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마시알 더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이상하네요.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눈치채신 겁니까?”
질문에 아더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요?”
“제가 죽은 걸 보지 않았습니까, 던 님은?”
“아 예니카 손에 붙잡힌 시체 말이에요?”
“네. 그런데 왜 이곳에 오셔서 절 찾으신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부분만큼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이 저한테 최면을 걸었을 때.”
“…?”
“그때 당신 중얼거림을 누군가 엿들었거든요.”
마시알 더스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때 제가 뭐라 했죠?”
“[예상치 못한 걸 이렇게 발견했네…. 재밌겠어] 이렇게 말했다면서요?”
“고작 그 한마디에 제가 죽음을 위장했다는 걸…. 눈치채셨단 말입니까?”
아더가 검을 치켜든다.
“눈치챈 것까지는 아니고 감이죠. 최면을 걸고 재밌다는 인간이 정상인은 아닐 테고….”
말을 흐린 아더가 씩 웃는다.
“보통 이런 인간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끝까지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이곳에 온 거고.”
“….”
“그래서 더 묻고 싶은 거 있어요? 마지막 유언이 될 텐데?”
이 말에 마시알 더스트의 표정이 모호해진다.
“유언이요?”
“네. 당신 죽일 거라 했잖아요?”
대답과 함께 아더가 사라진다.
흠칫 놀란 마시알 더스트가 중얼거렸다.
‘텔레포트? 아니…. 이게 뭐지? 설마 혈통?’
생각과 함께 마시알의 육체가 투명해진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검이 마시알의 육체를 관통한다.
“어라?”
탄성과 함께 아더가 권총을 든다.
그리고 마시알의 뒤통수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역시나 운철검처럼 관통되어 버렸다.
‘마법? 아니야. 이건…. 혈통이다.’
똑같은 생각을 한 아더와 마시알이 거리를 벌린다.
“재밌는 능력이네요.”
“피차일반입니다.”
이 말과 함께 마시알의 실눈이 슬그머니 떠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입꼬리를 올렸다.
“눈동자가 특이하네요. 초승달 모양이라….”
“특이한 만큼 재미난 능력이 많습니다.”
아더의 입꼬리가 더욱 치켜 올라갔다.
“당신을 죽일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네요.”
“…이유가 늘어났다고요?”
“네. 아주 중요한 이유가 생겨나 버렸어요.”
마시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다문다.
‘…내가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지?’
그때, 아더가 운철검을 치켜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시알은 고민하다 두 손을 들었다.
아더가 의아해하며 질문한다.
“어라? 포기하시는 거예요?”
“아뇨. 포기한 건 아닌데,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
“제 목적은 다 이뤘거든요. 그러니깐 던 님만 절 못 본 척 물러나 주시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지급하도록 하죠.”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보상이요?”
“네. 음…. 예를 들어 천 골드. 제 목에 걸린 돈을 준다면 어떻습니까?”
아더가 끔뻑이던 눈을 치켜뜬다.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잡아낸 마시알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금화 자루를 보여 준다.
“….”
그의 말대로 엄청난 금화가 자루 안에 담겨 있었다.
어림짐작으로 세어 봐도 대략 천 골드가 넘어가는 엄청난 액수였다.
“물러나 주시면 드리겠습니다. 어때요 던 님?”
“….”
“솔직히 말해 여기서 더 싸우는 건 던 님도 손해지 않습니까? 안 그래요?”
금화를 바라보던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맞아요. 굳이 서로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싸울 필요는….”
아더가 웃는다.
“당신도 죽이고 돈도 얻고. 이런 걸 두고 일석이조라 부르던가요?”
마시알 더스트가 눈을 끔뻑인다.
“진심… 이십니까?”
“네. 당신 목 베고 아케인 시 공무원에게 보여 주면 천 골드 또 받잖아요.”
“…!”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바보가 있을까요?”
마시알 더스트가 당황해 입을 벌린다.
그사이 또 다시 사라진 아더가 그의 뒤편에서 나타난다.
