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48화 (48/265)

제48화

대륙 최고의 권력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입을 모아 제국의 황제를 뽑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해가 지지 않은 나라. 그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바로 황제니깐.’

그리고 지금.

윌렛의 입에서 그 대륙 최고 권력자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아더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은 체 질문을 던졌다.

“비유적인 의미인가요, 아니면 진짜 황제가 명령을 내린 건가요?”

“둘 다야. 황제가 명령을 내렸고 고위 관리들이 또다시 명령을 내렸지.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관리들이 또다시 명령을 내린 일이 바로 이번 임무야.”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제가 스파이들을 잡아들여라 이런 말이라도 했나요?”

“비슷한 맥락이지. 최근 마도 공학의 핵심이라 불리는 마공석 세공기술이 유출된 적이 있어.”

“…마공석 세공기술이요?”

“마공석으로 움직이는 모든 물건의 핵심 기술이라 하더군. 여튼 이 기술이 없으면 자동차는 물론이고 기차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데, 최근까지 제국이 이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다나 봐.”

윌렛이 건네준 서류를 가리 켠다.

아더는 그 서류에 적힌 부분을 읽어내려갔다.

[산업 스파이: 마시알 더스트]

[죄목: 핵심 기술 유출 협의]

내용을 암기한 걸 넘어 이해한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즉 마시알 더스트… 이 사람은 돈이 되는 기술을 훔친 혐의를 받는 거구나. 그것도 엄청난 돈이 되는 기술을.’

생각과 함께 고개를 들자 윌렛이 파이브를 물고서 다시 설명한다.

“새로운 시대의 과도기인 이 시점에서 가장 돈이 되는 건 기술이야. 그리고 마시알 더스트 이놈은 그 기술을 훔친 혐의를 받는 거고.”

아더가 메마른 입술을 핥으며 질문했다.

“흠···. 그런데 사안을 들어 보니 엄청 큰 것 같은데, 왜 황실이 직접 나서지 않는 거죠?”

“아직 혐의기 때문이지. 지금 황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은 이놈보다 더 의심이 가는 스파이들을 쫓는 데 총동원되고 있어. 여력이 없단 소리지.”

“그럼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네요?”

“그래서 매력적인 의뢰지 않나? 잡기만 해도 천 골드. 그런데 이놈이 만에 하나 진짜 기술을 훔치고 달아난 산업 스파이라면 황실과 연을 맺을 수 있고. 그런데 더 좋은 점이 있어.”

윌렛이 눈빛을 빛낸다.

“지금 이 일에 뛰어든 놈들이 대부분 이 사실을 모른다는 거야.”

“…모르다니요?”

“고작 산업 스파이 따위에게 왜 천 골드라는 거금이 걸렸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이네. 이건···. 꽤 큰 메리트지.”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어···. 그럼 조금 전 말씀 하신 부분이 공유되는 정보가 아니라는 소리신가요?”

“맞아. 아주 몇몇···. 그래. 엘리트라 불리는 사무소들만 알고 있는 정보지. 그래서 나도 자네에게 정보를 말하지 않은 거고.”

“와···. 그런데 윌렛 어르신은 이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윌렛이 혀를 찬다.

“영업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묻는구먼. 당연하지만 말해 줄 수 없네.”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후 고민하다 눈빛을 빛냈다.

‘이 정도면 예상보다 더···. 재미난 의뢴데?’

처음에는 단순히 돈 때문에 의뢰를 수락한 거지만, 황실과 엮여 있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최종적으로 내가 죽여야 할 사람은 칸 마드리드. 미래 제국의 황태자 자리에 오르는 권력자지. 그리고 지금 이 의뢰는 황실과 엮여 있어.’

물론 이 의뢰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반대로 보면 도움이 안 될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 탓에 아더는 입꼬리를 올리고서 중얼거렸다.

‘하루 정도 시간을 투자기에는 딱인 의뢰네. 나쁘지 않겠어.’

그 후 건네받은 서류를 돌려주자, 윌렛이 제안한다.

“원한다면 D구역까지 데려다주지.”

“오 정말요?”

“의뢰를 받아들인 서비스야.”

“이야 윌렛 어르신이 서비스라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건가 봐요.”

윌렛이 시선을 좁힌다.

“자네 날 뭐로 보고 있는 겐가?”

“마음씨는 착하지만, 짠돌이에게 융통성 없는 늙은이?”

“…….”

“어···.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요?”

윌렛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더를 노려보던 시선을 홱 돌려 버린다.

그 모습에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윌렛 어르신 삐진 모습이 너무 귀여우신 거 아니에요?”

“입 닥치게.”

그사이 내달리던 차가 속도를 점차 늦추기 시작했다.

동시에 깔끔한 민간구역 대신 허물어져 가는 판자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케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 풍경에, D구역에 들어섰다는 걸 깨달은 아더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자, 침묵하던 윌렛이 입을 연다.

