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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41화 (41/265)

제41화

아더가 약속한 금화를 내밀었다.

자루를 받아든 지니는 그 개수가 맞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1개···. 250개.

저번 선수금으로 받은 250개를 합치면 정확하게 500골드가 맞았다.

‘…괘씸하긴 해도 약속은 지켰네.’

중얼거림과 함께 지니가 미소 지었다.

전에 본 적 없는 환한 미소였는데, 그 탓에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돈 좋아하네, 지니 씨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특히 용병들은 그런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지니 같이 행복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 이유가 뭔지 문득 궁금해진 아더가 질문했다.

“지니 씨. 돈을 왜 그렇게 좋아해요?”

“네?”

“말 그대로예요. 다른 사람들도 돈을 좋아하긴 하는데, 지니 씨는 특히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왜 그렇게 돈을 좋아하는 거예요?”

지니의 미간이 살짝 모인다.

“그럼 돈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음… 그건 아닌데.”

말을 흐리는 아더의 모습에 지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번 사건으로 아더의 대한 평가가 약간은 달라지려 했는데, 역시나 미친놈은 미친놈인 모양이었다.

‘이런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약과긴 하지.’

중얼거림과 함께 지니가 고민한다.

평소라면 무시해버렸겠지만, 끝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누구 한 명은 지니라는 용병의 끝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만 그 끝을 알 사람이 미친놈이라는 건데….’

고민해 보니 오히려 좋은 점도 있었다.

어느 누가 미친놈의 말을 믿어줄까?

결정을 내린 지니가 입을 연다.

“이번 일로 은퇴할 생각이에요.”

“…!”

“그래서 기분이 좋은 거예요. 물론 돈이 좋은 건 맞지만···. 돈 때문에 행복한 건 아니에요.”

아더가 당황해 중얼거렸다.

“아···. 지니 씨 은퇴하는군요.”

“네.”

“흠···. 아깝네요.”

“뭐가요?”

아더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제가 만나 본 용병 중에서 지니 씨가 가장 프로페셔널 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은퇴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쉬워서요.”

지니가 입을 다문다.

그녀는 의외라는 듯한 시선으로 아더를 바라보았다.

“빈말을 너무 진심인 척하는 거 아니에요?”

“아뇨? 진짜 진심이에요. 지니 씨는 제가 만나본 용병 중에서 가장 프로페셔널 했어요.”

“그런다고 금화 안 돌려줘요.”

“안 돌려줘도 돼요.”

지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간판을 바라보았다.

‘하긴···. 열심히 하긴 했지 이 일을.’

살아남기 위해서였지만, 진짜 열심히 하긴 했다.

그래서 은퇴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감상을 그녀는 곧 떨쳐냈다.

미련을 남기엔 너무 힘들었고, 정이 들기엔 괴로운 기억이 더 많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지니는 몸을 돌렸다.

“윌렛 어르신한테 안부 전해줘요. 지금까지 감사했다고.”

이 말과 함께 지니가 떠나간다.

그 뒷모습을 아더가 지켜보던 그때, 윌렛이 다시 나타났다.

아더는 지니의 말을 똑같이 읊어주었다.

“고마웠다고? 용병 일 그만둔다고 하던가?”

“네.”

“최근 힘들어하더니···. 결국 그렇게 결정한 모양이군.”

씁쓸한 표정으로 이 말을 중얼거린 윌렛이 고개를 든다.

“좋은 용병이었어.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한 친구였으니깐. 그래서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 윌렛의 말을 지니 씨가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윌렛이 의외의 제안을 한다.

“한 번 시간 내서 고아원에 찾아와.”

“…아테나 고아원이요?”

“그래. 이번 애들도 그렇고, 저번 하제스 때 구해준 애들도 그렇고 자네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아더가 방긋 웃었다.

“저야말로 좋죠. 일이 마무리되면 방문할게요.”

대답을 들은 윌렛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아더는 기지개를 켰다.

