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6화 (26/265)

제26화

퓨리스가 쓰러진 순간, 마법사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아더의 방아쇠가 먼저였다.

탕-!

총성과 함께 미간에 구멍이 뚫린 마법사가 뒤로 넘어졌다.

마법사의 죽음을 확인한 아더가 고개를 돌린다.

죽어가던 퓨리스가 중얼거린다.

“생각해봤는데 너. 내 혈통을 빼앗은 거야?”

“네.”

대답에 퓨리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바닥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놈들은 만나봤지만 남의 혈통을 훔치는 놈은 또 처음이군.”

웃음을 멈춘 퓨리스가 흐릿한 초점을 억지로 맞추며 말한다.

“이대로 격전지로 갈 건가?”

“네. 이번 의뢰는 당신을 죽이는 게 아니라, 빌딩을 지키는 거라서.”

“…우리 애들 여럿 죽어 나가겠군.”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저도 죽일 생각은 딱히 없습니다.”

퓨리스의 눈빛이 한순간 빛난다.

그 이변에 아더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뭐지? 설마 여력이 남아 있다고?’

걱정은 우려로 그쳤다.

퓨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뜯어 아더에게 건넸다.

“보여주면 물러날 거야. 물러나지 않으면, 내 유언이라 전하고.”

“….”

“이 바닥이 돈이 전부라 하지만, 그래도 쓸데없이 죽일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물음에 아더가 고민한다.

그 갈등을 눈치챈 퓨리스가 재빨리 설명을 잇는다.

“거기다 이 목걸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거야. 인식 장애 마법이 걸려 있거든.”

“…인식 장애 마법이요?”

“간단히 말해서 네 얼굴의 구조와 형태를 흐릿하게 만들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못 알아볼 정도로.”

아더가 눈을 끔뻑이다 감탄했다.

‘오···. 사실이면 진짜로 쓸 만한 물건인데?’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들킬까 봐, 어울리지도 않는 가면을 매번 쓰고 다닌 아더였다.

허나 퓨리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그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 것이다.

‘흐음···.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나쁘지 않네. 의뢰도 수월하게 완수하고 아티팩트도 얻고.’

생각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퓨리스 씨. 당신 말대로, 목걸이를 보여주며 유언을 전할게요. 이대로 의뢰를 포기하고 물러나라고.”

“그래···. 그래도 안 물러나는 놈들이면 그냥 죽여. 섣부른 정 때문에 덤벼들 놈이면, 어차피 금방 죽을 놈이니깐.”

대답과 함께 퓨리스의 숨결이 점차 가라앉는다.

죽음이 다가온 것이다.

사실 육체 강화를 한 상태 아니었다면 진작에 숨결이 끊어져야 했다.

‘아니. 육체 강화를 해도, 죽었어야 하는 상처지.’

그래서일까.

아더는 문득 궁금해졌다.

퓨리스는 왜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타인.

그것도 갱단을 걱정하는 걸까?

돈을 위해 모인 깡패들.

그들이 바로 전투 갱단 아니던가?

고민하던 아더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저기 퓨리스 씨? 한 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해.”

“아무리 갱단의 대장이라 하지만, 죽어가면서까지 그들을 지키려 하는 이유가 있나요?”

질문에 퓨리스의 시선이 느릿하게 아더에게 향했다.

“…당연한 거잖아.”

“…?”

“아무리 돈으로 이루어진 관계라 하지만, 같이 먹고 자고 했는데···. 이 정도 의리는 지켜도 되잖아.”

아더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퓨리스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래서 이렇게 죽는 건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유언과 함께 퓨리스의 숨결이 끊긴다.

그 죽음을 지켜보던 아더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퓨리스 씨는 갱단답지 않은 분이네. 보리스 씨야말로 진짜 갱단이었고.”

이 말과 함께 퓨리스의 시체 위로 그의 망토를 덮어 준 아더는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여명이 밝아왔다.

어느 사이엔가 아침이 다가온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아더는 몸을 돌렸다.

길고 긴 전투를 끝낼 때가 온 듯했다.

* * *

아더는 곧바로 격전지로 향했다.

다행히 타이탄 갱단은 자이언트 갱단을 상대로 어찌어찌 버텨내고 있었다.

