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59화 (59/265)

제59화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웃었다.

그사이 교실로 들어선 금발의 미남자.

레온 마드리드가 거친 목소리로 소리친다.

“반갑다, 후배들-! 나는 레온 마드리드! 후배들의 다섯 학년 위 선배다!”

“….”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다섯 번의 낙제를 겪었고, 오늘부로 너희와 같이 수업을 듣게 됐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꼰대 짓은 하지 않으니깐 안심하라고 하하하!”

호쾌한 웃음소리에 학생들이 눈을 끔뻑였다.

그건 치즈이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연로한 노교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혹시…. 레온 학생이 이상한 짓을 하거나 말을 높이라 강요하거나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저에게 즉각 알려 주세요. 바로 조치를 취해 줄 테니깐….”

옆에 있던 레온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친다.

“아니 치즈이 교수님! 그 조치가 설마 낙제점을 주는 건 아니겠죠? 그러면 저 벌써 여섯 번째 낙제인데!”

“여섯 번이 아니라…. 열 번도 될 수 있습니다, 레온 학생. 그러니깐…. 아케인 대학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걸맞은 품행을 보여 주세요.”

“제가 지금은 이래도 한때 아케인 대학의 학생회장 출신인데 품행을 논하는 건 너무하신 일 아닙니까?”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묻는 이 말에 치즈이 교수가 또다시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겁니다. 학생회장까지 한 학생이···….”

말을 흐린 그가 손을 휘저었다.

시선을 돌린 레온이 교실을 쭉 둘러보다 멈칫 한다.

“하하!”

웃음을 터트린 레온이 휘적휘적 걸어와 아더의 옆에 걸터앉는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아더 바이에른 옆에 앉았어?’

‘망나니 황자랑… 벙어리 공자?’

‘저건…. 또 무슨 조합이래?’

그사이 아더의 옆에 앉은 레온이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내가 말했지? 우리 운명이라고?”

이 말에 아더가 혀를 찬다.

“쯧. 그때 죽여야 했는데.”

“뭐라고? 죽여야 했다고?”

“그런 말 안 했는데요?”

“했잖아! 분명히 들었다고!”

레온의 반박에 아더가 고개를 살짝 튼다.

그와 동시에 날아온 분필이 레온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한다.

“억!”

신음과 함께 레온의 신체가 기우뚱 중심을 잃은 사이 치즈이 교수가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수업 중에…. 떠들지 마세요, 레온 학생.”

“….”

“옆에 있는 아더…. 학생도 호응해 주지 말고요.”

이 말과 함께 치즈이 교수가 다시 수업을 진행한다.

그사이 레온이 붉어진 이마를 매만지며 몸을 일으킬 때였다.

한 장의 쪽지가 툭, 앞으로 떨어진다.

[한 번 더 말 걸면 진짜로 황자님 죽일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레온이 눈을 끔뻑인다.

그 후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치즈이 교수의 말을 경청 중인 아더가 보였다.

그 표정과 태도에서 배움에 대한 갈망이 진하게 묻어났다.

‘밤에는 뒷거리의 용병. 낮에는 성실한 학생이다?’

레온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역시 독특해. 학교에 복학하길 잘했어.’

생각과 함께 레온도 치즈이 교수의 강의를 경청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강의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몸을 돌린 치즈이 교수가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수업 종료를 알린다.

항상 수업시간을 꽉 채우는 그였기에 학생들이 의아해할 때, 치즈이 교수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든다.

“새로운…. 과제입니다.”

“….”

“조별 과제이고…. 여러분들이 낸 논문을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제입니다…. 연구 결과는 제가 나누어 드린 수정구를 통해 기록 촬영하고…. 그걸 2주 뒤 수업시간에…. 검증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학생들이 입을 벌리며 경악한다.

‘과제 끝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과제라고?’

‘거기다 조별 과제?’

‘하아…. 미친 진짜. 죽겠네.’

하지만 불평을 토하는 학생은 없었다.

이미 한 달간의 수업을 통해 치즈이 교수에게 이 불평이 통할 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탓에 서로를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며, 좋은 조원과 맺어지길 바랄 때였다.

치즈이 교수가 새로운 서류를 꺼내 들며 선언한다.

“조는….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

“이미 제가 여러분들의…. 논문을 통해 적당히 조합을 만들어 놨거든요. 그러니 해당 조원끼리 잘…. 조율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이 말과 함께 치즈이 교수가 조별 과제 인원을 발표한다.

“먼저 첫 번째 조는 아더 바이에른….”

* * *

치즈이 교수의 선언과 함께 시작된 조별 과제.

