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55화 (55/265)

제55화

레온이 중얼거렸다.

“자네…. 진짜 미쳤나?”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공간 도약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앞을 막아선 마시알이 레온을 보호한다.

캉-!

울려 퍼지는 쇳소리와 함께 마시알과 아더가 칼질을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온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친놈인가, 진짜로?’

황실의 인원에게 칼을 겨눈 것도 모자라, 살인 예고를 한다고?

별의별 놈들은 다 봐왔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챙-!

그사이 마시알이 물러선다.

거친 호흡을 토해 낸 실눈의 사내가 칼을 고쳐 잡았다.

여러 임무를 수행한 터라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이다.

지켜보던 레온은 한숨과 함께 제 능력을 발동시켰다.

쏴악-!

기이한 소리와 함께 마시알의 신체가 레온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멈칫한 아더가 눈을 치켜뜨는 사이, 레온이 훌쩍 뛰어오르며 말했다.

“자네…. 이 일에 관해 뒷감당이 되겠나?”

“말씀드렸잖아요. 황자님만 죽으면 뒷감당할 필요 없다고.”

이 말과 함께 노움의 능력이 발동시켜 레온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어느 사이엔가 뛰쳐 오른 레온이 허공에 뜬 상태로 중얼거렸다.

“…조만간 찾아가지, 아더 바이에른.”

눈을 부릅뜬 아더가 권총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번쩍이는 빛과 함께 레온이 먼저 사라졌다.

그 광경을 자리에 서서 지켜보던 아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놓쳤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다 어깨를 으쓱였다.

“음…. 이러면 어쩔 수 없지.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깐.”

죽이면 죽이는 대로 좋았고, 놓치면 놓치는 대로 좋았다.

‘어찌 되었건 레온 마드리드는 황실의 기밀을 훔친 산업 스파이. 오늘 일을 굳이 콕 짚어 말할 수 없을 거야.’

둘 다 켕기는 쪽이 있지만, 뒤가 더 켕기는 것은 황자였다.

아마 당장 오늘 사건을 두고 따지고 들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레온 마드리드가 왜 산업 스파이와 엮여 있고, 이런 쇼를 벌였냐는 건데….’

그건 아직 단정 짓기가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레온 마드리드와 지금의 레온 마드리드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뭐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들인 노력 비해 꽤나 허무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는데 그 탓에 혀를 찰 때였다.

“…?”

레온 마드리드가 떠나간 자리.

그 자리에 놀랍게도 수백 개의 금화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채, 번쩍이고 있었다.

눈을 끔뻑이던 아더가 뒤늦은 탄성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오…. 설마 환각은 아니겠지?”

* * *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몰라도, 마시알 더스트가 잡혔다는 이야기가 D-42구역에 퍼진 것이다.

그 탓에 몰려들었던 천 명의 용병들은 물론이고 시 공무원까지 깔끔히 철수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용병들의 시체.

그 시체들이 이번 사건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을 때였다.

아더는 아직 풀리지 않은 피로감에 반쯤 감긴 눈으로 아침 신문을 바라보았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주간 신문지의 1면에 어제 있었던 사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보통 뒷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은 수면 아래에서 묻히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한 일이었다.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린 것 같은데… 설마 노린 건가?’

생각과 함께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케라스가 마시알 더스트라는 걸 눈치챈 뒤, 아더는 줄곧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어째서 케라스는 카르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흘린 걸까?

잠적하고 싶었다면 조용히 몸을 숨기는 게 나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니 어쩌면 이 소란이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사건을 크게 키워서 잠적이 아니라 죽은 척을 하겠다?’

가정과 함께 아더가 떠올렸다.

현상금 천 골드라 하지만 고작 현상 수배범 하나에 아케인 전역의 용병들이 모여들었다.

그 과정에서 뒷세계 조직 중 하나인 검은 십자가도 참여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시알 더스트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 증거로 기사의 한 글귀에서는 검은 십자가를 언급하며, 마시알 더스트 죽음을 은근히 시사했다.

뒷세계의 악랄한 조직이 현상 수배범을 가로챈 주인공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만약 이게 의도한 거라면 최고의 수인데?’

죽음은 그 어떤 잠적보다 효과적인 잠적이다.

