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아레스는 제 눈을 의심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벼락은 마법이 아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은 자신이 염원하던 자연 그 자체의 벼락이었다.
그 탓에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벼락을 조종하고 다룬다는 말인가?
지금 저 연구소에 갇힌 '실험체' 말고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말을 흐린 아레스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너···. 정체가 뭐냐?”
“지금 그게 중요할까요?”
“뭐?”
“당신 위험해요, 아레스 씨.”
경고와 함께 벼락이 떨어진다.
운철검에 휘감긴 전류가 뻗어 나온 것이다.
허나 그 사실을 모르는 마법사들의 입장에서는 벼락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보였다.
쾅!
다행히 미리 준비해 놓은 베리어가 뻗어 나온 벼락을 막아냈다.
그렇다 해도 놀라움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벼락이 쏘아졌다.
인간의 의지로 자연재해를 움직인 것이다.
옆에 있던 마법사들이 정신을 차리고서 탄식을 터트렸고, 아레스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놀람보다는 몸을 짜릿하게 만드는 희열이 더 크다는 점이었다.
‘착각이 아니야···. 저 녀석은 훔쳤다. 쥴리 프로스키의 혈통을.’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지금까지는 그래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레스는 거친 웃음을 터트린다.
“음···. 왜 웃으시는 거죠?”
“뜻하지 않게 내가 바라던 것이 이루어져 버렸거든.”
“아하. 이 벼락이요?”
“그래. 그래서 기회를 주지. 너 이름이 뭐지?”
질문에 흐리멍텅한 이목구비를 가진 괴한이 대답한다.
“던이요.”
“던… 그래. 기억해 주마. 이 전투가 끝난 뒤에 인격이라는 게 사라질 테니까.”
섬뜩한 경고였지만 아더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네요. 당신은 이 전투가 끝난 뒤에 죽을 테니까.”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자세를 낮춘다.
그 모습에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느끼며 아레스가 중얼거렸다.
‘일단 생포가 먼저겠군. 딱 기절할 정도로···. 육체는 손상되지 않게.’
아레스가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 순간 아더의 등 뒤로 거대한 돌덩이가 예고 없이 덮쳐 왔다.
날카로운 창에 가까운 파편에 아더가 가볍게 검을 휘두른다.
후두둑!
종잇조각처럼 잘린 돌덩이가 떨어져 내린다.
기습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레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스 윌.]
숨겨 둔 주문이 발동된다.
그러자 잘린 파편이 아더의 몸에 달라붙는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파파팟-!
달라붙은 파편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아더의 사지를 구속했다.
그 광경에 마법사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허어… 저런 식으로 마법을 운용하다니.”
“역시 진짜들은 다르구먼….”
이 말과 함께 완벽히 파편에 파묻힌 아더가 석상이 되어 버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레스가 중얼거렸다.
‘끝났나?’
의문과 함께 시간이 지나간다.
그 속에서 괴한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레스가 살며시 미소지으며 명령한다.
“가서 데리고 와 끝났으니깐.”
“네, 넵!”
마법사들이 움직인다.
그리고 돌덩이가 되어 버린 아더를 들어 올렸을 때였다.
서걱.
살이 잘리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세 마법사의 목이 단번에 달아난다.
놀란 아레스가 눈을 치켜뜬다.
그와 동시에 다가온 마법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죽은 척하기 성공.”
이 말과 함께 아더의 몸을 옥죄던 파편이 터져 나간다.
타오르는 전류가 몸을 옥죄던 파편을 녹여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아더의 모습에 아레스가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너···. 뭐냐? 그 꼴은?”
“저요?”
“그래! 그 파충류 껍질! 대체 뭐냐 그거!”
이 말에 아더가 아직 남은 파편을 툭툭 털며 대답했다.
“혈통이에요. 제가 가진 혈통 중 하나.”
그리고 공간 도약을 사용했다.
흠칫 몸을 떤 아레스가 뒷걸음질 쳤다.
‘텔레포트? 아니 뭐지 이 능력은?’
아레스가 황급히 베리어를 두른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늦고 만다.
“….”
시선을 돌린 아레스가 제 오른팔을 바라본다.
당연히 달려 있어야 할 팔이, 어깨 아래로 텅 비어 있었다.
그 탓에 그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 순간, 아더가 속삭였다.
“이것도 제 능력이죠.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아레스 씨? 오른팔을 잘라냈으니, 다음에는 왼팔이에요.”
* * *
아레스가 거리를 벌린다.
