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6화 (16/265)

제16화

대련 당일.

케인은 제 둘째 아들 제인을 불러 조언했다.

“손속을 두지 마라.”

“…?”

“가능하면 죽일 기세로 몰아붙여라. 아니···. 죽일 각오로 임하거라.”

제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저야 상관없는데···. 자칫 잘못했다 일이라도 터지면 뒷감당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그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너는 그저 어떻게 놈의 가슴팍에 칼을 꽂을 수 있는지나 고민하거라.”

제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뭐···. 알겠습니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게, 그런 일 아니겠습니까?”

자신감에 찬 아들의 모습에 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인 이안과는 달리, 다소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제인은 수도에서 내로라하는 망나니였다.

‘그렇게 되도록 키웠기 때문이지···. 가끔은 앞뒤 생각 안 하고 일을 저지르는 놈이 한 명쯤 있으면 편하니깐.’

그런 것치고 검에 재능이 있어, 19살이란 나이에 2서클을 달성한 상태다.

그리고 이제 조금 있으면 3개의 고리를 엮을지도 몰랐다.

이번 대련 상대인 아더 바이에른이 한 개의 고리를 엮은 걸 고려하면,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 셈.

그 탓에 케인은 승리는 물론이고, 이번 대련을 통해 아더 바이에른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수준 차이가 나는 상대하고의 대련에서···. 무언가를 숨길 수는 없겠지. 그것이 설령 바이에른의 혈통이라 할지라도.’

여기까지 생각한 케인은 저택을 나와, 바이에른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더 바이에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바이에른 가신들만이 보였다.

굳이 소란을 피울 필요가 없기에, 케인은 팔짱을 끼고서 아더를 기다렸다.

허나 지루함을 참지 못한 제인은 노골적인 도발을 시작했다.

“이 벙어리 새끼가, 감히 아버지를 기다리게 만들어?”

잘 훈련된 바이에른 가신들은 그 도발을 애써 못들은 척했다.

하지만 표정이 굳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제인 도르문트가 망나니라 하지만, 지금 모욕 중인 사람은 이 집안의 소가주다.

요넬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신분인 아더를 욕하는 건, 바이에른을 모욕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

그 탓에 모두가 제인 도르문트를 말없이 노려보았지만, 그럴수록 제인은 신이 나 떠들었다.

“똑같은 칼을 든다고 해서, 다 똑같은 칼이 아닌데~ 그 벙어리가 이걸 알려나 몰라~. 아니지. 병신이라서 이것도 모를려나아아아~?”

일부러 말을 늘어트린 제인이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상식에 어긋난 무례함에 뒤에 선 도르문트 가신들조차 혀를 찼다.

허나 정작 그런 아들의 망나니짓을 케인은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그 탓에 어색한 기류가 대련장에 내려앉을 때였다.

쿵-!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걸어 들어온다.

그 모습에 제인이 웃음을 멈추며, 놀라 중얼거렸다.

“…뭐야? 저게 그 벙어리라고?”

그 사이 케인 앞으로 다가온 아더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지도 시선을 낮추지도 않은 체 케인을 바라보았다. 이에 정신을 차린 제인이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아더가 방긋 웃으며 입을 연다.

“좋은 날이네요. 안 그래요, 케인 도르문트 백작?”

* * *

“좋은 날이긴 하지. 그래서 준비는 다 됐나?”

“예. 바로 시작할까요?”

“대련 방식 정도는 상의해야지.”

아더가 방긋 웃는다.

“누구 한 명 죽을 때까지 하는 거 아니었어요?”

질문에 케인의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간다.

그건 옆에 있던 제인도 다르지 않았다.

화가 난 제인이 성급히 앞으로 나섰다.

“이 새끼가 미쳤나 지금 누구···.”

허나 어느 사이엔가 내밀어진 케인의 손에 입을 다물고 다시 물러났다.

“누구 한 명 죽는 건 곤란해. 이건 결투가 아니라 대련이니깐.”

“아···. 그런가요? 대련에서는 누구를 죽이면 안 되는군요.”

“그래. 그런 의미에서 대련의 패배는 누구 한 명이 더는 칼을 들 수 없을 때로 하는 게 어떻나?”

아더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그럼 시작할까요?”

대답에 케인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저도 모르게 뒷덜미를 쓸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거지? 지금 이 상황은 전부 내가 예상한 바인데?’

해맑게 웃고 있는 아더 바이에른.

화가 잔뜩 치민 제인 도르문트.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을 주목하는 100여 명에 달하는 두 가문의 가신들.

지금의 상황과 분위기, 모든 게 자신의 계획과 정확히 일치했다.

변수가 일어날 만한 요소 따위는 없다는 소리였다.

그 탓에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 스산함을 애써 떨쳐낸 케인이 중얼거렸다.

‘칼 하나는 재능 있는 놈이다. 이변은 일어날 수 없어.’