“흠···. 그럼, 일은 마무리됐고, 이제 아케인 대학만 신경 쓰면 되는 건가.”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대학은 어떤 곳이려나···. 뒷세계만큼 재밌고 이득이 되는 곳이면 좋을 텐데.”

* * *

시간이 흘렀다.

그 속에서 첫 수업 일정이 마침내 잡혔고, 아더는 안나가 준비해준 백팩과 여러 가지 물건을 챙긴 뒤 저택을 나섰다.

“공자님. 뭐 빠트린 건 없겠죠?”

“없어. 안나가 다 챙겨줬잖아?”

“어우···. 그래도 불안하네요. 첫날인 만큼 절대 실수하면 안 되는데···. 첫인상이라는 게 오래가거든요. 특히 학교에서는 더더욱.”

안나의 요란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안나가 나보다 더하네. 그렇게 긴장되나?’

그러면서도 한 가지 말에는 동의했다.

첫인상이 오래간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해온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첫인상은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첫날에 아마 대부분 학생의 위치나 이미지가 결정될 확률이 높았다.

‘튀지 말고 적당히… 굳이 눈에 띄지 말자. 평범하게 학교 생활하는 거야.’

내심 안 그런 척 했지만 아더도 불안하긴 했다.

이제는 거의 정상에 가까운, 평범한 사람이라 하지만 아직도 옛시절의 버릇이 종종 튀어나오곤 했으니.

그려먼서도 기대가 되기도 했다.

아케인 대학은 과연 어떤 곳일까.

배움이란 무엇일까.

한 번 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아더였기에 이 부분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사고를 치지 않은 게 중요한 데… 이게 내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네.’

그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차가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내리자 전에 보았던 4개의 탑이 보였다.

“진짜 크긴 하네···. 무슨 학교가 황궁과 비슷해?”

혀를 내두른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저번처럼 목적지를 헤매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첫 수업이 열리는 장소가, 저번 면접을 보았던 때랑 똑같았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기억력에 의지해 그 장소를 찾아간 아더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이미 먼저와 기다리던 동년배 학생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런 아더를 바라보았다.

‘오···.’

정체 모를 탄성을 속으로 내지른 아더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학생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쟤가··· 그 아더 바이에른?’

‘생각보다 멀쩡···. 아니 잘생겼는데?’

‘며칠 전까지는 벙어리 공자라 불렸다는데, 진짜 쟤가 아더 바이에른이라고?’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사리 분간도 제대로 못 하는 장애인이라 들었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허나 아더가 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순간, 학생들은 다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아더 바이에른이 생각보다 정상적인 건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너 어디 동아리 들어갔는데?”

“나? 당연히 검술 동아리에 들어갔지! 그곳에 제일검! 하르난 님이 계시잖아!”

“아···. 그 남부 왕국에서 온 검술 천재?”

“실제로 보니 더 어마어마하더라. 어떻게 왕족이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거지?”

자리에 앉아 그 이야기를 엿듣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흠···. 벌써 관계가 완성되었구나.’

아무래도 지난 일주일간 시행된 여러 프로그램 때문인 듯했다.

이미 자리에 있는 모든 학생이 각자의 무리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 틈에 끼어들기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더는 굳이 끼어들지 않았다.

‘굳이 친구 만들겠다고 말 걸었다가 실수할 바에는 이게 낫지.’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실수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때였다.

교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다.

탁-!

아더가 들어왔을 때처럼 대화 소리가 끊기고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옅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주로 남학생들의 탄성이었는데,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소녀가 무척이나 예뻤기 때문이었다.

“와 씨….”

“저 사람···. 그 헤이즐 기업의 첫째 딸 맞지?”

“맞아! 아케인에서 손꼽히는 기업가의 딸, 예니카 헤이즐 아니야?”

“예쁘다 예쁘다 이야기는 들었는데···. 쩐다….”