공간 도약과 비슷한, 부유 마법이었는데 속도가 썩 빨랐다.
‘팔 하나가 없는데도 주문을 외우는 속도가 빠르네. 역시 미래 황군 수석 마법사라 이건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공간 도약을 사용한다.
그 순간 조금 전 서 있던 자리에 불기둥이 치솟는다.
타오르는 불씨를 사이를 두고, 아더가 운철검을 고쳐 잡는다.
파지직-!
손끝에서 피어오른 전류가 운철검을 휘감는다.
미래 쥴리 프로스키가 사용했던 벼락.
인간이 만들어 낸 가짜가 아니라 진짜 자연재해가 칼을 잡은 손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것이다.
그 기이한 느낌을 즐기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조금 전처럼 쏘아 내려면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구나. 흐음···. 그럼 아껴 두고 이 상태로 싸우는 게 맞겠어.’
생각과 함께 아더가 시선을 돌린다.
저 멀리서 상당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졌다.
아레스가 주문을 외우는 모양이었다.
마법사에게 시간을 줘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던 아더는 곧바로 움직였다.
파앗-!
다시 한번 사용한 공간 도약과 함께 아더가 칼을 내지른다.
허나 이번에는 아레스의 주문이 먼저였다.
[레디 붐.]
쾅!
거대한 폭발이 아더의 눈앞에서 일어난다.
덕분에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아더가 비틀거린다.
누가 보더라도 치명상이었지만, 아레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 녀석 위험하다. 정상이 아니야.’
파충류의 비늘을 닮은 갑옷.
텔레포트에 가까운 공간 도약.
거기다 쥴리 프로스키의 벼락까지.
하나만 가져도 눈을 치켜뜰 법한 능력을 눈앞의 괴한은 세 개나 다루었다.
그 탓에 아레스는 더는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느끼지 않았다.
대신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두려움.
혹은 공포라 불리는 감정을 은연중에 느꼈다.
고작 이런 무명의 칼잡이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수치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눈앞의 괴물은 비정상적이었다.
‘끝내야 할 때 끝내야 한다. 오른팔을 잃어버려서 장시간 전투를 할 수 없어.’
생각과 함께 아레스가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마력을 사용해 마법을 발동시킨다.
[레디 붐.]
쾅!
[레디 붐.]
쾅!
[레디 붐.]
콰콰쾅!
연속된 폭발과 함께 아더의 몸이 타오른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탓에 아레스가 숨을 몰아쉬며 생각한다.
끝났나?
결론은 아니었다.
아레스는 입을 벌리며 제 얼굴을 비트는 아더를 바라보았다.
“오… 이건 좀 아프네요. 테이큰 씨한테 얻어맞을 때만큼.”
이 말과 함께 그을린 피부를 복구시킨 아더가 웃는다.
그 미소에 아레스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뭐지?
어떻게 상처를 복구시킨 거지?
설마 저놈 마법사였나?
그것도 아니면 흑마법사?
하지만 느껴지는 마력이 없었다.
고작해야 두 개의 고리로 이루어진 마나가 전부였다.
‘그럼···. 어떻게 저 상처에서 살아난단 말인가?’
중얼거림과 함께 아레스가 틈을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아더가 공간도약을 사용하며 묻는다.
“하지만 이런 걸 연속으로 쓸 수는 없겠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레스가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 연속으로 사용한 마법 덕에 이미 마력은 바닥이 나 있었다.
소리 없는 고함을 지른 아레스가 눈에 핏발을 세운다.
서걱.
기이한 소리와 함께 왼팔의 감각이 사라졌다.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본능적으로 느낀 아레스가 고통에 몸부림 친다.
그런 아레스를 아더가 발로 차 넘겼다.
형편없이 바닥을 뒹군 아레스가 벌벌 떨며 질문한다.
“너, 너… 정체가 뭐냐. 정체가 뭐냐고!”
“저요?”
“그래!! 도대체 뭐야! 뭔데 나한테 이러는 거야! 설마 날 견제하기 위해 다른 지원자들이 보낸 암살자냐!”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건 아니에요. 당신을 죽이려는 건···. 음. 원한 때문이라 보는 게 맞겠네요.”
“뭐? 원한이라고?”
“네. 당신은 미래, 제가 죽여야 할 남자를 돕거든요. 그때의 당신은 지금과 달리 황군 수석 마법사라 엄청 까다로웠어요.”
아레스가 입을 벌린다.
이 괴물이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가?
미래에서 왔고, 그 때의 자신이 황군 수석 마법사라고?