쉭-!
투명해진 그의 육체 사이로 운철검이 관통한다.
하지만 이미 예측하고 있던 아더는 당황하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투명화할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원상태로 되돌아올 때를 노려야 했다.
생각과 동시에 아더가 노움을 부른다.
땅의 정령이 그 부름에 따라 능력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무너지는 대지의 발판과 함께 마시알 더스트가 눈을 치켜뜬다.
‘마법? 아니…. 이건 정령?’
생각과 함께 마시알이 진심으로 감탄한다.
혈통 능력을 지닌 상태에서 정령을 이 정도로 능숙하게 다루다니?
이런 재능을 가진 자는 흔치 않았다.
그사이 살아 움직이는 대지가, 거대한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몸을 투명화시켜 통과하면 그만이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서 마시알이 일단 신체의 일부분만 투명화시켰을 때였다.
그 틈을 노리고 있던 아더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탄을 쏘아냄과 동시에 아더가 마시알 더스트에게 접근한다.
탄알을 피하고자 능력을 발동시켰던 마시알이 흠칫 놀란다.
조금 전 몸을 무리하게 투명화시키느라 지속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마시알이 다급히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자, 잠깐! 대화로 하죠 대화로!”
아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뻗어 나간 검이 실체화된 마시알의 손목을 노린다.
그 일격을 멍하니 바라보던 마시알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릴 때였다.
챙-!
교차되는 검.
그와 동시에 아더가 눈을 부릅떴다.
“어라?”
탄성과 함께 거리를 벌린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말을 흐린 아더가 질문한다.
“어째서 마시알이 두 명이죠?”
* * *
똑같은 외형, 생김새를 가진 두 명의 사내를 바라보며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쌍둥인가요?”
질문에 새롭게 나타난 마시알 더스트가 고개를 돌린다.
‘괜찮으십니까?’
입 모양만으로 전하는 그 말에 기존의 마시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 미안하네. 괜히 고집부려서 이 사달이 났군.”
‘괜찮습니다.’
“괜찮긴 뭘…. 일단 상황 정리부터 해야겠어.”
이 말과 함께 기존의 마시알 더스트가 눈을 치켜뜬다.
“…!”
그와 동시에 아더는 흰 수염의 아티팩트 마법이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라?”
그 속에서 드러난 얼굴에 기존의 마시알 더스트가 입꼬리를 올린다.
“아더 바이에른?”
“….”
“제국의 기둥이라 불리는 가문의 자제가 아케인의 용병이 되어 있을 줄이야….”
이 말에 아더가 당황한다.
“절 본 적 있어요?”
“본 적은 있지. 아주 오래전에.”
달라진 말투와 함께 기존의 마시알 더스트가 미소 짓는다.
지켜보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저 눈 도대체 뭐지? 바라본 것만으로 마법을 해체한다고?’
더 문제인 것은 드러난 제 얼굴을 정확히 알아봤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 없던 아더는 표정을 굳혔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죽여야겠어.’
원래도 죽일 생각이었지만, 더욱 확실히 죽여야 할 이유가 늘어났다.
‘주의할 점은 최면. 하지만 이제는 소용없겠지.’
얼핏 듣기로 똑같은 마법사가 똑같은 대상에게 두 번의 최면을 걸 수는 없었다.
어떤 특수한 정신세계의 반작용 때문이라 들었는데, 인간의 정신세계가 그만큼 신비롭다는 말도 같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혈통만 조심하면 되는 건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두 명이 된 마시알 더스트 중 한 사람의 얼굴이 녹아내린다.
흠칫 놀란 아더가 멈추어 선 순간,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 된 마시알 더스트가 중얼거렸다.
“이건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군…. 안 그런가 아더 바이에른?”
이 말에 아더의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당신은….”
“오호, 날 알아?”
“제국의 황자님 아니세요?”
이 말에 금발의 미남자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맞다! 내가 바로 제국의 7황자 레온 마드리드 님이시다!”