검은 생머리카락에 희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피부.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열다섯 살이라는 걸 고려하면, 앞으로 저 소녀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제 막 이성이라는 거에 눈을 뜰 소년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기에는 충분하다는 소리.

그 탓에 남학생들이 예니카라는 소녀에게 눈을 떼지 못할 때였다.

교실에 있는 남학생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던 예니카 헤이즐이 아더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자리 있어요?”

“…?”

“여기 앉을까 하는데 혹시 자리 있어요?”

눈을 끔뻑이던 아더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 네. 자리 있어요.”

이 말과 함께 올려두었던 가방을 내려놓자, 예니카가 그 옆에 앉았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던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은 자리도 많은데···. 굳이 왜 내 옆에 앉는 거지?’

혹시 나처럼 친구가 없나?

이 생각과 함께 아더가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대략 40명 정도 학생들이 그런 아더와 예니카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 가장 주된 이유는 기묘한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아케인 최고 기업가의 딸 예니카 헤이즐.

제국 최고의 명문가 아더 바이에른.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은 그 조합에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낼 때였다.

교실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그리고 등장한 것은, 조금 전 등장한 예니카 못지않게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소녀였다.

“엘린 레버쿠젠!”

“홀란 레버쿠젠, 제국 소드 마스터의 손녀 아니야?”

“와···. 예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깐 더 예쁘네.”

수군거림과 함께 남학생들의 시선이 예나카 때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그 사이 교실로 들어온 엘린이 연신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 구석에 위치한 아더를 발견하고서 눈빛을 반짝였다.

“공자님.”

부름에 상념에 빠져 있던 아더가 고개를 든다.

그리고 놀라 중얼거렸다.

“어 엘린 양?”

엘린이 비어있는 아더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으려다 멈칫한다.

“엘린… 양이요?”

“어… 네? 네. 엘린 양이요.”

“…그 호칭은 좀.”

말을 흐리는 엘린의 모습에 아더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제가 실수했나요? ‘양’이라 부르면 안 되나?”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양’이라 부르시니깐···. 닭살이 올라와서요.”

아더가 입을 다문다.

그 사이 엘린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어쨌든 옆에 앉아도 되죠?”

“…아! 물론이죠. 어서 앉아요, 엘린.”

허락에 엘린이 아더의 옆자리에 짐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학생들은 눈을 끔뻑였다.

‘…뭐야?’

‘뭔 조합이지 저건?’

‘그 엘린 레버쿠젠하고… 예니카 헤이즐하고… 아더 바이에른이 나란히 앉아있다고?’

당혹, 의아, 의문.

이 감정들이 교실에 휘몰아칠 때였다.

교실 문이 또 다시 열렸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또 한번 돌아가고, 한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와 교단 앞에 섰다.

놀스 하이젠.

아케인 대학의 교수 중 가장 유명한 검술 교수가 등장한 것이다.

그 탓에 수군거림이 잦아들고, 자유분방하게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학생들이 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그 사이 단상 위로 올라선 놀스 교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세를 갖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올곧은 시선이 기대한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더 가려서 뽑은 보람이 있군. 이번 기수는.’

흔히들 귀족가의 자제들이라 하면, 건방지고 예의가 없는 망나니를 먼저 떠올린다.

그 편견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망나니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케인 대학은 그런 망나니가 아닌 진짜 귀족가 자제들만 가려 뽑았다.

그 증거로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 전부 개개인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열의에 차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미소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뛰어난 종자들을 바라보며 놀스가 흐뭇이 미소 지을 때였다.

아더는 제 앞에 놓인 쪽지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끝나고 시간 있어요? 할 말이 있네요.]

고개를 든 아더가 옆을 바라본다.

놀스 교수를 바라보는 중인, 예니카 헤이즐이 보였다.

다시 시선을 내린 아더는 쪽지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할 말이 있다고?’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지?

고민하던 아더는, 흠칫 놀랬다.

‘설마 이거···.’

말을 흐린 아더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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