“짠돌이에 융통성 없는 노인으로서 충고 하나 하지.”

아더가 고개를 돌린다.

“눈에 띄지 마. 무리가 모이고 일이 잘못되면 가장 먼저 타겟이 되는 게 특이점이 되는 이들이니깐. 무던하게 숨어 있다, 기회를 잡게. 그래···. 자네가 잘하는 거 있지 않은가?”

윌렛의 말에 아더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 마음 심란하게 만드는 거. 그걸 이번 임무에서 잘 써먹어 보게나.”

* * *

윌렛과 헤어진 아더는 D-42구역 폐촌으로 들어섰다.

허물어져 가는 판자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눈이 풀린 거지들이 그 사이사이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한 푼만······. 주십쇼.”

얼굴을 바닥에 박은 거지들이 양철 그릇을 들어 올린다.

아더는 품 안에 있는 동전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했다.

‘동전을 던져 주면 또 다른 거지들에게도 줘야 하겠지.’

자비는 베풀 수 있지만, 귀찮아지는 건 사양이었다.

아더는 양철 그릇을 내미는 거지들을 지나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구걸하는 거지들 대신 무장을 한 용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총과 칼.

심지어 헬버드를 짊어진 채 거니는 자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더는 이곳이 윌렛이 말한 ‘집결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이곳에서 심사를 받으라 했지?’

평소 같았으면 관할 공무원의 허락 정도만 맡고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임무는 아케인의 전 브로커와 용병이 참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

그 탓에 시 공무원이 직접 나와 무기 소유 허가증을 비롯해 여러 절차를 검사하고 있었다.

‘규모가 크긴 한 가보네···. 엉덩이 무거운 공무원이 직접 다 움직이고.’

턱을 쓰다듬은 아더가 줄을 선다.

그렇게 10분을 기다리다 차례가 다가왔는지 이름이 호명됐다.

“윌렛 사무소 소속 던 맞나요?”

“네 맞습니다.”

“용병 패 좀 보여 주세요.”

사무적인 공무원의 말에 아더가 이곳에 오기 전 윌렛에게 건네받은 패를 내밀었다.

패를 받아든 공무원이 이러저리 살펴보다 질문했다.

“의뢰 해결 건수 3건 D등급 용병 던 맞나요?”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D등급이요? 아직 등급 판정을 받지 못했는데요?”

“패에는 그렇게 쓰여 있는데요? 의뢰 해결 건수 3건. D등급 용병 던.”

공무원의 말에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왜 새로 패를 지급했냐 했더니, 등급이 나와서 그런 거구나.’

용병의 등급은 쉽게 말해 이름값이다.

이 용병이 어느 정도 의뢰를 해결했으니, 이 정도 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나눈 것이 바로 등급이었다.

‘그중에서 D등급은 상위 등급과 비교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의뢰 건수 3건 만에 올라가는 건 어렵다고 들었는데···.’

보통 모든 용병은 F등급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의뢰를 해결하는 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등급 배정에서 F등급보다 두 단계나 높은 D등급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그간 했던 의뢰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소리.

‘흐음···. 역시 윌렛 어르신의 의뢰는 좋단 말이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미소지을 때, 앞에 있던 공무원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질문한다.

“본인 아니세요? 설마 사칭이에요?”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한다.

“아닙니다. 본인 맞습니다. 잠시 헷갈렸어요.”

다소 이상한 말투에 공무원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넘어갔다.

“여기 허가증이요. 참고로 용병 패 사칭하다 걸리면 징역 20년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아더가 서류를 받아들고 검문소를 빠져나간다.

그 후 자리에 서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이 거점이 되는 역할을 하는 모양인지, 노점도 보였고 작은 술집도 보였다.

그 과정에서 잔뜩 취해 왁자지껄 떠드는 용병들도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더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곳이 시작점은 맞고···.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내일은 엘린과 약속이 있고, 즉 24시간 이내에 마시알 더스트를 잡아야 한다는 소리다.

‘일단 오기는 왔는데···. 이 넓은 곳을 다 뒤질 수도 없고.’

이곳 D구역 폐촌은 아케인 내에서도 가장 큰 지역이었다.

그 이유는 이곳 폐촌이 아케인에 버려진 모든 것들이 모이는 장소기 때문이었다.

‘동쪽으로 가면 쓰레기 매립장이 있고, 서쪽으로 가면 오염수가 잔뜩 고인 호수가 있지.’

그리고 남쪽으로 향하면 조금 전 보았던 폐촌과 거지가 있었다.

그 넓이만 따져도 웬만한 도시 2~3개 합친 엄청난 크기.

그 넓은 곳을 일일이 조사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나혼자 힘만으로 흔적을 찾아냈다면 진작에 다른 사람이 잡았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적당히 눈치를 보다, 다른 무리에 합류해야 하나?