* * *
거리낌 없이 스스로의 정체를 밝힌 레온의 말에 아더가 입을 다문다.
‘마시알 더스트…. 이 사람이 레온 마드리드였다고?’
대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국가.
그 국가들 사이에서 황자라는 호칭을 쓸 수 있는 국가는 제국뿐이었다.
그리고 그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는 7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레온 마드리드는 그 7명의 자식 중 막내였다.
‘꽤나 특이한 인물이었지. 한량 중의 한량…. 내가 벙어리 공자라 불렸다면 저 사람은 망나니 황자라 불린 자였어.’
그 덕에 미래,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자이기도 했다.
칸 마드리드는 황태자 자리에 즉위하자마자 피의 숙청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병상에 누운 일황자가 가장 먼저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나머지 황제의 자식들도 일황자의 뒤를 따라 차례로 목이 떨어졌다.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가 제국의 7황자.
바로 레온 마드리드였다.
‘그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매일 같이 술과 여자를 끼고 사니 다른 자식들과 달리 견제할 가치조차 못 느꼈다, 그렇게 수군거렸지.’
그건 아더도 다르지 않았다.
그 철두철미한 칸 마드리드가 레온 마드리드만 살려 둔 걸 보면, 그는 정말로 죽일 가치가 없던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레온 마드리드가 마시알 더스트와 엮여 있었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그 탓에 아더가 머뭇거리는 사이 레온이 입꼬리를 올렸다.
“흠…. 내 정체를 아니 편하게 말하지. 예의를 갖추게, 아더 바이에른!!”
“….”
“황실의 인원인 내게 칼을 들이미는 건 반역을 꾀하는 일. 어서 들고 있는 칼을 내려놓게!”
이 말에 아더가 침묵한다.
그 모습에 레온이 다시 한번 소리친다.
“어허 뭘 망설여! 반역이라니깐, 반역! 나한테 칼을 들이미는 건! 그것도 가문 전체가 숙청당할 수 있는 반역!”
흠칫 놀란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칼끝을 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온이 눈빛을 빛냈다.
“그래…. 그렇게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게.”
“...”
“그 뒤에 대화로 한번 상황을 풀어 보자고. 내가 보기엔…. 우리 둘 사이에 쌓인 오해는,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거든.”
잠잠해진 아더를 지켜보던 레온이 입꼬리를 올렸을 때였다.
옆에 있던 마시알 더스트는 흠칫 놀라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진다.
탕-!
레온 마드리드가 눈을 끔뻑인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찢긴 제 상의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비껴 맞았어도, 어깨가 날아갔을지도 모를 위치였다.
그 탓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레온 마드리드가 거칠게 소리친다.
“…미쳤는가 아더 바이에른!!!”
“….”
“감히 황실의 일원에게 총을 쏘다니! 제정신이야!”
아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외람되지만 칠황자님. 저도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안 하면 되지!”
“하지만 이미 마음을 먹었는걸요.”
“…?”
“이곳에 오기 전, 무슨 일이 있건 제게 최면을 건 자를 죽인다고 마음먹었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어요.”
아더가 눈빛을 빛낸다.
“제가 한번 마음 먹은 건 꼭 하는 성격이라 황자님을 죽여야겠어요.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
레온이 경악해 입을 벌린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제국의 황자를 죽이겠다고?”
“네.”
“자네 진짜 제정신인가? 뒷감당이 되겠어? 이 일이 잘못되면 자네뿐만이 아니라 자네 가문도 멀쩡하지 못할 거야!”
이 말에 아더가 웃는다.
“뒷감당이요? 그게 왜 필요하죠?”
“…뭐?”
“흔적을 안 남기면 그럴 필요도 없잖아요?”
내려놓았던 운철검을 다시 치켜든 아더가 속삭인다.
“그러니깐 걱정 마세요. 제가 이 부분에서는 프로거든요. 절 쫓을 흔적 따위는 남기지 않을 거예요.”
레온 마드리드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린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