듣기에는 좋은 말이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름이 돋았다.
그사이 고개를 숙인 아더가 아레스를 바라보며 웃는다.
“매번 제 앞을 가로막으며 몇 번이나 절 방해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죽여 놓으려고요. 이 정도면 이유가 됐나요?”
“미··· 친 새끼. 그게 이유가 되겠냐!”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하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아레스의 몸에 전류를 흘려 보낸다.
그 순간 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왔다.
마법을 썼더라면, 이런 감전 따위에 당하지 않을 테지만 양팔이 잘린 지금 아레스는 그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
그 탓에 벌어진 입에서 침만 뚝뚝 흘릴 때였다.
아더가 몸을 돌려 손을 흔든다.
“쥴리! 여기예요! 약속대로, 아레스 씨를 잡아 놨어요!”
이 말에 아레스의 눈이 치켜떠진다.
그사이 연구실로 나온 쥴리가 아더의 발밑에 놓인 아레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꼴 좋네요, 박사님.”
* * *
쥴리의 말에 아레스가 간신히 소리친다.
“네년이냐!! 네년이 이 괴물···.”
아더가 아레스의 정수리를 때렸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아레스는 피를 토했다.
정신이 혼미해진 아레스가 기절하려 하자, 아더가 강제로 머리채를 잡아 들며 경고했다.
“입 조심하세요, 아레스 씨.”
“….”
“당신 살려 두고 있는 거, 쥴리 때문이에요. 한 번만 더 그런 나쁜 말 하면 혀를 뽑을 거예요.”
아레스가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아더가 그제야 물러선다.
그사이 운디네의 치유 능력 덕에 회복한 지니가 중얼거렸다.
“저 미친놈···. 또 미친 짓 하네.”
상처를 치료하던 운디네가 그녀의 입을 찰싹 때렸다.
[아더는 미친놈이 아니에요, 지니!]
“그럼 뭔데요···.”
[착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나쁜 말 쓰지 마요!]
지니가 입을 다문다.
저 꼴을 보고 착하다는 말을 한다고?
아무래도 그 주인에 그 정령이라고 둘 다 맛탱이가 간 듯했다.
그사이 쥴리가 걸음을 옮겨 아레스에게 다가왔다.
입술을 깨문 쥴리의 표정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더는 운철검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검을 받아 든 쥴리가 고개를 들자, 아더가 아레스의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이쪽을 내려치면 힘이 부족해도 목이 잘릴 거에요.”
“….”
“꼭 자르지 않더라도, 일단 꽂히면 죽기는 할 거예요. 할 수 있겠어요, 쥴리?”
눈을 동그랗게 뜬 쥴리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쥴리가 운철검을 낑낑거리며 치켜세운다.
1년간 캡슐에 갇혀 있던 터라 그녀의 체력은 나이에 비해 매우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숨을 고른 뒤에야 운철검을 움켜쥔 쥴 리가 질문했다.
“죽이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어요.”
“…….”
“왜 저를 납치한 거예요? 하고 많은 애 중에 왜 저를 선택한 거예요?”
아레스가 중얼거렸다.
“왜 너를 선택했냐고?”
“네.”
“하하···. 진짜 빌어먹을 상황이군. 죽어 가는 와중에 받는 질문이 고작 이런 거라니.”
아레스가 피를 튀기며 소리친다.
“그야 네년의 피가 특별했으니까! 마법사도 아닌 주제에 번개를 다룰 수 있는 피! 그 축복받은 피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지!”
“…….”
“그래서 네년을 납치했고 실험을 했다! 그 피에 담긴 기적을 똑같이 재현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마탑의 교수가 될 거고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쥴리도 악에 받쳐 소리쳤다.
“고작 그것 때문에 1년 동안 저를 가두어 놓고 실험했다고요? 친구들을 죽이면서?”
“마법은 등가교환이다. 어떤 것을 얻으려면 대가를 바쳐야 하지. 죽어 간 생명은 아깝지만, 네년 피에 담긴 기적을 재현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쥴리가 입술을 깨문다.
동시에 운철검을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나쁜 놈…!”
외침과 함께 쥴리가 운철검을 내리꽂는다.
파앗!
살이 헤지는 소리와 함께 핏줄기가 터져 나온다.
쥴리가 눈을 질끈 감고서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아더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어요 쥴리.”
이 말에 쥴리가 자리에 쓰러져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복수란 게 그래요. 시원하면서도 찝찝하죠. 저는 쥴리의 결정을 존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