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40화 (40/265)

제40화

내리꽂은 검이 아슬아슬하게 아레스의 목을 빗겨 나간다.

생채기는 났지만 목이 잘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속에서 쥴리가 오열하며 중얼거렸다.

“못 죽이겠어요. 아무리 원수라도···. 못 죽이겠어요.”

그녀의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란 게 그래요. 시원하면서도 찝찝하죠. 저는 쥴리의 결정을 존중할게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다리에 힘이 풀린 쥴리를 안아 든다.

품에 안긴 쥴리가 울먹이며 아더를 껴안았다.

아더가 그런 쥴리를 말없이 다독였다.

“…….”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아레스는 참았던 숨을 토해 낸다.

‘기회는 딱 한 번 뿐이다.’

생각과 함께 입술을 달싹일 때였다.

서늘한 쇠의 감촉이 이마로부터 느껴졌다.

눈을 치켜뜬 아레스가 고개를 들자 웃고 있는 아더가 보였다.

“역시 마법사. 틈을 주니 곧바로 헛짓거리 하네요.”

아레스가 입을 벌린다.

하지만 아더의 손가락이 먼저였다.

탕!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아레스의 이마에 구멍이 뚫린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뒤로 쓰러진 아레스가 그대로 숨을 거둔다.

미래 황군 수석 마법사.

제국 최고의 천재 마법사라 불리는 남자의 허무한 최후였다.

‘살려 뒀으면 까다로운 적이 될 사람. 이쯤에서 죽여야 하는 게 맞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어느 사이엔가 진정이 된 쥴리가 보였다.

“자리 비켜 드릴 테니까, 시간을 좀 가지실래요?”

“네···.”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몸을 돌려 운디네에게 치료를 받는 중인 지니를 향해 다가갔다.

“괜찮아요, 지니?”

“…괜찮아 보여요 이게?”

화가 난 지니의 목소리에 아더가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지니 씨. 하지만 이해하죠?”

“아뇨. 그래서 말인데 뺨 한 대만 때려도 돼요?”

“뺨이요?”

“마음 같아서는 총을 갈겨 버리고 싶은데 받아야 할 돈이 있으니 참을게요. 대신 덜도 말고 딱 뺨 한 대. 딱 뺨 한 대만 후려칠게요.”

낮게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지니 씨 입장에서는 화날 만하네. 멋대로 자리를 비운 것도 모자라 목숨이 위험할 뻔했으니.’

그래서 아더는 얼굴을 내밀었다.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있던 지니가 화들짝 놀랬다.

“무, 뭐 하는 거예요!”

“지니 씨가 뺨 때리고 싶다 해서 편하라고 자세 취해 준 건데요?”

“…….”

“안 때리세요 지니 씨?”

지니가 아더를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뺨을 때리는 것도, 상대방이 화를 내야 의미가 있는 거지···.”

아더가 방긋 웃으며 내밀었던 고개를 원래대로 되돌린다.

“지금 타이밍에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고마워요, 지니 씨. 덕분에 일이 잘 풀렸어요.”

“그래요. 그럼 돈은 제대로 주는 거죠?”

“물론이죠. 아케인으로 돌아가자마자 드릴게요. 혹시 뭐 따로 원하는 거 더 있어요? 진짜 고마워서 더 선물해 주고 싶은데.”

지니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아뇨. 약속한 대로 돈만 주세요. 그거면 돼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무언갈 더 요구했으면, 주었을 텐데 원하는 게 없다면 굳이 챙겨 줄 생각은 없었다.

‘자 그럼···. 남은 건 뒤처리인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몸을 돌렸다.

널브러진 마법사들의 시체, 그리고 연구소가 보였다.

저 흔적을 지우는 것도 급했지만 가장 우선인 건 아직 살아남은 아이들이었다.

상태가 매우 안 좋아, 일분일초가 다급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지니에게 부탁했다.

“저기 안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구할 생각인데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지니? 아마 이게 마지막 부탁이 될 거예요.”

* * *

지니의 입이 벌어진다.

“허….”

마법사들이 세운 연구소에 쌓인 시체.

그 시체들 모두 열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그 탓에 뒤늦은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시발···. 진짜 개새끼들이었네, 이놈들.”

선이라는 게 있다.

그 선은 인간이라면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광경은 그 선을 넘었다.

그래서 지니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을 때, 옆에 있던 아더는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운디네, 치료 좀 부탁해.”

[네, 아더!]

중급 물의 정령의 치유력은 웬만한 신관보다 좋아,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이들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지니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던… 저 미친놈은 왜 여기에 온 거지?’

