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고민하던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택 문항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간단한 상식 문제라 들었는데… 이게 뭐지?’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것들이 있으면, 그걸 고르려 했는데도 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고민하던 아더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려 할 때였다.
시험지 하단에 적힌 문구가 불쑥, 눈길을 끈다.
[답이 없다고 생각하면 주관식으로 서술하시오.]
아더가 들어 올리려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함정이었네. 첫 문제부터 이런 걸 보면···. 가벼운 테스트가 아닌가 봐?’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펜을 들어 슥슥 답을 적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첫 문제부터 저렇게 열심히 적을 건 없는데?’
의아함이 든 감독관이었지만 곧 어깨를 으쓱였다.
어떤 답을 적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인성 문제 다섯 개를 주관식으로 전부 필기한, 아더는 나머지 문제는 전부 객관식으로 체크하고서 미소 지었다.
‘인성 문제 빼고는 쉽네. 첫 문제만 함정이었나 봐.’
자신만만하게 시험지를 제출한 아더가 대학교의 첫날을 마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케인의 대학의 교수진들 전체가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다름 아닌 인성시험에 탈락한 최초의 학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 * *
아케인 대학은 대륙 최고의 교육기관이라 평가받는다.
그 명성에 걸맞게 교수진 또 한 화려한 면면을 자랑한다.
간단한 예로, 마법 교수진들은 모두 진짜 마법사라 평가받는 ‘50년’ 이상을 마법만 수련한 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최고의 교수진이라 불리는 아케인의 선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장의 시험지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인성시험에서 최초로 탈락한 학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건 꽤 심각한 문제입니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교수가 처음으로 입을 연다.
“차라리 오답을 체크했으면 모를까 주관식으로 이렇게 자세히 풀이했다는 것은, 이 학생은 정말로 지금 내놓은 답이 정답이라 생각한다는 겁니다!”
“….”
“거기다 다른 상식 문제는 단 한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전부 맞혔습니다. 모든 답을 이렇게 적어냈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할 텐데 인성 문제만 이렇게 적어냈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말에 다른 교수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탁자에 놓인 시험지.
그 시험지에 적힌 장대한 설명이 보였다.
[전쟁 포로는 원칙에 따라, 목숨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전황이 밀리는 상황이라면 굳이 원칙에 따를 필요가 없다. 포로의 가치는 전쟁 중에 빛나는 것이며 그에 걸맞은 정보···.]
꽤나 논리적으로 시작된 첫 문장.
하지만 뒤이어 이어지는 설명은 이 답을 적은 학생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잃을 목숨. 전쟁 중에 잃을 목숨.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을 때 일어날 모든 일을 계산하면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철저한 이성주의와 인간의 목숨을 계산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철혈이라는 별칭이 붙는 황제들이나 가질 법한 사고를, 고작 열일곱 살 소년이 적어낸 것이다.
그 탓에 눈꼬리가 올라간 교수의 지금 발언은 과격했지만, 꽤 타당하다 볼 수 있었다.
“이 학생은 고등교육을 받을 게 아니라, 기초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상식이 갖추어진 상태에서나 그게 의미가 있으니!”
대답에 다른 교수가 입을 연다.
“지금 이 학생이 어디 출신인지 아시는 겁니까, 놀스 교수?”
“예 압니다. 바이에른 가문 아닙니까?”
“그런데도 입학을 거부하겠다고요? 제국 최고의 가문입니다. 황제 다음가는 공작가 가문이죠. 만약 이 사실이 알려졌다가는 저희 아케인이 제국을 견제한다는 소문이 나올 겁니다.”
지적받은 놀스 교수가 다시 입을 연다.
그와 동시에 침묵하던 교수들도 하나둘 입을 연다.
주된 내용은 이런 답을 적어낸 학생을 받아야 하나.
그냥 가벼운 테스트인데 뭐가 문제냐.
그렇게 아더의 입학 여부를 두고 팽팽한 의견 대립이 오갈 때였다.
여태껏 침묵하던 ‘대마도사’ 하이엔즈 프레이아 교장이 입을 연다.
“흠… 정리를 해 볼까 하는데요.”
“…….”
“제가 보기엔 인성 테스트로 탈락하는 건 옳지 않은 일입니다. 어찌 되었건 나머지 상식 문제는 모두 통과했고, 이 아이의 가문은 무려 바이에른이지 않습니까?”
하이엔즈의 지적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바이에른 가문의 아이를 탈락시키다니요.”
“오랜 전통을 깨는 일입니다, 그건.”
그 모습에 하이엔즈가 시선을 돌렸다.
“놀스 교수가 왜 불만 품는지 알겠지만, 이번에는 넘어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교장님.”
놀스 교수의 대답을 들은 하이엔즈가 선언한다.
“아더 바이에른 학생의 입학을 허가하는 바입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 *
입학식을 마친 다음 날.
아더는 저택으로 날아온 통지서를 바라보았다.
[본격적인 수업 강의 선택은 일주일 뒤. 본관에서 이뤄집니다. 남은 기간 학교 적응을 위한 여러 체험 활동을 자유롭게 선택···.]
반쯤 읽은 통지서를 고이 접은 아더가 책상에 내려놓았다.
“흠···. 난 뭐 해당 사항이 없네?”
학교에 가는 이유는 공작가의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굳이 이런 친목교류회에 시간을 뺏기려는 게 아니라.
‘갑자기 시간이 생겨버렸네. 일주일 동안 뭘 할까?’
제일 나은 선택지는 역시나 새로운 혈통을 모으는 것이었다.
다섯 개의 피를 모은 상태지만 냉정하게 보면 밸런스가 상당히 무너진 상태였다.