그 후 몸을 돌린 케인이 관객석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제인을 향해 속삭였다.

“대련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네가 평소에 눈독 들이던 영애들과 만남을 주선해 주마.”

“…!”

“그 자리에서뭘 하건···. 네 뜻대로 할 수 있게 해주마.”

제인이 입꼬리를 히죽히죽 올리며 소리쳤다.

“명 받들겠습니다, 아버지!”

케인이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반대로 몸을 돌린 제인은 수도에서 가장 이름난 대장장이한테 반협박으로 빼앗아온 검을 빙빙 돌렸다.

“저런 무식한!”

한 기사가 참지 못하고, 일갈했지만 제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조금 전 아버지가 했던 말에 쏠려 있었다.

어떤 영애건 상관없다 했으니 플라티나 남작의 딸로 할까?

아니면 하이슨 자작?

두 귀족의 딸 모두 한 미모를 하니, 괴롭히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저 벙어리가 뭐라고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거지? 뭐···. 나야 좋기만 하지만. 흐흐.’

웃음을 터트린 제인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멀뚱히 선 아더를 향해 조금 전 하지 못한 도발을 시도했다.

“이봐, 벙어리.”

“….”

“어떻게 해서 네가 벙어리에서 벗어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넌 벙어리다. 알았냐?”

아더가 웃었다.

“여전하시네요, 당신은.”

“그럼 여전하지. 넌 달라졌고. 그러게, 왜 나아져서는 아버지의 관심을 끌어?”

제인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는다.

“곱게 끝마칠 거라 생각하지 마라. 팔 한 짝은 가지고 갈 테니까.”

경고와 함께 제인이 돌리던 검을 내려놓았고, 그걸 신호로 심판진이 다가왔다.

“두 분 모두 준비되셨습니까?”

“네.”

“빨리 시작이나 해.”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심판진이 물러나고, 널찍한 연무장에 두 소년이 진검을 치켜든다.

그 모습에 연무장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목울대가 출렁일 때였다.

제인의 호흡이 순간 늘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를 뛰쳐나가며 아더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

지켜보던 바이에른 가신들이 놀라 입을 벌린다.

제인 도르문트, 망나니라 불리는 놈의 실력치고 군더더기 없는 도약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약만큼이나 날카로운 일격은 ‘살수殺手’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 탓에 참지 못한 안나가 크게 소리쳤다.

“고, 공자님--!”

그 부름에 맞추어 제인의 칼날이 아더의 오른팔로 쇄도했을 때였다.

아더의 칼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동시에 제인의 오른쪽 눈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어?”

뱉어진 탄성과 함께 제인의 몸이 앞으로 기운다.

방향을 잃은 검이 애꿎은 바닥을 내리쳤다.

“어,어?”

다시 한번 탄성을 내지른 제인이 오른쪽 눈을 더듬는다.

허나 피가 흘러내리는 눈은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통과 함께 상실된 시각 속에서 제인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아더 바이에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른손잡이세요? 왼손잡이세요? 아니면 둘 모두예요?”

높낮이가 없는, 섬뜩한 목소리였다.

* * *

제인 도르문트.

지난 생에서 가장 많이 부딪쳤고 가장 많이 놓친 도르문트 백작가의 둘째 아들.

빌 도르문트는 아예 찾지 못해 죽이지 못했다면, 제인 도르문트는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이지 못한 자였다.

그래서 아더는 제인 도르문트가 운이 매우 좋은 녀석이라 평가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제인 도르문트도 참 쓰레기였지.’

빌이 여동생을 노렸다면, 제인 도르문트는 가문의 재산을 노렸다.

헌데 단순히 바이에른 가의 재산만 노린 것이 아니었다.

제인은 바이에른 가신들의 재산도 같이 빼앗아 갔다.

그 탓에 바이에른에 충성했던 모든 이들이 집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겼으며, 그 중엔 가족조차 팔아넘긴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 이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분들도 다수 섞여 있어… 빌이 내 여동생에게만 상처를 줬다면, 제인은 바이에른의 이름 그 자체에 상처를 준 셈이지.’

그래서 제인을 죽일 이유는 차고 넘쳤다.

문제는 어떻게 죽이냐는 것이다.

생각과 함께 아더의 칼이 움직인다.

촤악-!

그 순간 다시 한번 흩뿌려지는 피와 함께 제인이 비틀거린다.

“…끄어억.”

터져 나온 신음과 함께 제인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아더는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제인의 허벅지를 또 한 번 베어 넘겼다.

“끄아아악-!”

고통을 참지 못한 제인이 울부짖으며 핏대를 세웠다.

“도대체 왜!! 왜! 맞지 않은 것이냐!”

외침과 함께 제인이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일격이 일정한 경로를 잃어버려 오히려 위험해졌다.

허나 아더는 그 검로들마저 예측하며 간단히 피해버렸다.

‘똑같네. 검을 휘두르는 스타일이나···. 불리해지면 나오는 버릇이나···. 그때랑 지금이랑 크게 다를 게 없어.’