그 탓에 수업이 마친 뒤, 근처 카페에서 조원들과 함께 상의하기 위해 자리를 가졌는데 아더는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과제의 조원이 하필 레온 마드리드와 예니카 헤이즐이었기 때문이었다.

‘곤란하네…. 이런 문제 덩어리들이랑 같이 연구해야 한다고?’

한쪽은 제국 황가의 기밀을 훔친 도둑놈.

한쪽은 광신도를 이끄는 집단의 수장.

여러모로 조원으로 적합하지 않은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 났으니 별도리는 없고….’

이렇게 된 이상 유일한 정상인인 자신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애써 받은 A등급 점수가 날아갈 테니깐.

그렇게 아더가 다짐하는 사이 옆에 있던 레온이 예니카를 향해 인사했다.

“소문이 자자한 헤이즐 기업가의 장녀를 이렇게 만날 줄이야! 반갑네!”

예니카가 무표정으로 그 인사를 받는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위대한 제국의 황가. 그 후손과 이렇게 인사할 수 있어서.”

“너무 딱딱한 거 아니야? 이제부터 조별 과제를 함께 할 사인데?”

웃음기 가득한 질문.

허나 예니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차가운 태도에 레온이 당황하며 아더를 바라본다.

‘원래 이런 성격인가?’

말없이 던진 질문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사이 예니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제 할당량은 적당히 알아서 나눠 주시고 통보….”

아더가 예니카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그 갑작스러운 접촉에 예니카가 놀라 눈을 치켜뜬 순간, 아더가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한다.

“예니카 뭐 해요? 그 상의도 같이 해야죠?”

“…네?”

“당장 2주 뒤의 발표인데 달랑 할당량만 정하게요?”

예니카가 입을 다문다.

‘아더 바이에른이…. 맞는 말을 했어?’

그 사이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설마 예니카…. 우리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편하게 점수 받을 생각인 건 아니죠?”

예니카의 표정을 팍 일그러졌다.

“아니 무슨…. 제가 그런 거에 연연할 것 같아요?”

이 말에 옆에 있던 레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연연해야 할 텐데….”

“…?”

“치즈이 교수님…. 과제는 기말고사의 성적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즉 여기서 점수를 받지 못하면 나처럼 낙제한단 소리지.”

예니카의 어깨가 움찔 떨린다.

그사이 옆에 있던 아더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 안 되죠, 낙제는. 그러니깐 지금부터 머리를 모아서 어떤 걸 발표할지 정해야 해요.”

“맞아! 나도 더는 낙제하긴 싫다고! 난 치즈이 교수님 강의만 벌써 여섯 번째 듣는 거라 죽을 맛이라고!”

의기투합한 아더와 레온이 손을 붙잡는다.

그 모습을 예니카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아니…. 그까짓 낙제가 뭐라고….’

말을 흐린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내빼려 했다.

아케인 대학에 들어온 진짜 목적이 있는 그녀로서는 낙제를 당하건 말건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탓에 시선을 돌리니 여전히 제 손을 붙잡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예니카 참석할 거죠?”

“….”

“예니카 저번 과제도 점수 제일 낮은 거로 받고, 이번에도 제대로 참석 안 하면 진짜 낙제 당할 수도 있어요.”

예니카가 한숨을 내쉬며 항변한다.

“그게 왜요? 점수 제일 낮은 거 받으면 안 돼요?”

“아뇨? 받아도 되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예니카 헤이즐이 낙제를 당했다…. 분명 예니카에게 이득이 되는 소문은 아닐 거예요.”

이 말에 예니카가 움찔 몸을 떤다.

그 옆에서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예를 들어 카르…”

“거기까지.”

몸을 부르르 떤 예니카가 붉어진 얼굴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으며 경고한다.

“알겠으니깐 거기까지 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원하는 대답을 들은 아더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제안한다.

“이틀에 한 번씩, 이렇게 모여서 각자 맡은 할당량을 연구하고 조사하죠.”

“….”

“그리고 발표가 있기 5일 전부터 실험을 시작하는 거예요. 어때요?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예니카가 반박한다.

“너무 자주 모이는 거 아니에요?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레온이 그 말을 끊었다.

“내가 유경험자로서 말하는 건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이면 절대로 치즈이 교수님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어.”

“…왜 그런 거죠?”

“실험하는 모습을 수정구슬로 찍어야 하기 때문이지. 얼마나 참석했나, 얼마나 노력했나, 이런 것들을 아주 중요시하는 교수님이거든.”

예니카가 입을 다문다.

그 표정에서 당혹감이 훤히 드러났는데 레온이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으시는 거죠. 황자님?”

“음? 아니…. 재밌잖아? 예니카 양 같은 미녀가 괴로워하니깐.”