간단한 예로 프라킬 혈통 능력과 테이큰의 혈통 능력은 같이 사용하게 되면 효율이 떨어졌다.
‘둘 다 육체 강화 쪽인데 프라킬 씨의 혈통 능력이 테이큰 씨의 혈통 능력에 잡아먹혀 버리지….’
바이에른의 피의 가장 큰 장점은, 공수 밸런스를 완벽히 맞출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 장점을 굳이 썩힐 필요가 없기에 아더는 새로운 혈통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현시점에서 얻을 수 있는 쓸 만한 혈통 하나가 이 근처에 있었다.
‘아케인의 위성마을 중 하나. 보리스 마을.’
그 보리스 마을에 자신이 기억하기로 꽤 독특한 혈통을 지닌 살인자가 한 명 있었다.
번개.
평범한 인간이라면 느끼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자연재해를 다룰 수 있는 살인자였다.
‘얻을 수만 있다면 지금으로써는 최고의 선택지지. 검기를 다루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부족한 힘을 채워줄 테니까···.’
결정을 내린 아더는 곧바로 준비했다.
사실 준비라 할 것도 없었다.
보리스 마을은 아케인 기차로 따졌을 때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니 말이다.
살인자를 빨리 찾는다는 전제하에, 하루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아더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했다.
“50 실버입니다.”
“계산할게요.”
역무원이 돈을 받고서 표를 건네준다.
아더는 그 표를 받아들고서 기차를 기다렸다.
우웅-!
그 사이 아케인의 상징 중 하나인 기차 소리가 역을 가득 메웠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어떻게 내달리는지 참 신기했다.
‘듣기로 마력 엔진장치를 사용해서 움직인다는데···. 얼마나 많은 마력을 쏟아붓고 있는 걸까?’
생각과 함께 반대편에 멈추어 선 기차를 훔쳐볼 때였다.
이제는 덩치가 커져 어깨에 앉지 못하는 운디네가 아더의 손을 붙잡는다.
[아더, 아더! 저기 봐요!]
“응? 저기?”
[네! 지니예요, 지니!]
운디네의 말에 아더의 눈이 커진다.
운디네가 가리킨 방향에 정말로 익숙한 뒤태가 보였다.
“오···. 진짜네?”
[네! 가서 인사해 보는 게 어때요?]
“인사?”
[같이 가면 좋잖아요! 아는 사람과의 여행은 즐겁기도 하고.]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여행이 즐거운 것까지는 모르겠고, 궁금하기는 했다.
‘지니 씨는 어떤 보상을 받았을까? 그리고 왜 그 의뢰를 받아들였을까?’
느낌일 뿐이지만, 지니란 사람은 생존 욕구가 매우 강했다.
이런 사람의 경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기 마련인데 대체 왜 용병 일을 하는지 또 그 의뢰를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고민하던 아더는 결국 참지 않고서 걸음을 옮겼다.
짐가방을 들고, 넋을 놓고 있던 지니가 움찔 놀란다.
“실프? 왜 그런 농담을 해? 그 미친놈이 왜 여기….”
“미친놈이요?”
“…?”
“지니 씨 미친놈도 알고 지내시나요?”
지니의 풍성한 머릿결이 바르르 떨린다.
눈대중으로 보았을 때, 귀가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아더가 슬그머니 미소지었다.
“…던 님?”
“네, 던이에요.”
“여기는 왜….”
“역에 왔으니 기차를 타러 왔겠죠?”
지니가 고개를 돌린다.
살며시 올라간 눈꼬리가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하하! 이런 우연이···. 겹치네요. 설마 보리스 마을로 가시는 건 아니죠?”
아더가 대답했다.
“어?추가 보리스 마을로 가는데.”
“….”
“지니 씨도 보리스 마을로 가시나요?”
지니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다.
그리고 입술을 질끈질끈 깨물더니 불쑥 중얼거렸다.
“X발.”
“…?”
“아 죄송해요. 제가 기분이 좋을 때 욕을 하는 스타일이라.”
지니의 사과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희한한 버릇이네요, 지니 씨.”
“그렇죠? 그런데···. 왜 오신 거예요?”
“아는 사람이 보이니깐 왔겠죠? 음···. 그래서 말인데 합석하시는 게 어때요?"
“합석… 이요?”
“목적지도 겹치고, 지니 씨에게 궁금한 것도 있었거든요. 아시겠지만 기차 여행은 꽤 지루하기도 하고.”
지니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허나 그 떨림을 잡아내지 못한 아더가 지니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침묵이 길어지려는 순간, 지니가 가까스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표가 다르면 같이 합석하지 못하잖아요.”
“어딘데요?”
“저 b-21 좌석이요.”
“어. 저는 b-22 좌석인데.”
“….”
“어차피 만날 운명이었네요, 저희?”
지니가 눈물을 글썽였다.
아더가 화들짝 놀라며 묻는다.
“어 지니 씨? 갑자기 왜 눈물을···?”
“던 님이랑 다시 만난 게 너무 좋아서요.”
“…저랑 만난 게 그렇게 좋으세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지니가 대답 대신 미소지었다.
‘좋겠냐! 미친놈아!’
그 사이 아더도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지니 씨가 날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네. 하긴···. 그때 내가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으니깐.’
생각과 함께 기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리스 마을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온 것이다.
시선을 돌린 아더가 지니에게 기차에 탑승하자마자 뭐라 말하려 할 때였다.
지니의 어깨 너머.
예상치 못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
탄성과 함께 허리춤에 찬 칼을 잡은 아더가 놀라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