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3화 (23/265)

제23화

“제국의 황군 마법사가 세운 마탑. 그곳은 아케인에 존재하는 3개의 마탑 중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음습한 곳이지.”

윌렛이 설명과 함께 차를 따른다.

아더가 잔을 받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품질이 매우 좋은 차인지 상쾌한 감각이 입 안에 맴돌았다.

“그곳에서는 온갖 실험이 이뤄진다네. 그중에는 인체실험도 포함되어 있어. 그리고 하제스는 그 인체실험의 대상자였으며, 폐기된 프로젝트의 산물이었지.”

“폐기된 프로젝트요? 어떤 프로젝트였는데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깨달음을 얻지 않은 상태로, 미리 각인된 마법을 일으키는 이른바 '노 시그널' 마법 프로젝트라 하더군.”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여기서 윌렛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주문세계.

그 주문세계에서 구축된 마법 망이었다.

‘이 마법 망은 마법사 개인마다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 들었어. 그래서 같은 마법이라 할지라도 외우는 주문이 다르고···.’

그리고 지금.

윌렛의 설명에 의하면, 제국의 황군 마법사들은 그 고유의 마법 망을 복제하는 실험을 했다는 소리다.

‘그래서 하제스 씨가 황군 마법사의 주문을 똑같이 외웠던 거구나. 복제된 마법 망을 쓰고 있었으니깐.’

실험이 만약 성공했으면 평범한 일반인조차 마법을 쓰는 시대가 왔을 터.

허나 제국의 황군이 그런 시대를 바랐을 리는 없다.

아마 대량으로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듯했다.

‘하지만 하제스 씨가 도망친 걸 보니, 실험은 실패했고… 그래도 예상외네. 설마 제국 황군의 비밀과 얽혀 있을 줄이야··.’

제국의 황군에는 이번 복수의 끝이라 볼 수 있는 칸 마드리드가 있다.

더군다나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아마 아레스 아레키스.

칸 마드리드의 심복이자 황군 마법사인 그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아레스 아레키스의 주문하고 하제스 씨의 주문이 똑같았으니깐.’

그는 지난번의 삶에서 가장 아더를 까다롭게 했던 적수 중 한 명이었다.

진짜 마법사라 불리는 황군 마법사답게, 온갖 기적을 일으키며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자.

이번 삶에서도 부딪칠 확률이 높았고, 그래서 꼭 죽여야 할 남자였다.

‘의뢰도 아닌 테스트에서 얻은 정보가 그 마법사와 연관된 정보라니, 대박인데?’

생각과 함께 아더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 일은 누가 의뢰한 거죠?”

“제국의 마탑 쪽에서 의뢰했지.”

“제국의 마탑 쪽에서요?”

“폐기된 프로젝트의 실험체가 버젓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영 불안했던 모양이야. 아무리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도시라 하지만, 인체실험은 규탄받는 행위 중 하나니깐.”

설명을 끝마친 윌렛이 팔짱을 낀다.

더 물어볼 게 남았냐는 눈빛을 보내며.

아더는 고민하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하제스 씨는 왜 아이들을 잡아다 인신매매를 한 거죠?”

“살아남으려고. 싱싱한 장기는 여러 곳에서 꽤 쓸모가 있고···. 그것을 원하는 자들은 보통 뒷세계의 거물들이지.”

윌렛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는다.

“장기의 공급책으로, 그들과 연줄을 잡아 제국 마탑의 눈길을 피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되려 시선을 끌었지···. 그래서 우리 쪽 사무소까지 의뢰가 들어온 거고.”

“으음···. 그렇군요. 복잡한 사정이네요.”

“이제 더 말해 줄 것도 없어.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전부니깐.”

“감사합니다, 윌렛 어르신. 덕분에 궁금증이 해소됐어요.”

아더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지켜보던 윌렛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나도 한 가지, 질문해도 되나?”

“네. 얼마든지요.”

“하제스가 황군 마법사의 주문을 쓰는 건 어떻게 알았나?”

아더가 방긋 웃는다.

“예전에 마주쳤거든요. 그래서 기억하고 있어요. 워낙 강하고···. 까다로웠던 분이었거든요.”

설명에 윌렛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황군 마법사가 강하고 까다롭다?

맞는 소리다.

황군 마법사 정도 되면 진짜 마법사라 불리고, 그런 자들은 시간만 있으면 일개 단신으로 군대를 맞설 수도 있었다.

‘그런 마법사와 마주쳐 살아남았다면 둘 중 하나지. 같은 소속이거나, 아니면 황군 마법사보다 실력이 좋거나.’

그리고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사내.

던의 말만 놓고 보면 후자에 가까웠다.

그 탓에 아더를 바라보는 윌렛의 눈길에는 경계심을 넘어 진한 호기심이 깃들었다. 그 순간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윌렛 어르신 그만 가 봐도 될까요?”