상황이 일어날 때는 관심이 없었는데, 모든 게 끝나자 궁금해졌다.

저 미친놈은 왜 마법사들을 죽였을까?

설마 연구소에 갇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건 아닌 건 같은데.’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쪽이 맞는 듯했다.

그 탓에 지니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아더를 바라보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선행이 맞다면 다시 볼만 했지만, 아직도 아더에게 맞은 뒤통수가 얼얼했기 때문이었다.

“후유···.”

그사이 살아남은 아이들을 모두 치료한 아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급한 불을 모두 끈 것 같네.”

[네에… 수고했어요, 아더.]

“아니야 운디네야말로 수고했어. 이제 잠시 쉬어.”

아더의 말에 운디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사라진다.

무리하게 힘을 쓴 탓에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더도 기지개를 켜며 굳은 몸을 풀 때, 쥴리가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끝났어요, 쥴리?”

“네. 던 아저씨···.”

말을 흐린 쥴리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고마워요. 제 친구들까지 구해 줘서.”

“뭘요.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하는 거죠.”

“아니에요. 힘든 일이 있으면···. 다들 외면하기 바쁘던데 던 아저씨는 달랐어요.”

쥴리의 대답에 아더가 턱을 긁적였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네···. 이런 일을 겪어서 그런가?’

곰곰이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 하더라도 어릴 때 겪은 시련 덕에 남들보다 빨리 성숙해지지 않았는가?

단지 그것이 좋은 일인지는 의문이었다.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망가트리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쥴리가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을지는 아직 몰랐다.

“갈 곳은 있어요?”

“아뇨. 저희 모두 고아예요···.”

“고아요? 이 아이들 전부?”

“네. 보리스 마을에서 전부 관광객들한테 구걸하는 친구들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음···. 알겠어요. 그럼 일단 기다려 볼래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서.”

“네. 던 아저씨.”

쥴리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그사이 아더는 걸음을 옮겨, 마법사들의 시체를 짊어졌다.

“……!”

옆에 있던 지니가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허나 아더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아레스의 시체마저 집어 들었다.

그리고 노움을 불러, 그들의 목까지 전부 회수하고서 말했다.

“지니, 잠시 경계를 좀 서 줘요.”

“네, 넵!”

대답을 들은 아더가 다시 연구소로 들어갔다.

짊어진 시체들을 적당히 바닥에 내팽개친 아더는 서류들을 집어 들었다.

“일단 이거는 증거물로 모아 두고···.”

말을 흐린 아더가 노움에게 서류를 건넸다.

“보관 좀 해 주세요, 노움 씨. 가방을 안 들고 와서.”

[응.]

아더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노움에게 건네주지 않은 서류 몇 장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프로젝트L, 혈통 복사, 실험 성공시···.

그 내용을 모두 암기한 아더는 중얼거렸다.

“흐음···. 혈통 복제라. 이런 걸 대체 왜 하는 거지?”

특별한 능력이 담긴 피.

그 피를 사람들은 간단하게 혈통이라 불렀다.

개중에는 저번에 만났던 테이큰처럼 괴물의 후손도 있었고 오늘 인연을 맺게 된 쥴리처럼 기적을 일으키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좋긴 하지만···. 한계도 명확하지. 혈통은 무적이 아니니까.’

특별한 능력을 하나 쥐었다고 해서 5서클 기사를 이기진 못한다.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 탓에 아더는 의문이었다.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레스는 혈통을 복제하려는 걸까?

차라리 저번 실험처럼, 마법사를 양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궁금하네···. 이걸 물어보고 죽였어야 했는데 쩝.’

입맛을 다신 아더가 상념을 털어 냈다.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거기다 이미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둔 상태기도 했고.

‘계획대로 빌 도르문트···. 그 인간의 능력 대신 쥴리의 능력으로 채워 넣었고, 아레스도 일단 죽였으니 더 욕심부리면 안 되겠지.’

복수와 혈통. 이번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이번 일로 모두 얻었다.

아더는 이쯤에서 만족하기로하고 나머지 서류들도 노움에게 맡겼다.

그리고 쥴리에게서 받은 번개 혈통을 일으켰다.

파지직-!

손끝에서 벼락이 튀어 올랐다.

아더는 그 벼락을 이용해 연구실에 불을 질렀다.

화르륵!

값비싼 첨단 기기들이 불에 그을려 비명을 토해 낸다.

더불어 이 연구실의 주인들은 재가 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더는 고개를 숙였다.

