좀 남아 있네.”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몸을 일으켰다.
“준비를 좀 해 놔야겠어. 칼도, 권총도, 그리고 내 몸도.”
* * *
다음 날.
아더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윌렛의 사무소를 방문했다.
가게를 정리하던 윌렛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또 무슨 일이야?”
“정보를 좀 사고 싶어서요. 어르신.”
“정보?”
“네. 정보.”
윌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끌리는 의뢰라도 있나?”
“그건 아닌데, 개인적인 일을 좀 처리하고 싶어서요.”
“개인적인 일?”
“네. 혹시 노예 시장에 관해 좀 아세요?”
윌렛이 흠칫 놀란다.
“…자네 그런 쪽에 취미가 있었나?”
“무슨 말씀이세요?”
“노예 말이네. 설마 그런 쪽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말을 흐린 윌렛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 모습에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변명했다.
“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지만, 그런 쪽은 아닐 거예요.”
“그런 쪽은 아닐 거라고? 그럼 노예 시장은 왜 묻는 거지?”
“노예 시장을 여는 인간을 죽이려고요.”
“….”
“그래서 정보가 좀 필요한데, 혹시 아실까 싶어서요.”
윌렛이 당황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노예를 사지? 노예 시장을 여는 뒷세계의 인간을 왜 죽이려는 거야?”
“음…. 자세한 이유는 말씀 못 드리는데, 개인적인 원한이에요.”
“그 원한 때문에 뒷세계의 인간을 죽일 거라고?”
“네.”
윌렛이 입을 다문다.
그 상태 그대로 아더를 노려보던 윌렛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만 보면 머리가 아파져.”
“네? 왜요?”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게나.”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윌렛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아더가 그 뒤를 따르니, 지하에 위치한 주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윌렛은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걸터앉았다.
“정보를 사는 방식은 보통 두 가지네. 하나는 그에 걸맞은 정보를 건네주거나, 혹은 돈으로 사거나. 그리고 나는 전자로 받고 싶군.”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어…. 전 윌렛 어르신이 궁금해하실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왜 없어? 저번 마시알 더스트 건, 어떻게 처리했나?”
“네?”
“모르는 척하지 말게.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깐.”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역시 윌렛 어르신. 발이 넓으시네요.”
“내 발이 좀 넓긴 하지.”
“흠…. 뭐가 궁금하신데요?”
“일단 마시알 더스트가 진짜 제국의 ‘기밀’을 훔쳤던가?”
아더가 고민했다.
‘황자와 친해질 필요는 없지만, 굳이 척을 질 필요도 없어.’
그렇다면 여기서 대답을 가려 하는 편이 좋았다.
그도 어찌 되었건 자신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니깐.
생각과 함께 아더가 대답했다.
“네. 제 생각엔 진짜로 훔친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검은 십자가의 사람들이 움직였거든요. 저번에 만났던 테이큰와 카르페 씨도 있었어요.”
윌렛이 물고 있던 파이프를 입에서 뗐다.
평범한 행동이었지만, 아더는 그 안에 섞인 약간의 동요를 정확히 읽어 냈다.
‘모르고 있던 정보. 전부를 아는 건 아니구나.’
판단과 함께 아더가 또다시 정보를 걸러 낸다.
말해야 할 정보, 말하지 말아야 할 정보.
그것들을 윌렛의 반응을 보며 구분하는 사이, 윌렛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마시알 더스트가 검은 십자가에 잡혀갔다는 것도 진짜겠군?”
“그렇죠.”
“자네는…. 어찌 살아 나왔나?”
“저요?”
“그래.”
월렛이 의문을 품은 채 아더를 응시한다.
“그곳에서 죽은 용병만 130명. 그중에는 B등급 용병도 섞여 있지. 단순히 운이 좋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전장은 아니었을 텐데….”
이 말과 함께 윌렛이 담배 연기를 뿜어 낸다.
아더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살아남을 만하니 살아남지 않았을까요?”
“…B등급 용병보다?”
“네. 과정까지도 설명해 드릴까요?”
당당한 아더의 대답에 윌렛이 손가락을 툭툭 두들겼다.
그 규칙적인 두들김과 함께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였다.
고민을 끝낸 윌렛이 입을 연다.
“뭐…. 됐네. 이 정도면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군.”
“어? 조금 더 물어보셔도 되는데요?”
“물어봐 봤자 핵심은 말해 주지 않을 거 아닌가?”
“….”
“그렇다면 더 들어 봐야 시간 낭비지. 자네가 원하는 거나 말하게나.”
아더는 진심으로 윌렛에게 감탄했다.
‘조금 전 그 동요도 연기였나?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거지?’
윌렛이 뛰어난 브로커인 건 알았지만, 그날의 일을 알고 있다는 건 솔직히 말해 놀라웠다.
“…뭐야? 왜 그런 부담스러운 눈으로 쳐다봐?”
“윌렛 어르신이 진짜 대단해 보여서요.”
“…갑자기?”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인 윌렛이 손을 휘저었다.
“됐고, 빨리 질문이나 하게. 어울리지도 않은 아부도 그만하고.”
“진심인데요?”
“질문 안 하나?”
재촉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입을 열었다.
“<랄랄랄>이라는 여행사…. 정확히는 그 여행사를 운영하는 척 위장한 함부르크란 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요.”
아더의 말에 윌렛이 눈을 치켜떴다.
“…함부르크? 자네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말하는 겐가?”
“네. 노예 상인 아니에요?”
아더의 대답에 윌렛이 입을 다문다.
그는 조금 전 아더와 마찬가지로 진심을 놀라워했다.
‘역시 윌렛 어르신은 알고 계시는구나.’
생각과 함께 아더가 기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질문했다.
“그자에 관한 정보를 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고민하던 윌렛이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한 번만 말해 줄 테니, 잘 듣고 선택하게나.”
윌렛이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자네가 그자에게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포기하게. 목숨이 아까우면.”
아더가 눈을 크게 떴다.
“어…. 포기하라고요?”
“그래.”
“이유가 있나요?”
“이유야 차고 넘치지. 조금 더 냉정히 말해 줄까?”
윌렛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는다.
“그자를 죽이려 들었다가는 오히려 자네가 죽을 걸세. 농담이 아니라….”
말을 흐린 윌렛이 진심을 담아 조언한다.
“진짜 죽을 거야. 그 어떠한 예외도 없는 완벽한 죽임을 당할 거란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