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45화 (45/265)

제45화

맑고 청아한 울림이 퍼져나간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뭐야?”

“저게 끝?”

“휘두른 거···. 맞아?”

수군거림과 함께 대다수 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광물을 베어내는 것이 목적인 테스트에서, 저런 힘없는 일격을 선보이다니?

그 탓에 대부분이 눈을 끔뻑였는데 몇몇 학생들은 달랐다.

‘목검하고 철이 만났는데, 저런 소리가 난다고?’

‘아무리 유려하게 그어 내렸다지만···. 말이 안 돼. 저건 날 수가 없는 소리야.’

‘설마 베어낼 때 나는 소리가 저건가?’

그들은 100명에 달하는 이번 신입생 중에서도 특이점에 속하는 학생들.

그 경지가 대부분 2서클 혹은 3서클에 이른 수재였으며 이번 분기의 기사 지망생 중에서 탑이라 말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수준이 낮은 학생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아더의 일격을 지켜보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그저 울려 퍼진 소리가 달랐다, 이 정도만 구별해낼 수 있었다.

허나 엘린 레버쿠젠은 달랐다.

그녀는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베어···. 냈어?”

그 중얼거림을 옆에서 지켜보던 놀스 교수도 똑같이 되뇌었다.

‘베어냈다. 착각이 아니라···. 진짜 베어냈어. 하지만 어떻게?’

아더 바이에른은 광물을 베어냈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검이 광물을 관통했다.

허나 눈앞의 광물은 쪼개지지 않았다.

만약 조금 전 일격이 착각이 아니라면 반으로 쪼개져야 하는 데 말이다.

그 탓에 놀스 교수가 의심과 당황.

그리고 놀람과 감탄이 섞인 시선으로 아더를 바라볼 때였다.

치켜든 목검을 회수한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쩝···. 결국 못 베어냈네.’

예상했을 때는, 시도 해볼 만하다 생각했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베어내는 척만 했을 뿐, 결국은 광물의 그 견고함을 뚫지 못했으니 말이다.

‘조금 더 정교하게 내리쳤으면 부러졌으려나?’

턱을 쓰다듬은 아더가 곧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 내지른 일격은 지금 상태에서 내보일 수 있는 최고의 일격이었다.

그 일격으로 베어내지 못했다면, 두 번을 내지른다 해도 베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더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검술 수업을 안 들을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나름의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놀스 교수님은···. 이 광물을 베어낼 수 있을까? 베어낼 수 없다면 애초에 내지도 않을 테니 말이야.’

그런 선생에게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과 함께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단상을 내려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놀스 교수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음 학생 올라오도록.”

그 후 20명의 학생이 더 나와 광물을 내리쳤다.

허나 아더처럼 단 한 번도 목검을 부러트리지 못한 학생은 없었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이번 테스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광물을 베어내라는 것 자체가 함정이었구나.’

‘검을 내지르는 자세, 힘. 기본적인 육체 상태. 그걸 보려고 시킨 거였어.’

‘하긴···. 애초에 첫 테스트에 수업을 안 듣게 해준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래서일까.

이번 테스트의 1등과 꼴찌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정해져 버렸다.

학생들은 시선을 돌려 아더 바이에른과 엘린 레버쿠젠을 바라볼 때였다.

놀스 교수가 소리쳐 선언한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다. 다음 수업부터는 여러분들의 실력에 맞게 커리큘럼이 들어갈 것이다.”

이 말에 학생들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첫 날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은 수업이 평균적으로 2~3개는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교실에 남아있는 마지막 학생까지 떠나자, 놀스 교수는 시선을 돌려 광물을 바라보았다.

“…예상은 정확했는데,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 한 명 있군.”

중얼거림과 함께 놀스 교수가 눈앞의 광물을 집어 들었을 때였다.

손에 들린 광물이 갑작스레 반으로 쪼개진다.

“…!”

깜짝 놀란 놀스 교수가 뒤로 물러난다.

그 사이 반으로 쪼개진 광물이 요사스러운 빛을 토해낸다.

놀스 교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 중얼거렸다.

“부서졌어···? 부서질 수 없는···. 광물이?”

&

첫 강의를 마친 엘린과 아더는 갈림길에서 섰다.

엘린은 제왕의 탑으로, 아더는 마도공학의 탑으로 가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엘린 그럼 다음에 봐요.”

인사와 함께 아더가 먼저 몸을 돌려 마도공학의 탑으로 향한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엘린이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수많은 인파에 섞인 아더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한숨을 내어쉰 엘린이 벌렸던 입을 다문다.

그리고 아더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그 일격은… 대체 뭐지? 내 착각인가?”

베어내는 것을 똑똑히 봤다.