“…가는 거야 자네 자유지. 그런데 계약서는 정말 안 읽어 볼 건가?”

“네. 정 마음에 걸리시면 내일 와서 다시 읽어볼게요.”

윌렛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에 아더가 양복점을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아! 하제스 씨가 잡아 둔 아이들은 근처 잡화점에다 맡겨 놨어요. 대략 8명 정도 되던데, 윌렛 어르신이 알아서 보살펴주세요. 어르신이 운영 중인 고아원에 맡겨도 좋고요.”

* * *

가볍게 임한 테스트.

허나 예상치 못한 소득과 이 도시의 내막.

더 나아가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 중 한 명의 은밀한 비밀을 알아낸 아더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 일을 선택한 보람이 있네. 첫 의뢰부터 이런 소득을 얻다니.’

이 도시로 온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좋은 혈통 능력을 수집하기 위해서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피만 모을 생각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인 이곳은,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이번 삶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몇몇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아레스 아레키스…. 칸 마드리드의 심복인 황군 마법사. 그런데 그의 흔적을 벌써 찾아버렸네?’

그 탓에 아더는 어제의 성과에 크게 만족했고, 제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역시 용병 일을 선택하기 잘했네. 벌써 이런 정보들도 얻고.’

하지만 긍정적인 결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더가 손가락을 두들기며 어제의 전투를 떠올렸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만족할 만한 성과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노움 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하제스의 마법에 감전될 뻔했으니.’

그래서 아더는 새로운 혈통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 새로운 무기의 필요성도.

‘칼로만 썰어 대는 건···. 한계가 있어. 특히 하제스 씨와 같은 마법사를 상대할 때면 말이지. 그래서 무기가 필요한데… 좋은 총 한 자루가 있으면 딱 좋겠네.’

마나를 쓰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칼보다 더 치명적이며, 원거리 타격까지 되었으며 휴대하기도 편한 무기.

그 탓에 제법 즐겨 썼었고, 이번에도 꽤 유용하게 쓰일 듯했다.

아직 검기를 방출하지 못하는 자신의 약점을, 총이란 무기가 어느 정도 메꾸어줄 테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양복점을 방문하기 전에 총포상을 먼저 방문했다.

이전 삶에서, 제법 신세를 졌던 곳으로 품질 좋은 총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 기억을 되새기며 문을 열자, 꾸벅꾸벅 졸음과 싸우던 중인 주인장이 눈을 떴다.

“사러 온 거요 구경하러 온 거요.”

“사러 왔는데요?”

대답에 주인장의 눈이 아더를 훑는다.

가면을 뒤집어쓰고, 입고 있는 옷은 하이엔드 급의 명품.

범상치 않은 복장에 주인장의 자세가 달라진다.

“어떤 종류를 원하십니까, 손님?”

“어떤 종류요?”

“네. 승마나 사격.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 저쪽의 총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면, 단순 취미라면 장인이 만든 이 권총도 나쁘지 않고요.”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쪽의 총 말고 다른 건 없나요?”

“음···. 그럼 용도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걸 알면 적당한 놈으로 골라드릴 수 있습니다.”

아더가 손가락을 튕긴다.

“사람 죽일 때 쓸 거거든요.”

“…?”

“그래서 화력도 강하고, 탄창도 넉넉한 놈. 무엇보다 망가지지 않을 법한 그런 종류의 총 있을까요?”

주인장이 눈을 끔뻑인다.

“농담입니까”

“아뇨 진담인데요.”

“…혹시 뒷거리 사람입니까?”

“네. 용병입니다.”

주인장이 한숨을 내어 쉰다.

그 후 머리를 박박 긁다, 조금 전과는 달라진 태도로 아더를 향해 말했다.

“요즘 용병들은 죄다 그런 명품을 입고 다니나?”

아더가 어깨를 으쓱이자, 주인장이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돈은 충분하고?”

“음···. 아마도요?”

“하긴, 그런 명품을 걸치고 있는데 돈이 없는 것도 이상하겠군. 이쪽으로 와 봐.”

손짓에 아더가 주인장을 따라, 가게 안쪽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그 순간 바깥에 전시된 총들과는, 그 용도가 달라 보이는 수십 점의 총들이 아더를 반겨왔다.

그사이 주인장이 벽면에 걸린 총 하나를 꺼내 들어 아더에게 내밀었다.

“새로 나온 신상인데, 샷건이라 불리는 놈이야. 탄창 개수는 적지만 화력 하나는 끝내 주지.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어떤 인간이건 다진 육고기로 만들어 주는 흉악한 놈이기도 하고.”

설명에 아더가 샷건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좋아 보이는데 너무 크네요.”

“휴대성이 부족하다?”

“네. 좀 더 작은 건 없을까요?”

주인장이 턱을 쓰다듬는다.

“작은 놈들 중에 화력도 강하고 탄창 개수도 넉넉한 놈이 있기야 하지.”

