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아더의 설명이 계속된다.
치즈이 교수의 늘어지는 말투를 따라 하며.
“마법 공학의 개념이···. 처음 적립된 것은···. 대륙력 521년 5월 21일로···. 위대한 현자···. 도리아스 킨의 손에 마공석….”
그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의 입이 점차 벌어졌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말을 늘어트린 거로 생각했지만 아더는 설명하는 내내 계속 말을 늘어트렸다.
그 탓에 더는 실수라 생각할 수 없었고, 학생들은 자연스레 치즈이 교수를 떠올렸다.
지금 저 늘어진 말투는, 조금 전까지 설명하던 치즈의 교수 발음과 똑같지 않은가?
그래서 대다수 학생이 경악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치즈이 교수의 강의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는 아더의 설명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지?’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뭘 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단어 하나 안 틀리지?’
그 미묘한 감정 사이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치즈이 교수에게 지목당했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한 아더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게 치즈이 교수가 질문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 하나 틀리지 않은 체 전부 읊은 아더가 설명을 끝마친다.
“이게 바로···. 마도 공학이다.”
“…….”
“여기까지가 교수님이 설명하신 부분입니다.”
치즈이 교수의 치켜 올라간 눈꺼풀이 다시 내려앉는다.
제 머리를 분필로 긁적인 치즈이 교수가 입을 연다.
“엄청난···. 기억력이군요 학생. 많은 천재를 보아왔지만···. 단어 하나조차 틀리지 않고 설명하는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는군요.”
칭찬에 아더가 움찔 몸을 떤다.
허나 뒤이어 들려온 질책에 자신이 또 다시 실수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제 말투까지 따라 한 건···. 지목당한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반항의 표시입니까?”
이 말과 함께 치즈이 교수의 날 선 시선이 아더를 훑는다.
아더가 탄식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아···. 젠장. 말투까지 따라 하면 안 되는 거였나?’
곰곰이 고민하던 아더는 신음을 내뱉었다.
당연하지만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긴장을 한 자신은, 그 안 되는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똑같이 읊으라 해서, 나도 모르게···.’
말을 흐린 아더가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마땅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아더는 솔직히 대답했다.
“반항하기 위해 말투까지 따라 한 건 아닙니다, 교수님.”
“그럼···. 요?”
“교수님께서 똑같이 읊어 보라 하셔서, 저도 모르게 말투까지 따라 한 듯합니다.”
치즈이 교수의 눈이 다시 한 번 치켜떠진다.
“…똑같이 읊으라고 해서, 말투까지···. 따라 했다?”
“네. 지목당해서 긴장하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교수님.”
아더가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치즈의 교수도 입을 다물었다.
그 상태 그대로 잠시 아더를 바라보던 치즈이 교수는 갑작스레 끌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
“똑같이 읊어라···. 해서 말투까지 따라 하다니….”
말을 흐린 치즈이 교수가 다시 고민에 빠진다.
그 모습을 학생들이 눈을 굴리며 바라볼 때, 치즈이 교수가 갑작스레 선언한다.
“일단… 아더 바이에른 학생은···. 제가 한 질문을 정확히 대답했습니다.”
“…….”
“그래서 상점+10점. 이 상점은··· 태도평가에 들어갈 것이며··· 성적에도 반영이 될 것입니다.”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그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허나 뒤이어 들려온 말에 아더는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그러나···. 교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그래서 벌점-5점.”
“…….”
“아더 바이에른 학생의 상점은···. 그래서··· +5점입니다. 이견 있습니까?”
아더가 황급히 대답했다.
“이견 없습니다, 교수님.”
“좋습니다···. 그럼 수업을 다시 진행하죠.”
이 말과 함께 치즈이 교수가 다시 수업을 재개했고, 자리에 앉은 아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치즈이 교수님···. 진짜 아량이 넓으신 분이네. 이런 실수를 다 용서해주시고.’
그 후 늦었지만, 필기구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아더가 치즈이 교수의 설명을 적어 내려갈 때였다.
옆에 있던 예니카가 쪽지를 건네준다.
[역시 공자님은 재밌네요 ^0^]
그 쪽지의 내용을 잠시 바라보던 아더는 펜을 긁적여 답장한다.
[죽고 싶어요 예니카?]
* * *
마도공학 수업 이후, 3개의 수업을 더 듣고서야 첫날의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머지 수업은 별문제 없이 끝나,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 아더였지만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와···.”
“이게 전부 과제라고?”
“미친 거 아니야 진짜?”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의.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엄청난 과제들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간단한 예로 치즈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나누어준 두꺼운 서적 하나의 요약본을 다음 날까지 제출하라 말했는데, 그 페이지 수가 자그마치 500페이지였다.
백과사전이나 다를 바 없는 그 양을 요약하는 건, 솔직히 말해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아케인 교수들은 그 불가능을 요구해왔다.
그 탓에 학생들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괜히 자퇴율 1위 학교 아니야···.’
‘들어오는 건 어렵고 나가는 건 쉽다더니···.’
‘이거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준 거 맞지? 그렇지?’
그렇게 아더를 포함한 신입생들이 집과 학교를 반복하며 쏟아지는 과제들을 어찌어찌 소화해낼 때였다.
2주라는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휴일이 다가왔다.
아케인의 공휴일 중 하나인 건립 기념일이 찾아온 것이다.
“내일은 전 강의 휴강입니다. 아케인 몇 안 되는 공휴일이니, 모두 좋은 시간 보내기 바랍니다 여러분.”
필수 교양 중 하나인 제왕학 강의를 맡은 슈나이더 벌레인의 말에 학생들이 환호를 지른다.