‘자이언트 갱단은 퓨리스 한 사람이 전력의 90%라 하더니, 진짜였네.’

뛰어난 지휘관이자 전사.

그런 그의 공백은 자이언트 갱단의 전력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투는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고, 그런 와중에 아더의 등장은 자이언트 갱단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대장이 죽었다고?”

“네.”

“그리고 우리 보고 물러나라 했다고?”

“유언이라 했습니다.”

자이언트 갱단의 부대장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 아더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한동안 바라보다 물었다.

“이봐 너. 이름이 뭐지?”

“던이요.”

“기억해두지. 복수할 생각은 없지만, 뒤통수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 말과 함께 자이언트 갱단은 퓨리스의 말대로 깔끔히 물러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사이 타이탄 갱단의 새로운 대장이 된 라보르드가 다가왔다.

“…약속을 지켰군.”

이 말과 함께 라보르드가 피로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솔직히 말해, 그대로 내뺄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럼 의뢰를 실패하잖아요?”

“이런 의뢰는 실패해도 돼. 배신자가 있었고, 정보에 없던 적의 전력이 등장했잖아.”

아더가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보르드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고맙군. 솔직히 말해, 이제 죽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영웅처럼 등장해줘서.”

“저도요. 솔직히 말해 라보르드 씨를 포함해 타이탄 갱단 전부가 죽을 줄 알았거든요.”

라보르드가 눈을 끔뻑인다.

그리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너무 솔직한 대답 아닌가?”

“어···.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뭐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진심인데?

하지만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그사이 전투가 끝났음을 깨달은 타이탄 갱단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때, 라보르드가 다시 입을 연다.

“궁금해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우리 전 대장, 아무래도 진짜 배신을 한 모양이더군.”

“보리스 씨요?”

“그래. 그 빌어먹을 씹새끼···. 도박으로 거액의 빚을 져서, 이번 의뢰로 한탕 해 먹으려 했다더군. 안 그래도 최근 움직임이 수상하긴 했는데, 이런 식의 뒤통수를 칠 줄은 전혀 몰랐어.”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흔해 빠진 이야기라 놀랍지도 않았다.

그사이 설명을 끝마친 라보르드가 제 명함을 건넨다.

“돈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라면, 언젠가 이 은혜를 갚지. 뭐···. 우리 도움이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아더가 명함을 받아 들자, 라보르드는 그대로 몸을 돌려 현장을 빠져나갔다.

같은 밤을 지샌 전우였지만 작별인사는 없었다.

허나 그것을 아더는 개의치 않았다.

저게 갱단이었기 때문이다.

퓨리스가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고.

“그건 그렇고···. 원한도 은혜도 생겨버렸네. 희한한 일이야.”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희한한 일이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는 오늘의 친구도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오늘의 적이 친구도 될 수 있고.

그래서 한 치 앞을 가늠하지 못하는 곳이고, 살아만 남는다면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역시 재밌는 곳이야. 아케인은.’

생각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든다.

동시에 떠오른 태양이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아더는 몸을 돌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 *

늦은 오후.

아더는 간밤의 피로를 모두 푼 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를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인사에 윌렛이 대답 대신 몸을 돌린다.

여전히 쌀쌀맞은 태도에 아더가 어깨를 으쓱이며 뒤를 따랐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지하에 위치한 주점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탓일까.

윌렛은 맞은편의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고, 스탠드 바로 다가가 아더에게 자리를 권했다.

“술은 좀 하나?”

“아뇨.”

“…단호한 대답이군. 그럼 칵테일은?”

“그것도 안 합니다.”

“그럼 뭘 원하나?”

“우유 있나요?”

“….”

“우유가 없으면 물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윌렛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더의 요구대로 우유를 건네주었다.

잔을 받아 든 아더가 잔에 든 우유를 반쯤 마신 순간, 윌렛이 무언가를 꺼내 든다.

금화였다.

“이번 의뢰의 보수는 총 6골드. 그런데 의뢰를 부탁한 타이탄 쪽에서 자네의 보수를 4골드를 더 올려준다더군.”

“….”

“하지만 그런 망할 일을 겪게 하고, 4골드를 퉁치는 건 말이 안 되지. 그쪽이 받기로 한 30골드에서 반을 나누기로 타협했고, 중계 수수료를 떼고서 13골드. 최종적으로 내가 계산한 자네의 몫인데 혹시 불만 있나?”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만족합니다.”