“오···. 그걸로 볼 수 있을까요?”

“보는 거야 되는데 아마 사지는 못할 거야.”

“왜죠?”

“더럽게 비싸거든.”

“….”

“보조 마법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마법이 걸린 놈이기도 하고 그런 놈들은 애초에 군 장교들이 쓸 목적으로 나온 놈들이라 구하기도 쉽지 않은 매물이지. 그래서 난 추천 안 해. 이런 건 비싸게 팔아도 남는 게 별로 없거든.”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손가락을 튕겼다.

“볼 수는 있을까요? 그렇게까지 설명하니 궁금하네요.”

“그래···. 뭐 보면 살 마음이 안 들 거야. 그 정도로 좋은 놈이거든.”

이 말과 함께 주인장이 방 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보석함을 들고 와 아더에게 내밀었다.

“열어 보게나.”

아더가 천천히 보석함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아주 미약하지만 마력이 흐르는 세련된 권총 한 자루가 아더의 시선을 빼앗는다.

‘프라킬 씨의 반지와 똑같은···. 아티팩트네?’

물론 프라킬의 반지보다 흘러넘치는 마력은 약했다.

마법의 질이 낮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아티팩트였기에, 아더가 기대감을 안고서 권총을 집어 든다.

그 순간 권총에 흐르는 마력이 아더에게 반응해 옅은 빛을 뿜어낸다.

그 기이한 감각에 아더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갈 때, 주인장이 침을 튀기며 설명을 시작한다.

“[탄창 강화] [위력 증대] 그리고 무엇보다 [명중 조준]이라는 마법이 각기 걸린 놈이야. 속성 강화까지 붙지는 않아 명품 반열에 들지는 못하지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놈 중에는 최고라 부를 수 있지. 초보자도 이놈을 들기만 하면 살인귀가 된다는 소문···.”

아더가 그 설명을 불쑥 끊는다.

“이걸로 할게요. 좋아 보이네요. 마법도 여러 개 걸려 있고.”

“…내 설명 못 들었나?”

“들었는데요?”

“그럼 이놈이 얼마나 더럽게 비싼 놈인지 감이 안 와? 그냥 다른 놈으로 해. 이런 건 고장도 잘 나고 내구성도 별로거든. 비싼 돈 들여 샀다가, 얼마 쓰지···.”

아더가 다시 한번 그 설명을 끊는다.

이번에는 말로 아닌 금화로.

그 탓에 주인장의 눈이 치켜떠진 순간, 아더가 질문했다.

“이 정도로 부족할까요?”

주인장이 침묵하다, 시선을 돌려 아더의 복장을 훑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히죽 올린 체, 허리를 반듯하게 숙였다.

“케이스는 보너스입니다, 손님. 저희 총포상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총포상을 나온 아더는 콧노래를 부르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로 향했다.

‘기대 안 했는데 지나치게 좋은 총을 얻어버렸는데?’

그 과정에서 돈을 좀 쓰기는 했지만, 딱히 부담되지 않았다.

요넬이 매달 주는 용돈의 금액을 생각하면 여섯 달 치 용돈을 당겨썼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

‘그럼 무기도 구매했고···. 이제 남은 건 혈통이네. 슬슬 쓸 만한 혈통을 하나 얻어야 하는데 말이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의 문을 연다.

신문을 보던 윌렛이 힐끔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일찍 왔군. 돈이 많이 급한가 봐?”

“네?”

“이쪽 바닥 인간들은 보통은 게으르거든. 그런데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건, 돈을 필요로 해서지.”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떠보시네. 돈은 필요하지 않은데….’

그사이 윌렛이 움직인다.

보고 있던 신문을 반으로 접은 그는 가게 문까지 걸어 잠갔다.

그리고 아더를 향해 손짓했다.

“일 얘기는 보통 밑에서 하는 편이지. 따라오게.”

이 말에 아더가 윌렛의 뒤를 따랐고, 그 순간 숨겨져 있던 지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와 비슷했는데 여러 사람이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윌렛과 계약한 용병들로 보였는데, 범상치 않은 자들이 몇 명 있었다.

‘오… 5서클. 검기를 뿜어낼 줄 아는 분들도 있다고? 역시 윌렛 어르신네 해결사라 해야 할까?’

이 바닥에서 검기를 뿜어낼 줄 아는 용병은 극히 드물었다.

검기를 뿜어낼 줄 아는 자들이면 편하게 봉급을 받는 기사를 할 터이니 말이다.

그 사이 아더를 안쪽의 사무실로 안내한, 윌렛이 서류를 내밀었다.

“지금 맡을 수 있는 의뢰는 총 3가지네.”

아더가 서류를 받아 든다.

동시에 윌렛이 한 서류를 가리키며 설명한다.

“그중 내가 추천하는 건 이거네. 쉬우면서도 간단한. 그리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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