턱을 쓰다듬으며 아더가 고민할 때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렇게 보는군. 아니, 보는 게 정상인 건가?“

“…?”

“오랜만이야 던. 표정을 보니 그쪽은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네.”

아더가 눈을 잠시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뒤늦은 탄성을 터트리며, 눈앞의 사내를 향해 미소지었다.

“타이탄 전투갱단, 라보르드 씨 아니에요?”

* * *

두 번째 의뢰 임무에서 연을 맺은 전투갱단.

타이탄 전투 갱단의 새로운 보스 라보르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오···. 기억하고 있다니 의외인걸?”

“당연히 기억하죠. 이렇게 만나 뵙네요.”

인사에 라보르드가 손을 건넨다.

아더가 그 손을 마주 잡으니 라보르드가 슬며시 운을 띄운다.

“여기 온 걸 보니···. 현상 수배범 때문인가 보지?”

“아무래도 그렇죠.”

“일행은?”

“일행이요?”

“보통 이런 임무는 단체로 행동하잖아 설마 없어?”

아더가 고민하다 대답했다.

“네 아직 없어요.”

라보르드가 턱을 쓰다듬더니 손짓했다.

“잠시 시간 정도 내어줄 수 있지?”

“시간이요?”

“할 말이 있거든. 정확히는 제안이지.”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제안이라… 이곳에서 할 제안은 그 현상 수배범을 잡는 일이 텐데.’

설마 라보르드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던져진 질문에 아더는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판단했다.

‘가능성이 높은 건 전자 쪽. 그냥 안면이 있다고 날 찾아올 사람은 아니니깐···.’

생각과 함께 아더가 라보르드가 이끄는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정보가 있으면 어떻게 할래?”

“정보요?”

“그래. 마시알 더스트 놈이 있는 위치를 특정한 정보가 있다면 어떻게 할래?”

아더가 감탄하는 척 입을 벌린다.

“오···. 정말요? 그런데 확실한 건가요?”

“그건 보장 못 해. 하지만 높은 확률로 맞는 것 같아.”

“확신하는 근거는요?”

라보르드가 손가락을 튕긴다.

“B급 용병, 불사신 카르페. 그가 정보를 나누어 준 사람이야. 이 바닥에서 몇 안 되는 꽤 믿을 만한 사람이거든.”

“으음···. 단지 그 이유뿐이면 믿는 게 그렇지 않나요?”

“맞아. 그 이유뿐이면, 그렇지.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같이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보르드가 설명한다.

“지금 이곳에 모인 사무소만 50개가 넘어가고, 투입된 용병들만 천명이야.”

“…….”

“우리 같은 전투갱단도 포함하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가 없지.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소스가 나오기 마련이고, 그중에서 카르페 정도면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지.”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어물쩍거리다 놓칠 수도 있으니깐 이런 정보를 쥐고서라도 움직여야 한다 이건가?’

위험성은 크지만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일단 카르페 그자를 믿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어차피 나 혼자서 움직여도 뭘 할 수가 있는 상태는 아니고···.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도박한다면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나아 보였다.

더군다나 정해둔 목적지도 없는 지금은 더더욱.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가 대답했다.

“좋아요. 받아들일게요, 라보르드 씨.”

“수익은 다 같이 나누기로 했으니, 내 몫으로 떨어진 것 중에 비율 중 5를 줄게.”

“오···. 너무 많이 주시는 거 아니에요? 딸린 식구도 많으실 텐데.”

“별로 없어. 보리스 그놈이 배신하고 난 후 몇 명이 떨어져 나갔거든. 그리고 너에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도 하고.”

라보르드가 입꼬리를 올린다.

“던 너 정도면, 우리가 들 수 있는 보험 중에서 최고인 편이지. 저쪽이 허튼짓해도 너를 믿고 든든히 버틸 수 있으니깐.”

아더가 눈을 끔뻑이다, 탄성을 내질렀다.

“이런… 다른 속내도 있었군요. 전 단순히 절 도와주려고 생각했는데.”

“도와주려는 건 맞았어. 그러니깐 비율도 5대5에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잖아?”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으음···. 이것도 계산된 말이네. 난 이 정도로 널 신뢰하고 있다, 이런 걸 보여 주려는 거야.’

전에도 느꼈지만 라보르드 이 사람도 꽤나 특이한 갱단이었다.

자신의 손에 죽은 보리스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게 좋은 의미로 계속 특이해야 할 텐데···. 좋은 인상을 준 사람을 죽이는 건 그다지 즐겁지 않으니깐.’

생각과 함께 라보르드가 손짓하고 아더가 따라간다.

그렇게 라보르드의 뒤를 10분 정도 따르니 공터에 걸터앉은 몇몇 사람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날이 선 분위기나, 느껴지는 고리의 기운.

그것들을 보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자들도 있었다.

그 탓에 느껴지는 긴장감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릴 때였다.

한 사내가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 남자에게로 집중된다.

“저 미친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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