특히 뒤를 쫓는 이들이 제국의 황실인 걸 고려하면 말이다.

그래서 아더는 마시알 더스트와 함께 등장했던, 7황자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예측이 맞다면 그 한량이나 망나니라는 이미지도 만들어 낸 거라 봐야겠네. 문제는…. 왜 굳이 그러는 거지?’

제국의 황자라는 좋은 위치에 있으면서 굳이 제 능력을 숨겨야 하는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잡았어야 했나 쩝….”

말을 흐린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깊이 고민하고 싶었지만, 약속이 잡혀 있어 시간이 없었다.

‘엘린과 만나서 밥을 먹어야지….’

어젯밤 피로가 풀리지 않아 쉬고 싶었지만,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홀란 대부님 소식도 물어보고, 그 외 이야기도 물어볼 게 많고.’

생각과 함께 아더가 안나에게 외출 준비를 부탁했다.

“오늘 또 나가시는 거예요?”

“응. 요즘 여러모로 바쁘네.”

대답과 함께 아더가 안나가 건네준 옷을 걸쳐 입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나가 나직한 감탄을 터트렸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깔끔한 바지였는 데 키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아더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허나 안나가 주목한 것은 아더의 키가 아니었다.

다크서클이 조금 진하게 내려온 아더의 얼굴을 바라보던 안나가 중얼거렸다.

“희한하네…. 공자님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잘생겨지시지?”

“…? 그게 무슨 말이야, 안나?”

“아니 오늘은 다크서클도 있으신데…. 얼굴이 잘생겨 보여서요.”

“….”

“혹시 제가 이상한 걸까요?”

안나의 진지한 물음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것 같은데?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역시 그렇죠? 흠…. 내 착각인가.”

말을 흐린 안나가 망토를 건네준다.

망토를 어깨에 걸친 아더가 힐끔 안나를 바라봤다.

‘왜 계속 얼굴이 잘생겨졌다고 하는 거지? 내가 보기엔 별 차이가 없는데?’

허나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어젯밤 피로 탓인지 몰라도 조금 전부터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누군가 툭 건드려도 쓰러질 것 같은 상태를 억지로 이겨 내며 아더는 저택을 나섰다.

“공자님, 잘 다녀오세요!”

그렇게 미리 대기시켜 놓은 리무진으로 달려가기를 30분.

마침내 엘린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그 저택을 바라보던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장미와 코스모스.

수백 송이의 꽃에 둘러싸인 저택은 무척 아름다웠다.

* * *

차에서 내린 아더는 문을 두들기기 전 제 뺨을 먼저 탁탁 쳤다.

‘계속 졸리네. 이거 큰일인데….’

엘린한테 여러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 아더였다.

홀로 남아 있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준 사람.

그런 엘린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더는 고리까지 회전시켜, 억지로 몸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준비를 마치고서야 아더는 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아더 바이에른입니다. 엘린을 보러왔어요.”

문이 열리고 한 시녀가 허겁지겁 다가와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공자님. 엘린 님의 전속 시녀 헤라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아더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에 헤라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아니 저까짓 거에게 어찌 고개를….”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이게 제 버릇이라.”

“버릇…. 이요?”

아더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네. 버릇이니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담담한 어투에 엘린의 시녀 헤라가 눈을 끔뻑이다,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네, 넵! 그럼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혜라는 곧바로 엘린의 방으로 안내하지 않고서 응접실로 먼저 아더를 안내했다.

“아가씨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조금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공자님?”

“네 괜찮아요.”

“마실 것들이 여럿 있는데 혹시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공자님?”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혹시 커피 있나요?”

“네. 있습니다.”

“그럼 샷을 3개…. 아니 다섯 개 추가해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헤라가 눈이 동그래졌다.

“다, 다섯 개 말씀입니까?”

“네. 제가 어제 잠을 조금 설쳐 가지고….”

말을 흐리는 아더의 모습에 헤라가 고민하다 살며시 조언했다.

“졸음이 오시면 커피보다는 녹차가 어떠신지요, 공자님.”

“녹차요?”

“네. 아주 품질이 좋은 녹차가 있는데, 잠기운을 달아나게 하는 데 일품입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녹차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대답했다.

“네 그걸로 해 주세요.”

“그럼 실례를.”

절도 있게 허리를 숙인 헤라가 물러난다.