똑같은 검을 든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이 휘두르는 건 아니었다.

각자만의 스타일이 있고 버릇이 있으며 휘두르는 경로가 있었다.

그리고 제인 도르문트 또한 검을 휘두르는 중 이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묻어 나왔다.

그래서 아더는 제인의 검을 피해낼 수 있었다.

전생에서 수없이 검을 맞대 본 상대.

그 상대가 어떻게 검을 휘두를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데다가 하물며 그 경지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낮다면 피해내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그 탓에 분명 제인이 고리가 더 많았음에도, 아더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반면 아더의 검은 제인의 육체에 차곡차곡 상처를 쌓아 나갔다.

처음에 베어낸 오른쪽 눈꺼풀을 시작해, 팔과 다리.

그다음은 가슴.

전신을 칼로 난도질했고 이제는 베어내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출혈은 곧, 체력의 저하로 이어졌다.

“허억···.”

아무리 마나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 하지만, 결국엔 인간이다.

한계 이상의 피를 흘리게 되면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인의 칼질은 처음의 기세를 잃고 허공을 베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그 횟수만큼 아더의 칼질은 또다시 제인의 몸을 베어냈다.

“…끄아아악!”

또 한 번 비명을 지른 제인이 조금 전 베인 어깨를 감싸 쥐며 처음으로 물러선다.

“너, 너 뭐야? 너 뭐냐고! 벙어리 맞아? 벙어리 아니지! 벙어리가 어떻게… 어떻게….”

공포에 질린 그 모습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놀랍게도 지금의 저 멘트를 미래의 제인 도르문트도 똑같이 했었다.

그 탓에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검을 고쳐잡았다.

‘항상 이때쯤 방해꾼들이 나타나 제인을 살려줬는데, 과연 이번에도 그럴까?’

문득 든 의문에 아더는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부드럽게 검을 내질렀다.

피를 흘리던 제인 도르문트가 그 일격에 반응해 중얼거렸다.

‘죽는다?’

그 순간 피 분수가 솟구쳤다.

핏방울 튀기는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피 분수였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제인의 사고가 급격히 굳어버렸다.

허나 느껴지는 아픔에 현실에서 도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니, 있어야 할 팔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을 쥔 인간의 손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

제인의 바지가 노랗게 물들었다.

한계를 넘어선 공포감에 사고는 물론이고 육체마저 통제를 벗어났다.

사납게 일그러진 표정이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제인의 오른팔을 잘라낸 아더의 검이 멈추지 않고서 그의 목으로 향했다.

“…!”

그 일격에 여태 경기를 멍하니 지켜보던 바이에른 가신들과 도르문트 가신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아더의 칼을 바라보며 제인이 중얼거렸다.

‘죽는다.’

생각과 함께 제인의 입이 벌어졌을 때였다.

폭음이 터져 나왔다.

챙!!!

검과 검이 부딪치는 격렬한 소리와 함께 경기에 난입한 케인 도르문트가 아더의 검을 쳐올린다.

허나 아더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켰고, 자연스럽게 검을 뻗어 케인의 목을 노렸다.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이어지는 연격에 케인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챙!!!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소음과 함께 아더의 검이 손가락 몇 마디를 두고, 케인의 검에 막힌다.

그 상태 그대로, 케인은 아더를 노려보았고, 아더는 케인을 노려보았다.

그 무언의 시선 교차 속에서 케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아더가 입을 연다.

“어라? 흥분했네요? 죄송합니다, 도르문트 백작.”

입가에 미소를 띤 아더가 검을 거둔다.

“제인 도르문트가 항복 선언을 안 해서 조금 손속이 과했네요. 하지만… 경기 중에 뛰어드는 건 약속에 없었으니, 이해해주실 수 있죠?”

질문에 케인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줌을 지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제 아들을 바라보다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끝낼 수 있는데 가지고 놀았고, 가지고 놀았기에 항복할 시간을 주지 않은 거 아닌가?”

“글쎄요···? 아직 그 정도 실력은 아니라서 모르겠는걸요?”

대답에 케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호선을 그렸으니 미소라 불려야 하는데, 그 모양새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 탓에 아더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케인 도르문트는 화가 났다.

그것도 엄청나게.

‘아아···. 좋네. 전생에서도 케인 도르문트···. 의 이런 표정은 보지 못했는데.’

그 탓에 제인의 목을 베어내지 못했지만, 충분히 만족한 아더가 심판진을 바라본다.

그 무언의 압박에 정신을 차린 심판진이 대련의 승자를 선언하려는 순간이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갑작스레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깜짝 놀란 아더가 고개를 돌리니, 자리에서 들고 일어난 바이에른 가신들이 소리치는 게 보였다.

“아더, 아더, 아더!!”

제 이름을 연호하는 그들의 모습에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이긴 건 난데, 왜들 저렇게 신이 나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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