“흠···. 좋은 데 가라는 말은 못 하겠네요. 편히 쉬세요.”

인사를 끝마친 아더가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뒤에 남은 노움은 제 능력을 일으켜, 재가 되어 버린 연구실을 땅에 묻었다.

쿵!

아더가 밖으로 나오자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지니와 쥴리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끝났어요?”

“끝나셨어요, 던 아저씨?”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끝났어요. 이제 가 볼까요?”

“…어디로요?”

“당연히 아케인이죠.”

쥴리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는···. 아케인에 집이 없는걸요?”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쥴리. 때마침 좋은 곳이 있거든요. 쥴리와 친구들을 보살펴 줄 고아원이에요.”

쥴리가 눈을 끔뻑였다.

옆에 있던 지니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또 사고 치는 거 아니야 이 미친놈? 열 명이나 되는 애들을 받아 주는 보육원이 있다고?’

허나 굳이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아더와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을 때였다.

지니의 걱정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이게···. 대체 뭐지?”

서슬 퍼런 윌렛의 물음에 지니가 입을 다문다.

그사이 아더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음···. 안녕하세요, 윌렛 어르신?”

* * *

<매너가 사람들 만든다> 에서 나온 윌렛이 팔짱을 낀다.

그런 윌렛을 향해 아더가 횡설수설 설명한다.

“음···. 어쩌다 인연을 맺게 된 아이들인데, 갈 곳이 없다 하더라고요.”

“…….”

“그래서 윌렛 어르신네 보육원이 떠올라 데려왔는데 안 될까요?”

윌렛이 표정이 일그러진다.

보기 드문 그 감정의 변화에 지니와 아더가 흠칫 놀라 물러선다.

그사이 윌렛이 통제되지 않은 제 감정과 함께 뭐라 소리치려던 순간이었다.

“…….”

자신을 바라보는 열 명의 아이.

그리고 쥴리의 시선에 그 입이 다물어진다.

그 후 미간을 매만지던 그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나 날 곤란하게 만든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처음이라니 영광이네요.”

“칭찬이 아니야. 그래서 이 아이들 전부 부모가 없다고?”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쥴리를 비롯한 나머지 열 명의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부 그렇다네요.”

윌렛이 아더를 향해 손짓했다.

걸음을 옮겨 다가가자 윌렛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한다.

“다음은 없어. 무슨 뜻인지 아나? 저번 테이큰 일 때문에 저 아이들을 데려온 거면 이건 계약 위···.”

아더가 윌렛의 설명을 끊으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윌렛 어르신.”

입을 다문 윌렛이 다시 아더를 노려본다.

허나 아더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알고 이러는 건지… 모르고 있는 건지.’

다시 한숨을 내쉰 윌렛이 몸을 돌려 잔뜩 굳은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사탕 좋아하는 사람?”

“…….”

“없으면 도로 가져가마.”

몇몇 아이들이 눈치를 보다 손을 뻗는다.

윌렛이 슬그머니 미소 지으며사탕을 건네주었다.

그 모습을 아더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때, 옆에서 숨죽이고 있던 지니가 다가왔다.

“윌렛 어르신이···. 보육원도 운영했어요?”

“네. 아테나 보육… 음. 지니 씨?”

“네?”

“이거 비밀이니까, 꼭 지켜 주셔야 해요. 알았죠?”

지니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서 윌렛이 아더를 향해 묻는다.

“장사 시작해야 해서 이만 데려갈 건데 더 할 말 있나?”

이 말에 아더가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묘한 인연이었지만 고작 하루 봤을 뿐이었다.

그래서 해 줄 수 있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그사이 대답을 들은 윌렛이 몸을 돌렸을 때였다.

어물거리던 쥴리가 뛰쳐나왔다.

“던 아저씨.”

“네, 쥴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아더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한번 보러 갈게요.”

“…….”

“윌렛 어르신이 허락한다는 가정하에 한 번씩 꼭 방문할게요.”

쥴리가 방긋 미소 짓는다.

아더도 방긋 미소 지었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마친 쥴리가 윌렛을 따라 어디론가 향한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쥴리도 나처럼 이겨 낸 것 같네. 다행이야.”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졌다.

그 상쾌한 기분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돌린다.

자신을 기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지니가 보였다.

“자 그럼 지니 씨. 우리는 우리대로 이제 계산을 해 볼까요?”

아더가 약속했던 금화를 내밀었다.

“보수 500골드예요. 맞는지 세어 주세요, 지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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