하지만 광물은 부서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착각이란 소리인데, 엘린은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보았던 아더의 일격은 분명 광물을 베어냈다.

분명히 착각이 아니었다.

그 탓에 혼란스러워진 엘린이 한숨을 내쉴 때였다.

제 손에 꼬깃꼬깃 접힌 아더의 쪽지를 뒤늦게 발견한다.

“이것도 문제네… 내가 다가간 게 실수였던 걸까?”

고민하던 엘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더에게 다가간 건 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의도가 불순한 것은 맞았다.

‘나는 그 시선을 노렸으니깐···. 하지만, 그걸 자기 탓으로 돌릴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어.’

생각과 함께 엘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뒤늦게 움찔 놀라고서 중얼거렸다.

“어라···? 지금 몇 시지?”

이 말과 함께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던 엘린의 표정이 굳어진다.

10시 15분.

수업 시간이 시작시간이 10시 10분이니, 무려 5분이나 늦은 상태였다.

그런데 더 문제는 아직 교실에도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악! 되는 일이 없어!”

외침과 함께 부리나케 달려간 엘린이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제왕학 교수의 싸늘한 시선과 학생들의 오묘한 시선에 그녀의 표정은 울상이 되고 말았다.

* * *

아더는 엘린과 헤어진 뒤 다음 강의가 있을 교실의 문을 열었다.

놀스 교수의 수업 때처럼, 이미 먼저와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아더는 그들을 피해 제일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나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그 행동이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구석진 자리에 자리 잡은 아더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독특하네.’

‘뭐랄까···.’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

‘4차원? 그런 느낌인데?’

대화를 나누어보지 않았지만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대게 유추가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더 바이에른은 독특했다.

그것이 비단 검술 강의 때 있었던 일 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때 눈치를 보던 학생들 몇몇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린 레버쿠젠이 있을 때는···. 말을 못 걸었지만.’

‘지금은 해볼 만한데?’

‘통성명 정도는 해도 나쁠 건 없잖아?’

독특하다고 해서 아더 바이에른과 친분을 쌓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학교의 설립 목적에는 언젠가 대륙을 좌지우지할 요직에 앉게 된 학생들이 인맥을 다져주기 위함도 있었다.

그리고 바이에른 가문의 후계자라면 인맥으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명문가.

그래서 엘린이 없는 지금, 아더와 친분을 쌓아두기 위해 몇몇 학생이 접근하려 할 때였다.

“비켜주실래요?”

“…어, 어?”

“저쪽으로 가야 해서.”

서늘한 목소리에 아더를 향해 다가가던 학생 한 명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선다.

그 틈에 걸어 나온 예니카 헤이즐이 아더의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

“뭘 그리 바라보세요, 공자님?”

“바라보는 게 정상 아닐까요? 왜 제 옆에 앉으세요?”

“같은 수업이니깐요?”

“저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던가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할 정도면 친한 사이 아닌가요?”

아더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무어라 소리치려던 순간, 뒤늦게 이쪽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을 느꼈다.

이목이 쏠린 것을 깨달은 아더가 목소리를 낮추어 중얼거렸다.

“아니 예니카. 당신이랑 있으면 관심을 끈다고요!”

“…저랑 말이에요?”

“네! 저는 관심을 끌 생각이 없으니깐, 다른 데 앉아주세요!”

예니카가 눈을 끔뻑였다.

‘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관심을 끌어서 그렇다고?’

상당히, 아니 많이 독특한 이유였다.

그 탓에 예니카는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공자는 재밌네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요.”

“그건 공자님의 가치를 못 알아본 사람들일 거예요. 당신은 충분히 재밌으니깐, 자부심을 가지세요 공자.”

아더가 미간을 모으며 반박하려 할 때였다.

교실이 문이 열리고, 교수가 들어온다.

그 탓에 반박할 타이밍을 놓친 아더가 입을 다문다.

“…….”

그 사이 이번 마도공학 수업을 맡은 치즈이 유올라가 단상 위에 선다.

놀스 교수가 이십대에도 밀리지 않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한 기사였다면, 치즈이 교수는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었다.

그 탓일까.

“아···. 다들···. 안녕하세요?”

그 발음이 상당히 느릿느릿, 아니 매우 느렸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그것이 계속되자 몇몇이 학생들이 저게 뭐야? 왜 저러는 거야? 라는 말을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교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을 때, 수업 개요를 설명하던 치즈이 교수가 시선을 돌린다.

“거기. 조금 전···. 떠든 학생?”

“네?”

“왼쪽 창가 32번 자리에 앉은 학생. 당신은… 경고입니다. 경고 두 번이 되면 낙제점이니···. 떠들지 말아 주세요.”