“…수상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네요.”

“이것 말고도 여럿 있지. 어때? 한 번 들어 볼 텐가?”

예니카가 혀를 찬다.

‘이 사람도 정상이 아니야…. 아더 바이에른 옆에 앉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예니카가 시선을 돌려 버렸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부분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 두 사람…. 평소에 알고 지냈나? 왜 황자가 아더 바이에른에게 접근한 거지?’

레온 마드리드.

제국에서 알아주는 망나니 황자.

그런 그의 기행들은 예니카도 잘 알고 있었다.

술과 여자, 그리고 사건 사고를 끊임없이 몰고 다니는 망나니로 말이다.

그래서 이상했다.

아무리 보아도 레온 마드리드와 아더 바이에른은 어울릴 스타일이 아닌데 어째서 둘은 안면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문득 든 이 의문을 예니카가 고민할 때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탁자를 두들기며 선언한다.

“자 힘들겠지만 의기투합해서 다들 낙제를 피해 보자고요! 그럼 첫 번째로 어떤 논문을···….”

* * *

아더를 중심으로 제법 긴 시간 동안 토론과 합의가 이루어졌다.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할 건가, 어떤 주제로 할당량을 나눌 것인가.

그 부분들이 긴 이야기 끝에 간신히 정리된 순간 예니카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예니카 가시게요?”

“네. 오늘부터 조별 과제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야 하죠. 그런데 저한테 할 말이 있다면서요?”

예니카가 아더를 노려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나중에 할게요. 지금은 공자님이랑 대화하고 싶지 않네요.”

아더가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가세요.”

예니카도 몸을 홱 돌리며 걸어 나간다.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레온이 눈빛을 빛내며 속삭였다.

“이제 보니깐 아주 바람둥이구만?”

“…바람둥이요?”

“저번에 레버쿠젠 가문의 여식이더니만 오늘은 헤이즐 기업가의 장녀? 보기와는 다르게 솜씨가 좀 있나 봐.”

음흉한 미소와 함께 건네는 이 말에 아더가 혀를 찼다.

“황자님. 참 밉상이네요.”

“…응?”

“어떻게 여자만 보면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세요? 특히 예니카하고 제가 어딜 봐서 연인이에요?”

아더의 질책에 레온이 눈을 끔뻑였다.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나빠 보이지 않은데?”

“눈치도 없네요. 저랑 예니카, 사이 나빠요.”

“…진짜?”

“진짜요.”

레온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분위기가 좋은 게 아니라고? 저 도도한 아가씨가 꼼짝도 못 하던데?’

거기다 자신과 아더를 바라볼 때의 표정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그 정도면 호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발전 가능성은 있는 분위기 아닌가?

그때 옆에 있던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고민에 빠져 있던 레온이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갈려고?”

“네 저도 이제 다음 수업이 있어서.”

“그래? 그럼 5분 정도면 되니, 혹시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아뇨. 없는데요.”

“에이 있잖아. 바쁜 척하지 말고.”

레온의 너스레에 아더의 눈살이 좁혀졌다.

“황자님,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

“같은 조원이 됐지만 전 아직 황자님 용서한 게 아니에요.”

레온이 당황했다.

“갑자기? 방금 전까지 의기투합했잖아, 우리!”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

“그러니깐 친한 척 자제해 주세요. 당신과는 거리를 두고 싶거든요.”

아더의 말에 레온이 한숨을 내쉰다.

“마음 아프군…. 그럼 이건 어떤가? 제안 하나 좀 하지.”

“제안이요?”

“그래…. 아마 흥미를 느낄 거야.”

이 말과 함께 레온이 품속을 뒤져 무언가를 보여 준다.

지켜보던 아더는 눈을 부릅떴다.

“…이건?”

“상급영단.”

“…!”

“자네라면 알겠지? 이 영단의 가치를?”

질문에 아더가 부릅뜬 눈을 끔뻑였다.

‘모를 리가 있나? 당장 테이큰 씨가 이걸 먹고 벽을 깼는데?’

중급 영단까지는 돈으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상급 영단부터는 돈으로도 구할 수 없다.

인맥과 연줄, 그것들을 전부 동원해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바로 상급 영단이다.

그런데 그 귀한 상급 영단이라 짐작되는 물건을 레온이 꺼내 든 것이다.

‘느껴지는 마나만 보면…. 진짜 상급 영단인데, 이걸 왜?’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미간을 찌푸렸다.

“…수상하네요, 황자님. 뭔가 속내가 있죠?”

“당연히 있지.”

“….”

“하지만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재밌기도 할 테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속에서 황자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칸 마드리드…. 그 남자를 죽이는 데 도움을 주지. 어때 아더 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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