“쉰다! 쉴 수 있다고!”
“젠장!! 이거 실화냐고!”
“과제도 없고, 뭐 해야 하지?”
“쇼핑이나 갈래? 아케인 잡화점이 그렇게 크다는데?”
이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들이 들뜬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도 기지개를 켰다.
지금 떠들썩한 학생들처럼 기쁨의 환호성을 지를 정도는 아니지만, 아케인의 살인적인 과제는 아더로서도 꽤나 힘든 부분이 있었다.
특히 치즈이 교수가 내준 요약본을 정리하는 게 힘들었는데, 한평생 접해보지 못한 학문이라 그 내용을 압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재밌단 말이지. 몰랐던 사실, 지식. 그런 것들을 탐구하는 게 이렇게 신선하고 재밌을 줄이야.’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무리를 지은 학생들과 달리 홀로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옆에 앉아있던 엘린이 아더를 부른다.
“아더! 공휴일에 뭐해?”
“…공휴일에요?”
“응. 주말까지 껴 있으니 3일은 쉬잖아. 그날 뭐해?”
질문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한다.
‘흠···. 그러고 보니 뭐하지? 과제는 일찍이 다 끝내 나서 없고, 시간이 비어버리네?’
오랜만에 검을 잡고 수련을 해도 되지만, 뭔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검술 강의에서 매일 같이 육체단련과 검을 수련하기도 했고, 이미 육체적인 수련을 통해 성장하기에는 그 단계가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고민하던 아더는 윌렛의 말을 떠올렸다.
시간이 나면 보육원에 함께 가자.
그와 동시에 떠오른 쥴리를 기억해낸 아더가 미소짓는다.
“아는 분하고, 보육원에 갈 것 같아요.”
“…보육원?”
“네. 친분이 있는 사람이 보육원에 있는데, 시간이 날 때 같이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주말 동안은 아마 그곳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더의 설명에 엘린이 애써 실망을 감추며 미소짓는다.
“아···. 그렇구나. 이미 선약이 있구나.”
“네. 그런데 이건 왜 물어요 엘린?”
“아니···. 그 약속이 없으면, 같이 과제나 하고 밥이나 같이 먹으려···. 했지.”
“밥이요? 밥은 매일 점심에 먹잖아요. 학교 식당에서.”
“그, 그렇긴 한데···. 또 밖에서 먹는 건 다르잖아?’
엘린의 말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아케인 대학의 교내 식단은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
맛도 뛰어난데 영양분 밸런스도 좋으니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고서야 그 수준을 뛰어넘기 힘들었다.
그래서 굳이 바깥에서 먹을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술을 달싹이는 엘린의 모습에 조금 전 말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걸 아더는 깨달을 수 있었다.
‘밥은 핑계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본데?’
잠시 고민하던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엘린하고는 한 번쯤 진득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홀란 대부님도 그렇고···. 엘린이 나한테 친근하게 구는 이유도 궁금하기도 하고.’
결정을 내린 아더가 제안했다.
“알겠어요 엘린. 그럼 이번 주 일요일 어때요?”
“…일요일?”
“네 그때 만나서 밥 먹고 카페나 같이 가죠.”
“진짜?”
“그럼요. 안 그래도 엘린한테는 한 번쯤 밥을 사고 싶었거든요.”
엘린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린이 생각나는 그 표정에 아더도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럼 일요일에 엘린의 저택으로 찾아갈게요. 그때 봐요 엘린.”
엘린이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서 미소짓는다.
“응 기다릴 게 아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 * *
다음 날.
아더는 윌렛을 만나기 위해 외출에 나섰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서 나서는 건 꽤 오랜만이라 그런지 몰라도 여유가 넘쳤다.
느껴지는 나른함에 몸을 맡긴 아더는 거리를 걸었다.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북적였는데, 공휴일이라 그런지 몰라도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여유가 넘쳤다.
그 여유를 함께 즐긴다는 것이 신기한 아더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쁘지 않네. 만약 전생의 기억이 있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 여유를 언제까지고 느낄 수 있었을까.’
피의 복수.
가문과 가족을 망가트린 원수들의 목을 벨 것이란 다짐.
그것들은 지난 삶에서도 그랬고 이번 삶에서도 제정신과 몸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때때로 아쉬웠다.
만약 케인 도르문트가 가문을 그 꼴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칸 마드리드가 제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자신 또 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학교에 다니며 모르는 사실을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고···. 휴일을 맞이해 놀러 다니고···. 지금처럼 말이지.’
던져진 질문에 아더는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그래···. 어쩌면 그런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어. 그렇다면 멈춰서는 안 돼.’
피에는 피.
칼에는 칼.
진부하지만 오래된 격언을 떠올리며 아더는 몸 안의 나른함을 지웠다.
‘일이 벌어진 이상 누구 한 명이 죽어야 끝날 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죽을 거고.’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그와 동시에 여유가 넘치는 세상이 다소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풍경에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의 자신에게는 이게 맞다. 아직은 이 세상에서 벗어날 때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또 왔군.”
“시간 날 때 오라 했잖아요, 윌렛 어르신.”
아더의 말에 윌렛이 한숨을 내어 쉰다.
“그 시간 날 때가, 하필 공휴일인가? 이날은 용병들도 쉬는 날인데?”
“어···. 그럼 나중에 다시 올까요?”
윌렛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아니 잘됐네. 어차피 나도 보육원으로 갈 생각이었으니깐. 지금 출발할 테니 준비하게. 아이들이 자네를 많이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