지적받은 학생이 놀라 눈을 치켜뜬다.

그사이 다른 학생들은 분위기를 파악하고서 영악하게 입을 다문다.

하지만 치즈이 교수의 서늘한 시선은, 조금 전 떠든 학생들 전체를 관통했다.

“이곳은 학교입니다. 가르치고 지식을 나누어주며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곳이지만···. 기본도 안 되어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그렇게 하는 곳은 아닙니다.”

“…….”

“저 말고도 어떤 교수를 보건 예의를 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그 달라진 분위기에 치즈이 교수가 분필을 꺼내 든다.

동시에 어디선가 튀어나왔는지 모를 꼬리가 그 분필을 잡고서 빠르게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일단 설명해 드릴 건 마도 공학이 무엇인지···. 또 학문이 어떤 식을 발전해 왔는지···. 그 개요에 대해 적을 겁니다.”

“…….”

“이 내용을 가지고 다음 수업에서···. 간단하게 테스트를 치를 겁니다. 그 테스트는… 기말 시험에 반영 될 테니 모두 잘 암기하시기 바랍니다.”

첫날부터 수업, 그 다음 날에는 테스트를 치를 거라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손을 들어 질문하지 않았다.

조금 전 보았던 치즈이 교수의 발언으로 그가 어떤 성격을 가진 교수인지 단번에 파악이 되었기 때문이다.

‘빡세다.’

‘저 교수님이 진짜야.’

‘와···. 이거 강의 잘못 선택한 건 아니야?’

생각과 함께 학생들이 재빨리 노트와 펜을 꺼내 든다.

그 사이 치즈이 교수는 빠른 속도로 수업 내용을 칠판에다 적어 내려갔다.

학생들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필기하기 바빴다.

애초에 치즈이 교수도 풀이할 생각 없이 설명을 만 죽 나열했다.

그 덕에 교실 안에 펜이 긁적이는 소리만이 들려올 때였다.

귀 기울여 수업을 듣던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마도 공학 수업···. 재밌잖아? 마력을 사물에 담는 법. 마법을 사물에 담는 방식. 그 원리가 이런 거였구나.’

수백 년 전에 마법은 마법사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마법은 마법사가 아닌 자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간단한 예로 마력 엔진으로 가동되는 기차.

그 외 수많은 자동차.

그 전부가 마도 공학의 산물이었다.

치즈이 교수는 그 마도 공학에 대한 설명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그리고 재밌게 풀어냈다.

그 탓에 아더가 치즈이 교수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 기울일 때였다.

느릿느릿한 말투로 수업을 이어나가던 치즈이 교수가 시선을 돌린다.

“거기···. 왼쪽 17번 자리에 앉은 학생.”

“…….”

“왼쪽 17번 자리에···. 앉은 학생, 제 말···. 안 들리나요?”

예니카가 아더의 팔을 툭 쳤다.

뒤늦게 자신이 지목되었음을 깨달은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넵! 교수님.”

“다른 학생들은 전부 필기하고 있는데···. 학생은 왜 안 하는 겁니까?”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다른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치즈이 교수의 말대로 펜과 노트를 전부 펼쳐 들고 있었다.

그 탓에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은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젠장. 강의가 재밌어서 저걸 빠트렸네. 필기하는 척을 안 했어.’

비정상적인 기억력 덕에, 아더는 치즈이 교수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수업에 집중하지 않은 불량한 학생으로 보일 것이다.

그 점을 치즈이 교수가 날카롭게 지적해왔다.

“필기는 자유지만···. 테스트를 치른다고 했는데도 적지 않은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지요.”

이 말과 함께 치즈이 교수가 질문한다.

“마도 공학···. 그 개요에 관해, 제가 했던 말을 똑같이 읊어 보세요. 말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처벌이 있을···. 겁니다.”

학생들의 시선이 아더에게로 쏠린다.

그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아더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대답해야 해. 절대로 실수하면 안 돼.’

그렇게 긴장된 상태로, 아더가 입을 연다.

“마도 공학은···. 마력과 마법···. 이 두 가지에···. 사물을 접목한 학문이다.”

“……?”

“그 탓에 마법과 과학···. 이 두 가지에 능통한 자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학문이며···. 그에 따른 완성된 지식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다.”

치즈이 교수의 반쯤 감긴 눈이 치켜떠진다.

그건 아더를 지켜보던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경악한 눈빛으로 아더를 바라보았지만, 설명에 모든 신경이 쏠린 아더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속에서 아더가 눈빛을 빛내며 치즈이 교수가 했던 말을 똑같이 재현한다.

“마법과 과학. 그것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마도 공학, 대륙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학문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