홀로 남게 된 아더가 기지개를 켜며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스텔 색조로 꾸며진 집안이었는데 그 덕인지 몰라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따뜻하고 온화했다.

거기다 집 방향이 남향인지 따스한 햇볕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집안의 풍경에 아더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가 편안하네…. 남의 집에 온 것 같지도 않고.”

그 탓일까.

간신히 이겨 내던 졸음이 다시 쏟아지려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어젯밤 쌓인 육체의 피로는 계속해서 아더를 수면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 힘겨운 싸움을 허벅지를 꼬집으며 간신히 버텨 내던 때였다.

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더?”

그와 동시에 시선을 돌린 아더가 눈을 크게 떴다.

“엘…린?”

말끝을 흐린 아더가 잠기운이 달아나는 걸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뭔가 예쁘네?’

탐스러운 머리칼도 그렇고, 화장을 한 건지 붉게 물든 뺨도 그렇고.

모든 게 엘린이란 여자에게 어울렸다.

거기다 입고있는 연분홍색 드레스는 신경 쓴 티가 너무 나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아더는 당황했다.

‘오늘 그냥…. 밥 먹는 날 아닌가?’

파티장에서나 입을 법한 공을 들인 복장.

그래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할 때, 엘린도 입을 벌렸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는데 그 감정의 변화가 표정에 훤히 드러났다.

그 탓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였다.

아더를 위해 녹차를 들고 오던 헤라가 멀찍이 선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다 뭐 하세요?”

“…!”

“왜 멍하니 서로를···?”

헤라의 물음에 엘린이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어, 언제 왔어, 헤라?”

“저 방금 왔는데요, 아가씨?”

“하하…. 그래? 손에 있는 건 뭐야?”

“아더 바이에른 공자님을 위한 녹차….”

“내가 줄게! 내가!”

외침과 함께 엘린이 녹차를 받아 든다.

헤라가 눈을 끔뻑이다 뒤늦게 붉게 물든 엘린의 귓가를 발견한다.

‘…흐음.’

정체 모를 중얼거림과 함께 헤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무척이나 잘생긴 얼굴의 귀공자가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정도면…. 우리 아가씨께서 호들갑을 떠실 만하네.’

생각과 함께 씩 미소지은 헤라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길.”

이 말과 함께 헤라가 물러나자 자연스러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엘린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 일찍 왔네?”

“….”

“약속 시각보다 10분? 아니…. 30분은 더 일찍 온 것 같은데?”

물음에 정신을 차린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저기 엘린?”

“으, 응!?”

“혹시 수전증 있어요?”

“뭐?”

“왜 그렇게 손을….”

엘린이 멈칫한다.

그리고 뒤늦게 부들부들 떨리는 제 손을 발견한다.

“…어라? 이게 왜 이러지?”

“….”

“어제 검술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건가?”

어딘가 이상한 그녀의 변명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뭔가…. 정신을 못 차리는데?’

생각과 함께 아더가 뒤늦게 녹차를 들이켰다.

헤라의 말대로 품질이 좋은 모양인지 맛이 꽤나 괜찮았다.

더불어 또다시 몰려오던 잠기운도 은근히 달아나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던 머리가 한결 나아졌다.

그 산뜻한 감각에 아더가 살짝 미소 지으며, 제안한다.

“그럼 나가 볼까요?”

“…어?”

“저희 오늘 밥 먹기로 약속했잖아요?”

엘린이 눈을 치켜떴다.

“아…. 맞아! 밥 먹기로 했지! 그런데 뭐 먹을까 혹시 원하는 거 있어?”

“흠…. 글쎄요. 지금 딱히 입맛이 돌지는 않는데….”

말을 흐린 아더가 문득 옛 기억을 떠올린다.

아케인 시장.

안젤리나와 함께 식사했던 나탈리 레스토랑.

맛은 물론이고 분위기까지 엄청나게 좋았던 걸로 기억했다.

‘거기 정도면…. 딱 적당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엘린에게는 여러 의미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보답하는 의미로 밥을 산다면 그만한 장소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가 자신만만하게 제안했다.

“그럼 저 아는 데로 가실래요? 엄청 괜찮은 곳이 있거든요. 엘린의 마음에 분명…. 쏙 드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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