“…참견은 하기 싫은데, 돈 문제는 예민하니깐 지금 말해두는 게 좋아.”

“아뇨. 진짜로 만족합니다.”

윌렛이 입을 다문다.

그리고 아더를 잠시 바라보다, 13골드가 담긴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환전하려면 이야기해. 대신 1골드를 더 줘야 하고.”

“음···.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뭐 수고했네. 변수가 발생했는데, 잘 해결했더군.”

“네. 설마 갱단의 대장이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게 전투 갱단 놈들의 특징이지. 신의와 신뢰 따위는 없고, 오로지 돈만 보고 움직이는 존속들. 그래서 전투 갱단 놈들이 하루살이라 불리는 거고.”

윌렛이 보드카를 콸콸 쏟으며 설명을 이어 나간다.

“그래서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왜 의뢰를 포기 안 했나?”

“네?”

“상황이 틀어졌는데, 왜 끝까지 남아서 자이언트 갱단과 대치한 거냐 묻는 거네.”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설마 윌렛이 이런 질문을 던져 올 줄 몰랐기 때문이다.

허나 곧 정신을 차리고 고민했다.

이번 질문으로 잘하면 윌렛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 몰랐다.

‘혈통 때문에 남았다 하면···. 안 되겠지? 그러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던 아더는 라보르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던.

던이라는 용병.

그 용병의 이름값에 대고 약속할 수 있냐고.

아더는 고민하다 이 말을 적당히 각색해 풀어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면, 제 이름값이 떨어지잖아요.”

“…뭐?”

“의뢰를 완수 못 하면 이름값이 떨어지잖아요.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윌렛의 눈이 약간 치켜떠졌다.

그 확연한 감정의 변화에 아더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답변이군. 진짜로 그거 때문에 남았다고?”

“네.”

“…자네의 대답은 대답 같지 않군.”

“어···. 진심입니다.”

“그래. 뭐 그게 진실이라 치고, 어찌 되었건 그 자리에서 일을 완수한 건 잘한 일이야.”

윌렛이 설명한다.

“자네가 갱단 대장이 배신한 가운데 끝까지 남아 의뢰를 완수했다는 소문이 이 바닥에 쫙 퍼졌어.”

“….”

“더불어 자이언트 갱단의 퓨리스를 죽인 일도 말이지. 혈통 능력을 지닌 3서클 갱단 대장을 죽인 건 주목 할 만한 일이야. 자네의 이름값이 올라갔다는 거지.”

아더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그럼 더 좋은 의뢰가 들어오겠네요.”

“그렇지. 더불어 등급도 올라갈 테고. 그럼 더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겠지.”

“다음 의뢰는 좋은 의뢰로 부탁드릴게요.”

“이번에도 좋은 의뢰를 받을 수 있었어. 자네가 거절해서 그렇지. 그러게 왜 갱단···.”

윌렛이 입을 다문다.

그리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곧바로 일할 건가?”

“아뇨. 조금 쉬려고 합니다.”

“잘 생각했네. 너무 갑자기 눈에 띄어도 좋지 않아. 몸이나 추스르고 있게.”

이 말과 함께 윌렛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더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다시 양복점으로 돌아온 아더와 윌렛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어르신?”

“말하게.”

“혹시 양복 한 벌 살 수 있을까요?”

윌렛이 손가락을 튕긴다.

“비싸네.”

“….”

“자네가 이번에 받은 보수를 다 써야 겨우 한 벌 맞출 수 있을 거야.”

이 말에 아더가 조금 전 받은 보수를 망설임 없이 내밀었다.

“한 벌 맞춰 주실 수 있나요?”

“…진심인가?”

“네 진심입니다.”

대답에 윌렛이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격전 끝에 얻은 보수를, 고작 양복 한 벌에 태워 버린다고?

‘물론 내 양복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도대체 뭐지 이 녀석?’

생각과 함께 윌렛이 아더를 지긋이 바라볼 때였다.

아더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의 양복을 둘러보며 내일 점심에 있을 약속을 떠올렸다.

‘아케인 시장님. 이 도시에서 가장 높으신 분을 만나러 가는 데 새 양복 한 벌쯤은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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